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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퇴거 앞둔 서울역 노숙인 "땅 파고 들어가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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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퇴거 앞둔 서울역 노숙인 "땅 파고 들어가라는 건가?"

[현장] "노숙 생활 길어질수록 벗어나기 힘든 이유"

서울역 광장에서 만난 박민수(가명·45) 씨는 30도를 넘는 한여름 날씨에도 두꺼운 잠바를 입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언제부터 노숙했는지 기억도 못 할 정도로 정신이 쇠약해져 있었다. 기자의 질문에는 도통 알 수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박 씨와 같은 사람을 흔히 '노숙인'(홈리스: homeless)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노숙인이라고 하면 일을 하기 싫어 거리에서 행인에게 구걸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툭하면 술을 마시고 행인에게 행패를 부리고 잘 씻지도 않아 온갖 악취가 몸에서는 진동한다고 생각한다. 사회 인식이 안 좋은 이유다.

그렇다고 이들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게 맞는 일인가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사회적 노력과 비용투자를 통해 다시 사회 '틀거리' 안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일할 의지가 없는 이들은 따로 격리시켜야 한다는 격한 의견까지 다양하다.

이런 가운데 코레일이 서울역에 있는 노숙인을 오는 22일 밤 11시에 강제 퇴거시키겠다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공공역사에서 노숙하는 이들 때문에 발생하는 민원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퇴거시킨다고 노숙인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를 두고는 보수 언론조차 부정적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 서울역에 설치한 천막. 지나가는 시민이 이를 쳐다보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서울역에서 만난 박인서(가명·31) 씨는 지난 3월부터 서울역에서 노숙했다. 그전에는 강원도 속초에서 스킨스쿠버 용품 가게를 운영했다고 한다. 장사는 어느 정도 됐지만, 작년 12월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자신이 고용한 직원이 작업 도중 죽었는데, 그로 인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왜 그런지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처음 두 달은 가지고 온 돈으로 여관에서 지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 안에만 쳐박혀 있었다. 돈이 다 떨어진 후에는 서울역에서 노숙을 시작했다. 다른 일을 할 생각도 없었다. 박 씨는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라고 설명했다.

부인은 4년 전 죽었다. 둘 있던 아이 중 막내도 역시 죽었다. 어떻게 세상을 떠난 지에 대해서는 역시 입을 다물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하나 남은 자식은 미국에 이민 간 여동생 집에 보냈다. 자기 몸 하나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2000년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2009년 홀로 한국으로 귀국한 최준(33) 씨는 한국에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이 주유소 아르바이트였다. 집도 없는 그가 숙식을 해결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었다.

두 달을 넘게 일하며 돈을 모아 고시원을 얻었다. 그리곤 호텔 시급제 일자리로 옮겼다. 6개월간 일을 했을까. 입영 영장이 날라왔다. 4급 판정을 받은 그는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했지만 얼마 못 가 그만뒀다. 이전부터 조울증을 앓고 있던 최 씨는 정신질환으로 병이 악화해 면제 판정을 받았다.

이후 별다른 직장을 얻지 못하고 기초수급자로 한 달 38만 원을 받으며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영등포역, 서울공원 등에서 노숙하다 얼마 전 서울역에서 노숙하고 있다.

서울역에서 만난 노숙인 대부분은 각기 다양한 이유로 노숙하고 있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집행위원장은 "홈리스(노숙인)는 가출인, 가정폭력피해여성 등 다양한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라며 "자기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노숙인 중 30.6% "자살을 생각했다"

사연이야 딱하지만, 이들이 서울역에 있으면서 행인에게 불편을 끼치고 있는 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서울역 곳곳에서는 한낮임에도 막걸리 등을 마시며 난장을 펼치는 노숙인이 눈에 띄었다. 또한, 노숙인 중 일부는 더운 날씨에 몸을 식히기 위해 지하철 환풍기 위에 몸을 눕혀서 낮잠을 자는 모습도 보였다. 역을 찾은 일부 시민은 이들 모습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지나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주목할 부분은 노숙 초기만 하더라도 이들은 길거리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노숙을 오래 하면 할수록 쉽게 여기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게 인권단체의 공통된 의견이다. 노숙이 장기화하면 건강은 물론, 정신도 망가지기 때문이다.

이동현 위원장은 "노숙을 한 지 며칠 안 된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정상적으로 대화가 잘 된다"며 "하지만 몇 개월 지난 뒤 그분을 다시 만나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횡설수설한다"고 말했다.

실제 2010년 보건복지부가 전국 15개 노숙인쉼터 입소자 408명을 조사한 결과, 대상자의 32.6%가 최근 1년 동안 연속적으로 2주 이상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이는 성인 평균 8.1%에 4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노숙인도 30.6%로 평균 9.4%를 크게 웃돌았다. 이와 함께 노숙인은 정신적 불안감 63.5%, 희망이 없어 생활을 포기하고 싶음 48%, 미래가 막연하고 불확실함 49.9% 등을 호소했다. 노숙이 사람을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보니 스스로 노숙인 생활에서 벗어나긴 더욱 어렵다.

ⓒ프레시안(허환주)
벗어날 수 없는 노숙인 인생

정신 건강도 건강이거니와 사회 신용 문제도 심각하다. 홈리스행동이 2005년~2006년 두 차례 노숙인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노숙인의 60~70%는 금융피해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주민등록증을 분실하거나 급전이 필요해 푼돈을 받고 명의를 빌려주었다가 사기를 당해 부채를 떠안은 경우도 20%나 됐다. 또 파산신청을 해도 탕감되지 않는 것이 건강보험료, 세금, 학자금이다. 건강보험료 장기체납자는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한다. 기초생활수급자의 자격조건에도 미달한다.

그렇다 보니 다시 제도권 안으로 돌아가려 해도 쉽지가 않다. 이동현 위원장은 "사회에서 알려진 것과 달리 대부분 노숙인은 취업하고 싶어 한다"며 "하지만 여러 조건과 상황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홈리스행동에 따르면 조사한 노숙인 중 85%는 '매일 구직활동을 한다'고 응답했다. 일방적으로 '공간'에서 밀어낸다고 노숙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다.

"대책 마련 없이 강제 퇴거하는 건 죽으라는 것"

그나마 코레일이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퇴거조치 하겠다고 하자 서울시에서는 노숙인을 지원하기 위해 임시주거지원 100호, 50인 규모 응급구호방, 일자리 200명 지원, 자유카페, 상담인력 증원 등을 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동현 위원장은 "이것은 겨울철 때 실시해야 할 대책을 앞당겨 배치한 것에 불과하다"며 "뿐만 아니라 서울역에서 강제퇴거 당하는 이들 모두를 지원할 수 있는 규모도 안 된다"고 비판했다. 실제 이날 서울역에서 만난 노숙인 대부분은 서울시에서 공급한 임시주거 100호에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임시방편으로 노숙인 문제에 대응하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동현 위원장은 "지금의 상황에서 강제 퇴거를 실행한다는 건 사실상 노숙인에게 땅 파서 들어가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며 "이들 중 거리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노숙인에게 일자리를 주고 재활 의지를 북돋아 자발적으로 공공역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필요하지만 지금 정책은 억지로 노숙인을 밀어내려고만 하고 있어 문제다"고 꼬집었다.

"쫓아내려고만 하지 말고 사회 편입 방법을 고민해야"

그렇다면 근본 대책은 어떤 게 있을 수 있을까. 지난 8월 1일부터 서울역 광장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건 철회, 공공역사 홈리스지원 대책 마련을 위한 공공대책위원회'는 "공공역사 중심으로 홈리스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김선미 성균관대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은 "서울역 등 공공역사에는 수많은 노숙인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이들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공공역사를 기반으로 상담소 설치, 일자리 주선 등 인프라를 만들어 이들을 돕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선미 연구원은 "또한 전문 사회복지사를 배치해 노숙인의 건강 및 상담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제도도 필요하다"며 "그렇게 된다면 많은 노숙인이 기존 사회 시스템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더위를 피하기 위해 지하철 환풍기 위에 누워 자고 있는 노숙인. ⓒ프레시안(허환주)

프랑스는 1993년 실업자가 300만 명이 넘어서자 공공역사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이 급증했다. 그러자 프랑스 국철은 국철 숙소나 역 주변에 응급숙박시설과 주간 상담소 설치, 일자리 알선 등의 활동을 진행했다.

일례로 리옹역에서는 '여행자 SOS 연대실'을 설치, 운영했다. 이곳을 통해 지원이 필요한 이들은 기본적인 정보제공, 일차적 지원, 전문 사회복지체계로의 연계 등의 지원을 받았다. 이런 지원을 통해 공공역사 거주 홈리스는 8년 동안 3분의 1까지 감소하기도 했다.

김선미 연구원은 "하지만 우리나라 공공역사는 노숙인을 쫓아내려고만 하지 이들을 어떻게 사회에 편입시킬지에 관한 고민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며 "현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만이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이동현 위원장도 "이게 홈리스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대책이 될 수는 없지만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작 코레일은 이런 의견을 무시하고 22일 밤 강제퇴거를 예고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용산구청에 서울역 광장에 설치한 천막을 철거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은 약 300여 명이다. 이들은 서울역에서 쫓겨나면 다른 어디에선가 또다시 노숙을 할 수밖에 없다. 노숙 말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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