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 붉은 군대 합창단이 부르는 '소련군 찬가'가 웅장하게 울려 퍼진다. 인민군 장교 복장을 한 배우 한석규 씨는 다리를 쭉쭉 내뻗으면서 행진한다. 자부심 가득한 얼굴. 열렬히 손을 흔드는 북한 인민들.
영화 '이중간첩'의 첫 장면이죠. 지난 2002년, 그러니까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진출해서 온 나라가 '붉은 물결'로 뒤덮였던 바로 그 해, 제작된 영화입니다. 흥행 실적은? 그저 그랬다고 기억해요.
난데없이 왜 '이중간첩' 이야기냐고요? '또 월드컵 시기라서?' 아니죠. '아. 그럼 보름 전 지방 선거 때문이구나. 선거 끝나니까 바로 이중간첩 흑금성 사건이 터졌잖아. 성경 책에 숨겨둔 커터 칼로 배를 갈랐던 전직 안기부장이 연출한 북풍 사건 속 등장인물 흑금성 씨. 알고 보니 그 분이 이중간첩이었다면서' 키야~ 기가 막힌 기억력이네요. 그거 PC통신 시절 이야기인데 말이죠. 그 무렵, PC통신 게시판에서 유행하던 유머 있었죠. 영화 '넘버3'에서 배우 송강호 씨가 한 말을 커터 칼 사건과 엮은 그 유머.
"최영의라는 분이 있었어. 그 양반 황소 뿔도 여러 개 작살내셨어. 그 양반, 스타일이 이래…, 그냥 소에게 다가가, 너 소냐?, 내가 최영의야. 그리고 그냥 소뿔을 꽉 잡아, 그리고 무조건 내려쳐, 그냥 뿔이 빠개질 때까지 내려쳐…. 이런 '무대포' 정신이 지금 필요하다."
바로 요 대사에서 <바람의 파이터> 주인공인 최영의 선생 자리에 전직 안기부장 이름을 넣고 낱말 몇 개 바꾸면, 추억의 그 유머가 만들어집니다. 간단한 레시피죠.
그런데, 안타깝네요. 이런 유머, 요즘엔 별로예요. 아저씨들이나 좋아하죠. '이중간첩' 이야기를 꺼낸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에요.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고소영 씨 때문이죠.
'그 분, 얼마 전에 결혼했잖아' 맞습니다. 맞고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눈에 힘 팍팍 들어간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 장동건 씨랑 결혼하셨죠. 결혼한 여배우에게는 관심 없다고요? 네, 저도 다들 그런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고소영 씨 인기는 도무지 식지를 않더라고요. 특히 나이 드시고, 경륜 두둑하신 어르신들 사이에서 말이죠.
하,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센스 없으시네. 얼마 전에 가카의 '절친'이신 어윤대 씨가 KB금융지주 회장이 됐죠. 가카의 대학 2년 후배라는 이유로 시끄럽게 구는 분들이 많았는데, 사실 물정 모르는 소리죠. 어차피 다른 은행들도 다 가카의 '절친'들이 대장이거든요. 왜 새삼스럽게들 구는지 원. 하나금융지주 김승유 회장님은 가카의 대학 동기죠. 우리금융지주 이팔성 회장님은 가카의 대학 후배. 그뿐인가요. 한국 거래소 이사장님도, 우리투자증권 사장님도. 모두 가카의 대학 후배들입니다. 대부분 고향은 영남.
한마디로 '고소영'이죠. 가카께서 보름 전 선거 결과를 기억하시나 모르겠네요. 한나라당 찍으려던 투표 도장이 자꾸만 옆으로 비켜갔던 이유, 그 중 하나가 바로 '고소영' 인사였죠. 가카께서 대학 후배, 교회 친구 분들을 너무 챙기시는 게, 고대 못 나오고 소망교회 근처에 집 없는 사람들에게는 영 못마땅했다는 거. 물론, 공사다망 하신 가카의 메모리가 넉넉지 않다는 건 잘 알아요. 그래서 다시 기억을 되살려 드립니다.
"가카, 고소영 씨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그 분 이미 결혼했어요. 장로님께서 유부녀 너무 좋아하시면 안 됩니다."
(어이없어 실소만 나오는 일들을 진지하게 받아쳐야 할 때 우리는 홍길동이 됩니다. 웃긴 걸 웃기다 말하지 못하고 '개념 없음'에 '즐'이라고 외치지 못하는 시대, '프덕프덕'은 <프레시안> 기자들이 쓰는 '풍자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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