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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복귀 한 달, 삼성은 무엇이 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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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건희 복귀 한 달, 삼성은 무엇이 변했나

[김상조 칼럼] 삼성, 해명하려거든 제대로 해라

지난 14일에 경제개혁연대는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의 전현직 대표이사 3명을 배임 및 분식회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필자가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삼성과는 질긴 악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작년 8월 14일 SDS 관련 파기환송심을 끝으로 삼성특검에 따른 형사재판 절차가 마무리되었을 때, 이 사건과 관련하여 또 다시 삼성의 사장들을 고발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사건이 꼭 형사고발이라는 마지막 수순으로까지 갔었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지금도 필자는 의아해하고 있다.

삼성과의 질긴 악연

형사고발에 이르기까지 전에도, 이 사건과 관련하여 경제개혁연대는 의문제기 및 해명요구 → 금감원 감리요청 → 국세청 탈세제보 등의 수순을 다 거쳤고, 그 때마다 <프레시안>에 기사가 떴으니, 이 글의 독자 대부분은 관련 내용을 어느 정도는 알고 계실 것으로 짐작한다. 다만 노파심에 간단히만 요약하면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08월 7월 삼성특검 1심 선고를 불과 며칠 앞두고 이건희 회장은 법원에 '양형참고자료'라는 문서를 제출했다. 물론 이 문서는 법원에 비공개로 제출된 것이지만, 익명의 제보를 통해 입수하게 된 것이다.

그 문서에서 이건희 회장은 에버랜드의 전환사채와 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헐값발행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지는 않았으므로 형사적으로도 무죄이고, 따라서 민사적으로도 배상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다만, 그동안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한 책임을 통감하면서, 회사의 손해 발행 여부와는 무관하게, 즉 유무죄 판결 결과와는 관계없이 삼성특검이 회사의 손해라고 공소장에 기재한 금액 그대로 두 회사에 지급했으니, 법원 선처를 기대한다고 썼다. 그리고 돈을 준 이건희 회장과 돈을 받은 대표이사들의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 경제개혁연대가 공개한 이건희 전 회장 측이 법원에 제출한 양형참고자료 중 일부 ⓒ프레시안

그런데 회사가 돈을 받았으면 회계장부에 나타나야 할 텐데,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2008년도 감사보고서에서는 2509억 원(에버랜드 970억 원, SDS 1539억 원)이나 되는 거금이 들어온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시 1년이 지나고 최근 공시된 에버랜드의 2009년도 감사보고서를 보니 역시나 아무 흔적이 없고, 다만 SDS의 경우에만 약 227억 원 정도만 회계처리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정황은 명확해졌다. 에버랜드는 이건희 회장이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으니 970억 원 전액을 다시 돌려준 것이고, SDS는 파기환송심에서 유죄판결이 난 227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 1312억 원 상당을 돌려준 것이다. 삼성도 돈을 돌려주었다는 사실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삼성측 관계자는 한겨레신문과의 통화에서 "애초 이건희 회장이 지급한 돈은 법원에서 회사 손해액이 결정되면 그에 따라 정산하기로 했었다"고 해명했다. 즉 경제개혁연대가 확보한 양형참고자료에는 '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돈을 지급했다'고 쓰여 있지만, 삼성 측은 재판 결과에 따라 사후정산하기로 약정했다고, 즉 '무죄 판결이 나면 돈을 다시 돌려주기로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법원 제출 문서와 다른 내용의 이면 합의 존재?

고발했으니, 이제 검찰의 판단만 남았다. 그리고 검찰이 수사해야 할 내용도 간단하다. 삼성 측이 주장하는 '사후정산 약정'의 증거자료를 찾으면 된다. 그 약정의 증거가 명확하게 존재하고, 이를 법원에도 공식 제출했다면, 대표이사 3명(돈을 받은 이후 에버랜드 대표이사가 교체되어 피고발인이 3명이 된 것임)은 배임 및 분식회계 혐의는 벗겨질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 사후정산 약정의 증거가 존재할 것 같지가 않다. 경제개혁연대가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9개월 전인 2009년 7월 14일이다. 그 이후 9개월 동안 삼성은 경제개혁연대에 대해서건 아니면 언론에 대해서건, 공개적으로든 아니면 비공개적으로든, 그 사후정산 약정의 증거를 제시하면서 깨끗하게 해명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그랬다면 형사고발로까지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금감원 감리요청이나 국세청 탈세제보에 이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삼성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경제개혁연대와 같은 '반기업적 단체'의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아예 대응할 필요도 없어서? 만약 그랬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삼성이 경제개혁연대를 상대하기 싫어하는 거야 십분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사건은 이미 많은 언론이 보도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삼성이 깨끗하게 해명할 수 있는 증거자료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관심에 대해서까지도 철저하게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만약 그랬다면, 삼성이 스스로의 언론 통제력에 대해 너무 과신하고 있는 것이다.

또 있다. 경제개혁연대가 감리요청한 것에 대해 공인회계사회(비상장회사에 대한 회계감리는 금감원이 직접 하지 않고 공인회계사회에 위임하고 있다)가 '이상 없음'이라는 답변서를 보내왔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그렇게 판단한 근거가 단 한 줄도 설명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전화로 물어보니, 공인회계사회 관계자 왈, "기업 비밀이라 말해줄 수 없다. 정 궁금하면, 삼성에 직접 물어봐라."란다. 황당하다. 이런 경우는 없다. 이해관계자(경제개혁연대는 SDS의 주주다)가 충분한 근거자료를 갖추어 감리를 요청했는데, 공인회계사회가 자신의 판단의 근거를 단 한마디도 설명하지 않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만약 사후정산 약정의 증거가 실재하는 것이라면, 공인회계사회가 답변서에 기재하지 못할, 또는 최소한 구두로라도 언급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만약 그랬다면, 공인회계사회, 나아가 우리나라 회계법인 모두가 삼성의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것과 같다.

삼성, 법원도 속였나?

결론적으로, 10년 이상 삼성과의 질긴 악연을 이어오고 있는 필자의 감으로는, 그 사후정산 약정이라는 것이 문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이 정도 문서야 얼마든지 사후적으로 조작해낼 수 있는 거지만….) 이건희 회장과 계열사 사장들이 돈을 주고받는데, 그것도 그 사실이 공개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법원에 제출한 공식 문서와는 전혀 다른 내용의 약정을 문서로 남겨 놓는다? 필자가 아는 삼성은 절대 그렇게 할 사람들이 아니다. 그 사후정산 약정이라는 것은, '어떻게 회장님 돈에 손을 대냐'라는 식의, 삼성 고위임원들 사이에서는 이심전심 통하는 암묵적 상식일 것이다. 그 이심전심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고위임원으로 생존할 수 없는 조직이 삼성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문서로든 또는 이심전심으로든 간에, 만약 사후정산 약정이 존재하는 것이라면, 법원도 그 내용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느냐 라는 전혀 별개의 문제가 발생한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회사의 손해 발생 여부와 무관하게 이건희 회장이 돈을 지급했다'라는 양형참고자료의 서술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약정이 존재한다면, 그 역시 공식 문서로 법원에 제출되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건희 회장은 법원을 기망한 것이다. 다시 말해, 삼성이 사법부의 권위에 먹칠을 한 것이다.

필자가 이렇게 거칠게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이건희 회장의 유죄가 확정된 SDS 파기환송심 판결문 51쪽에는 "피고인 이건희가 피해자인 SDS가 입은 손해액 227억여 원 이상을 SDS에 납부함으로써 그 피해가 회복"되었음을 집행유예 선고의 양형사유로 언급되어 있다. 즉 법원은 이건희 회장이 특검이 공소장에 회사 손해액으로 기재한 1531억 원을 SDS에 이미 납부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고, 이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사유로 인정하고 있지만(여기까지는 양형참고자료로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다), 법원이 회사의 손해액으로 최종 확정한 227억여 원 이상은 이건희 회장에게 되돌려 주는 것으로 약정되어 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만약 이러한 내용의 사후정산 약정이 법원에 공식 문서로 제출되지 않았다면, 이는 삼성이 위계로써 법원의 재판에 관한 공무 집행을 방해한 것이 된다. 아니, 형사적으로 시시비비를 따지기 전에, 회사보다 총수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삼성 임원들의 왜곡된 인식구조가 사법부의 권위에도 도전하게 만든 것이다. 검찰이 이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건희 회장 복귀, 삼성은 무엇이 변했나?

▲ 오는 24일이면 이건희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지 한달이 된다. ⓒ연합
이번 주 토요일(24일)이면,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 회장으로 공식 복귀한지 한 달이 된다. 토요타 리콜 사태를 보면서, 애플의 아이폰 공세를 보면서 느낀 삼성의 미래에 대한 위기감이 회장 복귀의 근거였다. 이후, 비록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삼성에는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가?

익히 예상되었던 거지만, 이건희 회장 개인의 동정에는 변화가 없다. 거듭 말하지만, 이건희 회장에게는 공식 직함이 필요 없다. 그는 어차피 은둔의 제왕이다. 이건희 회장에게 공식 직함을 붙여줄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회장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해야 할 가신들이다.

지난 한 달 간 확인된 삼성의 유일한 변화는, 외부의 비판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트위터와 블로그 등을 통해 김용철 변호사의 책에 대한 반론을 제기했고, 백혈병 발병 의혹을 받고 있는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공장을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삼성이 외부 비판에 적극 대응한다는 것 자체는 권장할 일이다. 소통은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통은 일방적인 홍보가 아니라 쌍방향의 대화이어야 한다. 삼성이 그 놀라운 경영성과에 불구하고, 왜 언제나 삼성공화국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논란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회장에게 과잉충성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왜곡된 조직문화를 혁신하고, 조직의 문제점에 대한 쓴 소리가 존중받는 진정한 소통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토요타의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고, 애플의 혁신성을 따라잡을 수 있는, 삼성에 내재한 위기의 징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경제개혁연대가 에버랜드와 SDS의 대표이사들을 고발한 사건에 대해서도 제대로 대응하기를 바란다. 법원에 제출한 공식 문서와는 전혀 다른 내용의 이면 약정이 존재한다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비공식 해명이 아니라, 정말 글로벌 기업 삼성답게 제대로 설명하기를 바란다. 검찰에 불려가서 법무실 차원의 법률적 해명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해 공개적으로 설명하고, 설명이 안되는 부분은 떳떳하게 책임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삼성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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