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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치매 어머니 안고 뛰어내리고 싶지만…"

['다섯 살' 노인요양보험, 어디로 가나?ㆍ③] 인권에 기반을 둔 제도 필요

지난 1일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된 지 만 4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다섯 살 생일을 마음껏 축하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다. 급격한 고령화에 따른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태동한 이 제도가 지닌 선한 취지는 빛이 바랜 지 오래다. 제도 이용자 처지에선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심각하다. 반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들은 기본적인 노동 인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다섯 살'짜리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그냥 버릴 수는 없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이 제도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뜻이다.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좋은 제도는 왜 '애물단지'가 됐을까.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놓인 현실은 정치권에서 구호로만 떠도는 복지 담론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프레시안>은 일선에서 복지 업무를 수행하는 요양보호사의 현실을 짚으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 '다섯 살' 노인요양보험, 어디로 가나?
"깨물리고 따귀 맞으며 밤샘 근무 한 대가가 12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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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이 되어버린 노인 돌봄

아침이면 밥상과 함께 요강을 시어머님 방안에 들여놓고 출근한다던 학교행정직 김 선생님, 치매에 걸린 친정어머니를 돌보다 보면 가끔 어머니를 껴안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다고 고백하던 친구 영희, 그리고 부모님 요양을 책임지느라 결혼까지 늦어졌던 내 언니 등등. 모두 지난 세월 내 주변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그리고 사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우리는 여성도 맞벌이로 경제활동에 참여해야 생활이 가능하고, 결혼과 출산율이 줄어들어 가족 구조가 재편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여기에 급격한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보살핌이 필요한 노년은 더욱 길어져 노인 돌봄은 빠른 속도로 우리를 압박하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현실이 이럴진대, 시어머니의 밥상과 요강만을 놔두고 직장으로 향해야 했던 김 선생의 선택이 어찌 잔인하다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시어머니의 고립된 매일 또한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삶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 개인의 일이라 치부할 수 있는가? 집안의 문제로만 놔둘 수 있는가? 노인 돌봄은 더 이상 개인이나 집안의 일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 한 사회를 존속케 하기 위해 해법이 간절히 필요한 공동체의 과제다.

결국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시간, 노후

하여 4년 전 우리나라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했다. 현행 제도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그 실천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노후를 자식들에게 의탁하지 못할 게 너무도 명확한 이 시대에, 그렇다면 나 자신은 어떤 요양환경에서 노후를 보내게 될지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목격하는 요양 현장은 내가 즐거이 선택하게 될 그런 공간일까를 회의하게 만든다. 집안에 방치되던 노인이 노인장기요양시설 침대로 옮겨져 방치되는 현상, 고립되어 있고 고단하기까지 한 돌봄노동에 괴로워하던 내 친구 영희의 어려움이 요양 현장의 요양보호사들에게서 여전히 목격되고 있으니 그 공간과 제도에 대해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상상이 필요할 때, 2007년에 대만의 타이중 지역에 있던 노인 공동체를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대지진으로 가옥들이 대파된 후 만들어진 노인 공동체였다. 처음에는 100명이 넘는 노인들이 거주하였으나, 우리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40여 명의 노인들이 남아 농장과 그에 딸린 카페 및 재활용매장을 운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신들이 직접 생산한 과일주스와 커피를 카페에서 판매하며 즐거이 그곳을 소개하던 모습은 나의 노년을 아름답게 상상하게 만든다. 친구들과 더불어 즐거운 노동으로 부를 생산하고 공동주택을 꾸리며, 즐거이 친구들과 돌봄을 주고받으며 죽음을 목도할 수 있는 그런 공동공간! 이런 노인 공간이라면, 이런 삶이라면 내 주변의 노년이 윤택할 수 있지 않을까? 공동체적으로 돌봄망을 구축하고 그 속에 제도를 위치시킨다면 행복한 우리의 노후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 공간의 존재를 위해 국가와 지역사회가 해야 할 역할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 성장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반드시 한 번 이상은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다. 그것이 우리 존재의 조건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 유년은 있으나 노년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인구의 반인 여성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구성원으로 여겨지지 않았듯이, 지금 우리에게 노년은 투명인간처럼 존재치 않는 존재들로 자리하고 있다. 노인장기요양제도가 지금과 같은 운영에 머문다면, 사회공동체가 노년을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며 바로 노년이 사라지고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리라. 고통이라면 고통일 수 있으나 기쁨이라면 기쁨일 수 있는 생애사를 가지고 있는 존재들로서 이를 좀 더 윤택하고 행복한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인 점만큼 명확한 일이다.

노년이 누구나 겪게 되는 공통의 경험이라면, 노인 요양은 사회가 베푸는 배려나 혜택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당연히 행복하게 누려야 할 기본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노인요양보험제도로 노인 돌봄 문제를 사회화한 지금도 여전히, 노년에 누구나 행복할 권리를 우리가 보장해야 하는 것임을 이 사회가 합의하고 있는가를 묻게 된다. 그러한가?

돌봄은 육체적 수발뿐 아니라 개인의 감정과 심리까지 살펴야 하는 특수한 직업임에 틀림없다. 그만큼 인간에 대한 집중, 관계에 대한 성찰을 필요로 하는 특수한 직업이다. 이런 점에서 노인 돌봄의 문제는 평등한 관계를 만들려는 여성주의와 맞닿아 있다. 요양보호사와 요양서비스 수급자인 노인, 두 사람이 만나는 지점은 분명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공간이고 그래서 전제는 평등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곳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요양을 제공하는 사람과 요양을 받는 사람이 평등한 관계일 때 요양 현장에서 노인의 인권이 보장되며, 동시에 요양인력의 노동권이 보장되는 행복한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실시 1주년인 2009년 7월 1일, 보건복지부 앞에서 전국요양보호사협회 주최로 열린 '요양제도 시행 1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요양서비스 질 개선과 요양보호사 인력 확충 문제 등을 제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열악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현주소

우리나라 요양제도는 서비스 기관 간 경쟁을 통해 서비스의 질을 담보하고 서비스 이용자들의 선택권을 보호한다는 시장주의적 발상에 기반하고 있다. 하여 누구라도 요양기관 운영이라는 시장에 들어올 수 있다. 서비스 기관 간에 경쟁을 하게 하고, 그 기관의 서비스를 비교해 소비자가 선택하게 한다는 발상은 온갖 영세업체의 진입을 허용했다. 공공재적 성격의 복지서비스의 질을 경쟁을 통해 담보한다는 생각은 참으로 신자유주의적 발상이다.

영리가 우선인 시장에서 어찌 서비스 공급자와 수급자의 평등한 관계를 꿈꾸며 우리가 바라는 따뜻한 요양이 가능하겠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기본 접근 방식에 따라 지난 4년여 세월 동안 나타난 결과는 영리 목적의 영세업체들 간의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기관도, 노인 요양의 질도, 그리고 요양보호사의 노동권 보장도 모두 부실해졌다는 것이다. 그 심각성은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요양보호사 노동 인권 개선 권고문을 발표한 데에서도 드러난다.

이는 현행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노인 인권이 아닌 시장 논리에 그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보편성, 형평성, 서비스의 질, 그리고 요양보호사의 인권 등에서 많은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이는 정부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공공적 규제나 지도, 감독 없이 민간기관 간의 경쟁에만 맡겨 놓은 데서 비롯된 문제들이다. 공공재인 복지서비스를 경쟁을 통해 운영하다보니 일어난 일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노인 인권을 기반으로 설계되고 운영되어야 하는 제도이다.

현장 경험 반영해 제도 정비해야

하지만 어느 제도나 처음부터 완벽한 것은 없으리라. 모든 제도는 그 운영 과정에서 수정, 보완이 가능해야 하고 또 그러리라는 전제하에 만들어진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이라도 시장 논리가 아닌 노인 인권을 중심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재정비 과정에 요양 현장 당사자들의 욕구와 바람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 노인의 인권이 무엇인지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노인이며, 그 인권이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방법은 현장에서 직접 실무를 하고 있는 요양보호사들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요양위원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현장 주체들의 의사를 전달할 구조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요양 현장의 경험을 듣고 그것을 제도 변화에 반영하는 것 또한 역시 여성주의의 지향과 맞닿아 있다. 노인을 단지 돌봄서비스를 받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제하지 않을 때, 요양보호사를 단지 월급과 육체적인 수발을 교환하는 도구적인 존재로 전제하지 않을 때, 인권이 중심이 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우리의 노후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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