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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영웅' 만들기, 누굴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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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영웅' 만들기, 누굴 위한 것인가

[홍헌호 칼럼] 군 수뇌부의 생명경시ㆍ책임회피는 외면

KBS가 지난 11일 <천안함의 영웅들,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특집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TV 채널을 돌리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뭔가 못 볼 것을 본 것만큼이나 불쾌했다. 그들의 속셈이 훤히 들여다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KBS 시청자 게시판은 이 방송에 대한 비난 글로 가득 찼다.

실종자 가족들도 KBS 성금 운동에 대해 "실종자들의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은 지금 성금을 받기엔 부담스럽다"며 정중히 사양했다.

천안함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가. 그것은 군이 우리 '군인'들의 생명을 너무나도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천안함에 처음 사고가 터졌을 때 승선해 있던 군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인근에 산재한 다른 전함들의 도움을 받아 빠른 시간 내에 별 탈 없이 구조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무참히 짓밟혔다. 그들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전함들은 그들을 구조하는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정작 그들을 구한 것은 해경이었다. 그것도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어처구니없게도 우리 군에는 전함에 사고가 발생했을 때 다른 전함들이 어떻게 동료들을 구해야 하는지 아무런 대비책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유사시 동료들의 생명을 구하는 시스템이 민방위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필자는 20년 전 군복무를 했다. 당시 동료들과 어설픈 훈련과정을 보며 이런 농담을 주고 받곤 했다. "우리가 궁지에 몰렸을 때 구해낼 시스템은 제대로 되어 있는 거야?" 불행히도 농담은 농담으로 끝나지 않았다.

최근 일부 언론들이 '천안함 영웅'들을 만들어 내는데 열중하고 있다. 마음이 편치 않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국민들의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속셈이 들여다 보이기 때문이다. 또 필자의 군 경험상 그들의 '영웅론' 자체가 합당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일반보병 후방에서 포 사격 지원을 하는 포병적 성격을 가진 보병이었다. 어느 날 포사격 훈련을 하는데 표적 주변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포탄이 폭발하는 과정에서 표적 일부 지점에 불씨를 남긴 것이다.

중대장은 산불진화를 하고 오라고 지시했다. 표적과 그 주변에 불발탄이 숱하게 묻혀 있는데 산불진화를 하고 오라니. 지금의 필자라면 당연히 항의했을 것이다. 산불이야 다른 수단으로 진화하면 될 것 아닌가.

소대장도 난처해 하며 산불의 불씨만 제거하고 오는 것이라 안심시켰다. 덧붙혀 10여 명만 가면 될 것 같다고 했다.

누가 그 위험한 곳에 산불을 끄러 갈 것인가. 그러나 그 곳에 갈 사람이 결정되는 데는 채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누군가 주섬주섬 채비를 차리자 10여 명의 병장들과 상병들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필자도 일등병이 짊어지고 있던 무전기를 넘겨받아 표적으로 향했다.

비장함 같은 것은 없었다. 그 때는 20대 초반, 피가 끓는 때였다. 우리가 그 곳에 간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이등병, 일등병을 그 곳에 보낼 수 없었기 때문에.'

다행히도 산불은 크게 번지지 않았다. 표적 주변에서 날아와 쌓인 낙엽들에 불이 붙은 것이었는데 바람이 부는 날이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번지지 않고 바로 진압되었다.

비장함은 없었지만 긴장을 한 것은 사실이었는데 의외로 일이 싱겁게 끝났다. 일이 싱겁게 끝났기 때문인지 그 이후 아무도 그 위험한 산불진압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왜?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사였기 때문에.

필자는 지금 복무 중인 군인들도 우리처럼 행동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군인들은 때로 다른 집단에서 보이지 못하는 애틋한 동료애를 보여준다. 그것은 그들이 다른 어떤 집단보다 더 많은 고통을 함께 겪어냈기 때문이다.

▲군이 천안함 생존자들에게 환자복을 입혀 인터뷰에 등장시킨 것을 두고 "군 수뇌부가 피해자들을 이용하기 위해 이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뉴시스

물론 필자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살신성인의 정신을 보여준 고 한주호 준위의 정신에 대해서까지 평가절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천안함 생존 병사들의 일상적인 전우애까지 영웅화시켜 실추된 해군의 이미지를 만회하고, 더 나아가 이를 이용하여 군 상층부의 무능한 실체를 덮어보려는 상징조작에 대해 눈감아 주기는 어렵다.

심지어 KBS는 천안함 실종병사들의 실종원인에 대한 명확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이들에게 '영웅' 칭호를 억지로 붙여주며, 이들을 실추된 군의 이미지 회복 도구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이런 경우를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은 경우라 할 것이다.

KBS는 실종 병사와 그들 가족들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 그것은 조작된 영웅신화가 아니라 '진실'이다. 또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그들과 같은 희생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 필자가 가장 눈여겨 보는 대목은 군이 어떻게 유사시 동료들의 생명을 구하는 시스템을 민방위 수준 이상으로 끌어 올리느냐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진실을 밝히기보다 책임회피에 열중하는 군 수뇌부의 행태에 날개를 달아주려는 KBS의 행태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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