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가 19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경제 민주화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경제 민주화 대토론회'(국회경제민주화포럼·한국경제정책연구회 주최)에서 이 문제를 짚었다.
김 교수는 재벌 개혁과 양극화 해소 두 가지로 한정해 경제 민주화 관련 대선 정책을 진단했다. "경제 민주화의 출발점이 재벌 개혁이고, 그 본령은 양극화 해소"라고 보기 때문이다.
평가를 위한 기본 텍스트는 박 후보와 문 후보의 경우 4.11 총선 공약집, 총선 이후 발의된 법안 및 당내 논의를, 안 원장의 경우 <안철수의 생각>이다. 이 대목에서 김 교수는 "참담하다"고 말했다.
"5년 전에도 대선 후보들의 경제 정책 진단을 한 일간지에 연재했다. 그런데 대선 한 달 전인 11월 중순에도 후보들의 공식 정책 자료집이 나오지 않았었다. 이번에는 더 늦어질 것 같다. 평가할 텍스트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박근혜, 자신의 생각과 진정성을 보여줘야"
김 교수는 박근혜 후보가 재벌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직접 언급한 적이 거의 없었다며 진정성에 의문을 표했다. 박 후보가 경제 민주화를 둘러싼 당내 논란을 방관·조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새누리당에서는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이한구 원내대표가 경제 민주화에 대해 엇갈린 태도를 취하고 있다. 김 교수는 박 후보가 "김종인 토사구팽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며 "자신의 생각과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한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발의한 '경제 사범 처벌 강화' 등의 경제 민주화 관련 입법안에 대해서도 "법안의 합리성 및 입법 가능성에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김 교수는 김종인 위원장이 한 말을 전했다.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입법안은 일부 의원발의 입법안일 뿐, 당론도 아니고 여야 협의를 한 것도 아니다. 그대로 법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김 위원장과 경제민주화실천모임 모두 경제 민주화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양극화 해소와 관련, 김 교수는 "고용·복지 정책은 박 후보가 가장 직접적·구체적으로 언급한 영역"이며 "4.11 총선 공약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특히 생애 주기 맞춤형 복지 공약은 신선한 충격"이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김 교수는 "뭔가 께름칙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두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박 후보가 '성장을 통한 고용·복지 기반 확충' 논리에 머무는 것 아닌가? '공정 시장'만으로 중소기업, 자영업자,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김 교수는 "'바뀌는 박근혜'의 연속성과 단절성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말했다. 어디까지 바뀐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또한 "권위주의적인 리더십과 시혜적인 양극화 해소 방안으로는 경제 민주화를 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2007년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와 2012년의 경제 민주화가 맥을 같이한다고 박 후보가 보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비판했다. "시장만능주의"인 '줄·푸·세'를 대체할 새로운 슬로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박 후보는 '높은 조세, 높은 복지'와 '낮은 조세, 낮은 복지'에 관한 선택을 국민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어려운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국민에게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는 말이다.
김 교수는 "대통령과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집권 '세력'에 의해 담보될 때 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며 새누리당 상황을 우려했다. 이 대목에서 김 교수는 다시 김종인 위원장의 말을 소개했다. "새누리당은 보스가 결정하면 무조건 따라가는 DNA를 가진 사람들만 모인 조직이다." 이어 김 교수는 다음 사항을 주문했다. "당내 민주주의가 먼저다."
▲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
"국민들은 민주통합당 당론을 '문재인의 생각'으로 믿지 않는다"
문재인 후보와 관련, 김 교수는 "(민주통합당의) 4.11 총선 공약에 재벌 개혁 정책이 총망라돼 있으며, 당론으로 재벌 개혁 정책의 풀 메뉴(full menu)를 갖고 있다는 건 상대적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김 교수는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도 왜 재벌 개혁 담론에서 새누리당에 주도권을 빼앗겼는가?"
여기서 김 교수는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우선 "초강력 수단을 나열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며 정책의 전체 체계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더 본질적인 것은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말한 것처럼 민주통합당 내의 재벌 장학생 문제부터 정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국민들은 민주통합당의 (재벌 개혁) 당론을 '진짜 당론'으로, '문재인의 생각'으로 믿지 않는다"며 "문 후보는 당내 정책적 리더십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양극화 해소 문제에 대해, 김 교수는 "문 후보 본인 입으로 말한 건 골목상권 살리기와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협력뿐"이라고 말한 후 "내용 문제보다, 정책적 고민에 투입한 시간 자체가 부족한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문 후보가 당내의 인적 자원, 경선에 나왔던 다른 후보의 정책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경선 과정에서 내용을 가장 잘 준비했던 손학규 후보의 협동조합 및 산업민주주의 관련 정책을 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문 후보의 과제는 새로운 정책 '수단'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구체적인 정책은 당내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만큼, 인적 자원을 통합하고 정책을 체계화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는 말이다. 리더십 구축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또한 김 교수는 문 후보가 "'1원 1표'와 '1인 1표'를 결합하는 원리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1원 1표'로 풀어야 할 문제와 '1인 1표'로 풀어야 할 문제를 구분해야 하는데, "문 후보의 486 참모들이 이 문제에서 혼란 상태"라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문 후보가 현재 캠프로는 정책 경쟁의 주도권을 회복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민주통합당은 당론을 못 정하는 정당, 당론을 정하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정당"이라며 "새누리당과 반대로 민주통합당은 자기가 뽑은 대표를 절대로 안 따라가는 DNA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러한 진단에 따라 김 교수는 문 후보에게 이렇게 주문했다. "당의 통합이 먼저다."
▲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정답만 말하는 안철수", 언제까지?
김 교수는 안 원장이 <안철수의 생각>에서 "재벌의 폐해와 그 개혁 방안에 대해 균형 잡힌 생각을 제시했다"며 "경험과 공부가 잘 결합됐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열거를 넘어 각각의 우선순위를 조정할 원리는 불분명"해 보이며, "안 원장은 공부방에서 나와 정치의 장에서 단련을 받아야 한다"고 평가했다.
"예컨대 안 원장은 책에서 금산분리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은행을 산업자본에 맡기면 안 된다는 이야기도 했다. 거기까지다. 핵심은 재벌의 비(非)은행 금융 계열사 문제인데, 그런 부분은 언급돼 있지 않다. (…)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정답만 이야기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하나의 정답을 말할 수 없는 현실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할 것인지 시험을 거쳐야 한다."
양극화 해소 방안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안철수의 생각>에 잘 정리돼 있다"면서도 "정답이지만 원론에 불과하다는 비판 역시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다양한 정책 영역의 보완 체계를 마련해야 하며, 여러 당사자들 간의 대타협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김 교수는 "안 원장이 담론에서 정책으로 내려와야 하며, 5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단기필마는 성공할 수 없다"며 다음 사항을 주문했다. "당 조직 기반 확보가 먼저다."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프레시안(최형락) |
대선 후보들에게 물어야 할 두 가지
세 사람의 견해를 비교한 후 김 교수는 유권자들이 대선 후보들에게 다음 두 가지를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30년 후에 도달할 바람직한 한국 사회의 미래상은 무엇인가', '그 목표 아래 대통령이 임기 5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가 그것이다.
'30년 후'와 '5년 이내'를 구분한 것은 "재벌 개혁과 양극화 해소는 5년 내에 완성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내년 국내외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려울 것이며 대통령 임기 5년 내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전망하고 "이런 상황에서, 상충하는 목표들의 우선순위를 탄력적으로 조정하면서도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원리"가 무엇일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더해 김 교수는 경제 민주화와 관련해 여야의 이견이 적은 사안들부터 이번 정기국회에서 입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말한 사안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배임죄 형량 강화, 하도급법 위반 시 3배 배상제 확대, 상장회사 이사의 보수 개별 공시 등이다.
또한 규제개혁위원회를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원 입법이 아닌 정부 입법은 모두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그러한 규제개혁위원회가 기득권층이 개혁 입법을 저지하는 로비 창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규제개혁위원회를 그대로 둬서는 경제 민주화를 못 한다"며 "대선 후보들이 규제개혁위원회 폐지를 공약으로 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제 어려우니 경제 민주화 유보하자? 어불성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김상조 교수 외에도 김진방 인하대 교수가 산업민주주의에 대해,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경제 위기와 경제 민주화'에 대해 발표했다.
이 중 유 교수는 전경련 등을 예로 들며 "경제가 어려우니 경제 민주화를 유보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전경련은 경제 전문가 과반수가 '경제 민주화 관련 정책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답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유 교수는 "재벌 독식 구조 때문에 양극화 경향이 고착됐고", 역대 정부가 "구조개혁은 어렵고 대중의 불만은 달래야 하니 남미처럼 성장 포퓰리즘"에 빠져 위기를 심화시켰다고 진단했다.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고 카드를 남발한 김대중 정부, 부동산 정책에서 실패하고 단기 외채 폭증을 허용한 노무현 정부, "막가파 경기부양"을 해온 이명박 정부 모두 성장 포퓰리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분석이다.
유 교수는 "역사적으로 경제 민주화는 경제 안정의 초석이었고, 위기를 예방하고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구조개혁 정책이 바로 경제 민주화"라고 강조했다.
"대공황 당시 감세와 규제 완화로 경기를 살리겠다던 후버 대통령과 포괄적 경제사회 개혁 정책(경제 민주화)을 추진한 루즈벨트 대통령 중 누가 경제를 공황에서 구출했나?"
토론자로 나선 전성인 홍익대 교수도 "경제 민주화는 위기에 취약한 구조에서 위기가 닥쳐도 튼튼한 구조로 경제를 바꾸는 것"이라며 유 교수 견해에 공감을 표했다.
또 다른 토론자인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과거의 위기 해법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면서 경제 민주화가 의제로 등장했다"고 진단했다. 조 연구위원은 부동산을 예로 들며 "자산을 팔아도 빚을 갚을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해 가격 폭락이 불가피한데, (정부에서) 인위적으로 그 시기를 미루고 있다"며 "이 문제가 다음 정권에서 최대 복병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