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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의 마법', 유럽도 구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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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의 마법', 유럽도 구원할까?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그렇다면 한국GM의 운명은?

GM은 대륙별로 다양한 이름(브랜드)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GM의 유럽법인은 '오펠(Opel)'이라 불리며 섬나라 영국에서는 '복스홀(Vauxhall)', 호주에서는 '홀덴(Holden)'이라 부른다. 미국에서 팔리는 GM 차량 대부분은 '쉐보레(Chevrolet)'라는 브랜드를 달고 출시되는데, 일부 고급 승용차는 '뷰익(Buick)'이라는 브랜드로 팔린다.

뷰익, 오펠, 복스홀, 홀덴은 각각 미국, 독일, 영국, 호주에 있던 완성차업체들로서, 지난 세기에 GM이 인수해 자회사로 만든 기업들이다. GM은 인수한 기업에 자신의 이름을 직접 붙이기보다, 그 나라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기존 명칭을 사용하곤 한다. 한국의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후 한동안 'GM대우'라는 명칭을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쉐보레 크루즈 = 라세티 프리미어 = 홀덴 크루즈

그래서 똑같은 차라 할지라도 나라별로 다른 브랜드로 출시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쉐보레 크루즈의 경우, 한국에서는 대우차 브랜드로 익숙한 '라세티 프리미어'라는 이름으로 나왔고, 호주에서는 '홀덴 크루즈'란 이름으로 팔린다. 뭐 여기까지는 자동차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 얘기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유럽과 호주에서 팔리는 쉐보레 크루즈와 홀덴 크루즈, 그리고 한국에서 팔린 라세티 프리미어가 한때는 모두 같은 공장에서 만들어졌다면? 그렇다. 사실이다. 2009년 6월부터 호주 시장에서 팔린 홀덴 크루즈는 한동안 군산공장에서 만들어 수출했지만, 2010년 말 호주 현지공장에서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다.

최근 크루즈 차세대 모델 생산을 유럽으로 옮긴다는 소식에 발칵 뒤집혔지만, 훨씬 전에 이미 홀덴 크루즈 생산을 호주 현지공장으로 이관한 선례가 있다는 것이다. 이게 당시에 뉴스거리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상대적으로 물량 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간 2만 대 안팎?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호주의 자동차 판매량이 20%나 급감하게 된다. 그나마 쪼그라든 시장에 해외업체들이 치고 들어와서, 외제차가 호주 시장의 70~80% 점유율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호주의 완성차업체들 역시 소형차 생산보다 중대형차나 SUV 생산에 열심이었고, 이 빈틈을 한국과 일본 업체들이 공략한 것이다.

급기야 2009년에 홀덴자동차는 호주 연방정부와 주정부에 수입차 구매를 자제하고 국내산 자동차를 더 많이 구입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바로 그 시점에 구세주가 나타났다. 크루즈 현지 생산이 결정된 것이다. 호주 애들레이드에 위치한 엘리자베스 공장이 선택되었고, 크루즈 생산에 맞게 라인을 변경하여 2012년 현재까지 생산하고 있다.

"소형차 생산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매우 대담한 것이지만, 우리는 반드시 해야 한다. 지금 당장 그래야만 한다. 우리는 이것이 올바른 결정이라고 믿는다." ("It is a bold plan to return to small-car production but we need to do it, we need to do it now. We know it is the right decision.") 2009년 당시 홀덴의 바테이(Batey) 회장은 애들레이드에서 크루즈를 생산하기로 한 결정을 두고 "홀덴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결정"이라고 자평한 바 있다.

그뿐이 아니다. 2009년 8월,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남호주) 주지사 마이크 란(Mike Rann)이 직접 미국의 GM 연구소를 방문하게 된다. 거기서 그는 아예 대놓고 "크루즈를 전기차로 개발해서 호주 현지생산이 가능하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한다. 당시 GM이 야심작으로 내놓았던 쉐보레 볼트 전기차 기술을 접목해 달라는 것이었다. 애들레이드의 엘리자베스 공장이 바로 남호주에 위치해 있다.

그렇다. 이건 뭐, 거의 전쟁이다. 공황 이후 소형차와 전기차 생산에서 승부수를 던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자본가들은 물론이고 정치인들까지 모두 발 벗고 나선다. 그도 그럴 것이, 호주 내의 완성차업체 중 유일하게 홀덴만 판매량을 회복하고 있는 상태인데, 거의 전적으로 소형차 크루즈 판매량 증가 덕분이다. 크루즈 현지생산이 아니었다면 홀덴은 문을 닫을 운명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 쉐보레 크루즈 전기차. ⓒ뉴시스

만년 적자기업 오펠의 운명은?

이런 상황은 유럽의 오펠도 마찬가지이다. 그렇지 않아도 수익성이 높지 않은 상태에서 설상가상으로 2008년 공황이라는 재앙까지 덮쳤다. 1999년부터 작년까지 13년 동안 누적 적자만 무려 130억 달러, 한국 돈으로 14조 원 이상의 손실이 쌓였다. 게다가 모기업인 GM 역시 파산 위기로까지 몰린 상태였다.

한때 20%대를 넘보던 오펠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5%대로 급락하고 말았다. 오히려 유럽 시장에서 '쉐보레' 브랜드의 차량은 3%대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차량의 거의 대부분은 한국GM에서 만들어 유럽으로 수출되는 차량이다. 한국GM은 지난해에만 25만 대의 차량을 유럽으로 수출했는데, 한국GM이 생산하는 완성차 전체의 30%에 달한다.

유럽 전역에서 생산해서 판매하는 차량이나 한국에서 수출하는 차량 수에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기막힌 상황, GM 본사는 진지하게 오펠을 팔아치우는 것을 검토한다. 그런데 캐나다의 마그나 그룹과 매각 양해각서까지 체결한 상태에서, 2009년 11월 GM은 매각 계획을 전격 철회한다. 오펠 사장이 경질되었고 대신 GM대우 사장을 지낸 닉 라일리가 긴급하게 유럽 GM 법인장으로 투입된다.

한국에서 대우차 시절 정리해고자들의 복직 합의로 친숙한 닉 라일리는, 유럽에서는 정리해고·공장폐쇄 등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는 저승사자 임무를 맡게 되며, 부임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벨기에의 앤트워프 공장 폐쇄를 결정한다. 소설 <플랜더스의 개> 말미에 마을에서 쫓겨난 네로가 파트라슈를 안고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던 배경 앤트워프, 이곳에서 무려 2600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쫓겨나게 된다.

자, 그럼 다음 순서는 무엇일까? 그렇다, 이건 공포영화다.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폴란드·러시아·스페인 영국 등 유럽 전역의 12개 공장에 분산되어 있는 4만여 명의 오펠 노동자들은, 자기 공장이 다음 차례가 되지 않기만을 빌어야 했다.

2009년 말부터는 유럽 재정위기로 인해 남유럽(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시장이 더 쪼그라들었다. 곳곳에서 희망퇴직 프로그램이 가동되었고, 견디지 못한 노동자들 일부는 사표를 쓰고 말았다. 2009년 쌍용차 사태는 한국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노동력의 절반 이상이 몰려 있는 독일이 다음 차례라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돌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올해 5월에 오펠은 중대한 결정을 발표한다. 차세대 아스트라(Astra) 생산에서 독일 공장을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2015년 출시될 차세대 아스트라 생산지로는 영국의 엘즈미어포트(Ellesmere Port)와 폴란드의 글리비체(Gliwice) 공장이 선정되었다.

독일의 오펠 노동자들은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아스트라는 오펠의 대표적인 소형차로서 쉐보레 크루즈와 동급 모델이다. 그런데 독일 공장에서 더 이상 아스트라 생산을 하지 않는다고? 뤼셀스하임(Rüsselsheim) 공장의 1만 4000명, 보쿰(Bochum) 공장의 3000명 노동자들이 생산하던 아스트라가?

이 얘기는 결국 보쿰에서 생산되는 또 다른 차종인 미니밴 자피라(Zafira) 생산을 뤼셀스하임으로 넘기고, 보쿰 공장을 폐쇄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뤼셀스하임 공장은 현대차로 따지면 울산공장과도 같은 상징성이 있어서, 노동자들의 집단적 저항이 조직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보쿰 공장 노동자들의 위기의식이 극에 달했다. 저항을 분산시킬 목적이었는지 오펠 경영진은 지난 8월부터 생산량 축소를 단행하면서 뤼셀스하임 공장의 가동시간을 단축시키게 된다. 연말까지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과잉생산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장가동 단축은 또 다른 위기의식을 낳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공장 사이에 경쟁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누가 다음 차례가 될 것인가?"

독일 금속노조(IG Metall)를 핵심 축으로 오펠 노동자 평의회는 지난 3년 동안 GM 유럽법인과 지루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노동조합은 "공장 폐쇄만은 절대로 안 된다"는 입장이며, GM 사측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직까지 뭔가 구체적인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GM 군산공장이 차세대 크루즈 생산에서 제외되었다는 뉴스가 타전된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이게 지금 쉐보레 크루즈 생산 이전을 둘러싼 세계적인 배경이다. 그렇다, 장난이 아니다. 상황은 절대로 단순하지 않다. 사태를 분석하고 대처하는 데에서 글로벌한 시야를 갖지 않으면, 상황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 입장에서는 '갑자기' 닥쳐온 사태처럼 보이지만, 유럽의 시야에서 보면 지난 3년간 줄다리기를 벌여온 사안이다. 그래서 사실은 수많은 외신보도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이를테면 한국GM의 생산차종 일부를 유럽으로 옮길 수 있다는 얘기는 벌써 작년부터 GM의 회장 댄 애커슨이 직접 언급한 바 있다. 오펠을 회생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로 예시한 것이다.

그러다가 올해 1월 초에 <로이터통신>이 "쉐보레 크루즈와 올란도를 각각 폴란드 공장과 독일 공장으로 이전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뉴스를 내보낸다. <오토모티브 뉴스(Automotive News)>는 훨씬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크루즈 생산을 폴란드의 글리비체 공장으로 옮길 것이라고 보도한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것일까? 이 외신보도와 거의 동시에, 임기를 9개월 남긴 한국GM의 마이크 아카몬 사장이 돌연 사임하게 된다.

5월 14일, 오펠의 사장 슈트라케는 회사를 살리기 위한 '신성장 계획'을 발표하면서 "오펠 공장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쉐보레를 유럽에서 생산하는 방안을 디트로이트(GM 본사), 상하이(한국GM이 소속돼 있는 GM해외사업부문) 측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힌다. 유럽에서 판매되는 쉐보레 차량 대부분이 한국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는 한국 생산물량을 유럽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5월 말에 열린 부산 모터쇼에서, 마이크 아카몬 후임으로 한국GM 사장에 부임한 세르지오 로샤는 한국 생산물량의 유럽 이전설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반년도 지나지 않아 로샤 사장은 자신의 입으로 "GM이 차세대 크루즈 생산을 한국에서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결정을 통보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자동차산업 관련 뉴스는 잘 가려서 읽어야 한다. 매일같이 전 세계적으로 워낙 방대한 정보량이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를 예측하는 기사들의 경우, 실제로 그렇게 진행되는지 여부를 면밀히 체크해봐야 한다. 또한 자본가들이 이러저러한 회사 방침을 발표하는 것 역시, 일부는 발표와 달리 실제 실행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속담처럼, 아무리 추측성 기사들이라 할지라도 모종의 진실들을 담고 있기 마련이다. 아예 근거 없는 뉴스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위에서 예시한 것처럼, 한국 생산물량의 유럽 이전설 언론보도에 대해 한국GM 측이 공식적으로는 부인해 오다가 종국에는 사실로 시인하는 과정이 잘 보여주지 않는가.

하청 생산기지

일부 언론에서는 "생산물량이 유럽으로 이전될 경우, 한국GM은 글로벌 GM의 하청 생산기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보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보면, 이미 한국GM은 하청 생산기지나 다름없는 신세임을 알 수 있다.

아래 그래프는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한국GM이 생산한 완성차 판매량 추이를 그려본 것이다. 내수 판매는 1만 대 안팎에서 고정되어 있는 반면, 수출 판매량은 많은 변화를 그리고 있다. 따라서 한국GM의 판매량은 전적으로 수출이 좌우한다. 지난해 한국GM은 완성차를 80만 대 정도 만들었는데, 이 중 내수 판매는 채 20%에 미치지 못하며 80% 이상이 수출되었다. (판매량 수치는 모두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발간하는 '자동차 통계 월보'의 통계자료에 따른 것임.)

ⓒ오민규

그런데 한국GM은 완성차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부품을 반조립 상태로 포장해 수출하는 CKD(Complete Knock-Down) 생산도 병행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다른 완성차업체도 CKD 생산을 하고 있지만, 완성차 생산의 10~20% 안팎 규모이다. 하지만 한국GM은 완성차 대수보다 훨씬 많은 CKD 생산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무려 124만 대를 수출했으니 완성차 생산의 무려 1.5배에 달한다.

만약 완성차와 CKD 생산을 합산해서 통계를 내자면, 한국GM의 생산량은 지난해 약 204만 대에 달한다. 이는 글로벌 GM의 전 세계 판매량 902만대의 무려 23%에 해당하며, '쉐보레' 브랜드로 전 세계에서 판매된 476만대의 40%가 넘는다. 그러나 지난해 내수시장에서 14만 대를 팔았으니 이는 전체 생산량의 불과 7% 밖에 안 된다. 즉, CKD를 포함한 전체 생산량의 무려 93%가 수출 물량이라는 것이다. 현대기아차가 내수와 수출 비율을 40 : 60 선에서 유지하고 있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지 않은가.

불편한 진실

쉐보레 크루즈의 마법은 GM 회생에 막대한 공적 자금 투입이라는 도박을 했던 오바마를 미소 짓게 했다. 그리고 남쪽의 호주에서는 홀덴을 회생시키는 힘을 발휘했다. 이제 글로벌 GM은 크루즈를 유럽으로 옮기려는 계획을 내놓았다. 죽어가는 오펠을 살려야 한다는 미명 아래.

그런데 이들 물량의 이전에는 각 대륙과 국가에 존재하는 노동조합들의 요구가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다. 이대로 가면 몇 개 공장의 폐쇄에 직면하게 될 유럽의 노동조합 지도부는 내심 크루즈의 한국 생산물량이 유럽으로 옮겨오기를 기대한다. 그래야만 오펠 공장들의 가동률을 높일 수 있고, 종국에는 정리해고나 공장 폐쇄 없이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공개적으로 그런 요구를 내세우지는 않는다. 어쨌건 한국의 금속노조와 독일의 금속노조 모두 같은 국제금속노련(IMF) 소속이며, 자칫하면 서로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놓고 요구하지 않을 뿐 오펠 사측과의 교섭석상에서는 수많은 항목들이 논의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경쟁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불편한 진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9월부터 부평공장에서 생산된 '쉐보레 트랙스(Chevrolet Trax)'라는 차량은 또 다른 불편한 진실 하나를 안고 있다. 만일 벨기에의 앤트워프 공장이 폐쇄되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생산되었을 차량이기 때문이다. 2600명이 정리해고된 앤트워프 공장의 생산물량이 현재 부평에서 생산되고 있다.

이 차량은 쉐보레 아베오를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 소형 크로스오버 유틸리티(CUV) 차량인데, 아직 국내에 출시되지는 않았고 전량 수출되고 있다. 물론 이 차량이 한국에서 생산되어야 한다고 노동조합이 주장하거나 한국의 노동자들이 요구했던 것은 아니다. 앤트워프를 버리고 한국으로 생산공장을 선택한 것은 전적으로 GM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GM 경영진이 판단한 것이기 때문에 정말로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인가? 그렇다면 쉐보레 크루즈를 한국에서 생산하지 않겠다는 경영진의 판단도 문제가 없다는 말이 되는데? 반대로 오펠 노동자들 역시 "크루즈의 유럽 현지생산은 우리가 요구한 것이 아니라 GM 경영진의 판단일 뿐"이라고 응답하면 되는 문제인가?

우리는 이 '불편한 진실'과 정면으로 상대해야 한다. 사실 크루즈의 마법이 구원한 것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아니라 상층의 정치권력과 배부른 자본가들이었음을 직시해야 한다. 아니, 오히려 크루즈의 마법은 전 세계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경쟁의 도가니로 밀어 넣고 있다. 이것이 현재 세계 자동차산업과 자본주의 체제가 작동하고 있는 방식이다.

이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고서, 과연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대책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크루즈 생산을 유럽으로 이전하는 것을 막아낸다 하더라도, 앞으로 또 다른 문제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차세대 아베오, 차세대 말리부, 차세대 캡티바 생산을 한국GM에서 한다는 보장도 없으니 말이다. 크루즈는 단지 '신호탄'이자 1막 1장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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