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3일, 대법원은 정리해고가 무효라라며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회사는 5월 31일자로 또다시 2차 해고를 통보했다. 법도 소용없는 셈이다. 7월 23일자로 강제해고 2000일을 맞은 콜트‧콜텍 노동자들. 이런 그들을 돕고자 국내 문화예술가들은 7월 15일부터 인천 부평구의 비어 있는 콜트 공장을 점거해 '인천시 부평구 갈산동 421-1 콜트콜텍전시회'를 열고 있다. 30일로 전시회는 마무리됐다. 일명 '스쾃'이다.
입주작가는 성효숙, 전진경, 정윤희, 상덕, 황승미, 전시작가는 19명과 그룹 '빨간뻔데기', '약손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전시회 이후에도 지속해서 이곳에서 작업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편집자>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를 아시나요?
지난 7월 23일은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이 박영호 자본의 직장폐쇄와 자신들의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싸운 지 2000일이 되는 날이었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전 세계 기타의 30%를 제작하고 유통하는 ㈜콜트악기와 ㈜콜텍의 박영호 사장은 2007년 돌연 국내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하였다. 국내공장의 경영상 이유를 들어 정리해고와 공장폐쇄를 단행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콜트악기의 경우 차입금 의존도 0%, 이익잉여금 67억1000만 원, 부채비율 37%의 건실한 기타 제조회사였다. 세계 최고의 기타 장인들, 세계적인 기타 제조회사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낸 노동자들은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일터에서 쫓겨났다.
지난 2000일 동안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에게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평생 기타만을 만들던 평범한 노동자들은 부당하고 억울한 정리해고에 맞서기 위해서,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 다시 기타를 만들기 위해서, 자신의 가족과 행복했던 삶을 되찾기 위해서 투쟁을 시작했다.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은 거대하고 무심한 회사를 상대로 분신을 했고, 철탑 위에서 고공 농성을 했으며, 경찰서와 법원을 드나들었고,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대법원은 지난 2월 23일 ㈜콜트악기 노동자에 대한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하지만 콜트·콜텍 박영호 자본은 노동자들의 원직복직과 공장 재가동에 대한 요구는 무시한 채, 지난 5월 31일자로 ㈜콜트악기 노동자들을 다시 한 번 해고했다. 기나 긴 시간의 법률적 판단 결과 정리해고의 부당성을 대법원이 확정하였으나, 회사는 사과와 복직대신에 또 한 번의 정리해고를 강행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콜트·콜텍 박영호 자본은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공장을 통해 수많은 노동자들을 착취하며 이익을 거두고 있지만, 지금의 세계적인 기타 제조회사를 만들어 낸 콜트·콜텍 노동자들에게는 대법원의 판결조차 무시하며 두 번째 정리해고를 강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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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콜트·콜택 기타노동자들이 만든 기타들. ⓒ노순택 |
기타노동자들, 노동과 음악의 가치를 말하다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은 지난 2000일 동안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경험해왔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의 삶' 속에서 그들은 수없이 좌절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또 다른, 새로운 삶의 의미들을 만들어냈다.
어느 순간부터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은 온 몸으로 노동과 음악의 가치를 말하기 시작했다. 악기노동자로서 죽은 노동, 죽음의 기타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그들의 처절한 육성은 음악과 악기에 내재된 노동에는 무관심했던 수많은 음악인, 예술가,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이를 계기로 노동과 예술의 새로운 연대기를 쓰기 시작했다.
2000일이라는 시간이 쌓이는 동안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은 노동과 예술의 새로운 연대를 통해 다양한 친구들, 동료들을 만났다. 먼저 수많은 국내 문화예술인들이 기타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자신의 작업을 통해 연대를 실천했다. 누군가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이야기로 시를 썼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렸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음악을, 영화를, 축제를 만들었다.
독일, 일본, 미국 등 세계 주요 악기 박람회를 찾아서 떠났던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해외 원정투쟁은 악기노동자의 투쟁을 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세계적인 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RATM)의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Tom Morello)와 보컬리스트 잭 데라로차(Zack de la Rocha)는 콜트·콜텍의 노동자들과 연대하며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와 일본의 후지락 페스티벌에서 지지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문화노동자들과 홍대 인디밴드들은 2008년 가을부터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마다 홍대앞 클럽 '빵'에서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을 지지하는 공연을 펼치고 있으며, 그 사이 이들의 투쟁을 영화로 담은 김성균 감독의 <기타이야기>와 <꿈의 공장>이 만들어져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제9회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과 김성균 감독에게 선정위원회 특별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7월 15일부터는 미술가들이 콜트 부평공장을 점거하며 공장 전시를 진행해 문화예술계와 언론의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한편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은 지난 겨울부터 '콜트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 밴드(콜밴)'를 만들어 무대와 노동 현장에서 직접 공연을 하고 있다. 단 한 번도 악기를 다룬 적이 없었던 네 명의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은 함께 연대 해 온 뮤지션들의 도움과 연습을 통해 한 달에 한 곡씩 배우며 레퍼토리를 만들어 왔다. 평생을 창문 하나 없는 공장에서 기타를 만들었지만 단 한 번도 기타를 쳐 본적이 없던 이들이 이제는 멋진 거리 밴드, 현장 밴드가 되어 자신의 동료를, 오랜 투쟁에 지친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고 있다.
노동과 음악의 새로운 연대가 필요한 시대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오랜 투쟁은 불법적인 위장 폐업 및 정리해고에 맞서는 비타협적인 노동운동이다. 비록 중소기업 규모의, 단위사업장의 문제이지만 이들은 2000일을 견디며 한국 노동운동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더욱이 이들의 투쟁은 이제 노동운동만의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악기노동자의 투쟁에서 시작된 노동과 예술의 연대는 다양한 문화운동, 예술행동의 궤적을 남기며 우리 시대 새로운 문화운동과 예술작업의 지평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과 문화노동자들의 지난 투쟁은 단순한 연대를 넘어 노동과 예술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근대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형성 과정은 우리에게 노동과 예술의 분리와 단절을, 노동과 예술을 화해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강요해 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술에는 수많은 노동의 가치가 내재되어 있으며, 계급과 현실의 문제를 외면한 예술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그리 많지 않다. 아니 비물질노동, 그림자노동, 감정노동, 열정노동…. 현대 자본주의에서 예술을 둘러 싼 노동은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노골적으로 자행되는 착취는 더 이상 묵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된지 오래이다.
노동 역시 마찬가지다. 삶의 가치, 삶을 둘러 싼 성찰이 배제된 채 오직 임금을 위한 죽은 노동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자본의 폭력과 강요를 가로질러 노동과 예술이 만나야 하는 이유다. 기타노동자를 착취하며 만들어 진 죽음의 기타로 좋은 음악, 예술을 만들 수 없는 이유이다. 아니 죽음의 기타가 무관심의 음악으로, 무관심의 음악이 다시 삶의 착취로 아무렇지 않게 떠돌아다닐 수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악기노동자가 없다면 음악이 없을 것이고, 음악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초라해질 것이다.("No Workers No Music, No Music No Life!")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은 아직도 힘겨운 싸움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도 끝이 없는 신기루 같은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에게는 아직도 기타를 만들고 싶은 희망과 열정이 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기타는 더 이상 노동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삶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고 잘 있다. 노동의 정당한 가치, 악기노동자의 사회적 권리가 존중될 때 비로소 아름다운 음악과 행복한 삶이 우리 사회에 존재할 것이다. 이제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투쟁은 결코 개별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에는 정리해고의 근거와 원칙, 해외 자본이전과 고용승계, 예술을 둘러 싼 다양한 노동 착취, 노동과 음악의 사회적 가치 등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2000일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과 함께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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