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다양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하나는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의 대대적인 회계조작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 두 회사의 지난해 감사보고서에는 이건희 회장이 지급했다는 돈이 들어왔다는 기록이 없다. 약 970억 원, 약 1539억 원에 달하는 돈이 증발해버린 셈이다.
이 양형 참고 자료에는, 이 전 회장이 삼성에버랜드, 삼성SDS에 각각 969억 9423만 5000원과 1539억 2307만 6922원을 지급하고 양도소득세포탈세액 약 1830억 원을 이미 납부했으며 증여세액 약 4800억 원을 납부할 예정이라고 돼 있다. 이 자료에 기재된 증여세가 실제로 납부됐는지 여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만약 이 전 회장이 증여세를 냈다면, 당시 그가 사용한 돈은 9139억 원에 달한다. 이 돈의 출처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전 회장이 이 돈을 쓰고, 이를 양형 참고 자료에 기록한 이유는 법원에 선처를 호소해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 돈의 조성 과정이 떳떳하지 않다면, 법적·도덕적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그리고 삼성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과 삼성SDS BW 헐값 발행 사건에 대해 삼성 측 스스로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건희가 에버랜드와 SDS에 건넨 970억 원과 1539억 원, 회계 누락
경제개혁연대는 14일 이 단체가 지난 7일 입수한 삼성 특검 사건에 관한 삼성 측 자료를 공개했다. 삼성 측 변호인이 삼성특검 사건(2008 고합 366) 1심 재판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한 양형 참고 자료다.
이건희 전 회장과 삼성에버랜드, 삼성SDS 대표이사의 직인이 찍혀 있는 이 자료에는 "이 전 회장이 삼성에버랜드 CB 사건 및 삼성SDS BW 사건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데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이들 회사에 각각 969억 9423만 5000원과 1539억2307만 6922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금융감독원에 공시된 삼성에버랜드의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보면, 이 회사의 지난해 영업외 수익은 323억 5925만 7000원이다. 이건희 전 회장이 이 회사에 줬다는 969억 9423만 5000원의 행방을 알 수 없다. 또 삼성SDS가 공개한 지난해 영업외 수익은 624억 6080만 3000원이다. 이 전 회장이 줬다는 1539억2307만 6922원의 행방을 알 수 없다. 자산수증이익 등 다른 항목을 살펴봐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결국, 가능성은 두 가지다. 이 전 회장이 법원에 허위 진술을 했거나,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가 회계 조작을 했거나다.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14일 삼성그룹 사장단 협의회에 보낸 공문에서 "2008년 7월 11일에 이건희 전 회장이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에 삼성특검의 공소사실에 따른 손해액을 지급한 것이 사실인지 여부와 해당금액의 회계처리 내역 및 원칙 등"에 대해 질의했다.
ⓒ경제개혁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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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측이 법원에 제출한 자료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밖에도 많다. 이건희 전 회장 등이 삼성에버랜드 CB, 삼성SDS 기존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점을 삼성 측 변호인이 인정한 대목도 그 중 하나다.
이 자료에서 삼성 측 변호인은 "(삼성에버랜드 CB 발행, 삼성SDS BW 발행으로 인해) 법적으로는 삼성에버랜드, 삼성SDS에 아무런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고, 따라서 피고인 이건희 등이 공소장 기재 금액들을 위 각 회사에 지급하여야 할 법적인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도, "전환사채 발행 당시의 삼성에버랜드 주식의 가치 및 신주인수권부 사채 발행 당시의 삼성SDS 주식의 가치가 전환사채의 전환가격인 7700원, 신주인수권부 사채의 전환가격인 7150원보다 높다고 판단될 경우에 적어도 위 각 회사의 기존 주주들에게 그들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가 희석되는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볼 여지가 있으며, 이러한 주주들의 손해는 주식의 적정한 가치와 실제 납입된 금액의 차이가 회사에 납부됨으로써 전보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납부 약속한 증여세 4800억 원, 실제로 냈나?
또, 이 단체가 입수한 삼성 측 변론 자료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삼성특검 공소장에 기재된 2000~2006년 사이의 양도소득세 포탈 관련 본세 및 이에 대한 가산세 등 약 1748억 원과 2007년분 양도소득세 약 82억 원 등 총 1830억 원의 미납세금을 이미 납부했다고 돼 있다.
그리고 이 자료에서 삼성 측 변호인은 "차명주식은 법률상 주식의 명의신탁으로서, 과세관청은 주식의 명의신탁에 대하여 증여세를 부과"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피고인 이건희는 현재 증여세를 산정하여 납부를 준비하고 있는데, 대략 4800억 원 정도의 증여세를 납부해야 할 것으로 추산"되며, "피고인 이건희는 증여세 금액이 확정되는 대로 바로 이를 납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삼성 측이 법원에 약속한 증여세 납부가 예정대로 이루어졌는지 여부도 질의했다.
이건희가 형량 감경 위해 쓴 수천억 원, 출처는?
이어 경제개혁연대는 이 전 회장의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에 대한 손해변제액, 양도소득세포탈세액, 증여세 납부예정액 등 총 9139억 원에 대한 조달재원 및 차명재산 처분 여부에 대해서도 질의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삼성특검은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 명의로 관리된 차명주식 가액이 4조 1009억 원(2007년 12월 말 기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이후 삼성그룹의 발표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등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차명주식 가운데 현재까지 실명전환된 것은 약 3조 5923억 원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특검 발표와 약 5,086억 원의 차이가 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차액에 삼성특검이 밝힌 차명 예금·채권·수표 등 4364억 원을 모두 더하면 약 9450억 원이 된다. 삼성 측이 법원에 제출한 양형 참고 자료에서 이 전 회장이 손해변제액 및 세금납부액(증여세 납부 계획 포함) 등으로 지출했다고 밝힌 금액인 9139억 원과 거의 일치한다.
이에 대해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이 전 회장이 그간 불법 차명 계좌로 관리해 왔던 자산을 자신의 형량 감경을 위해 사용했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고 풀이했다. 이어 그는 "삼성 측은 차명 자산의 실명화 내역 및 사용처를 공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약속은 전혀 이행되지 않았다"며 이번 질의에 대한 삼성 측의 답변을 촉구했다. 하지만, 삼성 측은 이런 질의에 대해 아직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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