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 열린 긴급 현안보고에 참석한 서남표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총장은 이와 같이 여야 의원들의 사퇴 요구를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가 개혁의 일환으로 진행한 '차등적 등록금제'와 '100% 영어 수업'이 잇따른 학생들의 자살에 일정 부분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이날 서 총장은 현안보고를 위해 A4 용지 두 장 분량의 글을 미리 준비했다. 그럼에도 감정이 북받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10여 초간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참기도 했다. 하지만 서 총장의 개혁안을 질타하는 목소리에는 "전체적으로 잘 되고 있다고 본다", "부분적으로 문제가 있기에 그 부분을 고치면 된다"며 경쟁주의 정책이 문제없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자살한 점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학교 내에 경쟁체제를 도입한 것은 잘못이 아니라는 입장은 여전했다.
▲ 12일 국회에 출석한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이 현안 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서남표 총장 "전체적으로 잘 되고 있어"
서 총장은 이날 현안보고에서 "100% 영어 수업은 현재 교수와 학생, 그리고 학교가 모두 개선안을 고민 중"이라며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문제를 해결 하겠다"고 밝혔다. 서 총장은 "(정책 관련해서) 전체적으로는 잘 되고 있다고 본다"며 "하지만 부분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건 인정하다"고 말했다.
서 총장은 징벌적 등록금제 이외에 문제가 되고 있는 100% 영어 강의를 두고도 개선책을 언급했다. 그는 "영어로만 수업을 듣도록 해서 학생들이 영어에 부담이 컸으리라 생각한다"며 "강의 중 일정 부분을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로 가르치는 방안도 고려중"이라고 밝혔다. 같은 강의를 한국어와 영어, 두 개로 개설해 학생들이 선택하도록 하겠다는 것.
서 총장은 "일반 대학과 달리 카이스트는 과학고, 영재고 등 젊은 인재들이 많다"며 "이에 상대적으로 인성 교육 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서 총장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대책을 만들고 카이스트 내부 구성원들이 힘을 모아 이 난국을 헤쳐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여야 할 것 없이 서남표 총장 사퇴 촉구
하지만 여야 할 것 없이 국회의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김영진 민주당 의원은 "서 총장이 언제 용퇴 하느냐에 국민들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2기 출발을 위해 책임을 지고 명예로운 퇴진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서 총장은 카이스트 발전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했지만 우리나라 교육에 경쟁이라는 가속페달을 너무 밟았다"며 "이로 인해 소중한 생명이 파기된 것에 책임을 지는 게 새로운 리더십을 하겠다는 결단"이라고 사퇴를 촉구했다.
김상희 민주당 의원도 "오늘 보지 않기를 바랐는데 서 총장이 이 자리에 총장 자격으로 출석을 했다"며 "카이스트 개혁에 걸림돌인 서 총장이 사퇴를 하지 않는데 어떻게 개혁이 제대로 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여당인 권영진 한나라당 의원도 "개혁안만 없었다면 자살은 없었을 것"이라며 "카이스트에 서 총장이 취임한 2006년 이후 자살 사건이 9건이나 된다"고 질타했다. 권 의원은 "영재들에게 영어 강의를 전면 실시하고 징벌적 등록금제를 실시했다"며 "하지만 이에 대한 정신상담 등 사후대책은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도 "정책이 옳았다 해도 사퇴가 옳다"며 "네 명의 학생이 자살한 상황에서 자리를 지키는 건 도리가 아니다"라고 사퇴를 촉구했다.
"MIT 자살률, 카이스트보다 낮아"
▲ 현안 보고를 마친 뒤 자리에 앉은 서 총장은 눈물을 닦았다. ⓒ연합뉴스 |
그러면서 김 의원은 "서 총장이 말하는 것처럼 미국 명문대의 자살률이 높지 않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MIT의 경우 인구 10만 명 당 14.6명 꼴로 학생들이 자살을 했다"며 "이는 미국 평균 17명보다 적은 숫자"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하지만 카이스트의 경우 서 총장이 재임하는 기간 동안 10만 명당 24명꼴로 자살을 했다"며 "서 총장의 징벌적 등록금제 등이 미국 명문대의 혹독한 학사 일정보다도 더 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징벌적 등록금제를 고스톱에 비유했다. 안 의원은 "점 당 얼마씩 등록금을 부과하는 학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며 "사의를 표명하는 게 체면을 보존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안 의원은 이번 카이스트 사태가 현 정권과 맞물려 있음을 지적했다. 안 의원은 "현재 여야가 한 목소리로 서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며 "결국 꼬리자르기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몸통은 경쟁주의와 성과주의를 강요하는 MB정부"라며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현실이 참으로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서 총장 "나는 학생들 사랑한다"
서남표 총장은 의원들의 질타에 입술을 한일자로 다물고 시종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현안 보고 뒤 자리에 앉은 서 총장은 눈물을 닦기도 했다.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은 간단하게 하거나 카이스트 관계자가 건넨 서면 용지를 읽어 내려가는 식이었다. 김유정 의원은 서 총장이 써 놓은 답변만을 읽자 "(시종 답변을) 읽으면서 답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질타하기도 했다.
서 총장은 "내가 (한국) 말을 잘 못해서 그렇다"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서 총장은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간 미국 시민권자다.
서 총장은 "나는 학생을 사랑한다"며 "학생들을 유혹하는 게 많아 그것을 막으려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서 총장은 "학생들이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이런 정책을 추진한 것"이라며 "여기에 '경쟁', '징벌' 등을 이름을 붙여 나쁘게 말한다"고도 했다.
서 총장은 "현재는 대책을 마련해서 이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며 "최선을 다해서 모든 잘못된 점을 고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 총장은 "이 자리에서 지적한 사항을 수용해 현재의 제도를 개선하겠다"며 의원들의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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