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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땅값…盧가 못한 일, MB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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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문제는 땅값…盧가 못한 일, MB는 할 수 있다"

[부동산 전문가 인터뷰] 변창흠 세종대 교수

강남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부동산 금융 부실이 진행되리라는 경고가 나온다. 가계가 빚더미에 깔려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마치 장기불황 직전의 일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무너진 미국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런 지적에 단호히 '아니오'라고 말한다. "장기 불황은 없다. 지금 가격 하락은 '안정화'라고 부르는 게 맞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변 교수가 걱정하는 것은 가격 하락이 아니라 정부의 거품 부추기기다.

그렇다고 변 교수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모두 비판적인 것은 아니다. 4.23 미분양 대책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시프트' 정책에 대해 그는 일정 부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봤다.

지난달 28일, 세종대 연구실에서 변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초 인터뷰의 목적은 4.23 미분양 대책으로 대표되는 정부의 건설사 대책을 점검하는 것이었으나 준비한 질문지가 소용 없었다. 변 교수가 쏟아내는 많은 정보들을 주워담다보니 어느새 한국인의 부동산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변 교수는 단순히 정부의 건설업 구조조정을 얘기하기 이전에 건설업에 의존하는 한국 정부의 건설 정책, 나아가 부동산 거품이 아니면 사람들이 먹고 살 길이 없어지는 한국의 경제구조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사태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은 땅에 있다고 말했다. 땅을 사유재산이 아닌, 공공재로 인식해야만 주택 거품 해소는 물론, 한국 경제의 질적 도약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야 말로 이 일을 해낼 좋은 여건을 얻었다고 그는 진단했다. 아래는 그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이제 건설업계도 생각을 바꿀 때가 됐다. 주택을 지어놓으면 팔리는 시대는 끝났다." ⓒ프레시안(김봉규)

주택, 콘도, 골프장, 건설업계의 '로또'

프레시안 : 정부가 건설업 지원을 위해 이른바 '4.23 미분양 대책'을 내놨다. 5조 원을 들여 11만6000여 가구에 달하는 미분양가구 중 2만 가구를 사들이는 등 4만 가구를 줄이겠다는 게 핵심이다. 어떻게 평가하나?

변창흠 : 이대로 놔뒀다가는 연쇄 파급효과가 나타날 것을 우려했으니 개입한 것 아니겠나. 부정적인 시각이 있지만, 나는 작년 대책에 비해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본다.

먼저 달라진 게, 이번에 정부는 준공 전 미분양 물량 매입가를 분양가의 50% 이하로 제한했다. 작년의 경우 지방 미분양 주택은 구입할 때 가격의 상한선을 두지 않고, 정부가 주택사업자와 협상을 통해 매입 가격을 정했다. 이제는 건설업자가 이번 사태에 어느 정도 책임을 지라는 얘기다. 현 정부 성격을 볼 때 기존보다 강한 개입이다.

기존 주택 보유자가 지방 미분양 아파트를 구입할 때, 지난 번엔 원래 갖고 있던 주택이 팔리지 않자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완화해버렸다. 이번에도 건설업체에서 관련 규제까지 풀어라고 하는데 이들 규제는 지켜냈다는 점도 잘한 일이다.

프레시안 : 정부는 건설업체에 돈을 쥐여 주고, 4대강 사업 등 대규모 토목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기에 오히려 건설업을 경기활성화 지렛대로 인식한다.

변창흠 : 우리나라는 건설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건설업이 침체하면 국가 경제 전체의 위기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다. 신성장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다보니 발목이 잡힌 셈이다.

건설업은 IT나 기계조립업에 비해 고용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또 경기에 민감한 저소득층을 대규모로 고용하다보니, 경제위기 시 정부가 건설업을 구조조정하기가 어렵다.

건설업이 경기하강기에 경제지표를 개선하기 가장 좋은 산업이다. 대규모 투자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정부가 4대강 사업에 그토록 목을 매는 이유가 여기 있다. 결국 위기가 닥치면 구조조정 대상이 오히려 규모가 더 커져버리는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건설업 구조조정을 미룰 수 없다. 대규모로 이뤄지고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게 건설업의 기본 속성이다. 또 한번 동원한 대규모 장비를 연속해서 재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원활한 장비 재활용이 이뤄지지 않으면 산업 자체가 위기에 빠지다보니 또 다른 대규모 토목사업을 찾아나서게 된다. 결국 이 과정이 지속되면 국토 공간 자체를 완전히 왜곡시키게 된다. 고리를 끊을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건설업계도 시장 예측을 할텐데, 왜 이렇게 막무가내로 주택 공급에 집중하다 위기를 맞았을까?

변창흠 : 건설업에서 선분양이 가능한 부문이 세 가지 있다. 주택과 콘도, 골프장이다. 간단히 말해 분양권 시장이다. 선분양이 얼마나 건설업체에 유리한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초기자금이 필요 없다. 부지만 매입해놓으면 이를 담보로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현금회전이 엄청나게 빨라진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건설업체 대부분이 주택시장에 목을 맨다. 실제 사업의 본질은 주택이 전혀 아님에도 주택이 개발 타당성 여부의 핵심이 되는 게 현실이다. 기업도시, 혁신도시 모두 마찬가지다. 원래 사업 목표는 테마파크 건설인데 어느새 주택분양이 중점 홍보되는 게 현실 아닌가. 주택만 분양해서 팔아놓으면 나머지 사업은 수익이 안 생겨도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프레시안 : 이번 미분양 사태가 이런 업계의 생각을 바꿀 계기가 될까?

변창흠 : 이제 업계도 생각을 바꿀 때가 됐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미리 정부가 일정 규모의 투자를 하지 않으면 사업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시기가 오고 있다. 당장 혁신도시 등 지역 미분양 사태를 봐라. 세종시는 택지가 분양이 안 되니 이미 분양받은 땅을 반납하는 사례도 나온다. 서서히 토목사업의 비중이 줄어들 것으로 본다.

미분양, 건설업계가 책임져야할 문제

▲미분양 사태는 건설업계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문제다. ⓒ프레시안(김봉규)
프레시안 :
미분양 주택이 이처럼 늘어나기 시작한 원인을 정부에서 찾을 수는 없나?

변창흠 : 2007년 9월 1일부터 민간 주택도 분양가 상한제(원가에 더하는 수익률을 정부가 적정하다고 판단하는 정도로만 더해 분양가를 책정하도록 하는 정책) 대상이 됐다.

앞으로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데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두려움을 가진 건설업체들이 시행일 이전에 대규모 물량을 쏟아냈다. 이게 부동산 시장 전체에 왜곡을 가져왔다. 2006년만 해도 6만채 정도가 공급됐는데, 2007년에는 13만채가 시장에 쏟아졌다. 이 물량들이 대거 쌓이면서 미분양 사태를 낳았다.

프레시안 : 그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의 규제가 미분양 사태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분양가 상한제를 실시하지 않았으면 시장이 스스로 조절을 했으리라는 얘기다.

변창흠 : 전체 미분양 주택의 80%가량이 지역도시에서 발생했다. 그런데 이들 도시는 분양가 상한제 대상이 아니다. 분양가 상한제가 미분양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결국 건설업계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문제다. 현재 미분양 주택의 99.5%가 민간 부문이다. 민간 건설업자가 스스로 판단에 따라 주택 가격을 (높게) 정했다.

그나마 전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로 가격을 규제했으니 망정이지, 이 규제가 없었으면 아마 주택가격은 더 높아졌을테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미분양 주택도 더 많아졌을 것이다. 정부 규제 때문에 미분양이 늘어났다고 볼 수 없는 셈이다.

프레시안 : 정부의 잘못은 전혀 없다는 건가?

변창흠 : 정부도 잘못이 있지만 규제가 이번 사태의 원인은 아니라는 얘기다.

건설에서 분양까지 시기가 오래 걸린다. 최근 미분양 주택 대부분이 2007년경 건설이 시작된 것이고, 좀 빠른 곳은 부동산 가격이 정점에 달했던 2005~2006년경 공사가 시작된 것들이다. 부동산 상승기에 토지를 매입해 건설하다보니, 당연히 장기 상승기조를 예측했을 것이다.

지역도시의 경우, 일정 부분 참여정부가 (건설업체의 경기 전망 오류를) 부추긴 면이 있다. 지역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지역에 10개 신도시를 만들었고, 기업도시 6개를 지정했다. 세종시가 들어서기로 했고 경제자유구역 6개가 지정됐다. 첨단의료복합단지까지 더하면 지역에만 신도시급의 대규모 단지 23개가 '동시에' 세워지는 상황이었다. 지역도시의 경제력으로는 견디기 버거운 수준의 대규모 개발사업이 일어났다.

게다가 이들 주택 대부분이 중대형이었다. 수요자의 경제력 수준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건 실책이다.

프레시안 : 중대형 평형 수요가 늘어나리라는 판단은 국민소득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고 가정하면 합리적이었다고 볼 수 있지 않나?

변창흠 : 민간기업이 제도에 대해 오해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주택건설 시 베란다 규제를 푼 걸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베란다가 트이게 되면서 과거에는 전용면적 85㎡(25평)였던 집이 사실상 122㎡(약 37평) 크기의 역할을 하게 됐다.

중대형 주택으로 이동할 수요가 줄어들게 된 셈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건설업체들은 중대형 평형 수요가 많으리라는 판단을 했다.

가구 구조 변화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과거에는 주택보급률을 주택수/보통가구로 산정했다. 그러나 이제 주택수가 아니라 주거호수를 가구수에 1인가구와 다가구주택 개별가구까지 포함한 수치로 나눠 산정한다(새 주택보급률). 당연히 1인 가구가 전부 주택수요자로 포함돼 가구수가 늘어난다.

인구는 안 늘어나는데 가구수가 갑자기 늘어나 마치 주택공급량이 떨어지는 것으로 착각이 가능하다. 민간주택업자는 물론, 정부도 이렇게 생각해버렸다. 그런데 1인 가구 대부분은 대학생, 독신 미혼자, 노인세대 등이다. 주거비 지출 능력이 떨어진다. 큰 주택을 지으면 당연히 미분양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거시경제 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점도 짚어야 함은 물론이다. 고용 사정이 개선되지 않고 경제 양극화도 지속되고 있다. 정상적인 원리금 상환 능력이 떨어져가는데 비싼 중대형 수요가 늘어날 리가 있나.

▲단독주택 표준화가 이뤄지면 도시 재개발 속도를 늦츨 수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주택 패러다임 변화 가능할까

프레시안 : 정부의 부동산 시장 개입이 필요하다고 확신하나?

변창흠 : 과거를 한번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옛날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도시계획 사업 대상이 아니었다. 건축 사업이니 민간이 알아서 하라는 게 한국 정부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어땠나? 80년대 들면서 아파트가 대규모로 만들어지기 시작하니 수만 채가 동시에 없어지고, 동시에 생겨났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집을 구하러 나가게 되니 집값이 요동쳤다. 그제서야 정부가 도시 재개발 사업 파급효과가 교통 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을 알았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 개입해야 하는 이유다. 최소한 급격한 변화로 인한 부동산 가격 파동의 증가는 막자는 거다.

프레시안 : 건설 경기가 이처럼 크게 흔들리는 근본 원인은 결국 아파트가 재테크 수단으로 온 국민에게 인식되어서가 아닌가?

변창흠 : 맞다. 우리 국민의 전체 자산 중 76%가 주택이다. 그리고 주택을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의 격차는 9배에 달한다. 대부분 사람이 주택을 자산증식 수단뿐만 아니라 노후 보장 수단으로 인식한다.

프레시안 :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서울시의 시프트 정책이 떠오른다.

변창흠 : 시프트가 부정적인 평가가 많지만, 살기 위한 곳으로서의 주택 개념을 사람들에게 인식시켰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고급차를 굴리는 사람이 시프트에 들어가는 사례를 마냥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지 않겠나. 영세무주택자의 입주 기회가 박탈당하는 문제가 있지만 변화를 유도하는 노력 자체에는 의미가 있다.

프레시안 : 그러나 시프트까지 아파트로 지어지는 것은 아쉽다. 아파트 난립이 도시 미관을 해치는 건 문제다.

변창흠 : 하나 확실한 것은 우리나라 주택건설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세계 곳곳에 우리나라 건설업체가 좋은 건물들 올리지 않나.

경쟁이 없어서 우리나라 아파트 수준이 낮은 것이다. 지금은 공공이 주택 분양 사업자를 정할 때 공공택지를 감정가로 정한 다음 추첨으로 결정한다. 이걸 가격 입찰제로 바꾸면 분양가가 오를까봐 겁나서다. 그러다보니 건설업체는 '어차피 택지로또인데, 싸거나 멋있게 만들 필요가 있나'하는 태도를 가진다.

차라리 디자인 경쟁을 붙이든지, 동일한 품질과 디자인을 주고 누가 더 싸게 공급할 수 있는지를 경쟁 붙이는 게 좋다. 이런 경쟁이 없으니 긍정적인 경쟁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

관광한국이 붐인데, 한국의 아파트 단지 중 관광상품화할 만한 데가 있나? 중국은 영국의 테임스강을 본떠 만든 100만 평 규모의 '테임스 시티'라는 대형 단지를 만들어서 관광지로 활용한다. 영국 집처럼 단층주택, 3~5층 주택단지다. 우리도 이런 것 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아파트만 늘어나고 단독주택은 사라져간다. 도시가 황폐해지는 이유다.

변창흠 : 단독주택도 얼마든지 표준화가 가능하다. 일본이 그렇다. 모리빌딩, 미쓰비시부동산과 같은 건설업자들이 단독주택 모형을 표준화해서 판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기성복을 사듯, 주택 수요자가 모델을 지정하면 그 모델 그대로 집이 나온다. 표준화됐으니 당연히 가격도 싸다.

건설업체가 안 하면 정부라도 나서서 이런 일을 해야 하는데 안 한다. 그러니 도시가 대단지 아파트로 가득 차버린다. 단독주택 표준화가 이뤄지면 그만큼 도시 재개발도 서서히 이뤄질 수 있다. 여러 모로 장점이 많다.

▲미국 부동산 경제가 왜 무너졌나? 본질은 고용 보장 붕괴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 없음). ⓒ뉴시스
美 모기지 붕괴, 본질은 고용보장 붕괴

프레시안 : 그런데 아무리 주택에 대한 인식을 바꾸자고 해도 현실적으로 이를 바꿔가기가 어렵지 않겠나? 부동산 불패는 이미 '신화'가 됐다.

변창흠 : 그렇다.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탓할 수가 없다. 주택을 대체할 자산증식 수단을 자꾸 개발해야 한다. 펀드 저축 등으로 자산운용 방식을 다양화해야 한다.

특히 안정적인 고용 창출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이 노후 생활에 충분하지 않은데다, 일본에 비해 고령인구의 경제활동 참가율 자체가 굉장히 낮다. 일본은 60세 이상 취업률이 60%에 이르는데 한국은 30%대에 불과하다.

일본에는 은퇴를 맞는 단카이세대(전후인 1947년에서 1949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일본의 고도성장기를 이끌었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올렸다.

반면 우리는 55세가 되면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데 노인 일자리 대책은 65세 이상이 대상이다. 그나마 대부분은 용돈 수준을 받는 소일거리다. 결국 55세부터 (대략적 사망 시기인) 80세 사이에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다. 집이 없으면 은퇴 후 삶을 버틸 수가 없다.

결국 이 공백 부분을 적극적인 일자리 창출로 메워야 한다. 이게 안 되면 사람들은 결국 부동산에 붐을 일으켜 차익을 얻으려 할 것이다. 부동산으로 모든 국민이 올인해서 거품을 만들어내야만 노후가 보장되는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그러나 한국 경제는 고용 유연화에 의존하고 있다. 고용 보장이 안 된다.

변창흠 : 미국의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제도는 원래 포드 혁명(대량생산 체제) 이후 노조 투쟁으로 얻어낸 안정적인 고용을 전제로 한다. 대출을 장기화하려면 당연히 대출을 받는 이의 장기고용이 보장돼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어떤가. 남성의 평균 결혼 연령을 32세로 잡고 주택 구입 시기는 대략 37~8세로 추정하자. 주택담보대출 기한을 20년으로 잡으면 40세에서 60세까지 고용이 보장돼야만 정상 지불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이를 10년 정도밖에 못 끌고 간다. 가계파산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다.

미국의 모기지 붕괴가 왜 일어났나? 파생상품 등이 거론됐지만 본질적으로는 고용 보장의 붕괴다. 장기 고용의 미보장이 모기지 시스템의 악화로 이어졌다. 주택공급과잉과 주거비 원리금 상환능력 부제가 이번 세계 경제 위기의 핵심이다.

프레시안 : 한국 정부가 경제위기 이후 일자리 창출에 나섰으나 대부분 단기 임시직에 그쳤다. 일자리 문제에 대한 온 사회적 반성이 필요해 보인다.

변창흠 : 우리나라는 미국의 경제 붕괴 현상만 봤다. "주택 가격이 떨어지니 경제위기다"라는 거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안 떨어질까"하는 고민만 했다. 그래서 나온 해법이 주택수요 촉진, 양도소득세·취득세 감면, 미분양주택 매입 아니냐.

결과적 요소만 보고 그 원인인 사람들의 '주택구입능력 부재'와 '주택공급 과잉'을 무시해버린 것이다. 지금이라도 고용의 안정적 창출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식 불황 가능성 없다

프레시안 : 지금 한국은 장기불황에 빠져든 일본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식 불황이 한국에 도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변창흠 : 글쎄…. 별로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 같은데? 부동산 거품 붕괴가 일본 경제의 위기로 작용했다는 시각은 오해다.

물론 일본도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80년대 경기 활성화를 위해 민활법, 리조트법, 테크노폴리스 시티 건설 등으로 온 전역에 부동산 개발 붐을 일으켰다. 그 결과가 2500여 개에 달하는 골프장이다.

이에 따라 전국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것도 한국과 같다. 한국은 주택에서 거품이 생겼지만 일본은 상업용지, 토지에서 거품이 발생한 게 다른 점이다.

그러나 '한국도 일본처럼 부동산 가격이 꺼지면 침체가 오겠구나'라고 보는 건 무리다. 일본 경기침체의 근본 원인은 제조업 기반의 해외 이전, 경제활동 참여율 하락, 일본이 강점을 가졌던 산업의 경쟁력 약화 등이다.

프레시안 : 경제에서 차지하는 건설업 비중이 높은 건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다. 일본의 부동산 가격이 꺼지면서 경제가 하락했다는 건 통념 아닌가?

변창흠 : 물론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 자산 가치가 하락하니 경제에 나쁜 면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비용 구조가 해소돼 고용이 늘어나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2002년 고이즈미 내각이 공업지역 제한 등에 관한 법률을 풀었다. 이 결과 도쿄 유입인구가 한꺼번에 150만 명 늘어났다. 그런데 이런 정책이 빛을 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도쿄의 부동산 가격이 활황기 때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업 비용이 줄어드니 종전에는 사업성이 없던 사업을 진행시키는 게 가능해졌다.

우리도 지금 부동산 가격의 하락을 마냥 위기로만 볼 필요가 없다. 나는 지금 가격 하락을 '안정화'라고 보는데, 가격이 안정화되면서 고비용 구조를 떨어뜨려야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것도 가능하고, 고용 창출의 기반도 생긴다.

프레시안 : 폭락을 걱정하는 입장도 많다.

변창흠 : 우리나라는 급격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전세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주택을 구입할 때 전세자금을 종잣돈으로 두고 산다.

이에 더해, 참여정부 때 규제를 잘 해서 주택구입자들의 총 대출금이 주택가격의 절반을 넘지 않는다(총부채상환비율, DTI). 미국은 이 비율이 거의 100%였고, 일본도 90%에 달했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가계가 감당해야 할 부담이 미국이나 일본만큼 크지 않다는 얘기다.

오히려 지금 가격 하락을 기회로 보고 연착륙을 유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금 문제는 정부가 다시 거품을 일으키려는 데 있지, 하락이 아니다.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아파트 가격은 문제다. 아파트는 땅 위에 솟아오른다. ⓒ뉴시스

바보야, 문제는 땅이야!

프레시안 : 그런데 집값을 낮추는 것만으로 과연 이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될까? 집보다 땅이 문제같다. 땅값이 비싸면 아무리 건설업체가 집값을 현실화하려 해도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땅의 과점 상황은 주택보다 훨씬 심하다.

변창흠 : 아주 중요한 문제다. 건설업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택지구입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하소연이 많다.

서울에서 뉴타운 사업을 할 때, 강남의 경우 택지구입가격이 3.3㎡당 6000~7000만 원 정도고 강북은 3000만 원 정도다. 그러면 강북에서 용적률을 200%로 잡고 아파트를 지으면 토지비만 1500만 원이다. 여기에 기본형 건축비를 3.3㎡당 500만 원으로 잡고 금융비용까지 추가하면 벌써 2000만 원이 넘어가버린다. 강북 아파트의 기본 공급 가격이 3.3㎡당 2000만 원 이상 나온다는 소리다. 그러면 109㎡(약 33평) 주택은 기본이 7억 원 선이다.

그렇다면 토지비용을 낮추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건설업체 주장은 용적률을 높여달라는 거다. 앞서 강북의 경우, 용적률을 규제완화해서 300%로 높이면 토지비용이 1000만 원으로 줄어든다.

다른 방법은 대형화다. 대형화하면 단위면적당 재료비가 줄어드니 건축비가 줄어들고, 집은 그만큼 비싸게 분양 가능하다. 임대주택 의무화를 풀어달라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런데 알다시피 이런 규제 완화는 부작용이 너무 많다.

그러면 다른 방법은 없나. 역대 정부들이 들고 나온 해법은 토지 규제를 푸는 것이다. 그린벨트, 군사시설보호구역을 풀어버리면 그만큼 공급 가능한 토지가 늘어난다는 이유다. 2007년 기준으로 도시형 용도의 토지비중이 전 국토의 6.1% 정도인데, 정부는 이를 2020년까지 9.2%로 늘리려고 하고 있다. 약 15년 만에 우리 국토의 도시형 용도가 66% 늘어나는 것이다. 이 땅에 살던 인간이 30만 년간 쓰던 땅의 절반에 달하는 면적을 10여년 만에 더 늘리겠다는 엄청난 발상이다. 참여정부의 목표도 이것이었다. 참여정부의 가장 치명적인 실책이라고 본다.

실제로 토지 규제를 풀고 공급을 늘리면 과연 가격이 떨어지나? 더 올라간다. 당장 서울의 면적이 늘어난다고 명동 가격이 떨어질 걸로 보나? 배후지가 늘어나니 그만큼 명동의 가치는 더 오르게 된다.

프레시안 : 토지 가격을 낮추는 방법은 없나?

변창흠 : 유일한 방법은 토지를 보유하고 있어도 소득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토지에서 생기는 이익을 원천적으로 환수해버리자는 얘기다. 이 부분은 참여정부를 칭찬해야 한다. 부재지주(토지 소유자가 실제로 소유지에 거주하지는 않는 땅), 즉 부동산 투기를 위해 갖고 있는 땅에 양도소득에 더해 주민세까지 매겨서 66%를 세금으로 때렸다.

그런데 현 정부 들면서 이를 일반세율(보유기간 2년 이상의 경우 6~33%)로 낮춰버렸다. 토지가격을 오히려 더 높여버린다.

프레시안 : 결국 토지공개념을 거론하게 되는데, 저항이 만만치 않다. 참여정부 때도 '사회주의적 악법'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해외에서는 이런 사례가 많나?

변창흠 : 프랑스 파리에 갔더니 토지선매제도가 있더라. 토지 소유자가 토지를 제3자에게 매각할 때 반드시 매도신고서를 작성해서 신고하도록 했다.그러면 시청의 전담 공무원이 이를 심사한다. 그래서 만약 이 땅을 공공을 위해 써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면 시가 배타적으로 먼저 살 수 있는(선매) 권한을 가진다. 파리 전역이 도시선매지구로 지정돼 있다.

토지 소유자가 시에 얼마에 팔 것 같나? 1년 전 가격으로 팔아야 한다. 예를 들어 현 시세가 3.3㎡당 100만 원이라고 해도 소유자는 무조건 1년 전 가격인 80~90만 원에 팔아야 한다. 이 가격에 팔기 싫다고 하면 제3자에게도 못 판다.

그렇다고 마냥 안 팔 수 있나? 그것도 불가능하다. 만약 시에서 꼭 수용해야 하는 땅이라고 판단하면 법정으로 가져가 버린다. 소송이 끝나는 데만 보통 10년 정도가 걸린다. 결국 토지 소유자는 현금화를 위해 땅을 팔려고 했는데, 시에서 못 팔게 하면 10년간 현금화도 못한다는 얘기다. 엄청나게 강력한 법이다.

프랑스가 왜 이렇게 강력한 법을 시행할까? 토지는 사유재산권이기에 앞서 공동체를 위해 존재한다는 범 사회적 인식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토지를 사유재산으로 본다. 나라에서 수용하려고 하면 이 보상 과정에 엄청난 이익이 생긴다는 것을 사람들이 안다. 정부가 개발계획을 발표해야 대상 토지를 수용할 권한을 갖게 되는데, 이미 그 때는 감정가가 발표 이전보다 몇 배 올라 버린다. 아무리 나라에서 법원에 갖고간다 하더라도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공공이 무조건 진다.

프레시안 : 그래도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그 동안 사유재산으로 인식돼 오던 땅을 공공의 재산으로 바꾸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변창흠 : 혹시 대전에 가봤나? 대전역 앞에 보면 두 집 건너 하나씩은 비어 있다. 유성, 둔천지구 등이 개발되면서 돈이 다 그곳으로 몰렸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곳은 땅값이 내려야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개발계획이 없어도 다들 '언젠가 개발되겠지'하면서 버티면 가격이 안 떨어진다. 당연히 공공으로서는 개발비가 비싸니 개발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결국 도시 중심부의 기능 상실화로 이어지고, 도시는 정체된다. 땅을 공공의 재산으로 보면 긍정적인 면이 많아진다는 얘기다.

지역 경기의 침체도 한번 토지 사유재산권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알다시피 대부분 기업들이 돈만 있으면 수도권에 공장을 지으려 한다. 기업들이 수도권 규제완화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나. 단순히 입지 때문에 그럴 것 같나? 아니다. 부동산 개발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이 당연히 개발이익이 높으니 그곳으로 기업은 몰리게 된다. 수도권에 공장 지어서 망하더라도 땅값은 오르니 좋은 것 아닌가. 현실이 이런데 어떤 우량 기업이 지역도시에 가려 하겠나.

97년 이후 부동산 개발이익 5%만 회수

프레시안 : 토지 과점 현상을 정책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개발이익 환수제도를 이용해 부동산에서 생기는 불로소득을 빼내야 한다. ⓒ프레시안(김봉규)
변창흠 :
일단 우리나라도 작년에 토지비축제도(정부가 개발대상 토지를 미리 매입한 후 적절한 때 매각하거나 공공을 위해 사용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토지주택공사(LH공사)가 도로를 놓으려 할 때, 한꺼번에 도로를 놓을 자리를 다 사버리는 식이다. 과거에는 대규모 사업을 할 때 한꺼번에 땅을 못 사니, 도로 예정지역 땅값이 미리 다 올라버려 공공사업 비용이 많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토지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은 5%의 소유주가 전체 토지의 63%를 과점하고 있다. 이로 인해 부재지주에서 생기는 개발이익은 전혀 환수되지 않는다. 과거 관련 통계를 추계해보니 1997년부터 지금까지 부동산에서 발생한 개발이익이 5%만 회수됐다. 개발이익 환수제도로 부동산 보유에 따른 불로소득을 빼내야 한다.

프레시안 : 헌법을 개정하거나, 최소한 법철학은 바꿔야 가능할 것 같다.

변창흠 : 그게 문제다. 우리 대법원의 성향이나 과거 판례 등으로 미뤄볼 때, 프랑스처럼 강력하게 공공이익을 관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헌법에 공익을 위해 토지를 수용할 근거는 있지만, 감정가에 따라 보상을 해주다보니 땅 소유자는 떼돈을 벌게 돼 있다. 원래는 개발계획 발표로 인해 영향을 받기 이전 수준으로 보상하라고 했으나, 개발계획 발표로 주변 땅값까지 다 오르니 결국 사유재산이 이긴다.

국민들의 인식 수준이 높아져야 하지 않겠나. 토지의 사회성과 형평성을 좀 더 생각하고, 공동체적 자산으로서 토지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꼭 헌법을 바꾸지 않더라도 헌법 범위 내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리라고 본다.

앞서 참여정부 때 사회주의 논란이 일었다고 했는데,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야말로 토지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업적을 남기는 게 가능하리라고 본다. 보수 정부가 이런 정책을 추진하면 그만큼 반감이 덜할 것 아닌가. 정당성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정부이니만큼, 적극적으로 근본적인 토지개혁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의 지지기반이 땅부자, 집부자들인데 가능하겠나?

변창흠 : 집은 전 국민이 자산증식의 목표로 삼고 있으니 어렵다. 그러나 땅은 다르다. 토지는 지난 정부에서 과세 수준을 66%까지 올렸는데도 토지소유자들이 저항 한 번 못했다. 오히려 과점돼 있으니 토지공공화가 가능하다. 어차피 대부분 사람들의 생활과는 전혀 관계 없는 문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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