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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는 추상적인데 남은 숙제는 무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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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합의는 추상적인데 남은 숙제는 무거워"

'뉴딜 1라운드'는 김근태에게 무엇을 남겼나?

9일 경제5단체장과의 오찬과 합의문 발표로 지난달 30일부터 시작된 김근태 열린우리당 당의장의 1차 뉴딜 투어는 열흘 만에 마무리 됐다. 김 의장은 다음 주에는 노동계를 접촉하고 그 다음 주에는 이건희, 정몽구, 구본무, 최태원 등 재벌총수들과 개별적 면담에 나선다.
  
  김 의장의 '1차 뉴딜'은 재계와 9개항의 합의문을 성과물로 남긴 반면 몇 가지 큰 숙제도 남겼다. 그런데 합의문은 추상적이지만 숙제는 크고 무겁다.
  
  '욕먹을 각오' 했지만 별 논란도 못 일으켜 더 당혹
  
  이 '뉴딜'이라는 표현 자체가 다소 뜬금 없는 것이긴 했지만 그 내용은 결코 우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가 장관 시절부터 비슷한 내용을 얘기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 그것도 유력한 대권주자로서 정치생명을 걸듯이 우선 서민경제 회복을 명목으로 재계와 '딜'을 하고 그 결과물로 다시 노동계와 '딜'을 하겠다는 김 의장의 구상은 당연히 "민주화 세력의 적자를 자임하는 김근태답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또한 재벌이 움직여야 결국 일이 풀리고 서민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전형적 '트릭클 다운(Trickle down)식 사고방식으로 결국 그 자신이 비판해 마지 않았던 '박정희식 개발모델'의 재판이 아니냐는 지적도 그에겐 아픈 것이었다.
  
  게다가 9일 김 의장과 경제5단체의 합의문 제7항은 "글로벌 경쟁 하에서 한국경제의 국가경쟁력을 강화해 나가기 위해서 국익에 부합하는 한미 FTA의 성공적 타결에 공동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도 김 의장에겐 부메랑이 될 소지가 있다.
  
  지난 7일 여당 의원 21명은 "한미 FTA가 졸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한미 FTA 특위를 재구성해 상설특위를 설치하고 비준동의권을 내실화 할 통상절차법의 제정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회FTA연구모임 소속인 이 21명의 의원들은 대다수가 재야파, 이른바 '김근태 계보' 모임인 민평련 회원들이다. 21명 가운데 한 의원은 이날 합의문을 보고 "좀 당황스럽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야겠다"고 말했다. 자칫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 놓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하지만 김 의장의 측근이자 성명 참가자인 우원식 사무부총장은 "우리는 한번도 FTA 자체를 반대한 적은 없다"며 "국익에 보탬이 되는, 성공적 FTA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답했다.
  
  사실 이런 우려에 대해 김 의장 측은 이미 답을 내놓은 바 있다. 김 의장의 한 측근 의원은 지난 달 30일 '뉴딜론'이 발표되던 날 "당장 내일부터 시민단체 등으로 부터 욕 먹을 각오를 했다"며 "김근태가 왜 이렇게 나설 수밖에 없었냐는 절박감을 이해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논쟁이 벌어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치열한 논쟁'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 대목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김병준 전 부총리의 논문조작 의혹과 연이은 문재인 전 수석 입각 논란까지 당청갈등으로 온 관심이 집중돼 버리기도 했지만 '여당 당의장'의 승부수가 '큰 논란'조차 일으키지 못한 것이다. 뉴딜의 또 다른 축이자 상식적으로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어 보이는 노동계에서도 '별 관심 없다'며 흔한 성명 한 장 내지 않았다.
  
  정동영계의 딴죽
  
  두 번째 문제는 '뉴딜'의 실현 가능성이다. 욕을 먹든 관심을 못 끌든 간에 결국 이렇다 할 성과물을 내놓으면, 즉 김 의장의 표현대로 '소금산'을 찾으면 전세는 연전될 수 있다. 천신만고 끝에 소금산을 찾아낸 주몽이 단박에 금와왕의 후계자 1순위로 떠오른 것처럼.
  
  그런데 지난 1일 조일현 원내수석부대표는 고위정책조정회의에서 "김근태 의장의 고민이 컸을지 모르지만 우리 전체의 의견을 모은 것은 아니다"며 "정책은 원내가 담당하고 당은 개혁을 담당하는 것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길"이라고 김 의장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조 부대표의 발언은 김한길 원내대표의 의중이 실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달 31일 대한상의 간담회 참석자 명단에 올라 있었지만 결국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딴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또한 채수찬 서민경제위원은 지난 7일 "서민경제위에서 기업의 경영권 보호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논의된 바가 없다"면서 "특히 황금주 도입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의장의 절친한 선배로 서민경제위에 투입된 오해진 위원장은 지난 1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기업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황금주 등 다양한 형태의 주식을 도입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었다. 위원이 위원장의 말을 뒤집은 것이다.
  
  9일 비대위 회의에서는 채 의원이 서민경제위 활동보고를 하려 하자 김 의장이 말을 끊고 회의를 비공개로 전환하는 이례적인 일도 벌어졌다. 이에 대해 우상호 대변인은 "당론 변경할 사안이 하나 있고 정책적 제도화가 필요한 사안이 있는데 그 절차가 완결되지 않았을 때 공개되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동영 전 의장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 채 의원은 정 전 의장의 고교 후배인 동시에 지역구까지 물려받았다. 한마디로 정동영 직계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청와대의 협조는 필수적인데…
  
  당의 상황도 상황이지만 당정 협의는 더 첩첩산중이다. 김 의장은 재계에 출총제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권오승 공정거래위 위원장은 아예 "순환출자 자체를 금지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고 밝혔다.
  
  재계는 경제신문 등을 통해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격"이라며 "차라리 출총제를 유지하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이에 김 의장의 브레인 격인 이목희 전략기획위원장 등은 "재벌 규제 자체를 없애자는 것은 아니고 출총제를 폐지하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면서도 "출총제 보다는 약한 대안이 나와야 한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역시 별 반향은 없다.
  
  또한 노 대통령은 지난 6일 당정청 오찬에서 뉴딜정책 등을 거론하며 "추진과정에서 나와 정부하고 협의를 했냐"고 따지며 "출총제 폐지 등 그런 방향이 우리의 정체성과 맞느냐"고 공개 면박을 줬다.
  
  이날 노 대통령은 경제인 사면 문제 등에 대해서도 "그것은 나의 고유권한"이라고 못을 박았다. 청와대 정태호 대변인도 "경제인에 관한 당의 사면 건의 내용도 고려 대상이냐"는 질문에 "당연히 '여러 의견'을 참고로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김 의장의 건의는 '여러 의견' 중의 하나란 말이다.
  
  정동영계를 비롯한 당내 실용파의 딴죽 보다 청와대와 갈등이 더 큰 걸림돌이다. 김 의장이 재계와 합의를 이뤄낸다손 치더라도 청와대와 정부의 협조가 없으면 아무 것도 제도화 할 수 없다. 말짱 도루묵인 셈이다.
  
  이 지점에서 김 의장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김 의장 측은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면 청와대가 외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지만 오히려 청와대의 협조가 있어야 김 의장이 재계와 노동계에 내놓는 선물보따리의 값이 올라가고 합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
  
  입 모은 노동계 "뭐 잘 되겠나?"
  
  당과 청와대라는 두 가지 관문을 통과하게 되면 노동계라는 험한 관문이 남는다. 당장 김 의장은 16일 한국노총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러나 한국노총 김종각 정책본부장은 "김 의장 측에서 우리한테 무엇을 주고 무엇을 요구하겠다고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온 바는 없다"면서 "하지만 재계와 만나서 나온 이야기들을 보면 우리는 극히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출총제, 경영권 보호를 약속해주고 뭔가 받겠다는 것인데 그게 약속의 대상이 되는지는 의문"이라며 "미리부터 여당 지도부와 대화가 '안 된다'고 못박을 필요는 없고 우리도 비정규직 보호, 노사관계 로드맵 등 요구사항을 밝히며 대화에 성실히 응할 것이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노총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노총 이수봉 대변인은 "일단 현재 다양하고 극심한 노사대립 양상이 있는데 기본적 신뢰도 쌓지 못한 상황에서 김 의장이 나선다고 해서 '대타협'이 가능할지부터가 의문"이라고 전제했다.
  
  이 대변인은 "김 의장이 기업에 요구한 것도 가만히 살펴보면 기업이 알아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라면서 "게다가 기업들이 김 의장에게 요구하는 내용의 대부분은 안 그래도 미약한 노동자 보호 시스템을 더 풀어 달라는, 말 그대로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쥐어짜자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이 대변인은 "못 만날 이유는 없다"며 대화의 통로는 열어두었다.
  
  노동계가 밝힌 전망 자체도 어둡지만 3년 간 지지부진한 비정규법, 포항건설노조 문제에서 드러난 건설노동자들의 비참한 상황, 다단계 하도급 구조 등 복잡한 문제가 산적한 데에다가, 보수언론들의 무조건적 노조 때리기에 대한 정부 여당의 편승 등으로 인해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이라는 것.
  
  "'오너'들 만난 다음에야 구체적 숫자 나오겠지"
  
  김 의장의 한 측근 의원은 이날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자신들의 '뉴딜' 로드맵을 밝혔다. 이 의원은 "오늘 합의문이 추상적이라는 것은 우리도 잘 안다"면서 "합의의 틀만 갖춘 것이고 결국 구체적인 '숫자'는 20일 이후 재벌 총수들은 만난 다음에 나올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의장을 만난 사용자 단체들이 한 목소리로 '더 많은 노동유연화'를 요구했는데 쉽게 문제가 풀리겠냐"는 질문에 이 의원은 "내가 안 그래도 그런 이야기를 듣고 어제도 그 사람들(재계 인사들)한테 '우리가 여기 민원 들으러 온 것이 아니라 거래를 하러 왔다'고 말했다"며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거래를 하자는 것인데 취약계층 보호망을 약화시키자는 것은 거래를 성사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말한 다음에 한 발씩 양보하자고 주문했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누가 보기에도 '이 정도면 됐다'는 재계의 투자 약속이 있어야 경영권 보호, 규제 완화와 거래를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이달 말 경에 구체화 되면 곧바로 정기국회를 통해 거래내용을 제도화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다 잘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 전망의 실현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기본적인 방향도 문제려니와, 자본지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하는 재계는 차치하더라도 당, 청와대, 노동계라는 쉽지 않은 관문을 다 통과해야 한다. 야당과 그 밖의 변수는 빼놓더라도.
  
  독배를 마시는 심정으로 당권을 맡았다던 김근태 의장은 대권을 향해서도 승부수를 던졌다. 어떤 쪽이든 이달 말이면 판가름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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