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법에는 '성(性)적지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최초로 포함되었고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직원이 채용되기도 했다. 그 기대감이 너무 커서인지 몰라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배포한 다이어리를 활동노트처럼 활용하며 늘 소지하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과 사무처 직원 전화번호 등이 자세히 적혀있던 다이어리는 상담할 때마다 요긴하게 사용되곤 했다.
2000년 끝 무렵 군 복무를 마친 나는 긴 기다림과 침묵을 깨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 하나를 제출했다. 그 당시 기준으로만 해도 시간이 꽤 지난 사건이었다. 그래도 국가인권위원회가 내가 경험한 끔찍한 인권침해에 대해 공감해주고 해결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나와 같은 인권침해 당사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길 바랐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국군창동병원 정신과 병동에 입원해있던 시절 군의관으로부터 들었던 수많은 모욕적인 말들, 마치 죄인처럼 병동을 방문했던 부모님의 모습, 밤마다 독방에서 자야했던 치욕스런 순간, 성분을 알 수 없는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했던 한 달 동안의 병원생활은 나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참고, 또 참고, 또 참는 일이었다. 그 때는 국가인권위원회조차 없었기 때문에 억울해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국가인권위원회 출범이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진정은 여러 이유로 각하결정이 내려졌지만 국가인권위원회의 요청으로 제출된 국방부 서류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고 이와 같은 일들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서 국가 차원에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고민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이 묻는다. 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느냐고. 인권위원회에 문을 두드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억울하고 절박했다. 무엇보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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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기대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국가인권위원회
상담을 할 때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막막함'이다. 위로하고 격려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담이라면 다행이지만 문제해결을 위해 고민을 해봐도 실마리가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차별금지법과 같은 법제도 자체가 없는 것도 한 몫 한다. 국가기관에 의해 인권침해 소지가 다분한 상담의 경우 마음이 내키지 않더라도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통해 해결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내담자에게 권유하기도 한다.
사실 별다른 선택여지가 없다. 진정서를 제출하고 조사관에게 어떻게 해결되어 가고 있느냐 묻고 재촉하는 불편함이 있어도 결과에 대한 '기대' 때문에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 만큼 국가인권위원회는 사회적 약자·소수자들에게 너무 중요한 곳이다.
얼마 전 청와대는 현병철 인권위원장을 연임시키겠다고 발표했다. '깜둥이'와 같은 인종차별 발언, '우리 사회 여성차별이 존재하느냐' 와 같은 몰 성적 발언으로 인권감수성이 결여된 인권위원장으로 이미 검증된 이가 다시 연임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인권을 편들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가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버린 지 오래다. 인권위원회가 아니라 식물위원회, 이권위원회로 불리며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평가도 계속되고 있다. 청와대의 이번 연임 결정은 '인권'을 자신의 권력 아래 두기위한 술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적 약자·소수자의 입장이 아니라 인권가해자의 위치에 놓인 국가권력의 입장에서 인권을 해석하는 끔찍한 상황을 다시금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문제해결의 마지막 수단으로서,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이들의 최소한의 기대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동성애 혐오의 목격자, 하지만 변화의 가능성은 '제로'
2010년 10월 27일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는 군인의 신분으로 합의에 의한 동성애 관계조차도 처벌토록 한 군형법 제92조가 동성애자의 평등권과 성적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고 죄형법정주의 등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표명하기로 의결했다. 하지만 군을 동성애로 와해시키려 하고 결국 이 모든 것이 북한만 좋은 일시키는 거라며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댔던 보수·교계단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어버이연합 회원들과 내 아들 절대 군대 보내지 않겠다며 항의하는 부모들도 참여하면서 국가인권위원회의 고난(?)은 시작되었다. 급기야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로 난입해 전원위원회 회의를 파행시키고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하였다. 당시 독단적인 인권위 운영으로 인권단체들로부터 사퇴압력을 받아왔던 현병철 위원장은 전혀 다른 이유로 양쪽으로 사퇴압력을 받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인권단체들은 '현병철 사퇴'를 외치며 농성에 들어갔고 국가인권위원회 앞은 '인권위 해체'를 외치던 고엽제전우회,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위협적인 기자회견을 하며 상주하는 등 그야말로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인권단체의 계속되는 사퇴압력에도 불구하고 현병철 위원장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2011년 3월 군형법 92조가 헌법재판소로부터 합헌결정이 나오자 국가인권위원회 앞 소란도 어느 정도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동성애 혐오의 중요한 목격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 인권문제를 상관없다는 식으로 '방치'하거나 '기피'하는 태도를 보였다.
인권위 업무계획에서 성소수자들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심지어 2011년 9월에는 금품수수 의혹이 있을뿐더러 동성애 차별금지법과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소수의견이라 할지라도 엄격히 적용하겠다던 김성영 성결대 총장을 비상임위원으로 결정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전혀 입장표명할 의지가 없음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의 입장에서, 남성보다는 여성의 입장에서, 비장애인보다는 장애인의 입장에서, 이성애자보다는 성소수자의 입장에서, 건강한 사람보다는 아픈 사람의 입장에서, 한국인보다는 이주민의 입장에서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인권이다. 현병철 인권위원장 연임은 바로 가난하고, 힘없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회적 약자소수자들의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고 마지막 남은 인권의 기대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감히 인권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겠는가.
오늘 하루도 인권피해자들과 상담을 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이라도 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현병철 인권위원장은 절대 연임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국가인권위원회를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만드는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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