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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내가 아픈 만큼, 천성산 문제가 중요했어요"

[대법원 판결 이후] 지율스님 일문일답

대법원이 2일 '천성산 터널(원효터널) 공사 착공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재항고심에서 "공사를 중단할 이유가 없다"며 기각 결정을 내린 가운데 전교조 부산지부 사무실에서 '천성산 지킴이' 지율 스님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스님은 이날 오후 "아직 판결문을 받아 보지 못했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침묵하면 대법원의 판결 내용이 다 옳다고 생각할까 우려했다"고 급히 회견장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다음은 소설가 김곰치 씨가 기자회견 현장에서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편집자>


현실과 동떨어진 2003년 보고서 참조

- 판결문을 보면, 이번에 환경공동조사를 정밀하게 실시했고,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평가에 의하더라도 터널공사가 환경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돼 있습니다.

"천성산을 두고 지금까지 환경영향평가를 다섯 번 했습니다. 94년에 첫 환경영향평가가 있었고, 그때는 도롱뇽이라든지 지하수, 양산 지역의 활성화 단층 문제, 그리고 생태계보존지역, 늪과 계곡 등 천성산의 가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천성산 일을 시작했고, 그 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속철도공단에서 3번에 걸쳐 영향평가를 하게 됩니다. (판결문에 언급된) 대한지질공학회에서 한 것은, 활성화 단층이나 생태계 문제점이 전혀 언급이 되지 않은 2003년도 보고서입니다.

이번에 3개월 동안 새로 한 것이 있는데, 대법원에서 그 결과를 중심으로 판결을 내리리라 생각했습니다. 근데 시간적으로 많이 거슬러 올라간 2003년도 보고서를 참조할 줄은 몰랐습니다. 또 한국환경정책평가원의 평가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 평가서를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대한지질공학회는, 천성산의 늪 밑이 화강암으로 돼 있다고 했었어요. 근데 이번에 조사를 해보니 화강암이 아니라 실트질 모래였습니다. 또 늪 밑으로 물이 오가는 화분구조로 돼 있다고 시추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늪과 지하수의 연결성이 나온 것입니다.

사실 조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천성산 주변의 주민들이 이미 지하수 고갈, 늪지 고갈, 저수지 고갈로 고통을 받고 있고 공단과 합의 과정에 있다는 겁니다. 현상이 지금 드러나고 있는데 현상과 반대되는 과거의 보고서를 가지고 재판이 이뤄졌다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고 싶습니다."

- 천성산 일대의 지질적 특성이 설계 및 공법에 충분히 반영된 만큼 환경이익이 침해될 개연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1심과 2심에서 주된 논거로 제시된 대한지질공학회 보고서에는 물이 한 방울도 안 나온다고 했습니다. 근데 이번 공동조사에서는 분당 1톤이 빠진다고 나왔습니다. 하루에 1400여 톤입니다. 충분히 예측하고 대비한다고 해도 그렇게 나온다는 겁니다. 지하수 유출 문제는 지금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현실과 맞지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 현재의 통설이나 기존의 판례상 신청인들이 환경권을 근거로 공사금지를 청구할 수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환경권을 이야기한 것은, 사회와 개인의 환경권을 이야기한 부분도 있지만, 실은 천성산 자체가 열 개의 보존구역입니다. 생태계보존구역, 습지보전구역, 문화재보존지역, 전통사찰보존지역, 자연환경보존지역, 야생동물보호구역, 도립공원, 산림보호구역 등 여섯 개 국가 부서에서 열 개의 법적 보존구역으로 묶어 놓았는데, 지금 그 훼손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개인적 가치의 문제나 환경이익의 침해라는 말 자체가 저는 합리적인 용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지난 3월부터 지하수 유출과 관련하여 유량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번 대법원 판결로 그만두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유량조사가 천성산 문제를 풀어가는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1년 후에도 오늘의 법원 결정처럼 천성산과 지하수와 생태계에 아무런 변화가 없기를 바라지만, 문제는 현상으로 지금 나타나고 있다는 겁니다. 고속철도 터널이 지나가는 전국의 전 구간에 지하수가 유출되고 있고, 39개의 저수지 중 몇 개가 말라가고 있다는 겁니다."

"옆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느끼는데, 아무 문제 없다니…"

- 대법원에서 결정이 나와 이제는 법적으로 대응할 방법이 없는데, 계속 유량조사를 하시겠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저는 천성산 문제를 통해 사회가 움직이는 다양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언론이, 시민들이, 전문가들이, 시민단체가…. 종교인들도 물론 반성할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가치관으로 움직여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유량조사가 할 것입니다.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영향이 없다고 했어요. 바로 옆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영향을 느끼는데. 터널을 뚫는데 물이 안 샌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할 수가 없습니다. 상식이니까요. 그런데 정부와 공단은 상식에 벗어난 답변을 가지고 있습니다.

터널이 뚫리는 구간 열 개 지역을 답사했는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장대한 터널이 황악사 직지터널인데요, 겨울 갈수기에 조사하니 하루에 450톤 물이 빠지고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터널이 배수터널이고 물이 빠지는 것이 상식인데, 유량조사를 통해 책임을 물을 수도 있을 겁니다. 오늘 소송 결과가 나왔지만, 저희는 1년 후 천성산이 어떻게 변했는지, 3년 후 계곡이 어떻게 변했는지, 생태계보전지구인 무제치 늪은 어떻게 마르는지 유량조사를 통해 보고서를 쓸 생각입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천성산을 다녀갔고, 조사하고 보고서를 냈는데, 그 전문가들을 향해 법원의 답을 구할 것입니다."

- 그동안 수 차례 단식을 했는데, 마지막 단식 후 회복은 어떤지.

"개인적으로는, 단식 후 회복을 별로 의심해본 적이 없습니다. 천성산을 의심해본 적이 없듯이 그냥 자연에 맡긴다는 마음으로 병원에 다니지 않고 약물치료를 하지 않고 있고요. 또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게, 얼마 전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제가 아픈 만큼, 이라고 생각을 해요. 제가 아프고 제가 마음 상한 만큼, 천성산 문제가 나한테는 중요했구나, 생각을 했어요.(눈물) 제가 차라리 아플 수 있을 때가 좋은 때라는 생각도 했어요.(눈물)"

- 이번 소송이 가처분신청인데, 만약 환경파괴의 명확한 근거들이 나온다면, 본안소송이나 법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 유량조사를 계속 한다고 했는데, 그 과정에서 유의미한 환경파괴의 증거들이 분명히 나타난다면, 법적 소송도 다시 제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법적으로 소송이 제기되겠지요. 근데 법적 소송의 대상이 누구냐는 문제가 더 큰 문제예요. 왜냐하면, 사회 전체가 (천성산 공사를) 수용했다는 것입니다. 누구 한 사람의 책임으로 법적 소송을 하기가 참 어려운 부분입니다."

"차라리 내가 틀렸기를 바란다."

- 오늘 판결로 인해 일부에서 '봐라, 아무 문제 없지 않느냐, 대법원도 터널공사에 손을 들어주지 않았느냐' 하고 그동안 문제를 제기해 온 스님한테 비난이나 질타가 올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차라리 제가 틀렸기를 바랍니다. 제가 욕을 먹고 (천성산에) 정말 피해가 없기를 바래요. 제가 원하는 건 어쩌면 그것밖에 없습니다. 천성산에 아무 피해가 없이 고속철도가 건설되기를 바랍니다. 저를 비난하는 그분들이나 법원이 옳기를 바랍니다. 근데 문제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4년 넘게 천성산 문제에 매진해 오셨는데, 어쨌거나 대법원이 기각 판결을 냈습니다. 지금 개인적인 심정은 어떻습니까?

"저는 천성산을 생각할 때마다, 많은 비유를 했지만, 그 중 한 가지가 '천성산,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바람을 불러 홀씨를 날려보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공사구간 중 3km 구간에 내원사 법적 소유의 4개 계곡이 들어가지만, 직접적인 피해자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내원사를 소송의 중점에 두지 않고 도롱뇽과 41만 친구들을 소송의 원고로 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개발과 발전으로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과 같이 서로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많이 만들고 싶어요. 천성산이라는 이야기, 도롱뇽이라는 이야기, 늘 말과 꿈과 신화의 이야기라고 저는 말합니다. 이것이 비록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나 이것은 정말 현실입니다. 제가 지금 있는 곳은 산골 오지입니다. 연세가 팔십, 구십 된 노인들께서 이 많은 계곡에 가재가 없어진 지 오래됐다고 하십니다. 우리 아이들은 계곡의 가재와 도롱뇽을 잊어버렸습니다. 다시 이땅에 그 생명들을 불러보자, 이렇게 생각합니다.

정치적이거나 거리에 설 수밖에 없었던 행정적인 부분은 지금은 묻어두고 덮어둬야 할 때가 아닌가도 생각합니다. 우리의 이야기가 승패에 있다고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여전히 여러분들과 천성산을 통해 희망의 지도를 만들어나가자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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