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내에서 국방부 장관이 지정한 '불온서적'을 소지할 수 없도록 한 군인복무규율이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한 때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 한나라당 의원들조차 저자 특강을 들었던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까지 '불온서적' 목록에 포함돼 논란이 된 지 2년 만의 일이다. (☞관련 기사 : 국방부 공인 '불온서적' 저자, 한나라당서 강연)
▲ 2008년 국방부가 지정한 '불온 서적' 목록. ⓒ프레시안 |
헌법재판소 28일 지영준 전 군법무관 등 7명이 군인사법 제47조 2항, 군인복무규율 제16조 2항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재판관 6대 3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다"고 선고했다.
문제가 된 군인복무규율(제16조 2항, '불온표현물 소지·전파 금지') 조항은 "군인은 불온유인물, 도서, 도화, 기타 표현물을 제작·복사·소지·운반·전파 또는 취득해서는 안 되며, 이를 취득한 때는 즉시 신고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 조항을 근거로 2008년 7월 국방부 장관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포함해 홍세화 씨 등이 집필한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등 23종의 도서를 '북한 찬양', '반정부·반미', '반자본주의' 등의 항목으로 나눠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뒤 부대 내 반입을 금지시켰다. 프레시안특별취재팀이 펴낸 <삼성왕국의 게릴라들>도 여기에 포함됐다.
이에 당시 군법무관이던 지영준, 박지웅 씨 등 7명은 국방부의 이 같은 조치가 "사상의 자유와 알 권리를 침해한다"며 그해 10월 두 조항에 대한 헌법 소원을 제기했고, 곧 국방부로부터 '군 명예 실추' 등을 이유로 파면 등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이와 관련, 이듬해 10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불온서적 금지는 전근대적인 국가에 의한 국민 사상 통제의 대표적인 수단"이라며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 형성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기도 했다.
6대3 '합헌'…"軍 정신전력 정당성 있어" VS "무엇이 '불온'인지 명확치 않아"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결국 국방부의 손을 들어줬다. 헌법재판소는 "해당 조항은 국군의 이념 및 사명을 해칠 우려가 있는 도서로 인해 '정신 전력'이 저하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무엇이 금지·허용되는지 예측할 수 있어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어 "정신전력을 보전하기 위해 불온도서 소지 등을 금지한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밝히고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효과적인 수행이라는 공익이 알 권리라는 사익보다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위헌' 의견을 낸 이강국 재판관은 "군인사법은 '군인의 복무'라는 광범위한 분야를 제한없이 대통령령에 위임해 '포괄위임입법 금지원칙'에 위반된다"며 "군인복무규율이나 해당 지시도 위헌적 위임조항에 근거했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이공현, 송두환 재판관 역시 "복무규율로 어떤 도서가 금지되는지 예측할 수 없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돼 위헌"이라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2008년 국방부가 지정한 23권의 책은 이로써 '불온'의 딱지를 떼지 못하게 됐다. 당시 국방부가 '불온서적'이라고 지정한 책은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프레시안특별취재팀 지음, 프레시안북 펴냄)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부키 펴냄) △대한민국史 (한홍구 지음, 한겨레신문사 펴냄) △지상에 숟가락 하나 (현기영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 △소금꽃나무 (김진숙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홍세화 외 지음, 철수와영희 펴냄)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노암 촘스키 지음, 김보경 옮김, 한울 펴냄) 등 23권이다. 이 책들은 국방부가 불온서적으로 지정하며 오히려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홍보효과'를 누리기도 했다.
한편, 헌법소원을 냈다가 파면 등 중징계를 당한 지영준 전 법무관 등은 법원에 파면처분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해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1심 법원은 지난 4월 "정치적 논란을 야기했고, 헌법소원 제기 과정이 적절치 못했다"며 징계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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