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조국의 소멸을 선포하는 고르바초프의 극적인 담화가 끝나자 크레믈린 궁 상공에 나부끼던 붉은 깃발이 내려지고 백·청·홍 3색의 러시아 국기가 그 자리에 계양되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영토가 한반도의 100배(2240만 평방 킬로미터)나 되는 거대한 소련 제국은 이렇게 조용히 막을 내리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소련 붕괴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러시아 사람들로서는 공산독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민주국가 시민이 되던 때을 회상하고 축하해야 할 날이다. 그러나 하루 전 크리스마스 이브, 모스크바에서는 12만 명(주최 측 추산)의 시민이 "정직한 선거를 실시하라", "푸틴은 퇴장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반(反)푸틴 운동의 선봉인 알렉세이 나발니는 "우리가 권력이다"라고 외치며 오늘은 백악관(러시아 정부 청사)을 공격하지 않겠지만 다음번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동독 정권 말기 동베를린 반체제들이 정권의 정당성을 부인하며 외치던 "우리가 국민이다"라는 구호를 연상시켰다.
이날 시위에는 공산주의자, 민족주의자, 은퇴자, 민주화운동 시민단체 등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지난 가을까지 푸틴 내각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알레세이 쿠드린도 시위에 참가해서 선거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며 내년 대선까지 개선이 없으면 "평화적으로 변화를 실현할 기회를 놓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시위는 러시아 전역에서 벌어졌다. 아직 러시아에서 민주주의가 정착하지 못 했다는 시민들의 외침이다. 푸틴 집권 11년 이래 최대의 시위였다. 지난 10일 있었던 시위에 참가한 5만 명보다 배가 넘는 숫자다. 인터넷의 페이스북, 트윗,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모인 사람들이다. 러시아에 민주화의 봄이 오고 있는 것을 알리는 소리들이었다.
▲ 모스크바에서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는 러시아 군중들. ⓒAP=연합뉴스 |
소련 붕괴 후 러시아에 민주화의 봄이 오는데 20년이 걸린 것 같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으로 자유의 힘을 인식한 소련 국민은 마침내 개혁의 아버지까지 권좌에서 몰아냈다. 개혁 추진에 우유부단한 고르바초프를 축출하는데 앞장 선 인물은 옐친이었다. 옐친은 비밀경찰과 군부, 공산당, 수구세력이 공모한 쿠데타를 몸으로 막아내 개혁의 기수로 부상했다. 그는 공산당을 불법화하고 '충격요법(가격자유화)'을 실시하여 미국과 서방 세계의 지지를 받았다.
러시아 사람들은 공산체제가 끝나면 곧 민주주의가 실시되는 줄 알았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되면 미국처럼 모든 사람이 잘 사는 나라가 되는 줄 알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보살펴 주는 사회주의를 버리고 옐친의 시장경제 전환을 환영했다.
그러나 옐친은 공산체제를 해체하고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측근의 전직 공산당 간부들에게 국유재산을 싼 값에 넘겨주었다. '붉은 자본가들', '벼락부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서민의 생활은 기대한 것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빈부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 정권의 부패가 팽배해 갔다. 국민의 불만이 높아져갔다. 공산정권의 붕괴로 중앙정부의 장악이 이완된 틈을 타서 지방 토호들이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해서 중앙정권에 저항했다. 러시아 연방이 와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일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린 옐친은 자신과 측근의 부패를 눈감아 주는 대가로 푸틴에게 권력은 넘겼다. 푸틴이 혜성처럼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옐친의 지원으로 2000년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 푸틴은 권력을 안정시키고 서민 생활의 개선에 노력하는 한편 대외적으로 소련 붕괴 과정에서 추락된 러시아의 국위를 회복하는 데도 성과를 거둬 인기가 올라갔다. 소련 비밀경찰 출신인 푸틴은 KGB 조직과 두뇌를 정권 운영에 최대한 활용한다. 소련 체제에서 배운 대로 언론통제도 답습했다. 운 좋게 국제시장에서 석유 가스 가격이 크게 올랐다. 러시아는 세계적인 석유와 가스 생산국이다. 따라서 석유 가스 가격의 인상은 푸틴에게는 하늘이 내려준 축복이었다. 정치가 안정되고 서민들의 생활이 펴지기 시작했다. 푸틴의 인기는 더욱 굳어졌다.
그런데 어느 새 2008년이 됐다. 푸틴의 두 번째 대통령 임기가 다 찬 것이다. 헌법에 3선은 금지돼 있다. 장기 집권을 노리는 푸틴은 한 번만 임기를 거르면 3선 금지의 벽을 넘어 다시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는 법의 공백을 이용하는 '꼼수'를 생각해 냈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서 한 임기를 허수아비 대통령 역할을 해 줄 역으로 충복인 메드베데프를 선택한다. 이 시나리오에 따라 2008년 대선에서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으로 입후보 하고 그가 당선되면 푸틴은 그 밑에서 총리로 일하기로 내약을 맺는다. 그래서 메드베데프의 선거 구호도 "우리 함께"였다. 푸틴의 인기를 업고 당선을 노린 구호로 볼 수도 있지만 현재의 대통령과 미래의 대통령을 '함께' 뽑는, 두 사람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라는 의미가 들어있는 구호였다. 물론 푸틴의 손안에 있는 제도언론이 이런 의미를 유권자들에게 부각시키지는 않았다. 푸틴의 지원으로 메드베데프는 무난히 대통령에 당선됐고 시나리오대로 푸틴은 그 밑에서 총리로 임명돼 쌍두마차 정권이 지난 4년 러시아를 통치해 왔다.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는 SNS, 푸틴의 정권에 도전
연극의 제1막은 시나리오대로 연출된 셈이다. 내년 3월 대통령선거가 실시되면 재2막이 시작될 참이다. 푸틴은 이미 대통령 입후보를 선언했다. 많은 사람이 그의 당선을 기정사실처럼 여기고 있었다. 내년 선거에서 푸틴이 당선되면 이미 그것을 예정하고 장기 집권을 위해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연장한 개정 헌법에 따라 그의 12년 집권이 제3막으로 이어질 판이었다.
그런데 12월4일 실시된 두마(하원)선거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했다. 엄청난 투표 조작이 있었다는 사실이 SNS과 유튜브를 통해 드러나고 이에 분노한 국민들의 거국적인 항의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러시아 주류언론의 보도만 보아 온 사람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대안 언론인 트윗, 페이스북, 유튜브는 그 동안 푸틴 정권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계속 보도하고 유권자들에게 "사기꾼과 도둑의 정당"인 통합러시아당에 투표하지 말라고 촉구해 왔었다.
푸틴의 경제개혁이 실패해서 국민의 지지가 떨어지고 권력의 부패가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들이 대안언론의 보도에 호응했다. 이에 불안을 느낀 통합민주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부정선거를 감행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유령 유권자 카드를 만들어 한 사람이 다른 유권자의 카드로 여러 차례 투표하거나 여당 지지투표지를 투표함에 무더기로 투입한 사실들이 발각됐다. 이러한 장면이 유튜브에 잡혀 인터넷을 통해 즉각 보도됐다. 가제타.루(gazeta.ru)나 뉴스루.콤(newsru.com)같은 인터넷 신문들이 이러한 부정을 탐색하고 보도했다.
인터넷이나 SNS는 정부의 감시를 받지 않기 때문에 이런 행동이 가능했다, 언론탄압 비판을 받고 있는 푸틴 정권이지만 SNS 이용에 관해서는 MB 정권보다 훨씬 더 관대했다. 유튜브로 정부를 풍자하는 것도 자유롭다. 제도언론이 푸틴의 눈치를 보느라 정부의 치부를 보도하지 않는 반면에 오히려 SNS가 언론의 기능에 충실해서 국민의 신뢰를 얻었다. 한국에서 팟캐스트 나꼼수가 조·중·동을 능가하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현상이다.
제도 언론만 장악한다고 계속 장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 푸틴 시위는 우리에게 몇 가지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무엇 보다도 SNS의 역할로 러시아 국민이 자기들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매체를 가지고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고 SNS를 통해서 점점 대담하게 자기들의 의견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푸틴은 앞으로 이러한 국민을 상대로 러시아를 통치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러시아 붕괴 이후 20년이 된 이제야 러시아에 민주주의의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푸틴의 장기집권 계획은 그의 시나리오대로 연출되기 어려울 것 같다. 국민들이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러시아가 푸틴의 '독재'를 극복한데는 대안언론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이다. 제도언론만 장악하면 계속 집권할 수 있다고 생각한 독재자들에게 주는 경고이다. 이명박 정권도 이 경고에서 예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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