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실컷 맞고 KO패 당했다…진숙이 누나, 미안해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실컷 맞고 KO패 당했다…진숙이 누나, 미안해요"

[현장] 노사 합의안에 분통 터뜨리는 조합원, 그리고 가족들

박민지(가명·31) 씨는 지난주에 돌을 맞이한 아들이 있다. 남편은 6년 동안 한진중공업에서 일을 해 온 노동자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구조조정 대상자 명단에 남편 이름이 올랐다. 하늘이 캄캄했다. 그 전부터 구조조정은 예고됐었지만 막상 자신의 남편에게 닥치니 감당하기 어려웠다.

구조조정을 막는다고 철야농성, 부분파업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구조조정 명단이 발표된 다음 달부터 노조는 총파업에 들어갔다. 월급은 그때부터 끊겼다. 박 씨 남편은 한 달에 상여금을 포함해 평균 140여만 원을 받았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고무에 실리콘을 쏘는 것부터 전선 꽂는 일 등 가리지 않고 부업을 했다. 아이 때문에 집 밖에서 정기적으로 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남편이 파업에 참여하고 있기에 남편 뒷바라지도 해야만 했다. 집회나 기자회견에도 참석해야 했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기자회견 때는 늘 아이를 등에 업고 갔다.

▲ 한진중공업 가대위 회원들이 27일 노조에서 합의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려 하자 이를 반대하며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뉴시스

파업 중인 아버지 밀어내는 아들 보며 남몰래 눈물도

돈이 급할 때는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공장에서 물건 나르는 일도 했다. 일당이 7만 원이었다. 지인들에게 아이를 부탁한 뒤 일을 하러 갔다. 하지만 사람이 부족할 때만 부르는지라 일이 정기적이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생활비가 부족해 박 씨의 이름으로 가입돼 있는 보험을 깼다. 30만 원 정도가 나왔다. 차마 남편 이름으로 돼 있는 보험은 해제하지 못했다. 행여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늘 노심초사였기 때문이었다. 대출은 오래 전에 개인 신용 한도를 초과했다.

몸이 힘들고 돈이 쪼들리는 건 그나마 견딜 만 했다. 남편을 자주보지 못하는 아들 녀석이 남편을 보고 낯을 가리는 모습은 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파업 중인 남편의 얼굴은 한 달에 1~2번 밖에 보지 못했다. 그래도 아이가 아버지를 밀어내는 모습은 박 씨 가족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에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남편의 해고가 결정되면 사실상 살 길이 막막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6개월을 버텼다. 계속 버티면 회사에서도 절충안을 내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희망은 지난 27일 여지없이 무너졌다.

한진중공업 노사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합의를 봤다. 노동조합에서 조건 없이 구조조정을 받아들인 것. 이것을 막기 위해 지난 6개월 동안 남편과 함께 싸운 박 씨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합의였다. 물론 그간 공장에서 농성을 이어온 박 씨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박 씨 남편은 합의안 발표 직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올라가 있는 85호 타워크레인 아래에서 농성을 벌이다 용역들에 의해 공장 정문으로 끌려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본 박 씨는 이젠 누구에게 의지해 싸울 수 있을까 하는 서러움에 목이 멨다.

"회사도, 노조도 우릴 버렸다"

도경정(33) 씨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파업 내내 남편 뒷바라지와 하나 있는 아이의 보육은 도 씨의 몫이었다. 돈에 쪼들려 변변한 야채 하나도 사본 적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합의는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합의안이었다. 도 씨는 "너무 허무하다. 더 싸울 수 있고, 이길 수 있는데 이렇게 돼버리다니 황당할 따름"이라며 "실컷 얻어터진 뒤 KO당한 기분이다. 많이 울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파업 조합원 부인들의 심정도 심정이지만 공장 안에서 6개월을 꼬박 싸워온 조합원들의 심정도 말이 아니었다.

"회사가 우릴 버리더니 이젠 노조마저도 우릴 버렸어요. 한 마디로 X됐어요."

한진중공업 조합원 김병욱(37)) 씨는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85호 타워크레인으로 돌렸다. 김병욱 씨는 "사측과 노조는 서로만이 합의한 내용을 두고 모든 게 끝났다고 말하고 있다"며 "하지만 무엇이 어떻게 끝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김 씨는 "언론에 발표된 합의서를 조합원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며 "그런 합의서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뉴시스
김 씨는 "26일 오후께 집행부는 조건 없이 현장에 복귀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다시 현장에서 시작하자는 취지였다"며 "하지만 이를 조합원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조건 없는 현장 복귀는 사실상 대규모 구조조정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도라는 것.

김 씨는 "대다수가 반대를 했지만 집행부에서 이를 찬반투표도 부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며 "조합원들 대부분은 집행부와 사측 간 뭔가 있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씨는 "집행부에게 청문회와 2차 희망버스가 올 때까지만이라도 버티자고 했지만 이를 일언지하에 묵살했다"며 "자기들은 감옥에 가기 싫어서 그런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김 씨는 "이젠 더 이상 우리가 기댈 곳은 어느 곳도 없는 듯하다"며 "174일째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 김진숙 누나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지난 27일 85호 타워크레인에서 농성을 벌이다 용역들에 의해 끌려나온 장기준(34) 씨도 "그간 농성을 하면서 동료들끼리 마음이 맞지 않아 싸우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에 '깽판'을 치기도 했었다"며 "하지만 진숙이 누나가 우리 대신 크레인에 올라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버텼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28일 새벽부터 내린 비는 28일 오후가 되어서도 여전히 크레인에 쏟아 붓고 있었다. 27일 저녁에는 사측이 전기마저 끊어 크레인에 오른 조합원들은 지난밤을 어둠 속에서 비를 고스란히 맞아야만 했다.

여태껏 먹은 거라곤 비에 젖은 김밥이 고작이다. 그나마 28일 아침에는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원회에서 마련한 국이 크레인으로 올라갔다.

민주노총 부산양산지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까지 크레인에 남아있는 조합원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포함해 13명이다. 밤사이 20여 명이 자진해서 크레인을 내려온 것. 사측은 용역과 소방관 등을 동원해 매트리스를 준비했다. 공장 밖 조합원들이 담을 넘어 공장으로 들어올 것을 대비해 공장 담벼락에 철조망도 설치했다.

도정경 씨는 "합의서에는 진숙이 이모 농성을 두고 노조에서 책임을 진다라고 명시해 놨다"며 "하지만 진숙이 이모를 내려오게 하는 방법은 노조도, 공권력도 용역도 아니라는 건 모두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에서는 한진중공업 사태가 해결됐다고 보도하고 있지만 한진중공업 사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 85호 타워크레인에서 핀 '소금꽃', 지금 한진중공업에선 무슨 일이?

☞김진숙 인터뷰 : "회사에 버림받고 노조에 버림받아 죽고 싶은 생각뿐"
"작가가 울고 카메라도 울고 나도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실컷 맞고 KO패 당했다…진숙이 누나, 미안해요"

누가 김진숙을 벼랑 끝으로 내모나
한진중공업의 노림수는 영도조선소 폐쇄인가
원희룡의 '발가락', 김진숙의 '발바닥'

"용역에게 끌려가는 '아빠'들을 지켜주세요"
한진중공업 노조, 조건없는 현장복귀 선언
'공권력 투입' 한진重, 현장 지킨 국회의원은 누구?

한진重 27일 강제집행…"국회청문회 이틀 앞두고"
"공장 둘레는 온통 시커먼 경찰복…85호 크레인을 지켜주세요"
그날 부산 영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7월 9일, '2차 희망의 버스'를 타러가요
"소금꽃 '김진숙', 그가 위험합니다"
2차 '희망의 버스' 185대를 제안하며…"저부터 잡아가십시오"

"'민노총 깃발은 없는 게 낫다', 이게 당연한가요?"
"8년 전 그가 시신으로 내려왔던 철탑…살아서 내려가겠습니다"
소화기 날아다니던 살벌한 그날 밤, 그곳에선…

그날,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왜 안 왔을까?
배우 김여진, 부산 영도조선소 앞에서 경찰에 긴급연행
김여진 "벽 넘다 경찰에 걸려 도망가고, 또 도망가고"

85호 크레인에 모인 '희망버스'…김진숙 "이런 날도 오는구나"
"8년을 냉방에서 살아야 했던 죄책감, 이제 덜어주십시오"
"깡보리밥에 쥐똥 섞인 도시락으로 버티던 그곳에서…"
"김진숙이 '세시봉'을 보며 화가 났던 이유는…"

소금꽃 김진숙과 '85호 크레인'-영도조선소의 다섯 주인공
한진重 수빅조선소…"여기가 조선소인가, 묘지인가"
"한진重, 삼성전자 수준 이익률에도 대규모 해고…이유는?"

"오늘부터 하루 100만 원짜리 인간이 됐습니다"
"해고 칼바람 속 노동자, 살처분 짐승과 뭐가 다른가요?"
"35년 '쟁이' 인생이 산업폐기물로…시멘트 바닥엔 눈물만"

"또 하나의 파리목숨이 크레인 위로 기어오릅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