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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시민운동은 여전히 블루오션"

[강연]박원순 "대선 거짓말 바로 폭로되는 검증절차 만들자"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과거의 시민운동보다는 앞으로의 시민운동에 대해 할 말이 더 많은 듯 했다. 그는 시민운동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세간의 지적에 대해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나"라고 반문한 뒤, "시민운동은 여전히 블루오션"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시민운동이 진출할 영역이 차고 넘친다는 것이다.

시민운동계의 상징적 인물인 박원순 상임이사는 지난 10일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회의실에서 열린 <프레시안> 창간 5주년 기념 연속강연의 세 번째 강연자로 참석해 시민운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같이 거침없이 토해냈다.

이같은 견해는 지난날의 시민운동이 보여준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시민운동에 대해 쏟아지는 무수한 비판들에 대한 치열한 자기 반성을 바탕으로 도출된 것이었다.

박 이사는 특히 "새로운 아젠다를 찾으려는 노력은 게을리하면서 잘 팔린 것만 부여잡고 반복해 오고 있다"며 "정당이나 언론이 엉망일 때는 황무지에 금만 그으면 우리의 영토가 되는 시절이 있었지만 이젠 훨씬 치밀하고 세밀한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박원순 상임이사는 대략 1년 뒤로 다가온 대통령선거 기간 동안 시민운동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박 이사는 "다가오는 정치적 과정이나 이벤트를 앞두고 손놓고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며 "효과적으로 개입해서 좋은 정책에 대한 생각을 (후보자들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TV 토론을 뛰어넘어 이번 대선에는 후보자들이 정말 제대로 된 정책을 갖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시민들에게) 바로 폭로될 수 있는 프로세스를 설계해야 한다"며 "거대 담론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작은 이슈를 중심으로 후보를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두 시간 여 동안 진행된 이날 강연은 박원순 이사의 일방적 강연으로만 짜여지지 않았다. 토론자로 나선 김제선 대전 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의 적절한 반론이 제기됐고, 강연을 듣기 위해 온 시민들의 적지않은 의견 개진이 잇따랐다.

다음은 이날 강연과 토론 내용 전문이다.


먼저 프레시안의 창간 5주년을 축하드린다. 많은 언론매체가 생겨났지만 정론을 찾아보기 힘든데 그 중 프레시안이 '정론'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듯 하다. 여기 계신 김제선 처장은 제가 많이 존경하는 분이다. 사람, 돈 등 모든 것이 서울보다 열악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김제선 씨는 그런 상황에서도 단순히 대전이란 지역에 한정된 시민운동가가 아니라 전국적인 상황을 꿰고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가 하면 난 오늘 오신 분들이 정말 이상한 분들 같다. 상품도 없는데 경쟁을 뚫고 오지 않았나? 2000년에 일본 시민사회를 방문하고 돌아와서 '가와리모노의 나라'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가와리모노는 '이상한 사람', '변종'이란 뜻이다. 여러분들처럼 아무 얻을 것도 없는데 시간을 내 이런 강연에 참여한 사람들이 있어서 한국 사회가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프레시안

일단 '한국에 과연 시민사회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물론 10년 전 과거나 우리보다 더 상황이 나쁜 나라와 비교하면 많은 진전을 이뤘다고 본다. 하지만, 아직도 이 땅이 많이 척박하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은 게 사실이다.

예전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해 서울로 올라올 때 어머니가 "얘야, 세 사람 이상 모인 데는 가지 말아라. 위험하니까"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안 들어서 감옥도 가고, 학교에서도 잘렸지만. (웃음)

그런데 그 말씀을 곱씹어보면, "공공의 영역에는 일절 개입하지 말고, 네 몸 하나만 보존 하는 데에 신경 쓰라"는 의미다. 사실 이것이 우리 부모님들의 가르침이었다. 그런데 지금이라고 얼마나 다른가? 1980년대 공공의 영역에 젊은이들이 투신하는 흐름도 있었지만 요즘 다시 젊은이들은 돈 많이 주는 직장에 가는 데만 관심을 가진다. 최근 희망제작소에서 지역을 돌고 있는데 서산, 당진 등에 가보니까 환경운동연합 같은 제법 규모 있는 지역단체에도 새로운 실무자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한 사람이 10년 내내 사무국장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또 요즘 (보수단체들이) 시청 앞에서 몇 만 명 규모의 집회를 진행하는 것을 바라보면 우리가 1945년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독일, 프랑스에도 네오나치 같은 극우 집단이 있다. 그들도 집회를 할 때 3000명씩 모인다. 그러나 그 다음날이면 50~70만의 시민들이 모여서 극단을 경계하는 건강한 흐름이 있다.

"시민운동은 늘 '위기'였다"

'시민운동의 위기'라는 말들이 많다. 나는 그것이 운동가들만의 책임이라는 데는 생각을 달리한다. 물론 우리가 좀 더 열심히 하지 못한 책임은 있다. 그러나 서양의 경우 모금을 전문으로 하는 기관이 있어서 누군가가 정말 '캠페인'만 열심히 하면 다음해에 그런 기관에 가서 돈을 모아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자기가 돈도 모으고, 일도 해야 하는 이중삼중의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이 크게 개선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나는 시민운동이 예전 '독립운동'과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시민운동의 정의부터 다시 내리고 싶다. 보통 1987년 이후, 또는 군사독재정권이 무너진 이후에 나타난 운동을 '신사회운동'이라 칭하며 '다양성을 가지고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기 시작한 운동'이라면서 시민운동을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떤 시대이든지 그 시대의 과제가 있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지식인과 시민들의 운동이 있었다. 그것을 시민운동이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운동의 주제와 방식은 시대마다 달랐지만 어느 시대나 시민운동은 있었다고 생각한다.

과거 독재 땐 민주화운동이 시민운동이었다. 일본의 식민지 때는 독립운동이 시민운동이었고 조선시대 때 국왕을 탄핵하기 위해 선비들이 궁궐 앞에 가서 '상소 시위'를 한 것도 시민운동 아니었나 ? 넓게 보면 그렇게 분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현재 '시민운동의 위기'라고 많이들 말하고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그러나 시민운동이 위기가 아닌 적이 언제였나? 상소운동, 독립운동도 목숨 걸고 했던 운동이었다. 군사독재시절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 받았나? 따뜻한 밥 먹고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몰라도 시민운동은 일시적인 위기가 아니라 영속적인 위기와 고난 속에 있다고 본다. 만약 온 국민이 박수 치고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과제였다면 그런 운동을 왜 하나? 언제나 비판, 반대, 고난, 위기 속에서 하는 것이 진정한 운동이란 생각이 내가 위기론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씨 뿌리는 데 등한히 해 왔다는 반성 필요"

그래도 우리가 냉정하게 현 상황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정치 중심, 서울 중심, 애드보커시(Advocacy, 정부의 정책에 대해 찬반 등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시민운동의 경향) 중심이란 지적들은 바로 지금껏 시민운동이 지나치게 정치성 높은 운동적 경향을 가져온 데에 대한 쓴소리들이다.

제도 정치에 들어가서 정치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해결방식을 추구했던 단체들이 시민운동 이끌어 왔던 것은 사실이다. 한국이 워낙 중앙집권적, 정치적 사회이다 보니까 법률 하나 만들어버리면 사회 문제가 상당히 해결된다는 것 때문에 많은 운동가들이 매달려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까 씨를 뿌리는 데에는 등한히 하고 열매를 따먹기 위한 노력만 했던 것 아닌가? 열매만 따먹고 씨를 뿌리지 않다 보니까 이제는 나무가 없는 상황이 되버렸다. 좀 더 지역, 삶의 현장, 작은 커뮤니티에서 주제를 가지고 평생을 바쳐 하는 운동이 새롭게 시작돼야 한다. 누구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 박원순 상임이사ⓒ프레시안

"새로운 아젠다 발굴에 집중하자"

김영삼 대통령부터 참여정부까지 큰 틀에서 보면 상대적인 개혁성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계가 긍정적 측면보다 더 많긴 했지만 그래도 정부가 시민사회의 아젠다를 조금씩 받아들인 게 사실이다. 지나고 보면 시민사회단체들의 주장이 어느새 정부의 아이디어가 됐던 것을 느낄 수 있다.

정부가 큰 틀의 제목을 뺏어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우리의 주장이 신선미를 갖고 있지 못하다. 우리사회에는 정당, 언론, 시민단체 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있다. 국민의 신뢰를 사이에 두고 어떻게 국민을 사로잡는 아젠다를 만들어내는가, 또 얼마만큼 해결력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경쟁이다.

시민단체가 무슨 힘이 있었나? 돈도 없고 전문가도 없었다. 우리가 가졌던 건 그 시대에 반드시 해결해야 될 과제를 먼저 선점했던 것 때문에 시민단체들이 힘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 전문가, 회원 모을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가 못하다.

나는 요즘 '냉장고론'을 말한다. 전자제품을 파는 기업을 떠올려보면 작년과 성능, 디자인이 같은 제품을 올해 또 내놓으면 물건이 팔릴 리가 없다. 잘 팔린다고 계속 같은 것만 팔다보면 나중엔 안 팔리고 망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잘 팔린 아젠다만 부여잡고 반복해온 시민운동은 새로운 아젠다를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하고 있다.

과거에는 상대적으로 정당이나 언론이 엉망일 때는 황무지에 금만 그으면 우리의 영토가 됐다. 우리가 주장하기만 하면 상대적으로 선명한 깃발이 될 수 있었지만, 이젠 훨씬 치밀하고 세밀한 눈으로 아젠다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노력을 게을리 한 반작용이라고도 보여진다.

"시민운동 하다가 정부에 들어간 사람 은근히 많다"

정부와의 관계에 대해서 '이중대다', '여당의 친위부대 아니냐'는 비판이 많이 있다. 특히 한나라당이나 보수파들이 그렇게 주장해 왔다. 나는 이런 의견들이 기본적으로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시민단체들은 나름대로 중립성을 가져 왔다. 시민단체의 중립성을 강조하면, 누군가는 '중립성이 최고의 가치냐'라고 물을 수 있는데 나 역시 중립성이 최고의 가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정파적'이란 성격이 다수의 시민을 끌어들이고 확보하기 위해 중요한 가치다. 그런데 '비정파'를 표방하면서 실제로 정부와 독립적인 운동을 해 왔는지에 대해 자성할 부분이 없지 않다. 시민운동을 하다가 정부조직에 들어간 사람이 은근히 많다. 인권운동 했던 사람들 중에서 지금 국가인권위원회에 있는 사람들도 많고 시민운동 하다가 공기업 감사를 하는 사람도 많다. 이런 점을 되돌아보면 어쨌든 사람들이 그렇게(시민운동은 정부의 친위대라고) 생각하도록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시민들 향해서 과연 얼마나 현장에 가서 귀를 기울이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고민했는지도 반성해봐야 한다. 2000년 낙선운동 당시 청주의 재래시장에 간 적이 있다. 그때 제 연설이 끝나자 할머니 한 분이 손을 꼭 잡고 '맞다, 맞다' 하길래 감동받은 적이 있다. 그런 데에 갈 때 스스로가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어찌 보면 우리가 하는 운동이 엘리트 운동 아닌가. 국회의원 후보자들은 지역에서 살다시피 한다. 시민운동가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손을 잡고 얘기를 듣고 또 회원으로 가입시키려는 노력을 했는가? 서두에 '후배활동가 충원에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그럼 과연 우리가 젊은이들에게 시민운동이라는 비전을 주고 있는가도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더 나아가서 저 스스로를 포함해서 시민운동이 고난을 거치면서 여러 내용을 가슴깊이 성찰해 왔는가라는 고민도 해보게 된다. 새만금 같은 경우도 같은 느낌을 가지는데. 물론 갯벌을 한 평이라도 포기할 수 없었지만 지금 우리는 갯벌을 완전히 잃었다. 말하자면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비판에 정말 자신 있게 '아니오'라고 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에도 똑같은 비판이 있다. 작년 미국에 갔을 때 샌프란시스코 지역신문에서 환경운동단체 토론을 다루면서 '너무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가'라고 문제를 제기하더라. 물론 많은 경우는 그렇지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좀 더 현실적인 측면에서 가능한 대안을 고민하는 노력을 과연 다했는가?

▲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프레시안

"공공영역에는 무한한 '먹고 살 길' 있다"

전 시민운동, 비영리운동은 정말 아직도 무한한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청년들의 실업을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많은 직장이 있는데 왜 직장이 없다고 하는지?

일본의 경우 직업의 종류가 우리보다 두 배 더 많다고 한다. 일본에서 '저널리스트'란 명함을 많이 받았다. 처음에는 '언론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신이 평생 동안 관심을 가질 문제를 잡아서 연구하고 강연하고 또 글을 쓰며 먹고 사는 사람이더라. 또 NGI(Non-Government Individual)라는 말도 있다. '혼자 하는 운동'이다. 절대 직장에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창업을 해라. 무슨 일이든 10년 동안 하나를 가지고 열심히 하면 먹고 살 길이 생긴다고 본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외국에 있는 직업군'을 찾아서 책으로 묶고 또 '컨설팅'을 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이미 그런 일 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Good Organizer라고 명함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었다. 기업들을 위해서는 굉장히 큰 컨설턴트 업체가 있는데 왜 개인에겐 컨설팅하는 사람이 없나? 바로 그것을 하는 우리나라 여성이 있었다. 앞으로 이같은 직업이 수만 명의 직업창출 효과를 갖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느 순간 나를 보니 외국에 가서 '저 좋은 제도를 한국에 어떻게 갖고 올까?'라고 고민하는 사람이 됐더라. 그래서 내 자신을 Social Designer라고 이름 붙였다. 아직 한국에 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Educational Designer라고 자신을 부른다. 이렇게 직업이 많다. 또 '전국백수연대'도 있지 않나. 전국의 백수를 조직해서 백수연합 만들고 자기는 백수 탈출하고… 얼마나 좋은가?

남들이 다 가는 데로 따라가면 차별성을 갖기 힘들다. 남들이 안가는 곳 찾아가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신을 위해 돈을 버는 일이라면 길은 굉장히 축소된다. 그러나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 공공영역은 빈틈이 너무 많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다 보면 나중엔 분명히 자기가 먹고 사는 길이 된다. 이 거대한 블루오션을 우리가 내버려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운동은 '꼭 이렇게 해야 된다는 법'이 없다. 자격이나 등록도 필요 없다. 다만, 자신이 좋아서 하면 되는 거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절박한 과제를 찾아서 하면 되는 거다. 그렇게 보면 과거에 시민운동은 '이래야 한다'라고 생각했던 자세를 버리면 시민운동의 과제가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온 국민이 하나씩 운동을 하는 게 어떨까 생각한다.

"시민단체가 너무 많다고?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중요한 과제가 있을 것이다. 특히 나는 평생교육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민사회가 너무 척박하다는 것도 이런 것과 연결돼 있다. 시민들의 수준이 우리의 미래를 좌우하는 것 아니냐. 아직 우리사회가 가야 할 길이 참 멀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들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이 일정한 수준을 갖고 있으면 결국 모든 제도도 그 수준으로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우리 국민의 수준을 어떻게 하든 높이는 운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독일 뮌헨 같은 경우에는 '뮌헨 시민은 공부 중'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강좌가 개설돼 있고 특히 정치교육이 활성화돼 있다. 북핵 문제, 이라크 사태, 또는 신자유주의 문제 등 무슨 문제가 됐든 그 가운데 하나를 내걸고 우리나라 국민 중 누구나 한 명을 골라서 영국의 어떤 사람과 토론을 시켜도 뒤쳐지지 않을 정도의 상식을 갖춘 국민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길 가다가 여행객 한 사람 만나서 온갖 지구상 문제 갖고 토론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되지 않겠나. 그래야 경제도 산다. 그냥 2만 불 소득 외친다고 잘 살게 될까? 우리의 수준이 높아지고 상상력이 높아지기 전에는 절대 그렇게 안될 거다라고 생각한다.

물론 기존의 운동도 참 소중하다. 그것을 등한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권력감시운동 등은 나에겐 너무나 소중하다. 사람들은 이제 민주화가 다 됐다고 알고 떠난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정말 다 이뤄졌나? 독일에 가면 '더 많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단체가 있다. 민주주의는 끝이 없다. 민주주의가 다 된 것 같지만 생활 속으로 들어가 보면 그렇지 않다. 심지어 시민단체조차도 직선을 한번 했더니 결국 당파가 생기고 문제가 생기더라. 선거가 용광로가 아니라 상처만 남기는 과정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우리가 가야 할 길,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나.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시민운동단체가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하지만 전혀 아니다. 나는 지금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또 같은 운동이라도 창의성과 재미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한테 좀 더 쉽고 재미있게 다가가야 하는 것 같은데 과연 그런 역할을 우리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교육문제도 거창하지만 작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은 없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집회도 축제 같이 할 수 있지 않나? 그런 방법을 많이 개발해서 길 가다가도 '참여해보자'라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민운동, 사회운동이란 것은 그 시대의 과제를 해결해야 되는데 그것은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라고 본다. 어려운 문제 같지만 가깝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우리보다 앞선 사회에 가보면 대안적 에너지, 대안적 삶 등 많은 것들이 보인다. 우리사회도 문화와 예술 등 과거에는 경시됐던 부분들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조금만 통찰력을 가지면 눈에 보인다고 생각한다.

국제적으로 할 일이 매우 많다. 그야말로 블루오션이다. UN 사무총장이 됐다고 기뻐할 일이 아니다. 사무총장 배출한 나라는 다 후진국 아니었나. 그것보다 우리가 정말 세계사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ODA(개발원조기금)도 훨씬 늘려야 된다. 현재 과거에 다른 나라에서 도움 받은 것만큼 우리는 제3세계에 제대로 못하고 있지 않나.

"시민운동, 시민들의 고통에 대해 제대로 답해 왔나?"
▲ 김제선 대전 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 ⓒ프레시안

김제선: 사람들이 대전에서 왔다고 하면 "촌에서 오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지난 추석 때 역귀향을 했다. 그런데 교통방송에서 추석 전에 서울에서 지방으로 가는 교통상황은 얘기하면서 서울 방향 상황은 안 전해주더라.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국방송이라고 하지만 사실 서울방송이나 다름없다. 서울 중심적 사고다.

박 변호사님의 말씀 중 시민사회와 시민단체를 분리해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민단체 운동과 시민사회를 동일시해서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시민운동이 척박하다고 말씀했지만 이미 시민사회에 시민운동이 가장 늦게 진입했다고 봐야 된다. 동네에 가면 20~40개 정도 자생단체, 관변단체가 있다. 그 모임을 잘 관리하는 것이 지역 동사무소 동장과 사무장의 주업무다. 이렇게 촘촘하게 조직돼 있는 시민사회에 시민운동이 들어간 것이라고 봐야 된다. 이렇게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을 분리해서 인식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출발점이다.

대체로 시민운동이 담론을 주도하던 시기가 끝나가는 측면이 있다. 여기서 또 위기라는 말도 나온 것 같다. 시민이 참여하는 정치에 대해 많이 얘기했다. 고비용, 저효율의 정치가 문제라는 비용 중심적 사고가 있다. 지방에서는 의원 수를 줄이고 선거구 확대하고 돈 안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이미 시민사회운동이 제기했던 담론 자체가 우리사회에서 밀리거나 패퇴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한편으로 시민들의 고통에 대한 응답은 취약한 것 아닌가. 노부모 모시기, 취업 등이 굉장히 큰 문제다. 이것은 단순히 삶의 질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 국민 다수가 느끼고 있는 불안감이 훨씬 더 악화된 문제다. 흔히들 '급격한 사회양극화'라고 표현하는데 이런 국민들의 불안한 삶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나 대응이 부족했다. 어떻게 하면 더불어 같이 사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다소 취약했던 것이 지금 위기의 한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통상적으로 말하면 '절차적 민주주의'에 중심을 둔 운동, 즉 절차의 투명성과 합리성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운동의 그늘에 있으면서 민주주의가 정작 가져다줘야 하는 '내용'의 후퇴에 대해 적절한 대처를 못한 것이 위기의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전적으로 박원순 상임이사 말씀에 동감한다. 운동의 위기는 늘 있었다. 과거에는 언론의 모략과 음해가 더 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인신공격, 시국사범 감시 등…. 그래도 운동은 성장하고 발전해 왔다. 그래서 외부적 요인보다는 내부에서 원인을 찾아야 하는 것에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다만 모든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틈새전략, 지역을 중시하고 있다고 보는데 이 틈새를 따져보면 당시 사회가 맞닥뜨리는 문제에 침투할 때 의미있는 것 아닌가. 지금의 틈새를 잘못 이해하면 사회운동 내부를 시장논리로 분석하고 정당, 언론과의 경쟁으로 해석한다면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고민은 지나치게 우리 사회가 상품사회가 되어서 모든 것이 돈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출산하는 병원도 돈에 따라 다르고. 학교, 장례식 등 과거 상품으로 소비되지 않던 것들까지 상품화되며 사회적 약자들이 양산되고 있다. 지역으로 돌아가면, 개발은 결국 지역에 혜택을 주지 않는데도 주민들은 자꾸 개발해야 건설경기가 산다고 한다. 예를 들어 10억짜리 동네 도서관 80개를 만들자고 하면 그 지역의 업체들이 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지하철 공사를 하면 지역 업체들이 하지 못한다. 묻지마 개발이 곧 지역 경제를 살리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른바 불필요한 개발과 성장에 자발적 동원이 일반화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필요한 점에 부응하지 못하지 않았나. 결국 박 변호사가 보는 틈새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우리 사회에 돌파구를 만드는 틈새인지, 어떤 틈새를 지적한 건가?

박원순: 사람이 세상 보는 시각과 관점이 매우 다를 수 있다. 접근방식도 굉장히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운동의 다양성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굳이 합의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쓰고 남는 것이 돈 아닌가. 전국에 몇 백 억 씩 들여 문화예술회관을 다 지어놓았다. 월드컵경기장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매년 적자를 본다. 이런 엄청난 돈을 효과적으로 쓰게 하는 운동도 매우 중요하다. 일본 <세카이> 지에 실린 글을 봤는데 일본의 누적 재정적자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나머지 국가들의 적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았다. 일본도 한때 지역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황금의 삼각동맹이라고 해서 지역 정치, 건설업자, 국회의원이 뭉쳤다. 그래서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에 경기위축을 겪었다. 그런데 현재 지역에 가면 한국이 그때 일본과 똑같이 하고 있다.

틈새라는 것은 무한하다. 은퇴하는 분들이 먹고 살 수만 한다면 이런 이슈를 하나 잡으라는 거다. 남은 일생을 바치실 주제를 잡고, 또 젊은이들도 취업할 준비하지 말고 창업하라는 거다. 10~20년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 뭐가 틈새인지 공공영역에 관심 기울여야 한다.

"정부로부터 돈받는 것 나쁘다는 흑백논리 버려야"
김제선: 조금 전에 정부와 시민운동의 관계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시민사회와 시장, 국가를 나눠 설명하면서 국가를 견제하는 시민운동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예전 참여연대에 몸담고 계실 때도 말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의 많은 권력이 시장과 재벌에 가 있는 것 아닌가.

사회적 약자가 양산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시장이 시장답게 공정한 경쟁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제 역할을 해야 되는데 대기업 집단에 포획된 정부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것 아닌가. 시민사회가 그렇다면 단순히 독립성만 갖고 갈게 아니라 정부가 역할을 잘 하도록 지원하고 참여하는 관계 설정을 해야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데 시민운동이 여전히 과거의 방식으로만 관계 설정을 하는것 아닌가 의문이 든다. 독립성이라고 하는 것이 정부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시장과의 관계에서도 고민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박 상임이사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박원순: 우리가 흔히 도식화해서 정부, 비정부, 시장이란 섹터를 구분한다. 이들 간에는 과거에는 견제와 균형이 중요하다고 많이 강조했다. 그런데 이것도 유기체와 같아서 사회에 따라 많이 변화한다. 방금 말한 것처럼 과거에 비정부단체들은 정부와의 견제와 비판의 관계가 강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한편으로 기업과의 관계에 있어서. 기업의 투명성이나 굿거버넌스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중요한데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적은 게 사실이다. 사실 노조가 그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이런 큰 틀의 문제에는 관심이 덜한 측면이 있다.

또 서로 융합하는 관계도 있다. 정부의 기능을 단체들이 위탁받아서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도 있다. 도식적으로 얘기하기는 힘들다고 보인다. 아까도 말했듯 다양한 입장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사실 받아야 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유럽의회같은 경우 회원국에 예산 0.1%를 쓰라고 권하고 있을 정도다. 사회복지단체같이 국가의 기능을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일본과 같은 경우에도 가보니까 많은 지방정부들이 어떻게 하면 민간단체에 업무를 위임하고 효과적으로 감독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김제선 대전 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프레시안

그런 식으로 세 섹터간의 역할과 관계가 계속 변화한다고 생각하고 복합적인 역할이 주어진다고 본다.

아름다운 재단같은 경우는 참여연대와 다르다. 참여연대는 어느 누구로부터도 100만 원 이상을 받지 않는다, 정부로부터 일체 받지 않겠다는 등의 원칙을 지켰지만 재단의 경우는 다르지 않나. 기업의 사회공헌이란 것도 중요한 과제였고 그런 사례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했다. 그처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서로 다른 단체들이 일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너무 흑백논리에 기반한 사고를 많이 한다. 무조건 정부에서 돈 받으면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난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제선: 박 이사님이 최근 지역운동 등에 부쩍 과심을 가지는 것 같은데… 주민밀착형 운동이 안 되어서 우리 시민운동이 위기에 처했다고 말씀했다. 예전에 지방자치제 시행 초기에 담배자판기 설치금지조례를 만들었다가 대법원에서 무효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동네에서 작은 것을 바꾸는 데에도 국가권력의 도전과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분명히 존재한다.

박원순: 지역은 참 어려운 조건이다. 시골 같은 기초자치단체까지 가면 열악하기 짝이 없다. "젊은이들이여. 지방으로 가라'고 얘기하고 싶다. 지역에서 대안적 시민사회를 꾸려내 체계를 만들어서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그 사람은 시 의회 가든지 하는 하나의 큰 프로젝트가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예를 들어 천안KYC라는 단체에 가보면 정말 일을 잘한다는 생각이다. 지역밀착형 운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단체 대표는 후배에게 자리 물려주고 천안시 의원이 됐다. 이분이 좀 더 고민을 많이 해서 다음에는 시장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지역 토호세력 같이 전혀 변하지 않고 자기이익만 고수하는 사람들 대신에 공공을 위해 새로운 비전을 갖고 지역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가 많이 배출되면 좋겠다. 그런데 그런 통로나 집단은 별로 없다. 희망제작소도 지역에 직접 가서 할 수는 없지만 단체들과 파트너십을 갖고 싶은 생각이 있다.

"대선후보자 검증준비 이제부터 세밀하게 하자"
김제선: 내년에 있을 대선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진보개혁세력이 위기라고 얘기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지난 5월 지방선거가 끝나고 풀뿌리에서 희망을 찾아야 된다고 얘기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국가운영주체도 중요하기 때문에 시민사회가 대선에 일정한 역할을 하고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민운동이 이번 대선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박원순: 낙선운동을 통해 외형적으로 보면 국회의원들을 떨어뜨리는 데에 성공했다. 이것이 시민의 힘으로 정치를 바꿔낼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했는데 그 이후에 돌아보면 뭐가 바뀌었나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서울에서 아무리 운동을 한다손 치더라도 결국 투표권 있는 지역주민들을 바꾸고 건강하고 튼튼한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단체들을 만들지 않으면 한번 지나가는 이벤트로서의 운동이 된다고 생각한다. 대선에 여러 경로로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결국은 우리가 좀 더 튼튼한 변화의 기지와 요새들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미 다가오는 정치적 과정이나 이벤트에 손 놓고 있어선 안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개입해서 좋은 정책에 대한 생각을 가지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 TV토론 같은 것은 많이 있어 왔는데 이번에는 대선후보자들이 정말 제대로 된 정책 갖고 있지 않으면 그대로 폭로되는 것이 가능하도록 세밀한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검증해봐야 하지 않을까. 사실 TV토론 1시간 동안 하면 어느 후보라도 그 정도 말 못하겠나. 작은 이슈를 가지고 후보들을 검증해보는 일이 시민사회의 역할이라고 본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고통도 일상화 되면 적응력이 높아져서 행복해지는 것 같다. 시민운동은 젊은이들이 정말 도전해볼만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 힘들다는 것은 자기성장의 기회를 준다고 생각한다. 짜여진 공간에 가서 부속품으로 일하면 그 기능만 배우고 만다. 그러나 시민운동은 황무지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니까 뜻을 세우고, 사회 비전도 만들고 그것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아내고 자금을 모으고 사람 설득하고…. 그러면서 세상을 바꿔내는 재미가 너무 크다.

"젊은이들과 은퇴한 분들 결집하며 토대 키워야"
청중 1: 의정부에서 왔다. 지하철공사에서 일한다. 박원순 상임이사님 말 들어보니까 평소 내 고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한국 시민운동에 희망이 있다고 본다. 80년대에는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 투쟁도 많이 했다, 그래서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정작 지금 상황은 안 변했다. 80년대도 공공의 이익과 공공선을 주장했다. 제도를 이끄는 이들의 가치관, 철학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꿈꿔 왔던 대로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시민운동은 결국 사람이 중심이고 사람이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꿈꾼 연대의식을 제대로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시민운동은 굉장히 관념적으로 흐른다. 동네에 있는 참여연대 회원들을 보면, 회비 내고 끝난다. 다른 단체도 마찬가지다. 시민운동의 오프라인 모임이 10% 이상을 넘지 않는다. 회비 내는 회원수는 많다. 의정부에서도 참여연대 회원이 수백 명이다. 그렇데 그사람들이 활동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을 사회로 이끌어 내고, '함께 여럿이' 가면 큰길 나지 않겠는가. 그것이 희망이라고 본다.

청중 2: 전 신용불량자구제사업을 하는 '신용회복구조대'라는 단체에서 일한다. 이때까지 시민운동은 그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는 운동이었다는 말이 이해된다. 시민운동의 위기의 이유는 과제를 잘못 설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과거에는 시대마다 적절한 과제 잘 잡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 프랑스 혁명 때 시민들이 베르사유 궁전 가서 '빵을 달라'고 하니까 당시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는 '과자를 먹으라'고 말했다고 한다. 과거 시민운동은 '저것은 과자를 주는 것이 아니라 혁명해야 하는 문제다'고 했고 성공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뀐 다음에는 다른 과제를 시민운동이 제시해야 했는데 지금도 앞서 말한 프랑스의 왕비가 했던 것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 시민운동은 "지금은 과자를 먹을 때가 아니라 유기농채소 먹으면 된다"고 말하는 식이다. 시민들이 필요한 빵이 아니라 다른 것을 제시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일반 시민들은 시민운동을 보면서 '저런 걸 왜 하나?'란 생각을 한다. 한국의 자살률이 2000년부터 치솟아서 작년에는 1만4000명까지 됐다. 이것이 양극화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과거 프랑스혁명처럼 핍박받아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상황 속에서 시민운동들은 유기농채소를 먹으라고 말하는 수준이다. 양극화문제, 비정규직 문제를 좀 더 끄집어내야하는 것 아닌가?

박원순: 아까 말했던 것처럼 과제설정을 잘못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런 부분을 포괄해 낼 수 있는 새로운 운동가들이 많이 생겨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동가들만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시민운동 해야 한다.

시민운동은 운동가만의 독점이 아니라 누구라도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이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자살방지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것들이 주목을 못 받아서 문제인데 양극화나 비정규직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좀 더 국민적으로 설득하고 많은 해결책을 견인할 수 있는 힘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기존에 다른 운동 하던 사람들보고 그걸 다 그만두고 여기 와서 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아직 남아 있는 영역이 많이 있다. 젊은이들은 새롭게 들어오고, 은퇴한 분들도 들어오고. 어떤 단체에서 10년 정도 일하면 그 단체에서 있기 힘들어진다. 세대교체도 필요하고 권력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이 운동영역을 새롭게 개척해나가면서 토대 계속 키워나가야 한다.
청중 3 : 여성민우회에서 지역자치위원장을 맡고 있다가 10년쯤 되어서 물러섰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나 모색을 했다. 할 일은 많이 보이는데 내가 움직이는 것이 남아 있는 이들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고민이 됐다. 지역에서 풀뿌리운동 하던 사람들은 일을 그만두면 기반이 없어지더라.

내가 움직이는 것이 혹시라도 기존 단체에 폐가 될까봐 걱정이 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이 어렵다.

김제선: 지방에도 정치영역의 활동이 있다. 또 지역통화운동 같은 것도 있다. 공동육아사업과 같이 동네에서 할 수 있는 많은 일들 있고 그 일이 기존단체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있는 일들이 많다.

박원순: 저도 사실 똑같았다. 처음에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그만두고 상입집행위원장 된 뒤 첫날 가보니까 가선 안되겠다고 느꼈다. 어제까지 일일이 업무를 감독하다가 나왔는데 하루아침에 바뀌겠나. 상임위원장은 뒤를 배려해줘야 되는데 그런 내 태도가 바뀌지 않더라. 그날부터 그 단체가 있는 건물 앞도 잘 안다녔다.

그래서 저도 참여연대와는 완전히 다른 운동을 해야 되겠더라고 생각했다. 소위 겸업 금지다. 그래서 완전히 다른 것을 생각하다 아름다운 재단을 생각했다. 민우회랑 다른 것 잘 생각해서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청중 4: 취업준비생 혹은 창업준비생이다. 아까 문제점 중에서 후배활동가 양성이 안되고 있다고 말씀했는데 블루오션 말고도 젊은이에게 제시할 만한 일이 있으면 말해 달라.

박원순: 은퇴자인 제 친구들의 등산모임이 있는데 요즘 부쩍 참여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은퇴한 이들도 뭔가를 해야 한다. 내 주위에는 직장에서 이사나 전무를 맡았던 사람들도 많다. 좋은 일을 하고 싶은데 마땅히 할 일이 없는 이들이다.

그래서 은퇴한 이들이 비영리단체들에서 어떤 일이나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지 목록을 정리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전주에서 환경 쪽에 관심이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이다. 이런 것이 어느날 갑자기 되는 일이 아니다. 평생 하던 일과 문화나 논리가 다른 일을 하루아침에 못한다. 이분들을 훈련시킬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트레이닝 과정을 만들어서 기업에 팔 수 있다. 말하자면 퇴직 5~6년 전에 있는 이들에게 이런 방법들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도 "좋은 직장은 그만둔 이들의 삶까지 배려하는 직장"이라고 얘기했다.

젊은이들 경우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그래서 외국에는 있지만 우리에게는 없는 직업을 정리해 '사전'을 만들자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어떤 할머니가 관공서 영어가 너무 어렵다며 항의하다가 유명해졌다. 이제 관공서에서는 문장을 만들면 할머니에게 먼저 가져온다. '플레인 잉글리쉬'라는 운동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할 일을 생각하면 너무 많다. 누군가 시작하면 할 수 있다.

Social Entrepreneur(사회적 기업)이라는 것이 있다. 한 외국 기업가가 아시아 12개 나라의 '사회적 기업'들에게 매년 50만 달러씩 60억 달러를 지원한다. 또 이 사람은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 기금을 내서 전세계 사회적 기업에 관한 포럼을 연다. 예컨대 '신용회복구조대'같은 단체들이 어떻게 기업적인 정신을 갖고 하나의 운동을 만들어 갈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헌 물건 팔고, 가난한 사람들 돕고 하는 아름다운 가게도 사회적 기업의 일종이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 가보면 'Center for Social Innovation'이라고 해서 좋은 것을 수집하고 확산하는 운동이 있다. 이처럼 젊은이들이 도전해볼만한 아이디어들이 곳곳에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많이 바뀌고 있다. 이제 정치자금도 없다. 그 많은 돈을 갖고 사회공헌을 할 곳을 찾아보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가 없다. 요구는 많은데 텅텅 비어 있는 부분이다. 우리사회가 가야 될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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