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곳에 여성 비례대표 초선인 조윤선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의원이 도전장을 냈다. 종로는 같은 당 박진 의원이 내리 3선을 할 정도로 과거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불린 지역이지만, 총선을 앞두고 '현 정부 심판' 여론이 일고 있는데다 야권의 대선 주자인 정세균 의원을 상대로 쉽지 않은 승부수다.
그러나 조 의원은 시종일관 여유가 넘쳤다. 다들 '정치 1번지'의 후보 명함을 따기 위해 치열한 경쟁에 나섰지만, 조 의원은 종로를 '정치 1번지'가 아닌 '문화 1번지'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딱딱한 도심 종로를 "전통과 문화가 스며있는 품격있는 도심"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인지도 높은 당의 중진급 의원들은 비교적 당선이 쉬운 지역구를 선택하는 와중에, 최대 격전지 종로행을 택한 조윤선 의원을 지난 31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고성국 프레시안 기획위원(정치학 박사)이 진행했다. <편집자>
▲ 오는 4.11 총선에서 종로 출마를 선언한 새누리당 조윤선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
조윤선 : 첫 번째 반응은 '조윤선답다'는 것이다. 사실 국회 들어와서 뭔가를 내지르거나 크게 결단한 것은 처음인데, 왜 '조윤선답다' 그러는지 잘 모르겠다.(웃음) 두 번째는 정말 잘했다는 반응이다. 유권자들이 최근 새누리당에 실망을 많이 했는데, 제가 종로에 나가면 정말 재밌을 거라는 말들을 많이 하신다. 사실 그런 말을 들으면 정치인에게 너무 엔터테이너적인 면모를 기대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많이 든다. 저는 죽을 힘을 다해 싸워야 하는데, 재미있는 관전을 기대하는 구나….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도 반응이 많은데, 종로 출마가 참신하고 새롭다는 평가가 많았다. 사실 종로가 '정치 1번지'로 여겨진 측면이 강한데, 문화적 접근이란 발상 자체가 참신하다는 평가다. 그런 반응이 전 가장 마음에 든다. 상대방이 강적을 만난 거다. (웃음)
고성국 : 당내 반응은 어떤가?"
조윤선 : 선배님들은 정말 생각 잘 했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사실 종로란 격전지에 뛰어들 사람을 당내에서도 찾기 쉽지 않고, 외부 영입도 만만치 않다. 정치신인이 싸워내기가 녹록치 않은 곳인데, 고맙다는 말씀도 많이 하신다.
"종로, '정치 1번지'에서 '대한민국의 파리'로"
고성국 : 그런데, 왜 하필 종로인가?
조윤선 : 많은 분들이 강남 지역이나 신도시를 공략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셨는데, 동료 의원들이 이미 도전하고 있는 지역이라 굳이 기존에 있는 사람 밀치고 나가는 것은 맞지 않다고 봤다. 사실 평소부터 종로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일을 하면서 파악을 해보니, 종로에 미술관만 51개, 도서관이 4개가 있다. 그렇게 많은 문화기관이 종로에 있을 정도로 종로는 이미 문화도시다. 제가 전통문화특위 활동도 해왔고 워낙 문화나 전통에 관심이 많았지만 박진 의원이 10년 동안 너무 탄탄하게 다져 놓으셔서 사실 언감생심이었다. 박진 의원의 불출마 선언 이후 출마 결심을 굳혔다.
사실 재선을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질 거라는 생각은 늘 해왔다. 물론 지역구가 있으면 지역에 매여 하고 싶은 일을 할 여력이 없는 경우도 많지만, 제가 갖고 있는 역량과 하고 싶은 일을 지역의 이익과 동일선상에서 가져갈 수 있는 지역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1985년과 2001년에 유럽 도시들을 돌았는데,16년 사이 유럽의 도시들이 너무 달라져 있더라. 주요 도시의 도심이 그 사이 사람들의 주거지로 환영을 받고 있는 것을 보고 굉장히 놀랐다. 우리 종로도 금방 그렇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성국 : 종로와 연고가 있나?
조윤선 : 광화문에서 1994년부터 2006년까지 변호사로 근무했고, 2007년엔 청계천에 사무실이 있었다. 14년 동안 아침에 출근하고 자정이 다 돼서 퇴근했다. 집에선 거의 하숙생처럼 잠만 잤다.(웃음) 그러다 보니 종로에 추억도 많고, 그 주변을 누구보다 잘 안다. 지금은 재개발이 되었지만 내수동 골목골목에 작은 식당들이 있어서 매일같이 백반 먹으러 갔었다. 비오는 날엔 파전을 시켜먹기 딱 좋았다. 2000년대 이후엔 삼청동이 굉장히 많이 변해서, 꽃놀이 간다고 친한 동료들과 삼청동 수제비를 먹고 오는 게 가장 큰 소풍이었다.
또 하나 강렬하게 남은 기억은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기다리면서 근처 음식점에서 우동이랑 유부초밥을 먹고 있는데, 젊은 부부가 유모차를 끌고 한가롭게 거리를 산책하는 것을 봤다. 직장생활하면서 그런 모습은 처음 봤다. 사실 종로나 광화문은 사람들이 잘 산책하지 않는 그야말로 도심이었는데, 뉴욕의 센트럴파크나 파리의 상젤리제 거리처럼 도심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고궁 뜰에 누워 여유를 즐기는 게 우리 종로가 보여줘야 할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고성국 : 당선되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나?
ⓒ프레시안(최형락) |
제가 19대 총선에서 우리당 문화예술체육관광 총선공약 팀장을 맡았다. 각각의 지역별 특색을 살리면서 문화재와 재산권 보호를 둘다 이뤄내려고 한다. 재산권과 문화재를 각각 X, Y축으로 놓는다면, 그 둘이 반비례 관계가 아니라 Z축을 새로 만들어 함께 상승 작용을 할 수 있는 맞춤형 정책을 펴려고 한다. 제가 변호사를 오래해서 타협이나 협상을 잘 한다. 각 주체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다 들어야 협상이 된다.
사실 국회의원들이 지역구에서 민원을 가장 두려워하는데, 유능한 국회의원은 민원을 정책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지역 주민들한테 '저를 뽑아주세요'라고 말하기보다는, '저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루세요'라는 말을 하려고 한다.
고성국 : 이미 인사동이나 삼청동, 북촌의 경우 나름대로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역사지구로 자리 잡았는데, 이 경우 성공적인 커뮤니티의 재구성이라고 볼 수 있나?
조윤선 : 일부는 성공적이라고 본다. 뉴타운 식 철거가 아닌 전통가옥을 나름대로 보존했고, 그렇게 해서 한국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자산으로 만들었다는 점은 성공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지나치게 상업적이지 않게 균형을 잘 잡아주는 것 역시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고성국 : 다른 나라 도시와 비교했을 때 생각하는 모델이 있나?
조윤선 :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구도심을 보면, 여느 역사도시와 마찬가지로 미술관과 박물관, 궁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지만 동시에 주거시설도 잘 마련돼 있다. 빈의 경우 소유주가 아닌 사람들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정책을 잘 하고 있고, 우리가 배워야 할 것도 바로 그 지점이라고 본다. 도시의 가치는 올리면서 어떻게 입주민을 위한 도시를 만들고 주거환경을 챙길 것인지가 관건이다.
고성국 : 정세균 전 민주당 대표가 경쟁자다. 종로의 후보자로서 어떻게 평가하나?
조윤선 : 그 분의 캐치프레이즈를 보니 '종로의 태풍', '총선과 대선 승리', 이런 정치적인 구호가 많고 종로를 그런 발판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 유력한 대선주자이고 당 수뇌부에서 일하실 분인데, 그런 면에서 종로를 위해 진득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제가 더 적임자라고 본다. 사실 지난 4년 동안 국회에 있으면서 대변인을 했던 전반부 1년 동안은 의정활동을 못했다. 그만큼 보직을 가지면 충실하게 지역을 위해 일하거나 의정활동을 하기 쉽지 않다. 종로를 대한민국의 파리나 런던, 비엔나로 만들기 위해선 종로에 '올 인'할 수 있는 사람이 나서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조윤선 : 굉장히 속도가 빠르다고 생각한다. 제가 2002년 선대위 대변인을 할 때 한나라당 출입기자가 199명 정도였고, 그 때 여기자가 3명일 정도였다. 이번에 당 대표가 여야 모두 여성정치인이 됐고, 여성 공천 역시 지난 지방선거와는 다르게 국민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저는 사실 지역구 출마를 고려할 때, 여당이든 야당이든 여성정치인이 출마하는 곳엔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성 정치인의 숫자가 더 많아져야 하는데, 기왕에 잘하고 있는 분들이 계시는데 가는 것은 전력의 낭비라고 봤다. 여성정치인들이 여야할 것 없이 잘 성장해 선의의 경쟁을 하고, 국민들이 기성정치인에 피로감을 느끼는 것을 잘 채워나갔으면 좋겠다.
고성국 : 여성정치인 중 롤 모델이 있나?
조윤선 : 사실 주변에 계신 분 모두가 스승이다. 모두가 일장일단이 있지만, 장점을 더 많이 배우려고 노력한다. 많은 분들에게 배우지만, 박근혜 위원장의 경우 언제나 국민의 상식선에서 생각하는 모습이 참 좋다. 오늘도 정강정책 관련 라디오연설을 들으니 '상식이 통하고 정치인의 말을 신뢰할 수 있는 정치를 만들겠다'라고 했는데, 우리가 가장 해야 할 일이 그 부분이 아닌가 싶다. 전재희 의원도 정말 진솔한 마음으로 정치를 하고 그 의정 능력에 감탄한다.
고성국 : 야당 의원 중엔 없나?
조윤선 : 박선숙 의원의 정보와 경험, 소신과 판단력에 대해 높게 평가한다. 당은 다르지만 박 의원의 질의나 발언을 들어보면 참 배울 게 많다.
고성국 : 최근 박근혜 위원장에 대해 소통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은데, 실제로 어떤가?
조윤선 : 비대위를 꾸려가는 일련의 과정에서 정태근, 김성식 의원의 탈당 등 많은 희생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것이 곧 국민과 소통하는 과정이었다고 본다. 어떻게 보면 새누리당이 자칫 가능성이 없는 상황까지 갔을텐데, 더군다나 대선을 치러야 하는 사람 입장에선 그 과정이 더욱 자신에게 상처가 되지 않겠나. 그런 어려움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비대위원장직을 맡아 당 쇄신에 앞장선다는 것 자체가 큰 결단이었다.
고성국 : 조윤선 의원처럼 야당에선 전현희 의원이 여성 비례대표로서 어려운 지역인 강남을에 도전하는데, 전 의원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조윤선 : 경험이나 경력도 다양하고, 사람들과의 친화력도 굉장히 뛰어난 것 같다. 저랑 연배가 같아서 잘 통한다. 안 그래도 강남에 출마한다고 하길래, 서로 당은 다르지만 종로에 출마한 조윤선, 강남에 출마한 전현희 둘 다 모두 당선되자, 이런 얘기를 했었다. (웃음)
고성국 : 대선은 어떻게 보나? 누가 이길 것 같나?
조윤선 : 잘 모르겠지만…결국엔 우리당이 이길 것 같다. 지금 한반도의 정세를 볼 때 주변국과의 관계가 예전보다 훨씬 중요해졌고, 그걸 잘 해내는 게 국내적인 안정만큼 중요하다고 보는데, 그 점에서 한나라당과 박근혜 위원장이 우위에 있는 것 같다.
두 번째는 정책 부분인데, 제가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공화당과 민주당의 전당대회를 모두 가서 지켜봤다. 제가 다니던 은행 해외본사의 상사가 당시 민주당 오바마 캠프의 연설 총괄을 맡고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업무가 민주당 골수 지지층이 좋아할 만한 센 발언을 톤 다운 시키는 것이라고 하더라. 전국에 생중계되는 연설이다 보니, 30%의 무당파층을 흡수해야 민주당이 이긴다는 기준이 확실하게 서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니 민주당이 당선될 것 같더라. 우리당이 이번에 정강정책을 '국민과의 약속'으로 바꾸고, '좌클릭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들을 정도의 정책을 쏟아내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본다. 전 세계가 자본주의의 실패와 수정을 이야기는 상황에서 이런 모습이 '좌클릭'이 아니라 새누리당이 정책적 우위에 서는 과정이라고 본다. 전 그런 두 가지 이유에서 대선도 승산이 있다고 본다.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으로, '정치 1번지' 종로 도전까지
고성국 : 4년 동안 가장 잘한 의정활동으로 무엇을 꼽나?
ⓒ프레시안(최형락) |
또 2010년이 6.25전쟁 60주년이었는데, 해외의 참전용사 자녀를 위한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지금은 200명 정도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한국에 20명 정도가 유학을 와 있다. 터키에서 참전용사를 만났는데, 처음엔 한국에 대한 애정을 열심히 얘기하시다가도 나중엔 해외 참전 용사들에게 너무 관심이 없는 것 아니냐며 서운해 하시더라. 그걸 계기로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첫 책의 인세를 모두 그 장학재단에 부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고성국 : '정치는 원칙'이란 말도 있고, '정치는 사랑'이라는 말도 있다. 어느 쪽이 맞다고 보나?
조윤선 : 둘 다다. 원칙을 지키면 사랑은 모두 느끼게 된다. 아이를 키울 때도 그렇지 않나. 다만 법 얘기를 하자면, 법관으로서의 법은 원칙이지만, 입법가로서의 법은 사랑인 것 같다.
고성국 : 딸이 고3이라고 들었는데 바빠서 신경을 잘 못쓸 것 같다. 남편이 많이 도와주나?
조윤선 : 남편이 아이들에게 신경쓰는 방법은 엄마가 더 바빠지는 것이다. (웃음) 국회 오기 전엔 둘 다 변호사라 왜 바쁜지 뻔히 알기 때문에 신경을 잘 안 썼는데, 대변일 할 때 일요일에도 출근을 하다보니 남편이 라면도 끓이고 물만두도 삶더라. 참 고마운 게, 대변인 시절에도 제 이름으로 나오는 논평이나 기사를 빠짐없이 보면서 코멘트를 해줬다. 논평의 단어가 적절치 않으면 전화를 해서 얘기해 줬다. 대변인 할 때 얻은, '아픈 논평은 해도 미운 논평은 안 한다'는 평가에 남편이 큰 기여를 해줬다. (웃음)
고성국 : 인터뷰는 여기서 마쳐야 할 것 같다. 긴 시간 말씀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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