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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총수들이 벌벌 떨 만한 무서운 법은…"

[토론회] 김상조 교수, 기업집단에 관한 종합적 규율 체계 제시

"경제 민주화가 시대적 과제로 부각됐지만 기대 못지않게 우려가 크다."

30일 국회 의정관에서 열린 경제민주화포럼 전문가 초청 토론회 발표자로 나선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의 소감이다. 경제민주화포럼에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속해 있다.

김 교수는 경제 민주화와 관련해 "출자총액제한제도,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재벌세 도입 등의 방안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방안들을 엮어주는 논리와 기반이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선정적 정책 수단의 유혹에 빠져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지속가능한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 민주화 논의, 기대 못지않게 우려가 크다"

토론 주제는 기업집단법이었다. 기업집단법의 취지는 재벌 총수의 권한은 막강한데 그에 상응하는 책임은 지지 않는 현실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김 교수는 유럽의 기업집단법 현황을 소개하고, '선수는 기업집단인데 심판은 개별 기업만 상대하는' 한국에서 재벌 개혁에 참조할 사항들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우선 "주식회사처럼 자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경제 현상도 실제로는 역사적인 산물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기업집단 역시 100년 정도밖에 안 된 새로운 현상이며, 이에 대한 규율 체계도 나라마다 다르고 미완성 상태라고 지적했다. 유럽 등의 기업집단법을 그대로 가져오는 대신 한국에 적합한 기업집단 규율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유럽에서 기업집단법은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기업집단법 하면 독일의 콘체른법을 떠올린다. 콘체른법에 장점이 많지만 그것을 한국에 그대로 도입하기는 어렵다. 단순히 '콘체른법을 모델로 한국의 기업집단법을 만들자'고 한다면,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

콘체른법은 1965년에 만들어졌다. 콘체른법 제정 논의를 주도한 것은 발터 오이켄을 비롯한 질서자유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의 기본 생각은 "권한이 있는 만큼 책임을 지게 해야 우리의 자유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콘체른법의 특징과 약점을 이렇게 정리했다.

"콘체른법에는 두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하나는 지배회사가 종속회사에 어떤 지시를 하는지 상세하게 기록(종속보고서)으로 남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배회사의 지시로 인해 발생한 종속회사의 손해에 대해 보상한다는 것이다.

비판도 나온다. 우선 지배회사와 종속회사 사이에 공평한 계약이 이뤄지겠느냐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종속보고서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영이사회가 감독이사회에 보고할 뿐이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관계자들이 알 수 없다."

김 교수는 기업집단을 규율하는 독일 방식의 또 다른 특징으로 "성문법 못지않게 법원 판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들었다. 이 대목에서 김 교수는 한국 상황을 언급했다.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의회도, 법원도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한국의 사법부는 그간 경제 범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들에 대해 '국민 경제에 기여한 바를 감안한다'며 통상 집행유예를 선고해왔다.

김 교수는 독일 사례를 넘어 유럽 전반의 기업집단 규율 체계를 짚었다. 유럽에서는 1968년부터 기업집단법 도입이 적극적으로 모색됐다. 기업집단이 확산됐을 뿐만 아니라 그 전해(1967년)에 유럽공동체(EC, 후에 유럽연합으로 확대)가 출범하면서 회원국들의 회사법을 조율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이중 이사회와 노동자 경영 참가를 전제로 하는 독일의 기업집단 규율 방식을 영국이 거부하면서 논의는 정체됐다. 결국 독일의 콘체른법을 모태로 한 접근 방식은 폐기되고, 영국과 프랑스의 성문법 및 판례에 기반을 둔 다원적 접근법이 채택됐다.

김 교수는 기업집단을 규율하는 영국 방식과 독일 방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영국 방식은 기업집단의 범위를 매우 좁게 설정하면서, 이사의 행위가 상식선을 넘어 오남용됐을 때만 예외적으로 처벌한다. 독일 방식은 기업집단의 범위를 매우 넓게 정하고, 지배-종속 관계가 만들어졌다는 게 확인되면 이사 행위의 불법 여부를 따지지 않고 지배-종속 상황에 근거해 책임을 지게 한다."

김 교수는 독일 방식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문제점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지배-종속 관계를 법에서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지배-종속 관계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걸 어떻게 확인하고, 또 그것을 법에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지배-종속 관계를 사전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문제다."

김 교수는 이 때문에 "1990년대 말 이후 유럽에서는 절충적 접근이 등장했다"고 말했다. 하나의 법에 모든 것을 담는 대신, 기업집단법의 원리를 각각의 법에 부분적으로 나눠 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각 법의 취지에 따라 개념의 범위를 달리 정하는 것이고, 내가 택한 것도 이것이다."

유럽 기업집단법을 통해 살펴본 한국 기업집단 규율 체계

▲ 김상조 교수(자료 사진). ⓒ프레시안
이 과정에서 기업집단법 논의 흐름에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콘체른법이 종속회사, 소액주주, 노동자에 대한 지배회사의 횡포를 막는 데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1990년대 이후 기업집단법 논의에서 '그룹 공통의 이익 인정', 즉 기업집단의 시너지 효과가 약자 보호와 동일한 비중의 목적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변화의 계기로 주목받은 것이 1985년 프랑스 대법원의 로젠블룸(Rosenblum) 판결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이렇게 정리했다.

"기업집단에서 어떤 계열사는 손해를 보더라도 그룹 전체에 시너지가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고 그것이 효율적이라고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그 손해에 대해 보상해주는 메커니즘을 정한 판결이다."

김 교수는 기업집단 규율 체계에 '로젠블룸 원리'를 담아 "기업집단의 편익과 부담의 조화"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벌 총수 맞춤형 판결'을 관행적으로 해온 한국 사법부의 현실을 생각하면, 이 '로젠블룸 원리'는 재벌 회장들의 책임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도 있다. 김 교수도 이 점을 감안해 전제조건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제조건이 있다. 우선 지배-종속 관계를 외부에 명확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손해와 상계되는 이익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그 이익이 추상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게 추상적이면, ('로젠블룸 원리'는) 재벌 총수의 면책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로젠블룸 원리'를 도입할 필요성을 제시하긴 했지만, 당장 들여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김 교수는 "이를 도입하려면 한국 법원이 프랑스 대법원 정도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며 "한 10년 후쯤 논의해보자"고 말했다. 프랑스 법원은 75건 중 9건에 대해서만 총수의 면책을 인정할 정도로 '로젠블룸 원리'를 매우 엄격하게 적용했다.

절충적·다원적 접근법, '로젠블룸 원리' 도입과 함께 김 교수는 다양한 기업집단 개념 도입, 기업집단의 조직 형태에 따른 규제 격차 해소, 이해관계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수단의 조화 등이 한국의 기업집단 규율 체계에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삼성그룹의 금융계열사가 11개인데, 이를 하나로 보고 규율하는 법 체계가 없는" 등의 문제점을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이해관계자 보호와 관련해 채권자와 소액주주에 대해서는 사전적 장치 중심으로, 노동자에 대해서는 사후적 장치 중심으로 보호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파산한 후에는 채권자를 보호할 수 없다. 채권자 보호의 핵심 원리는 파산이 현실로 나타나기 전, 즉 회사로서 회생 가능성이 의심받을 때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액주주 보호와 관련해서는 기업집단에 편입될 때 거기에 들어갈지 말지를 선택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또한 한국에서는 노동시장을 떠나면 (사실상) 죽는다. 따라서 조직 내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주는 것이 노동자 보호의 핵심이다."

김 교수는 소액주주 보호 장치로 의무공개매수제도(인수합병을 목적으로 주식을 사들일 때 일정 비율 이상을 공개적으로 매수하게 하는 제도)를 제시했다. 이를 통해 소액주주의 '떠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동시에, 한 계열사에 더 많이 출자하게 함으로써 재벌의 소유구조를 단순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의무공개매수제도를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대안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25년의 경험을 돌아볼 때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김 교수는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이명박 정부 들어 폐기되기 전인) 2007년에 이미 규제 효력을 상실했다"며 "민주통합당이 남을 비난할 처지가 못 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 교수는 출자총액제한제도와 함께 재벌 개혁의 대표적인 수단으로 거론되는 '순환출자 금지'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시행해야 하지만, 그걸 재벌 개혁 방안의 가장 앞자리에 둘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이날 기업집단 규율 체계에 대해 발표한 내용은 민주통합당에 제출한 130쪽짜리 보고서를 압축한 것이다. 민주통합당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이 보고서에 김 교수는 21개의 입법제안을 담았다. 김 교수는 "21개 입법제안을 한꺼번에 법으로 만들자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1년 안에 해야 할 것도 있지만 3년 혹은 10년을 두고 진행해야 할 사항들도 있다는 말이다.

21개 입법제안 중에는 영국식 이사 자격 박탈 제도도 있다. 재벌 총수가 천문학적 규모의 경제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기업을 경영하는 한국 현실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조세 포탈과) 배임으로 유죄를 받고도 이건희 회장은 여전히 삼성생명 대주주다. 이와 달리 론스타는 주가조작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된 후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을 잃었다.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은 관련 규정이) 은행법에는 있고 보험업법에는 없기 때문이다. (…) 영국에서는 파산에 중요한 귀책사유가 있는 사람은 다른 회사의 이사를 최장 15년까지 할 수 없다. 파산법인 혹은 그에 근접한 법인에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이 제도가 한국에 도입되면 그 파장은 매우 클 것이다. 재벌 총수에게 아주 무서운 법이 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이 제도가 "부당하더라도 회장 지시를 무조건 따라야 하는 월급 사장들이 항변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통합당, 이사 자격 박탈 제도 적극 검토해야"

김 교수의 발표에 이어 김병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과 전성인 홍익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김 부원장도 김 교수와 마찬가지로 최근의 경제 민주화 논의 상황을 우려했다. 김 부원장은 "현실적으로 경제 민주화가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여야가 부딪치는 느낌도 잘 안 든다"고 말했다. "재벌 개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정치권에서) 과거의 것을 꺼내 (관성적으로) 재사용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다. 김 부위원장은 "1987년 버전, 1997년 버전과 다른 2012년 버전 재벌 개혁 방안을 마련해 돌파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부위원장은 기업집단 규율 체계에 대한 김 교수의 방안에 대해 "민생 문제보다는 기업집단 내부의 문제를 해소하는 데 논의의 초점이 맞춰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논평했다.

김 부위원장은 김 교수의 21개 입법제안 중 이사 자격 박탈 제도와 의무공개매수제도가 눈에 띈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이사 자격 박탈 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민주통합당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의무공개매수제도에 대해서는 김 교수와 의견을 달리했다. 김 부위원장은 "의무공개매수제도가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대체할 만한 '경제력 집중 억제'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고민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민생 관련 지적에 대해, 김 교수는 "기업집단법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며 "중소기업, 서민, 자영업자 문제 등에 대해서는 다른 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한 한국의 기업집단 규율 체계를 만들 때 "노동자 보호 문제를 꼭 법에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성인 교수는 김 교수의 입법제안 21개 중 11개에 대해 '전폭 찬성'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로젠블룸 원리'에 대해서는 "도입이 필요한지 약간 의문"이라는 뜻을 밝혔고, 의무공개매수제도에 대해서도 "적용 가능성과 기대 효과 측면에서 유보적"이라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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