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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공장을 점거하고 코끼리를 만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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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공장을 점거하고 코끼리를 만들었는가"

[불법 점유된 콜트‧콜텍·②] 엉겹결에 치룬 조각가 데뷔전

콜트‧콜텍은 부평, 대전 쪽에 위치한 기타를 만드는 공장이다. 1973년 설립 후, 승승장구하던 이 회사는 2007년 7월 경영악화를 이유로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했다. 1년 뒤인 2008년엔 남아있는 국내공장을 모두 폐쇄하고 인도네시아, 중국 등 해외공장을 만든 상태다. 회사가 국내 공장을 폐쇄한 이유는 인건비와 노조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콜트·콜텍은 세계 기타시장 30%를 점유하고 있다.

지난 2월 23일, 대법원은 정리해고가 무효라라며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회사는 5월 31일자로 또다시 2차 해고를 통보했다. 법도 소용없는 셈이다. 7월 23일자로 강제해고 2000일을 맞은 콜트‧콜텍 노동자들. 이런 그들을 돕고자 국내 문화예술가들은 7월 15일부터 인천 부평구의 비어 있는 콜트 공장을 점거해 '인천시 부평구 갈산동 421-1 콜트콜텍전시회'를 열고 있다. 30일로 전시회는 마무리됐다. 일명 '스쾃'이다.

입주작가는 성효숙, 전진경, 정윤희, 상덕, 황승미, 전시작가는 19명과 그룹 '빨간뻔데기', '약손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전시회 이후에도 지속해서 이곳에서 작업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편집자>


공장 공간

엉겁결에 조각하는 작가로서 데뷔전을 치르게 됐다.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이 모여 2000일 가까이, 단순 복직이 아니라 잃어버린 공장(일터)을 되찾는 투쟁을 벌이고 있는 인천의 콜트 공장에서 스무 명의 작가군이 모여 특별한 전시를 하고 있다. 각각의 작가군은 개인전 형태로 전시에 참여했고 공장의 주소인 '부평구 갈산동 421-1' 란 큰 제목을 달고 보름간(본래는 열흘이었는데 5일을 더 연장하게 됐다) 공장 공간에 대한 점거 행위를 이어가기로 했다.

나는 2공장 4층의 절반 정도의 공간에서 작업을 했고 전시가 시작된 지 일주일이 흐른 지난 7월 22일에 가까스로 일단의 작업을 마무리했다. 작업 미완성의 가장 큰 이유는 본인의 게으름과 경험의 부족이겠으나 변명처럼 한마디 보탠다면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엉겁결에 치른 데뷔전'이란 사실도 한 몫을 한다. 지난 해 늦가을부터 포천에서 작업하는 조각가 형(나규환 작가)네 집에 더부살이를 하면서 난생처음 조각을 접하며 배우면서 조각을 하고 있는데 실은 그것도 집중적으로 조각의 기본기를 다졌다기 보다는 이런저런 개인적인 일들이 겹쳐 후회와 반성의 시간들이 절반 이상을 채웠다. 그러던 차에 진작부터 공장의 한 공간에 작업실을 차린 진경누나(전진경 작가)를 만나러 갔다가 빈 공장이 주는 분위기에 빠져들어 격주로 2~3일 씩 공장을 찾아가게 됐다.

6월 초에 처음 공장을 찾아 진경누나의 안내를 따라 공장 곳곳을 둘러봤다. 그때 본 공장은 정말이지 휑했고 짙은 어둠 속의 먼지와 쾌쾌한 냄새들로 인해 말 그대로 버려진 곳이란 인상이 강했다. 그날 밤 늦도록 진경누나에게 콜트·콜텍 노동자 아저씨들과 공장 그리고 이곳에서의 미술에 대한 얘기를 들었고, 일단은 다음 날 창문을 좀 뜯어보겠다고 말했다.

아침나절 공장을 찾아 펜치와 드라이버, 망치를 챙겨 4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아래층에 있던 사다리를 가져와 내 키에 두 배 쯤 되는 높이에 고정돼 있던, 창문을 막고 있는 샌드위치 패널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에매하게 짧으면서 살짝 위태위태했던 사다리와 야무지게 고정된 나사못을 풀기에는 충분치 않은 연장들을 가지고 적막한 공장의 공간에서 힘들게 '철거'를 해나갔다. 한 시간이면 할 일을 두세 시간은 걸려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너무 일만 하는 것 같아 셀프 촬영도 해보고 뜯어낸 패널에 낙서도 하고… 그러다보니 하루가 지났다.

다음에 공장을 찾았을 때, 밖에서 보니 공장에는 창이 정말 많았다. 그러고선 동굴처럼 어두운 공장 안을 지나 4층에 올랐을 때, 솔직히 좀 뿌듯했고 이곳에서 '뭔가'를 시작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코끼리 설치물. ⓒ상덕

시작은 개인적으로

뜯어낸 패널로 뭘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공장의 빛을 막고 있었다는데 방점을 찍어, 밝아진 4층 공간 한 편에 사방을 막은 상자 형태로 이전의 공장 상태를 상징적으로 재현해 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만 그랬지 손을 대진 않았다. 뭔가 빤하고 재미없는 일 같다고 느껴 그랬을 거다. 그래서 기웃기웃 공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실은 이 때만해도 작업 공간을 4층 한 곳으로 정해둘 맘이 없었다. 래커를 들고 다니며 곳곳에 낙서를 할까도 생각했는데 그라피티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몇 번 따라해 보고 하다가 어설프게 할 거면 안 하느니만 못하겠다 싶어 몸이 굳어버렸다. 아무튼 이래저래 뭘 할지를 고민하며 돌아다니다 문득 코끼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문득 이라고 썼지만 비교적 일찍부터 그런 생각이 있기는 있었다. 거의 각 층마다 버려져 있던 파이프 주름관을 보며 그냥 코끼리 코가 연상됐는데 개인적으로 코끼리에 대한 관심이 있어 그랬다. 꼭 이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만들어야지 하는 코끼리 상(코가 길어 슬픈 코끼리)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론 비슷한 맥락과 형태의 코끼리를 만들게 됐다. 파이프 주름관 외에도 공장 안팎을 돌아다니며 마주한 재료들에서 코끼리의 부분 부분을 떠올리게 됐고, 그것들을 모아 먼저 뜯어둔 샌드위치 패널과 섞어 결국은 만들었다. 코가 긴 코끼리를.

할지 말지의 문제

코끼리를 만든 게 전시 시작 열흘 전이었다. 이때까지도 개인전 형태의 전시 참여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작업량. 물론 진작부터 4층 공간을 다른 작가(김성건 작가)와 나눠 쓰기로 해 부담감이 덜하긴 했지만 기존에 해온 작업물이 몇 안 되는 상황에서 기간 내에 공간을 채울 수 있을지 아니 그보다도 무엇으로 공간을 채울지를 정하지 못했다.

몇 가지 계획이 있었지만 전부 제각각인 것 같아 할지 말지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문 쪽 벽을 채운 '연영석 오마주'. 연영석 형은 노래하는 문화노동자다. 이전부터 그의 노래를 좋아했는데 어느 날 들어보니 '콜뺀'(콜트·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밴드) 아저씨들이 '이씨 니가 시키는 대로 내가 다 할 줄 아나'를 '박씨 니가~' 로 바꿔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영석 형 노래 중에 '공장'이란 노래가 있는데 그 두 노래가 이곳 공장의 사정과 잘 어울릴 거란 생각이 들어 내친김에 예전에 게으른 피(연영석 형의 닉네임) 홈페이지에 있던 얼굴 그래픽 이미지 까지 벽에 새기기로 마음먹었다.

헌데 그 순간 망설임이 일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농성 중인 공장에 콜뺀이 아닌 다른 가수의 이미지가, 그것도 웬만한 크기가 아닌 공간 한쪽 벽을 그득하게 채울 사이즈로 들어가도 되는 걸까? 혹시나 콜트·콜텍 아저씨들이 서운해 하진 않을까? 다른 용건으로 전시에 참여하는 윤정 누나(이윤정 작가)에게 전화를 걸 얘기를 나누다 이 같은 고민을 얘기했더니 의외로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상덕 씨 전시공간이니까 자기 방에 좋아하는 가수 포스터를 거는 거라 생각하고 작업을 진행하세요."

통화를 마치고, '할지' 쪽으로 가닥을 잡고 구체적인 구상에 들어갔다.

ⓒ상덕

혼자 한 퍼포먼스

사실 '연영석 오마주'는 전시 시작에 맞춰 작업을 끝내지는 못했다. 전시를 이틀 남긴 시점에서 긴가 민가 하면서 결국 하게 된 작업이 있었는데, 창문을 막았던 패널 문 하나에 스케치 하듯 쓴 '식물도 자라겄다'를 '식물도 자라겠다'로 고쳐 쓰는 일이었다. 먼저 바닥에 갈색 페인트를 덩어리지게 곳곳에 뿌리고 그것을 바퀴가 달린 쇠파이프로 밀고 다녔다. 다음으로 공장 안에 버려져 있던 종이컵을 주워와 안에 흙을 담고 거기에 담배꽁초, 볼트 너트, 전선피복 따위를 심어 넣었다. 그렇게 준비한 종이컵은 페인트 선 위에 놓았고, 이상 일련의 과정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딴에는 경작을 모방한 이 같은 행위를 '식물도 자라겠다'라 이름 붙였다.

작업을 마치고 보니 공간이 전체적으로 산만해진 감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꼭 그렇진 않았지만 덕분에 '연영석 오마주'가 더 더디게 마무리 됐다. 그래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꼭 한 번만 할 일이었고, 하고 나니 공간 전체에 대한 정리가 됐다.

일터는 삶터

마지막으로 마무리 짓지 않은 작업에 대해 언급해본다. 공장을 돌아다니면 안전에 대한 경고성 포스터들이 곳곳에 붙어 있는데 그 중 눈에 들어온 그림이 하나 있었다. '허리 조심'이란 문구 아래 무거운 짐을 들다 허리가 삐끗한,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한 표정의 인부가 그려진 그림이었다.

그 그림을 떼어 와 공간 한쪽 벽에 고정시켰고 그 옆에는 그것과 다른 느낌의 이미지를 그려 넣을 참이었다. 어떤 내용이 좋을까 며칠을 짬짬이 궁리하다 마침내 구상을 끝냈는데, 시간과 실력을 핑계로 결국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도 그림을 그려 넣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굳이 언급하는 까닭은 이제야 내 스스로 정리가 끝난,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의 공장의 한 공간을 빌려 열은 첫 번째 개인전의 제목을 밝히기 위해서다.

'일터는 삶터'다. 아저씨들이 다시 공장을 되찾는 날, 그 때의 공장은 이전과 다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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