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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농민 버리고 '토호 지도자'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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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농민 버리고 '토호 지도자' 택했다"

[우석훈 칼럼] 한미 FTA 비준안 날치기에서 그는…

한국의 좌파들에게 한나라당 혹은 박근혜는 어떤 존재일까, 가끔 그런 질문을 해본다. 한나라당이 못하면 반사이익을 얻는 민주당 계열과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이번 정권 들어오면서 나는 정말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정권이 성공하기를 바랬고, 최소한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나라 망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랬다. 그래야 1987년 이후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는 '비판적 지지'의 악령을 떼어버리고 온전한 좌파 정당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 현실은 보시다시피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여지없이 나라 말아먹고, 경제는 IMF 구제금융 사태 수준의 위기로 간다는 것을 다시 보여주었고, 자기들은 아무리 '명품 정당'이라고 불러도 나라를 끌고 갈 능력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였다. 좋으나 싫으나, 반MB라는 줄에 서서 일단 '명박 시대'부터 종료하자는 구호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이 참 비루하다.

한미 FTA가 날치기 통과되는 와중에 보여준 한나라당의 모습도 기가 막히기는 하지만, 넋 놓고 출판기념회에 우르르 몰려간 김진표 등 야당 지도부들을 보면서 이 사람들과 같은 목적을 놓고 한 줄에 서야 한다는 게 참으로 한심하다. 날치기 할 거라는 걸 뻔히 알고, 국회 본회의장에서 진행될 것도 알면서 군사작전처럼 진행된 이 신종 날치기에 넋놓고 당한 것을, 일부러 알고 비켜준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있는가?

야당의 어느 인사에게 들은 얘기를 전한다. 사건 당일 본회의장이 비어 있는 게 영 불안해서 자기라도 지키려고 했는데, 급하게 원고 청탁이 들어와 잠깐 컴퓨터 앞에 앉은 사이에 사건의 벌어진 거라고….

힘으로 통과시키고, 힘으로 막아야 하는 현 상황이 어떻게 보든지 정말로 비극적이지 않을 수 없다. 자,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고, 이걸 수습하기 위해서 '비준 무효'라는 모호한 구호를 외치면서 길바닥에 앉아야 하는 우리가 참 비참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정치가 정상적이고 상식적으로 바뀌고, 최소한 프랑스 보수를 상징하는 드골 수준 정도만이라도 하면 좋겠다는 희망을 여전히 나는 가지고 있다. 보수의 수준이 높아지고, 그들에게 '품격'이라는 게 생겼을 때, 한국의 미래가 밝다는 명제를 나는 아직도 지키고 싶다. 한나라당이면 무조건 얘기 안한다, 정치적으로는 그런 생각이 굴뚝 같지만, 학자로서 나는 어지간하면 대화도 하고,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자문을 준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쨌든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정치인 박근혜가 어떤 사유를 잘못하였는지, 어느 시점에서 문제가 생긴 것인지, 내 나름대로 곰곰이 복기하여 보았다. 흔한 산토끼, 집토끼,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홍준표야 워낙 이상한 사람이니까 지난 정부에서 ISD 조항에 대해서 "이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여당 대표가 된 다음에 "설명을 들으니까 좀 알게 되었다"라는 게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어쨌든 박근혜 대표는 농업지역 국회의원답게 농민에 대한 최소한의 대변은 하려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한미 FTA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한나라당 의원 중에서는 농업에 대한 얘기를 가장 많이 한 정치인 중의 한 명이었다.

"이번 회기 중에 통과시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내가 그의 입을 통해서 들은 건, 이거 한 마디다. ISD가 회사정관과 같다는 것은, 나중에 훨씬 길게 논의할 기회가 있을 것이지만, 이번에는 농업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 조금 짚어보고자 한다.

일본도 노다 총리가 TPP라고 하는, 태평양 지역 버전의 관세동맹 협상에 전격적으로 참여를 결정하면서 우리만큼 뜨겁게 FTA 논쟁에 들어가 있다. 일본에서 이 싸움을 주도하는 가장 강력한 단체가 전국농업협동조합중앙회, 줄여서 전중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전중의 TPP 반대에 서명한 의원이 이미 400명에 육박하는 걸로 알고 있다.

전중에 해당하는 곳은 한국의 농협중앙회이다. 지난 주에 회장이 연임하는 걸로 결정이 되었는데, 그는 대통령의 고등학교 후배이다. 지난 국감에서 12억 원의 연봉으로 한바탕 난리가 났었는데, 농협 측의 해명은 실제로는 7억원 조금 넘는 돈이 실수령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이 그 말이다.

일본과 달리 한국의 농협은 한미 FTA에 관해서 어떠한 입장도 내지 않았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찬성인가? 한국 농민은 한미 FTA에 대해서 강력한 반대 집단 중의 하나인데, 이들의 대표 조직 중의 하나인 농협은 마치 핵폭탄 정책에 관한 미국의 유명한 입장처럼, 노 코멘트.

일본과 한국이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전중과 농협의 차이점은, 한국에는 지방토호가 강력한 세력으로 존재하고, 부재지주가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토건이 강력하고 토건족이 존재한다는 것은 같지만, 한국에서는 지방토호들이 나서서 설치게 되어 있는 열악한 지역 구조를 가지고 있다. 농협중앙회 회장이나 이를 선출하는 대의원들, 그들은 형식적으로는 농민이지만, 지역에서는 바로 그들이 토호들이다.

400만 농민들은 한미 FTA로 죽을 맛일텐데, 그들 위에 군림하는 토호들은 오히려 노다지를 맞게 된 게 지금의 농업구조이다. 22조원을 한미 FTA에 쓴다고 하는데, 노무현 정부 때에는 농업정책으로 119조원을 쓴다고 한 적도 있었다. 근원을 따져보면, 이 돈들 전부 서류상으로만 있는 돈들이고, 기존에 이런저런 방식으로 지출되는 것을 다시 묶어서 이름만 바꾼, 현장 용어로는 '호치키스 사업'들이다. 전문용어로는 '추가성(additionality)'이라고 부르는데, 생색만 냈지 새로 추가되는 돈은 많아야 1조원 남짓일 것이다.

농민들은 한미 FTA로 죽어날 일만 남았지, 새롭게 좋아지는 것은 전혀 없다. 다만 이 과정에서 뭉치돈이 풀리면, 이건 지역 농협의 간부들이나 농협 대의원과 같은 토호들 주머니로 들어간다. 게다가 지역별로 차이가 조금 있지만, 아무리 훌륭하게 보조금 등 지원제도를 만들어도, 결국은 부재지주 등 지주 주머니로 이런 직불금들이 음성적으로 들어간다.

한미 FTA를 핑계로, 현장의 농민들이 아니라 토호들과 부재지주들 배만 불려주게 생긴 게 지금 한나라당이 농업대책으로 "할만큼 했다"고 내놓은 것들의 궁극적 운명일 것이다.
▲ 한미 FTA 날치기 처리 이후 국회를 빠져나오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뉴시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박근혜 대표는 우리들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건 반드시 한나라당 출신이거나, 보수 정치인이라서가 아니다.

400만 농민이 아니라, 그들 위에 군림하는 토호들의 지도자간 된 정치인, 그게 날치기 현장에 앉아있는 박근혜 대표의 모습이었다. 자기 지역구와 자기 지역의 농민들도 지키지 못하고, 토호들과 굳게 손을 잡은 정치인, 이건 보수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부패하였거나, 무능하거나….

중남미 경제가 지금과 같이 어려워진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무능해서 혹은 포퓰리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라는 스페인어 단어인 '까우디요(Caudillo)'라는 존재가 농민과 민중들을 수탈하는 이중적 구조가 전국토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그런 존재들을 지방토호와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12억원씩 연봉을 받는 농협 중앙회 회장, 몇 억씩 간단하게 챙기는 지역농협의 간부들, 이들과 결탁한 지방 건설업체와 지역 언론, 그리고 그들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는 단체장과 지역의원들, 이게 지금 한국의 농업이 죽어가고 힘들다고 하는 진짜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막대기도 꽂아만 놓으면 당선된다는 한나라당 버전 동토의 왕국, 대구경북 지역이 전라도보다 훨씬 심한 농업 수탈지역이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대구지역이 수 년째 지역소득 전국 꼴찌를 기록하는 것도 전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농민 대신 토호들과 손을 잡고 한미 FTA 과정에서 한국의 농민들을 전혀 대변해주지 않는 정치인을 보면서, 나는 이 사람은 우리들의 지도자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경상도, 아니 줄여서 경북의 농민들도 지켜주지 못하는 정치인, 도대체 누굴 대변하고 누구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것인가?

우리는 농민들이 파업을 해서, 공기와도 같이 우리에게 늘 먹을 것을 제공했던 그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그걸 알고 나야 정신을 차릴 것이다. 토호들이 농사짓는 것 아니다. 부재지주들이 농업 지키는 거 아니다. 그들은 수탈할 뿐이다. 그 수탈자들의 지도자, 그 수탈자들의 대변인, 한국의 미래에 그런 정치인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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