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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결국, 평화는 폭력 앞에서 승리한다"

[기고] 대추리를 향하는 평화의 발걸음은 계속된다

지난 5일 서울 청와대를 시작으로 나흘 간 경기도 일대를 돌며 평택 미군기지 이전의 '폭력성'을 평화의 언어로 노래한 "평화야, 걷자 행진단"(이하 행진단)이 8일 마침내 평택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들이 맞닥뜨린 것은 난데 없는 주먹과 발길질이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을 찬성하는 지역 상인들이었다.

또 경찰의 무차별적 불심검문에 항의하는 '긴급 집회'를 행진단은 진행했지만, 이 역시도 '불법집회(미신고집회)'라며 경찰은 행진단 중 40여 명을 현행범으로 연행했다. 모두 지난 8일 오후에 있었던 일이다.

이에 '행진단'에 참여했던 인권운동사랑방의 박석진 활동가가 지난 8일 오후에 평택에서 발생했던 다급한 상황을 담은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박 활동가는 이 글에서 지역 상인과의 충돌, 경찰의 무리한 법 집행을 언급하는 가운데 "평화의 발걸음은 계속된다"며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투쟁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다음은 박석진 활동가가 보내온 글의 전문이다.<편집자>

배고픔이 없는 세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
누구도 군림하지 않는 세상
성매매, 성차별, 성폭력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맹꽁이, 도롱뇽이 사람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농민들이 수 천 년 이어온 우리의 땅에서 농사지을 수 있는 세상
이것이 바로 평화!

-'평화란 무엇이냐' 노래 중

평화를 향한 열망의 발걸음으로 서울에서 평택까지 한땀한땀 수를 놓으며 걸어온 '평화야, 걷자' 행진단이 무자비한 폭력에 무참히 짓밟혔다.

지난 5일 서울의 청와대 앞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미국의 전쟁기지 건설에 반대하며 평택 대추리까지 행진을 시작한 행진단은 첫 날 과천과 둘째 날 수원, 셋째 날 오산을 거쳐 지난 8일 평택에 들어왔다. 평택에 건설될 미군 전쟁기지의 문제점을 시민들에게 알려나가면서 행진단은 평택역에서 수많은 평택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밝히며 간절한 평화의 마음을 나누었다. 하나하나의 촛불에 한 명 한 명의 소중한 평화의 마음을 고이 간직한 채 행진단은 나흘간 대장정의 마지막 목적지인 대추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 기자회견 도중 장대비가 쏟아졌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민중의소리

짓밟힌 '평화의 노래'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평화에 대한 생각을 함께 나누며 노래를 부르던 행진단의 평화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행진단이 평택 시내를 막 벗어나 대추리로 가는 길목에 있는 군문교 옆에서 잠시 쉬고 있는 사이 평택에 있는 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리즈 정문 앞 상가의 상인들이 행진단의 평화행진을 막기 위해 행진단 쪽으로 몰려오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 '놀라운 소식'은 얼마 가지 않아 놀라운 '소식'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얼마 후 실제로 수십 명의 상인들이 행진단이 잠시 쉬고 있던 장소에 들이닥쳤다. 경찰 병력이 그보다 조금 앞서 배치되기는 했지만 지금껏 시위대에게 그렇게 위력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경찰력은 수십 명의 상인들 앞에서 순식간에 무력해지고 말았다.

미군기지 이전에 찬성하는 상인들은 행진단이 쉬고 있는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욕설을 내뱉고 폭력을 휘두르며 행진단에게로 다가왔다. 평화의 열망으로 평화를 노래하던 행진단은 그야말로 맨 몸으로 상인들의 비이성적인 폭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그래, 때리면 맞자"

'그래, 때리면 맞자. 술냄새 나는 무자비한 폭력으로 우리를 짓밟는다고 하더라도 평화를 향한 우리의 마음을 꺾을 수는 없다'며 구석에 몰린 행진단은 평화의 노래를 불렀다. '가을 바람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빨갛게 노을이 타고 있어요.' 가을 저녁 팽성의 황새울 들판에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만들어진 노래로 잘 알려진 '노을'을 부르며 그렇게 우리 모두는 눈 앞에 닥친 폭력의 상황에서도 평화를 염원했다.

하지만 경찰 저지선을 너무나도 쉽게 '뚫은' 상인들은 들어오자마자 맨몸의 행진단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행진단이 어떠한 폭력에도 평화적으로 침착하게 대응하며 상인들의 폭력에 맞서는 사이 행진단과 상인들은 경찰을 사이에 두고 맞서게 되었다. 그 중에도 상인들은 끊임없이 경찰에게까지 폭력을 휘두르며 뚫고 들어오는 등 행진단을 크게 위협했다.

심지어 그들은 달걀을 던지고 돌을 던지기도 했다. 그리고 몇 명의 행진단원은 돌에 맞아 쓰러져나갔다. 상인들의 폭력과 욕설은 행진단이 나지막이 부르는 평화의 노래에도 그치지 않았다. 또한 행진단을 향한 그들의 선무방송 역시 그치지 않았다. 아니, 그것은 선무방송이라기보다 공개적인 협박이고 폭력을 선동하는 행위였다. 그 '선무방송'은 상인들에게 '돌을 들고 행진단을 향해 던져 공격할 것'을 선동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평화행진단을 '빨갱이' '친북'으로 몰며 악의적인 선전을 그치지 않았다.
▲ 8일 밤 11시 30분, 평화행진단이 대기하고 있던 화랑주유소 앞으로 모여든 팽성상인회 소속 상인 60여명이 각목을 이용, 행진단을 마구잡이로 폭행했다.ⓒ민중의소리

멀거니 보고만 있던 경찰들

상인들이 행진단을 향해 자행한 폭력은 명백히 불법 폭력이다. 그들은 수많은 경찰들이 보는 앞에서 행진단원들을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는 등 폭력을 행사했고 돌을 던져 부상을 입혔지만 어떠한 사람도 경찰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되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즉석에서 구호를 외치고 방송차량을 동원해 선무방송을 하는 등 해가 진 이후의 야간 집회를 진행했지만 이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경찰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상인들이 경찰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하며 행진단을 위협하고 해치는 그 상황에서조차 경찰의 채증 카메라는 행진단을 향해 플래쉬를 터뜨렸다. 아, 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경찰이여!

미군기지 이전에 찬성하는 상인들과의 마찰을 극도로 피해 왔던 행진단은 결국 그 자리를 떠났다. 그게 당시 사태를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반이성이 판을 치는 상황에서 이성이 들어설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다시 평택역으로 돌아온 행진단은 또다른 폭력적인 소식을 접했다. 대추리로 농활을 가던 학생들을 경찰이 불법적인 불심검문으로 몇 시간 동안이나 막고 있었다. 더불어 학생들과 함께 대추리로 들어가려던 주민들마저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이동의 자유는 평택에서는 더 이상 우리의 권리가 아니었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는 어디인가?

행진단은 경찰의 불법적인 불심검문에 항의하기 위해 평택 경찰서 앞에서 항의'집회'를 진행했다. 경찰의 불법적인 채증과 끊임없는 방해에도 불구하고 항의'집회'를 진행한 행진단이 '집회'를 마치고 해산하려는 순간, 경찰은 무차별적으로 행진단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집회' 대오 밖에 있던 행진단마저 경찰들은 모두 연행했다. 아수라장이었다. "어떻게 같은 사람끼리 이럴 수 있는 겁니까?"라는 절박한 외침과 수많은 비명소리들은 고요하기만 한 평택 시내의 밤하늘을 가득 채웠다. 이 과정에서 어떤 행진단원은 경찰에게 발로 차이고 어떤 여성 행진단원은 남성 경찰에게 뺨을 맞기도 했다. 경찰의 무차별적이고도 폭력적인 연행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광기의 현장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행진단의 항의'집회가 '불법집회'라며 강제 해산을 실시했지만 행진단의 '집회'는 경찰의 주장과는 달리 명백한 합법집회였다. 당시 행진단의 항의'집회'는 대추리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진행되고 있던 경찰의 불법적인 불심검문에 항의하기 위해 긴급하게 진행된 집회였기 때문에 '긴급집회'로 볼 수 있다.

미리 예상할 수 있는 집회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서울고등법원도 판례를 통해 '긴급집회'는 집회 사전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판시한 바 있다. 또한 긴급집회는 야간에도 진행될 수 있다. 당장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현장에서 항의하는 집회를 할 수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집회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위헌이다.

9일 새벽의 항의'집회'는 긴급집회로서 합법한 집회였다. 하지만 경찰은 미리 신고하지 않은 집회라는 이유로 '불법집회'를 선언하며 해산명령을 내렸다. 경찰은 해산 과정에서조차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 집회를 해산하기 위해서 경찰은 먼저 집회 주최측에 자진해산을 요청해야 한다. 하지만 이날 경찰이 집회 주최측에 자진해산을 요청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주최측에 자진해산을 요청한 후 경찰은 집회 대오를 향해 직접 자진해산을 '요청'해야 한다. 그러고도 대오가 해산하지 않는다면 비로소 3회 이상의 해산'명령'을 내린 후 강제 해산을 실시할 수 있다.

하지만 경찰은 자진해산을 '요청'하지도 않았고 해산명령도 2회에 그쳐버렸다. 많은 행진단원들에게 확인해본 결과 세번째 해산명령은 아예 듣지도 못했거나 들었더라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듣지 못했다. 법원은 강제 해산 자체는 합법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과정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 '불법해산'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게다가 행진단이 강제연행된 시점은 주최측이 이미 자진 해산을 행진단에게 알리고 실제로 자진해서 해산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경찰이 강제로 연행한 법적 근거는 무엇일까? 합법집회를 일방적으로 불법집회로 선언한 자신들의 행위가 부끄러워서였을까? 아니면 행진단이 경찰의 자진해산 명령을 받아들였기 때문일까?
▲ 팽성상인회 소속 회원들이 각목 등을 들고 평화행진단을 위협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평화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대추리로 향하는 평화의 발걸음은 오늘도 계속 된다. 미군기지 이전과 전쟁기지 건설에 찬성하는 어제의 상인들은 오늘도 역시 평화행진을 방해하기 위해 모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평화는 폭력 앞에서 승리할 것임을 믿는다. 반이성이 평화를 막아서고 국가폭력이 평화를 가둔다고 해도 지금 우리의 평화를 향한 마음을 막을 수는 없다.

평택에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해치는 전쟁기지가 건설되는 것에 반대하는 평화의 발걸음은 오늘도 한땀한땀 수놓으며 대추리로 향할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많은 평화의 발걸음들은 한반도 곳곳에서 한땀한땀 수를 놓으며 커다란 글씨를 새기고 있다. '평화'라는 간절한 글씨를. 오늘, 우리의 걸음이 바로 평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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