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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김진숙을 벼랑 끝으로 내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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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누가 김진숙을 벼랑 끝으로 내모나

[해설] "회사와 노조에게 모두 버림받은 해고자들, 기댈 곳은 어디?"

노란 안전모를 쓴 20대 청년들에게 끌려나오는 아버지, 남편, 동생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 말고는 다른 걸 할 수가 없었다. 욕지거리라도 실컷 하고 싶었지만 분노보다는 슬픔이 더 컸다. 27일 자신이 일하던 공장에서 강제로 끌려나오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를 지켜보던 가족들은 발을 동동거리며 오열했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35미터 위에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도 마찬가지였다.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오후 5시 30분께 강제 퇴거 명령 집행은 멈췄다. 아직까지 타워크레인에는 34명의 노동자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반대하며 김진숙 지도위원과 농성 중이다.

노조에서 농성을 풀기로 했지만, 김진숙 지도위원은 타워크레인에 내려갈 생각이 없었다. 김 지도위원은 이날 "평범한 노동자들을 지키겠다고 173일을 이 곳에서 있었다"며 "그럼에도 한진중공업은 구조조정을 단행하려 한다. 이게 할 짓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김 지도위원은 노조 집행부를 가리켜 "해고 조합원들의 등에 칼을 꽂았다"며 날선 비판도 가했다. 그가 이렇게 노조를 비판하며 농성을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 한진중공업 노동자 가족 중 한 명이 강제로 끌려나오는 모습을 지켜보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노동과세계(이명익)

구조조정안을 받은 노조, 이유는?

한진중공업 노사가 합의서에 서명을 함으로써 그간 논란이 됐던 대규모 정리해고가 이제는 본격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하지만 대규모 구조조정을 반대하며 지난 1월부터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농성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의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당황스럽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오른 이유는 간단하다. 2003년 85호 크레인에서 죽은 고(故) 김주익 씨가 지킨 조합원들을 이젠 자신이 대신 지키고자 한 것. 김진숙 지도위원이 고(故) 김주익 씨가 죽고 난 뒤, 부채의식으로 7년 넘게 냉방에서 자고 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12월, 회사가 발표한 400명의 구조조정 대상자 중 약 90%는 2003년 김주익 씨가 죽은 뒤 회사에 들어온 노동자들이다. 2003년 당시 김주익 씨가 죽고 난 뒤 노사는 고용안정확약서를 합의한다.

여기에는 △회사는 현 수준의 적정인력을 유지하며 인원의 자연감소시 30일 이내 인원(정규직)을 충원한다 △회사는 경영상의 이유로 일방적 인위적인 인원조정을 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이전에는 퇴직한 노동자를 대체할 정규직 노동자를 뽑지 않았으나 고(故) 김주익 씨의 죽음 뒤에는 퇴직자 수대로 정규직 직원을 새로 채용했다

최우영 한진중공업지회 사무장은 "매년 30~40명의 퇴직자가 한진중공업에서 나오는데 이들을 대체하는 사람들을 지난 7년간 뽑아왔다"며 "하지만 이들 대다수가 지난 12월 발표한 사측 구조조정 대상자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노조에서는 사측이 젊은 신규 직원들을 먼저 대량 해고한 뒤, 나이 든 노동자가 점차 정년퇴직하길 기다린 뒤 영도 조선소를 폐쇄하려고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구조조정을 받아들이는 노조가 김진숙 지도위원 입장에서는 황당할 따름이다. 하지만 노조는 그간 구조조정을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을 보여왔기에, 이번 결정은 정해진 수순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현 노조 집행부는 온건파에 속한다"며 "회사의 구조조정 방안을 수용하려는 움직임은 그간 여러 차례 있어왔다"고 설명했다.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사측을 노조의 힘으로는 막아내기란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

이에 한진중공업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는 것도 노조에서는 부담스러워했다. 지난 11일 한진중공업에 도착한 '희망버스'를 노조가 탐탁지 않게 여긴 이유다. '희망버스'를 기획한 송경동 시인은 "노조가 직접적으로 희망버스를 오지 말라고 한 적은 없었지만 우회적으로는 희망버스를 부담스러워한다는 불만의 소리를 들었다"며 "한진중공업 문제를 두고 사회적 움직임이 일어나는 걸 부담스러워했다"고 설명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노조와 합의 없이 타워크레인에 올라 농성을 시작할 때도 노조에서는 난색을 표했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노조로서는 조용히 타협을 보고 끝내고 싶어 했으나 김진숙 지도위원의 농성으로 그게 어렵게 됐다"고 설명했다.

▲ 한진중공업 영도 조선소 전경. ⓒ노동과세계(이명익)

상급단체들도 "왜 이런 결정했는지 모르겠다"

어찌됐든 우여곡절 끝에 노조는 27일 사측의 정리해고안을 받아들이고 6개월간의 파업을 접었다. 하지만 합의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향후 논란이 예고되고 있다.

알려진 바로는 노조 집행부는 27일 새벽 4시께 파업철회 여부를 결정할 회의를 개최했다. 하지만 조합원 대다수가 파업철회를 반대하자 집행부는 휴회를 선언한 뒤 회의장에 돌아오지 않았고 이후 오전 11시께 파업철회 보도자료를 냈다.

이날 노조에서는 오전 10시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발표하려 했으나 부득이 보도자료를 통해서만 합의 배경을 밝혔다. 그렇다보니 상급 단체인 금속노조나 민주노총과는 상의나 협의가 전혀 없었다. 박성식 민주노총 부대변인은 "합의 과정에서 내부 소통도 되지 않았을 뿐더러 반대가 많자 집행부 직권으로 합의안을 통과시켰다"며 "게다가 합의내용도 매우 후퇴됐다"고 말했다.

박유순 금속노조 기획실장도 "합의된 사항을 나중에 알고 당황한 상태"라며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전혀 파악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 실장은 "알려진 바로는 지회 조합원들이나 지회 상임집행위원회에서도 합의안을 반대했지만 지회장 독단으로 합의안을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물론 노조의 이런 결정은 현재의 투쟁 동력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는 분석도 있다. 박점규 금속노조 교섭국장은 "한진중공업 사업장에서 조합원이 떨어져 나가며 역량이 유실돼 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지회장은 정리해고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남은 조합원만이라도 살려야 하는 거 아니냐는 판단을 한 듯하다"고 평가했다. 실제 이날 강제 퇴거 명령을 집행할 당시, 공장 내 남은 조합원은 100여 명에 불과했다. 한진중공업 노조 조합원은 800여 명이다.

ⓒ노동과세계(이명익)

김진숙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한 심경"

하지만 박점규 국장은 "절차상에서 이번 합의안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국장은 "이번 합의안은 노사간 교섭을 통해서가 아니라 협의회를 구성해 결정했다"며 "원칙상 교섭을 통해 합의안을 마련할 때는 금속노조 지부장과 금속노조 위원장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국장은 "하지만 이런 문제를 없애기 위해 노사는 교섭 창구를 협의회로 전환해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박 국장은 "문제는 금속노조 규약에는 고용문제와 관련해서는 교섭을 통해서만 결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는 점"이라며 "이를 어겼기에 이번 합의안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속노조 규약에 따르면 '비정규직을 포함한 고용 및 구조조정 문제는 단체협약에 의해 규정되는 사항이므로 노사협의회에서 다루지 않고 보충교섭 및 특별교섭으로 진행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교섭에 관한 체결권은 위원장에게 있으며 사전 교섭돌입 및 요구안에 대해 조합에 보고 및 승인을 득해야 하며, 타결시 지부운영위 심의를 거친 후 위원장에게 보고하고 승인 받은 뒤 조합원 총회를 통해 체결한다'고 돼 있다.

한편 김진숙 지도위원이 농성 중인 85호 타워크레인에는 27일 저녁께, 전기 공급이 끊긴 상태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이날 합의안 발표와 강제철거 집행 명령을 두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한 심경"이라며 "해고된 조합원과 85호 크레인은 집행부에도 버려지고 회사에도 버려지고 정부에도 버려진 상황"이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어 김 지도위원은 "지금까지 힘들었으니 괜찮다"며 "조합원들을 지키는 게 내 임무고 소명이니까 어떤 어려움도 감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언제까지 김진숙 지도위원이 버틸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8일이면 김 지도위원이 타워크레인에 오른 지 174일이 된다. 29일에는 한진중공업 관련 국회 청문회가 열린다. 7월 9일에는 150여대의 버스가 한진중공업을 찾는 '2차 희망버스' 행사가 진행된다. 그때까지도 김진숙 지도위원은 타워크레인에서 농성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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