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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병철 연임, 누가 막을 것인가?

[현병철 인권위, 3년을 말하다·⑥] "해법은 제도의 개선과 시민사회의 힘"

현병철 인권위원장을 연임시키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 3년간 부적격, 불법 인권위원장에 반대하는 싸움을 벌여온 터라 너무 허탈했다. 인권한다는 사람들이 좀 까탈스럽긴 하다. 지난 2009년 인권단체들이 제시한 '국가인권위원장 자격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인권위원장은 1) 전문성, 경험, 인권지향성 갖춘 인물, 2) 독립성 수호 의지 있는 인물, 3)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인물, 4) 인권상황 개선 의지 뚜렷하며 인권위의 성과를 계승, 극복할 수 있는 인물, 5) 국제인권기준 실현의 의지가 있는 인물, 6) 국제사회 인권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물, 7)시민사회 목소리 귀 기울이는 인물, 8) 도덕적으로 청렴한 인물 등 8가지의 요건을 충족시키는 인물이어야 한다.

하지만, 2009년 이후 단 한 번도 이 정성들여 만든 가이드라인이 활용되어 본 적이 없다. 그 이유가 참 허무하다. 현병철 위원장에게는 이런 가이드라인까지 동원하여 검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현병철 위원장은 그냥 그 자체로 불법 인선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는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자"라고 인권위원(장)의 자격요건을 명시되어 있으나, 현병철 위원장은 스스로 "인권위 또는 인권 현장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자백한 바 있다. '가이드라인'은 법적 요건을 넘어서는 이상적인 기준을 제시한 것인데, 아예 '법'을 위반한 인선이었으니, 좀 더 나은 인물의 자격요건을 제시한 인권단체들의 입장에선 허탈할 수밖에 없다.

하도 답답해서, 다른 나라 인권위원장의 면면을 한 번 살펴봤다. 태국 인권위원장은 여성인권과 사회복지 분야에서 활약해온 인류학자, 필리핀 인권위원장은 필리핀의 민주화외 인권 증진을 위해 평생을 싸워온 운동가, 뉴질랜드 인권위원장은 장애인권, 스포츠, 청소년 교육 분야에서 일해온 변호사, 캐나다 인권위원장은 다문화, 아동, 가족 문제를 다뤄온 변호사, 호주 인권위원장은 차별금지법과 인권법, 난민법 영역의 일을 해온 전직 법관, 영국 인권위원장은 인종문제에 관한 TV프로그램을 제작했던 언론인이자, 전직 인종평등위원회 위원장,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권위원장은 아프리카민족회의 집행위원과 옴부즈만을 역임했고, 남아공 헌법 제정에도 참여했던 인권변호사였다. 이 정도는 되어야 일국의 국가인권위원장을 할 수 있는가 보다.

▲ 2010년 11월 서울 중구 태평로1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 설립 10주년 기념식에서 인권단체연석회의 및 국가인권위원회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등 회원들이 행사장 입구에서 인권위 독립성 훼손과 장애인권 후퇴 등에 시위하며 진입하려 하고 있다. ⓒ뉴시스
인권현장 경험도 전무한 인물이 국가인권위원장

<신동아>에 연재되고 있는 안경환 전 인권위원장의 회고록을 보면, '세계국가인권기구협의회'(ICC)의 부의장으로 선출될 당시, 경쟁자인 호주, 뉴질랜드, 인도, 필리핀의 인권위원장들이 워낙 명성이 높은 인물이라, 자신의 당선이 녹녹치 않았다고 한다. 국제적인 지명도가 높은 편인 안경환 교수조차 이런 애기를 할 정도로, 세계 각국의 인권위원장의 프로필은 화려했던 것이다. 우리 국가인권위원회 영문 홈페이지의 위원장 소개 코너를 방문해 보았다. 현병철 위원장의 경력 란에는 단 한 줄의 인권 경력도 없었다. 유독 대한민국만, 인권관련 연구도 인권현장에서의 경험도 전무한 인물이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인권위원장 인선에 대해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인권위가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 바로 인권위를 구성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권에 대한 신념도 인권에 대한 경험도 독립성에 대한 의지도 없는 사람들이 인권위를 구성한다면, 인권위는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법적 강제력도 없는 인권위의 권고가 70% 넘게 관철되는 비밀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인권위의 '사람들'이다. 부지런히 현장을 누비며 새로운 인권의제들을 발견하고 선도적으로 제기하고 사회에 안착시키는 일은 '법'에 쓰인 대로만 일해서 되는 일이 결코 아니다. 국가인권기구에 대한 세계적인 규범들이 하나 같이 인권위에서 '사람'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의 사례는 부적격 인사가 인권위원장이 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생생한 증거를 제시한다. 불행하게도 현병철호 인권위가 국제사회에 기여한 바가 있다면 바로 이 지점이다. 그의 재임 시절 인권위는 인권위가 꼭 나섰어야 할 인권현안에는 침묵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인권위의 위상과 역할에 맞지도 않는 북한인권문제에만 적극적으로 나섰으나 그나마도 별다른 성과조차 내지 못했다. 국내 인권운동가와 인권전문가들은 인권위와의 협력을 사실상 거부했고, 국제사회에서도 거센 비난과 항의에 직면했다. 인권위 내부의 평가도 냉혹했다. 인권위 직원의 90%가 사실상 연임을 반대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고, 직원들은 아예 현병철 위원장 연임에 반대하는 언론기고를 연이어 하고 있다.

이 정도 인물이라면, 애초에 임명되지 말았어야 맞고, 연임은 더더군다나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이런 불법적 사태가 벌어지는 데에도 제도적인 통제장치는 전혀 없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새로 도입된 인사청문회 덕에 국가인권위원장의 적격성 여부를 국회에서 따져 물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인권위원장의 임명은 국회의 임명동의가 필요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인사청문회 결과와 상관없이 임명을 강행할 경우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10년 전 치열했던 현장이 재현되고 있다

그래서 인권단체들이 애초에 제도적 개선 방향으로 제시했던 것은 인사청문회와 더불어, 인권위원장 추천-인선과정에서의 민주적 통제였다. 예컨대, 태국, 인도네시아, 남아공, 인도처럼 인권위원(장) 인선위원회를 먼저 구성하고, 투명하고 공개적인 절차를 통해 추천한 후, 이 중에서 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사청문회는 일단 임명권자가 독단적으로 임명을 한 후 검증을 하는 방식이라면, 이러한 인선과정은 아예 임명과정을 통제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부적격 인물이 자연스레 걸러지고, 인사청문회 자리에 오르는 것은 어느 정도 제어될 수 있다.

물론 나쁜 제도가 항상 나쁜 결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인권위원(장) 선임과정은 매우 허술한 제도였지만, 훌륭한 인권위원들도 제법 있었다. 반대로 제도가 개선된다고 좋은 결과가 저절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추천위원회의 추천 → 대법관 임명제청 → 대통령 임명 → 국회 임명 동의'라는 다단계 검증과정을 거치는 대법관 인사에도 얼마나 많은 비판이 쏟아지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제도는 필요하다. 좋은 제도는 좋은 결과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마련된 추천-인선절차와 실질적인 인사청문회는 임명권자의 자의적 결정을 통제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다시 한 번 인권위원(장)에 대한 추천-인선절차의 공개적, 민주적 절차의 도입을 촉구한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에서 이러한 논의가 허망하게 느껴지는 것은, 인사청문회의 결과와 상관없이 현병철 위원장의 연임을 밀어붙일 가능성 때문이다. 그런 무리수에 대해서도 법적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다시 원점이다. 지난 2001년 인권위가 설립될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은 강력한 시민사회에 있었다. 인권위를 설립하고자 싸웠던 그 인권운동가들과 시민들의 힘이 없었다면 지금 인권위는 존재하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

10년 전 인권위 설립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그 힘이 이번에는 현병철 위원장의 연임을 저지하기 위해 결집되어야 한다. 그 힘이 다시 모아진다면, 현병철 위원장의 연임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고, 인권위가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주 '현병철 연임 반대와 국가인권위 바로세우기 전국 긴급행동'이라는 이름으로 결집한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다시 거리로 나선다. 애석한 일이지만, 10년 전의 그 치열했던 현장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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