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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하지 못해 미안해

[프덕프덕] 애기봉의 성탄 트리, 조계사의 성탄 트리

서부전선 이상 없나?

성탄절 트리에 불이 켜졌다. 무려 7년 만이다. 그런데 이 트리, 심상치 않다. 트리 하나 불 켜는데 군 최고경계태세인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다. 그렇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당시 발령된 그 개 한 마리다.

뿐만 아니다. 21일 열린 점등식엔 해병대를 포함해 대북감시용 레이더, F-15K 전투기, 열상감시장비(TOD), 구급차, 소방차가 배치됐다. 해상에선 세종대왕함과 독도함 등 이지스 구축함이 출동 태세를 갖췄다. '평화의 상징' 성탄절 트리라 하기엔 어딘가 무시무시하다.

바로 개성에서도 그 불빛이 보인다는 '애기봉'의 성탄 트리다. 2003년 이후 7년 만에 점등됐다는 이 트리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해발 155m의 봉우리인 경기도 김포시 애기봉에 세워졌다. 북한과는 불과 3㎞ 떨어진 지척이다.

▲ 21일 애기봉 성탄 트리 점등식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성가대가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2004년 6월 제2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군사분계선(MDL) 지역의 선전활동을 중지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그 동안 애기봉 등탑의 점화는 중단됐었다. 그러나 연평도 사태 이후 대북심리전 재개 방침을 세운 국방부는 등탑에 전구를 설치해 성탄 트리를 만들겠다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제안을 수용했다. 앞서 북한 노동신문은 점등식 하루 전인 20일 "대형 전광판에 의한 심리모략전이 새로운 무장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망동"이라고 경고했다.

해상엔 이지스 구축함이 떴고, 하늘에선 전투기가 대기했지만, 상황이야 어찌됐든 순복음교회 신자들은 10만 개의 오색찬란한 전구 아래서 한나라당 나경원·차명진 의원,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함께 '평화의 캐럴'을 불렀다 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평화'가 아니라 '공포의 트리'라고 말한다. 애기봉 바로 밑 민통선 마을에서 15년 넘게 목회를 해왔다는 한 목사는 최근 언론 기고를 통해 "점등식에 참석한 여의도 ㅅ교회의 교인들과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점등식이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남쪽으로 사라져갔다"며 "점등 트리로 말미암아 포탄이 날아올 경우 점등을 한 여의도 ㅅ교회 교인들은 살아남겠지만 그들 때문에 우리 교회 교인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무시무시한 캐럴에, 무시무시한 트리다.

또 하나의 트리

여기 또 하나의 트리가 있다. 애기봉의 트리가 7년 만의 '화려한 부활'이라면, 이 트리는 유사 이래 최초다. 애기봉 트리 점등식이 열리기 하루 전인 20일, 대한불교 조계종은 서울의 대표적 사찰 조계사 앞에 성탄 축하 트리의 불을 밝혔다. 봉은사 땅밟기, 템플스테이 논란 등으로 촉발된 갈등을 불식시키고 종교 간 '화해'를 이끌어내자는 취지다.

지금도 조계사 일주문 앞 성탄 트리 옆엔 '종교 차별 정부를 규탄한다'라는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지만, 이 같은 논란을 너무도 '깔끔하게' 정리한 분이 있었으니, 바로 보수 성향 최대 개신교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신임 회장님이시다. 점차 확산되는 정부의 종교 편향 논란을 "정부와 불교 간의 개별적인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불교의 '템플스테이'에 맞선 '처치스테이'를 추진해 "불교의 템플스테이 운동에 일방적으로 후원하는 정부와 조율해 기독교에 해가 되는 일을 막겠다"고 공언했던, 바로 그 분이다.

목사님의 야심찬 계획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번엔 십자가다. 한기총 차기 회장에 당선되면 "100톤급 배를 세내 연평도로 떠나 10m 짜리 십자가를 연평도 산상에 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연평도의 십자가로 "한국은 기독교 국가라는 것을 보여줄 것"이란다.

F-15K 전투기에 이지스함까지 배치된 '애기봉 작전'에 이은 '연평도 작전'이 예상된다. 21일, 그가 한기총 차기 회장으로 당선됐다. 17대 한기총 대표회장 길자연 목사다.

▲ 20일 조계사 앞에 세워진 '성탄 축하 트리'. ⓒ프레시안(선명수)

애기봉의 트리와 조계사의 트리. 똑같은 트리라지만 뭔가 다르다. 민주당 김진애 의원 역시 트위터를 통해 일침을 날렸다.

"서로의 신앙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만든 조계사의 크리스마스 트리와 상대를 자극하고자하는 동기로 만든 애기봉의 크리스마스 트리. '격'이 다릅니다!"

'메리'하지 못해 미안해

불빛이라도 '씨게' 밝혀 약 올리자는 남쪽과 입만 열면 '강력 응징' 운운하는 북쪽의 '치킨게임'이 정점으로 치닫는 동안, 치킨 전쟁은 시장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가격을 대폭 낮춘 5000원짜리 치킨, 이름도 '통 큰 치킨'이다.

결국 치킨 사태는 롯데마트의 '판매 중단' 선언으로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다시 논란의 불씨를 지핀 건 이번에도 대통령의 '경험담'이었다. "2주에 한 번씩 치킨을 사먹는데 좀 비싸다는 생각을 한다". 대통령의 극진한 서민 사랑이다.

막노동, 노점상, 환경미화원, 정기적인 치킨 시식까지, 안 해본 것 없는 '통 큰' 경험의 대통령은 국회에서 유혈 낭자한 무력을 선보인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을 이번에도 '통 크게' 격려했다. 육사 럭비부 주장 출신이라던 그의 주먹에 여러 명이 나가떨어진 이후의 일이였다.

어찌됐던 309조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단 8분 만에 '통 크게' 처리한 한나라당 덕에, 방학 중 급식 예산 '0원'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결식아동 40만 명과 활동보조지원비가 축소된 중증장애인들은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꾸게 생겼다.

지금도 애기봉엔 10만여 개의 오색찬란한 전구가 '평화의 불빛'을 북녘 땅에 쏘아주고 있다지만, 어쩐지 이번 크리스마스, '메리'할 것 같지 않다.

(어이없어 실소만 나오는 일들을 진지하게 받아쳐야 할 때 우리는 홍길동이 됩니다. 웃긴 걸 웃기다 말하지 못하고 '개념 없음'에 '즐'이라고 외치지 못하는 시대, '프덕프덕'은 <프레시안> 기자들이 쓰는 '풍자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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