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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복지? 이번 총선이 보여준 것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정의와 복지가 있는 대한민국을 원한다면

지난해 초 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시작된 시민혁명의 불길이 이집트로 옮겨 붙어 30년 독재자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했다.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는 원래 빵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애초에 "빵을 달라"던 구호가 시간이 흐르면서 "자유를 달라"고 바뀐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빵 문제는 과연 해결된 건가. 복지 빈국이자 빈부 간 격차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분배와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성장이 더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으나 대세는 아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등 복지국가 운동이 일어나고 있고, '포퓰리즘' 운운하고 복지를 매도하던 보수세력들도 한발 물러서거나 복지 쪽으로 다가갔다.

시장의 논리는 '효율성'을, 복지논리는 '공평성'이라는 두 가지 상충되는 관점을 각각 금과옥조로 여긴다. 글로벌 경제시대를 맞아 성장을 더 해야 한다는 데 이의를 달 필요는 없다. 문제는 파이(Pie)를 늘리고 나서 나누지 않는데 있다. 그리고 시장이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출발부터 불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다. 100m달리기로 말하면 일부가 수십미터를 앞서서 출발한 것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적게 받는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근로소득이 공정해야 한다. 대다수 시민들은 많이 일하고 적게 받는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근로시간 면에서 미국보다 23%, 일본 보다 26.6% 더 일한다. 네들란드 근로자의 1.6배, 독일근로자의 1.5배나 일한다. 근로소득이 적은 것은 게을러서 그런가. 대부분은 비정규직 등 사회경제적인 여건 때문이다. 여름에 열심히 일한 개미가 겨울에도 가난하다.

또한 자본소득의 비대화는 상대적으로 근로 소득자를 왜소하게 하고 있다. 노동시장에서 얻어지는 근로소득보다 자본시장에서 얻어지는 자본소득이 훨씬 크다. 작년 소득 5분위 배율이 5.7이다. 소득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보다 5.7배가 많다는 것이다. 재산불평등은 더 심각하다. 2000대 중반 재산 5분위 배율은 19.5배이다. 재산을 많이 가진 상위 20%가 20% 하위보다 19.5배 많다는 얘기다.

과도한 부동산과 지대소득은 불로소득이므로 국가가 환수해야한다. '불로'라는 것은 애쓰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J.S 밀 같은 역사적인 경제학자도 "인간이 만들어낸 것에 대한 사유재산권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나, 토지는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므로 제한이 자유시장 경제와 배치되는 것 아니다…"고 했다.

내게 혜안을 준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나는 한때 경상도 마산 땅에서 공장근로자로 잡초 같은 삶을 살아가면서 이 땅에는 왜 가난하고 힘겹게 사는 사람이 이토록 많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때 '목구멍(食) 걱정이 없고, 가난해도 교육을 받고, 병들면 치료받을 수 있고, 해가 지면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는 주거공간이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대한 갈구였다. 이 문제에 대해 혜안을 준 책이 <진보와 빈곤>이다. 대한민국이 50년간 물질적인 성장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빈곤이 해소되지 않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헨리 조지가 1879년에 처음 펴낸 이 책은 인공물(자본)의 사유와 자연물(토지)의 공유가 핵심이다.

이 책은 마르크스와 애덤 스미스의 사회주의 및 자본주의가 아닌 제3의 길을 '토지조세제'라는 대안으로 제시한 명저다. 엄청난 물질적 진보가 일어나는데 부(富)의 집중이 계속 확대되는 원인은 토지의 사적 소유에 있으며, 이는 불로소득을 발생시켜 지속적인 진보에 필요한 평등과 자유를 파괴하게 된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토지 및 천연자원에서 생기는 불로소득을 환수하여 공공 이익을 위해 쓰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와 같이 소득 재산 불평등이 과도하게 심해서는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다. 소수의 사람들은 자본소득으로 여름 베짱이가 겨울에도 잘살고 있는 것이다.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외제차량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대기업, 공공부문 개혁도 시급

한편 중소기업은 위축되어 뼈만 남아있고, 대기업은 비만증에 걸려 있다. 이 수준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심화됐다. 우리나라 10대 기업이 GDP에서 비중이 2005년에는 35%였으나 2011년에는 41%이다. 우리 경제는 서양에서 100년 200년 걸린 공업화를 한 세대(20~30년) 만에 이루는 압축성장하는 과정에서 효율만을 강조하여 대기업 집단에 자원을 집중 배분함으로써 재벌세력으로 키웠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시장권력의 비대화를 바로잡아야 한다.

정부 그 자체의 개혁도 시급하다. 우리나라의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 공공부문의 부패와 낭비, 비생산성이 크다. 이를 감시하고 견제해야할 입법권력을 지닌 국회의원들이 부자(졸부들의 사위까지 포함)들로 채워져 있으니 생색내는 수준에 그치고 근본 개혁이 어렵다. 이 나라의 총체적인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현상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지향해온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웅변해주고 있다.

깨어 있는 시민이 '정의'를 만든다

경쟁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국가일 때 소득불평등과 재산불평등이 완화되고 개천에서 용 나고 3대 부자 없고 3대 가난 없는 사회가 된다. 정글처럼 방치해둬서는 아니 된다. 국가가 개입해서 해결 할 일이다.

국가개입주의 사상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일찍이 제헌 헌법에도 이익 균점 조항이 있었다. 이를 '사회적 시장경제'라고 해도 좋고 '사회민주주의'라 해도 좋다. <행복경제 디자인> 공저자 이정우 교수(경북대 경제학)는 국민 대다수가 재미있게 일하고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으로 시장만능의 이데올로기에서 탈출하고 다양한 자본주의 모델 중 영미형이 아닌 북유럽 사민주의 모델을 자신감 있게 천명한다.

복지가 증세로 연결된다고 할 때 가진 자의 이해와 협조도 동반돼야 한다. 미국의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식의 사회기여가 우리나라에도 상당히 있다. 예를 들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을 지낸 기업인 류시문씨는 가난한 농가에서 차남으로 태어나 다리를 다쳐 장애인으로서 건설안전점검 전문업체 '한맥도시개발'을 창업해 연매출 30여억 원으로 키우고 20년에 걸쳐 전재산 절반에 해당하는 30억 원을 꾸준히 기부해온 대표적인 노블리스오블리주 실천가다. 이름도 빛도 없이 기부하는 알려지지 않은 사람까지 치면 더 많을 것이다.

그래도 세상을 바꾸는 힘은 풀뿌리 시민들이다. 이번 총선은 정치권에 한정된 보편복지 논의가 얼마나 허약할 수 있는 지를 역설적으로 확인했다. '복지국가'든 '정의국가'든 국가공동체는 개인의 힘이 모여 만든다. 내가 만든다는 깨어 있는 시민의식이 중요하다.
▲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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