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부총리는 불과 10여 일 전에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당시 교육부총리 내정자로서 "의원님 말씀 잘 알겠습니다", "앞으로 유념하도록 하겠습니다"라며 몸을 낮췄던 김 부총리는 1일 열린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각종 의혹에 적극적으로 항변하면서 오히려 마주앉은 여야 의원들을 공격하기도 했다.
언론에서 제기된 내용의 재탕 삼탕이었던 여야 의원들의 질의가 날이 무뎠던 탓도 있지만, 그동안 밝혀 온 '아리송한 해명'을 더욱 당당하게 제기한 김 부총리의 태도 역시 '적반하장'이라는 평가가 의원들 사이에서 나왔다.
"자리에는 연연하지 않는다"
이날 제기된 의혹은 크게 ▲제자 논문 표절 ▲연구비 이중수령 ▲논문 실적 중복보고 ▲논문 중복게재 ▲학위 거래 의혹 등 5가지.
자신이 지도했던 제자의 논문을 그대로 베꼈다는 의혹에 대해 김 부총리는 "신 모 씨의 논문보다 내 논문이 시기적으로 먼저 나왔고, 조사자료를 공유하는 것은 사회과학 분야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김 부총리는 자료공유의 차원을 넘어 두 논문의 내용이 일정 부분 중복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다.
국민대 논문집과 학술집에 논문을 중복 게재한 것에 대해서는 "논문 중복 게재를 허용하느냐 마느냐는 논문집의 편집주체의 기준에 따라 설정되는 것이며, 국민대 논문집은 교내 논문집이라는 그 고유 목적과 기능에 따라 중복 게재를 허용한다"고 받아쳤다.
그리고 하나의 논문으로 'BK21 사업에 이중 등록했다는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실무자들의 실수가 있었다"며 사과하면서도 "연구업적 부풀리기나 연구비를 더 받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이중으로 올라간 논문은 이미 학술진흥재단에 의해 걸러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기관의 연구비로 이루어진 연구성과를 BK21에 올려 연구비를 이중으로 받으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학술진흥재단에도 '외부에서 수탁받은 과제도 사업팀에서 산출한 연구 결과물이면 연구실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내규가 있다"며 "연구비 중복 수령 등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항변했다.
또 성북구청장의 지도교수로서 성북구청에서 연구용역을 받았다는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성북구청에서 복잡한 과정을 통해 지방자치 연구 전문기관인 우리 연구원에 발주를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29살에 교수를 시작한 내 이력을 봐달라. 지방행정을 연구하는 학자가 수백, 수천 명은 되겠지만 메이저 저서를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면 그 중 한 명에 내가 들어갈 것"이라며 "240여 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찾아오는 것을) 오히려 내가 통제하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나는 참여정부 교육정책에 적합"
김 부총리는 또한 교육위원들의 사퇴 요구 앞에서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그는 "부총리직에 연연하지 않겠다"면서도 "자리에 관계없이 매도당한 사안에 대해 의혹을 밝히고 싶다는 심정일 뿐 이것이 밝혀지면 인사권자가 어떻게 판단하고 제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은 차후의 문제"라고 말했다. 자신의 거취 문제는 이날 회의에서 논의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김 부총리는 이날 교육위가 끝난 후 앞으로의 거취를 묻는 기자들에게도 "오늘은 진퇴 문제는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지 않느냐"며 "해임 여부는 대통령이 결정할 문제"라고 답했다.
또한 그는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에 본인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느냐"는 한나라당 정문헌 의원의 질의에 "예.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또박또박 받아쳤다. 김 부총리는 "내가 (교육부총리로) 적격이 아니라는 말을 해주면 내가 반론을 하겠다"고 역공하기도 했다.
김 부총리는 이어 개인적 '명예 회복'이 목적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교육부총리로서의 나도 중요하지만 한 명의 사람으로서, 학자로서, 아버지로서, 사회인으로서 내 인생의 모든 부분이 매일같이 의혹으로 점철되면서 나 스스로 붕괴됨을 느꼈다"며 "각종 의혹들이 무리했음을 증명해보이지 않으면 교육부총리는 두 말 할 것도 없고 어떤 사회인으로서도 생활을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은 "지금 어떤 자격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느냐. 불법과 부정인지 여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교육부총리로서 정책수행을 해나갈 수 있는 사람인지가 국민들의 관심"이라고 꼬집었다.
무딘 질문과 정치 공세만 난무
지난 인사청문회 때 '김병준 감싸기'에 급급했던 여당 의원들도 이날은 야당 의원들과 합세해 언론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들을 추궁했다. 하지만 여야 의원들 모두 그간 언론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다시 제기하는 것 이상의 날카로운 질문은 던지지 못했다.
그 대신 김 부총리의 인사청문회에 대한 자성이 곳곳에서 나왔다. 지난 청문회에서 "후보자가 개인적인 흠이 없는 분이라는 걸 깨달았다"는 발언을 한 열린우리당 안민석 의원은 "인사청문회 당시 여야 의원들이 소임을 다하지 못한 결과로 여러 의혹이 뒤늦게 불거져 나와 책임을 무겁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기홍 의원도 "인사청문회가 미진해서 청문회 아닌 청문회가 다시 열리게 된 점 죄송하다"고 했다.
반면 한나라당 의원들은 얼마 전의 인사청문회와 마찬가지로 김 부총리의 사퇴를 촉구할 뿐 아니라 '잇단 의혹제기는 그간의 행적에 따른 자업자득'이라며 정치 논쟁으로 끌고가려는 의도를 곳곳에서 드러냈다.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은 "언론이나 국민들이 김 부총리에게 이런 의혹을 제기하는 까닭을 아느냐"며 "이 정권의 핵심들이 상대 후보에게 이런 일을 해 왔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회창 후보의 병역 비리로부터 시작해 과거사 진상규명 한다고 파헤치는 것 등 상대 후보나 정치그룹에게 해 왔던 것을 그대로 돌려받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그간 국회에서 유일하게 김 부총리의 사퇴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취해 온 열린우리당 정봉주 의원은 "언론에서 김 부총리에게 들이대는 잣대로 한다면 공직자에 계신 의원들도 상당수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에 교수 출신인 박재완, 이주호 의원은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정 의원이 논문 게재 과정을 잘 몰라 그런 주장을 한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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