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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공인 '불온서적' 저자, 한나라당서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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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방부 공인 '불온서적' 저자, 한나라당서 강연

MB측근도 정책위의장도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탐독했다"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가 6일 한나라당 주최 강연 연단에 섰다. 장 교수의 평소 주장이 한나라당 정책과 다른 점이 많을 뿐 아니라, 국방부에서 지정한 '불온서적'(<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저자인 그를 여당인 한나라당이 초청한 것만으로도 강연 전부터 화제를 불러 모았었다.

"난자는 DNA 다른 정자 골라 진화"

이날 오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강연에서도 이 점이 화제였다. 축사에 나선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작년 여름 기자가 '요즘 무슨 책 읽느냐'고 물어 봐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주로 읽고 있다'고 답했는데, 얼마 뒤 이 책이 국방부 불온서적 목록에 올랐다"며 "여당 정책위의장이 국방부 금서를 탐독하고 있는 셈이 돼서 국방부에 '그 책을 읽어나 보고 금서로 정한거냐'고 질문한 기억이 난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 국방부 불온 서적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전면에 내세운 장하준 교수 강연 포스터. ⓒ프레시안
임 정책위의장은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자꾸 격차가 벌어지며 생기는 사회갈등 현상을 현명하게 치유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데,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여러 가지 발샹을 잘 제시해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김성조 의원도 축사를 통해 "민주당 최영희 의원이 대정부질문을 하는 과정에서 <나쁜 사마리아인들> 책을 언급하길래 구해서 읽어봤다"며 "장하준 교수를 초청해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날 강연에 장 교수를 초청한 정두언 의원(한나라당 국민소통위 위원장)은 '정자와 난자' 얘기로 장 교수를 초청한 이유를 설명했다.

정 의원은 "난자가 수억 마리의 정자 중 하나의 정자를 받아들일 때 난자의 DNA와 가장 다른 DNA를 가진 정자를 받아들인다고 생물 시간에 배웠다"며 "동종 교배를 하면 진화가 더디기 때문에 가급적 다른 DNA를 받아들여 진화를 촉진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이어 "17대 국회 때 한나라당 토론회를 보면 한나라당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강사로 초청하는데, 얘기를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 '맞아, 맞아, 맞아' 그러고 있지만 과연 유익한 토론인지는 회의적이었다"면서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야 내 생각이 맞는지 검증해보고 고칠 수 있다"고 장 교수를 초청한 배경을 설명했다.

정 의원은 또 "장 교수는 한나라당과 생각이 다른 분으로 알려져 있다"며 "앞으로 우리와 생각이 다르고 불편할지라도 경청하고 과감히 발상의 전환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래도 신자유주의인가

이날 장 교수의 강연 제목은 '이래도 신자유주의인가'였다. 이날 강연의 취지는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금융발 경제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가 만능이 아님을 깨닫고 선진국만 좇을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경제 정책을 고민하자는 것이었다.

정두언 의원도 비슷한 견해를 나타냈다. 정 의원은 "마라톤을 하는데 대회가 무산됐으면 꼭 끝까지 갈 필요가 있겠느냐"며 "돌아볼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YS정부 시절 OECD에 가입한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마치 세계적 대세이고 만고의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여 지금까지 왔다"며 "그 과정에서 10년 전 IMF 외환위기를 겪었고, 지금은 세계적 경제위기인데 이 정도면 국가 전략으로 채택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을 되돌아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1800년대 말까지는 중국 표준에 의해, 1900년대 초반에는 일본의 표준에 의해, 1945년 광복 이후에는 미국 표준의 의해 살아왔다"며 "선진국들의 표준을 부지런히 배워가며 우리는 인구나 지역적인 불리함을 극복하며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임 정책위의장은 이어 "최근 미국 금융위기로 인해 미국식의 표준으로도 잘 안 되는 것 아니냐는 논의가 되고 있다"며 "우리가 배워온 것과 달리 대한민국에 맞는 새롭고 다른 표준을 만들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 ⓒ프레시안

장하준 한나라당에 "한미FTA, 규제·금산분리 완화 신중해야"

인사말과 축사에 이어 장 교수는 평소 자신의 지론을 1시간 30분여에 걸쳐 펼쳤다. 강연 요지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 제조업을 등한시 하고 금융산업 중심의 경제구조 개편을 하느라 우리나라의 강점인 제조업이 취약해지고 고용이 불안해지며 양극화가 심해지는 등 사회불안이 커져 성장동력을 찾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실물 경제의 발전 없이는 금융산업의 발전도 없다는 인식 하에 기술 개발 투자 확대 등을 통한 제조업 육성, 사회통합을 위한 사회안전망 확대·복지국가 건설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특히 구체적 현안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규제완화' 정책에 대해 "90년대 초 외국 경제지에서 '한국은 공장 하나 세우려면 200~300개의 기관에서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8~9%의 경제성장을 이루는지 이해 못 하겠다'고 쓴 적이 있다"며 "규제가 많아서 투자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투자할 곳이 없으니 조그만 규제도 상대적으로 크게 보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중국에 많은 투자가 이뤄지는 것이 규제가 완화돼서가 아니라 돈을 벌 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임에도 우리나라는 규제가 투자의 적인 것처럼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미FTA에 대해서는 "규제 방식이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이기 때문에 특정 상품을 제외하고는 금융 파생상품이 무한정 들어올 수밖에 없다"고 부정적 인식을 나타냈다.

특히 정부와 여당이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 '금산분리 완화'에 대해서도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화 될 것이라는 걱정은 계열사 대출 금지 등의 규제로 제어할 수 있는 2차적 걱정"이라며 "재벌들이 금융자본화를 통해 편하게 먹고 살자고 한다면 일자리는 누가 만들고 제조업은 누가 이끌어 가겠느냐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라고 역시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장 교수는 또 "상위권 학생들의 90%가 의사나 변호사가 되고 싶어 하는 왜곡된 인적 자원 분배 구조가 아주 큰 문제"라며 "젊은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도전할 수 있게 하는 유럽식 사회복지 시스템 같은 사회 안정망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국가론'에 김용태 "벼랑 끝에 몰려야 모험"

장 교수의 발표 후 이어진 질의 시간에는 한나라당과 장 교수 간의 '생각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총대를 맨 인물은 김용태 의원.

김 의원은 우선 "식민지의 고통과 전쟁의 폐허를 맨주먹으로 돌파한 대한민국에서 지난 10년 동안 (좌파에서는) 재벌, 박정희, 성장은 금기시 돼 왔을 뿐 아니라 사악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세계적 석학이 '잔인한 성장', '선택과 집중', '분배보다 성장'을 껴안아 주셔서 고맙다"고 말을 꺼냈다.

김 의원은 이어 "대한민국은 신자유주의 설계자가 아니라 종속변수일 뿐"이라며 "'신자유주의 비판'이라는 아우라를 이용해 대한민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하는 세력들에게는 얘기를 해야겠다. 미국이 망했다고 해서 신자유주의는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터무니 없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산업은행 민영화 문제에 대해 "산업은행은 정부와 법률의 보호를 받는 곳인데 궂은 일은 안 하고 우량기업에만 대출을 하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며 땅 짚고 헤엄만 치고 있다"면서 "지난 20년 동안 개혁하지고 했는데 안 되니까 이번에 민영화 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장 교수는 "금융 허브가 되자며 미국처럼 투자은행 만들자고 해서 산업은행이 리먼브라더스를 인수해 투자은행에 진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는데, 그 때 안 했으니 망정이지 큰일 날 뻔 하지 않았느냐"고 말했었다.

김 의원은 또 '규제완화가 아니라 투자 요인 강화'가 중요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다"며 "경기도에서 공장 하나 지으려면 맹꽁이 보호를 위해 1년 동안 서식지와 서식 환경을 조사하느라 공장 허가가 안 나는 규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주장했다.

즉 장 교수의 성장 중시 견해에 대해서는 환영하지만 한미FTA에 대한 신중한 접근, 금융 산업화, 규제완화,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재고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장 극명한 인식의 차이가 장 교수의 유럽식 복지국가론이었다. 김 의원은 "복지확대가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근로의욕을 고취시키며 공격적이고 창의적 기업가를 창출한다는 장 교수의 주장은 독특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어느 인간이 (사회가) 뒤를 받쳐주고 있는데 공격적이고 창의적이겠느냐. 필사적이고 벼랑 끝의 배수의 진을 쳤을 때 모험이 나오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김 의원은 "신랄한 비판을 통해서 강연의 흥행을 도와달라는 게 정두언 의원이 제게 부여한 임무"라고 말하는 등 다소 과장해 장 교수를 공격한 것이 사실이지만, 한나라당의 정책을 보면 그리 과장돼 보이지는 않는다.

"독일 복지제도 도입한 건 보수세력"

장 교수는 '복지국가론' 공격에 대해 "우리나라는 보수에서 복지국가를 반대하지만, 독일에서는 보수인 비스마르크가 복지제도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또 "내가 얘기하는 복지국가에 대해 이해를 잘 못하는 부분이 복지국가를 해서 생산성이 좋아지느냐는 것인데, 미국식 복지를 생각해서 그런 것"이라며 "미국식 복지는 돈 많은 사람들의 돈을 가져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끝나는 복지이지만, 유럽식 복지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의료, 교육 등 사회보험 혜택을 누려 생산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미국보다 프랑스가 노동시간당 국민소득이 더 높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진보·보수, 좌파·우파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라며 "보수와 진보 나누기가 우리나라의 독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300여 명의 청중이 몰린 이날 강연에는, 한나라당 현역 의원 중 김성식, 이주영, 남경필, 안효대 의원 등이 강연을 끝까지 경청했고, 강성천, 강용석, 박보환 의원. 이정선 의원, 조문환 의원, 조전혁, 정진섭, 정태근, 이인기, 장광근 의원 등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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