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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후폭풍', 정치권-법조계 집어삼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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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명숙 후폭풍', 정치권-법조계 집어삼키나?

재판부 "협박ㆍ회유 가능성"까지 거론…'벼랑끝' 검찰 어디로 튈까?

한명숙 전 총리 뇌물수수 혐의 1심 재판부는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아울러 검찰의 수사 행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검찰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으며, 당장 '무리한 수사와 기소'라는 비난 여론을 감당해야 할 처지다.

특히 재판부가 이날 한 전 총리에게 '깔끔한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한명숙 후폭풍'은 법조계의 개혁 방향을 검찰 쪽으로 돌려 놓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법원 개혁과 검찰 개혁의 시급성과 우선순위를 두고 미묘한 대립 관계를 보여온 법조계에 파장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검찰 조사 시간 의심"

9일 오후 수백 명의 방청객이 법정을 빼곡히 채운 가운데 진행된 서울중앙지법 311호 중법정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형두 부장판사)의 재판선고. 재판부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진술 신빙성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곽영욱에 대한 검찰청의 조사 시각을 보면 상당한 의혹이 생긴다"고 검찰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재판부는 "조사 종료 시간을 보면 밤 11시 50분, 밤 9시 46분 등이었다"고 고혈압, 협심증 등을 알아 심장 수술까지 받은 곽 전 사장에 대한 심야 조사가 그에게 상당한 부담을 안겼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2009년 11월 19일 '3만 달러를 줬다'는 뇌물 공여 진술을 부인하던 날은 아침 9시부터 조사를 시작해 밤 12시까지 조사를 한 뒤 부장검사와 새벽 2시까지 면담을 했다"면서 "의례적 면담이라는 검찰의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비난했다.

재판부는 "곽영욱이 생사의 기로에서 극단적인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며 "(심야조사가) 곽영욱의 진술에 영향을 줬으리라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곽영욱이 '5만 달러를 줬다'고 진술한 11월 24일 조사는 오후 6시 30분에 끝났다"고 비교하기도 했다.

"수사기록 제출 안 한 부분도 있다"


▲ 9일 오후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오고 있다. ⓒ뉴시스
재판부는 또 "검찰은 곽영욱의 진술 임의성(자발적 진술) 인정이 되는 진술 영상녹화물을 보여주겠다고 주장하나, 검사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곽영욱의 최초 뇌물 공여 진술과 부인하는 과정은 검찰의 수사기록에도 전혀 없다"며 "중요 부분을 기록 안 한 상태에서 자백한 이후의 녹음녹화 영상을 틀어봐도 자백의 임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일축했다.

곽 전 사장은 2009년 11월 6일 구속된 뒤 "한 전 총리에게 3만 달러를 줬다"고 진술했다가 같은 해 11월 19일에 '3만 달러' 진술을 번복했다. 그러다 11월 24일 "5만 달러를 줬다"고 다시 진술을 번복했는데, 검찰이 제출한 수사기록에는 '3만 달러'에 관한 부분이 아예 없다는 것이다. 곽 전 사장은 법정 신문 과정에서 '3만 달러' 진술 번복 사실을 털어 놨었다.

"횡령 기소내용 불평등. 증권거래법 위반 내사종결도 의심"

재판부의 검찰 비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당초 곽 전 사장은 증권거래법 위반 및 횡령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는데,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는 '내사 종결'로 기소조차 되지 않아 이번 재판 혐의에서 아예 빠졌다.

그런데 재판부는 "곽영욱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거래를 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고, 곽영욱이 '문제 없다'고 판단했으면 왜 차명계좌로 거래를 했겠는가 하는 의심도 든다"며 "곽영욱의 입장에서는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를 검찰이 적용하면 재판을 받고 추징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검찰에 협조적인 진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과 곽 전 사장이 모종의 '딜'을 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사실상 검찰을 정면에서 비판한 것이나 다름 없다.

재판부는 또 곽영욱이 기소된 횡령 혐의에 대해서도 "이모 씨에 대한 기소 내용과 비교하면 기소 내용에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씨는 당시 대한통운 부산 지사장으로 회사 자금 160여 억 원을 빼돌려 29억 원을 곽 전 사장에게 건네고 나머지를 횡령해 사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런데 이 씨는 횡령액 중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도 있지만 상당액을 회사를 위한 리베이트 및 각종 경조사 비용으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씨는 빼돌린 돈 거의 전액에 대해 횡령으로 기소가 된 데 반해, 곽 전 사장은 각 지사로부터 받은 금액 83억 원 중 개인적으로 사용한 37억 원에 대해서만 기소가 됐다는 것이다. 횡령 액수에 따라 형량은 물론, 추징금까지 달라지기 때문에 기소 내용에 따라 피의자의 형편이 달라진다.

재판부는 "이 씨 변호인들도 '곽영욱 기소 내용과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항의하고 있다"며 "사안이 다르고 검사의 기소재량 범위 내라도 이 사건 수사가 곽영욱 입장에서는 지금 처한 궁박한 처지에서 횡령액수에 따라 형량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곽영욱이 처지를 벗어나려는 노력으로 검사에게 협조적인 진술을 마음먹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진다"고 판단했다.

"협박 회유 가능성 살펴봐야"

재판부는 "특히 범죄행위 수사개시 가능성이 있거나 수사가 진행 중일 때는 (피의자에 대한) 협박, 회유 의심이 있어 증거 능력이 부정되지 않는지 살펴봐야 하고, 그로인한 궁박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능성을 살펴봐야 한다는게 대법원 판례"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날 곽 전 사장의 '인간됨'에 대해서도 "위기에 처하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진술을 바꾸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따라서 곽 전 사장이 횡령 혐의 등을 덜기 위해 스스로 거짓 진술을 했을 수 있지만, 검찰이 곽 전 사장의 처지를 이용해 유리한 자백을 이끌어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검찰이 곽 전 사장의 진술을 믿었다고 할지라도 수사 단계에서 곽 전 사장의 진술을 철저하게 검증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

'골프채, 골프장'은 언급도 안 해

이날 선고에서 주목할 부분은 재판부가 검찰이 내놓은 골프채 구입, 골프장 이용 등의 '정황 증거'를 언급조차 하지 않은 대목이다. 당초 재판부가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검찰이 제시한 '정황 증거'를 언급하며 부적절한 처신을 비판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됐었는데, 재판부는 언급하지 않았다. "5만 달러 제공" 진술의 신빙성이 없어 더 살펴볼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판결로 '검찰의 무리한 기소'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재판부는 곽 전 사장 개인에 대한 비난은 물론이고 검찰의 '심야 조사'를 직접 비판했기 때문이다. 당장 민주당 등 야당에서 "검찰 개혁"을 부르짖고 나서고 있는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한 전 총리 무죄 선고를 계기로 야당의 주장에 여론의 뒷받침이 어느 정도 이뤄질지 미지수다.

검찰의 체면은 말이 아니다. 법정에서 곽 전 사장의 '오락가락 진술'이 생중계되다 시피 한 상황에서 검찰이 회유와 협박을 하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검찰이 곽영욱 정도에게 속았다'는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항소를 한다 하더라도, 곽 전 사장의 진술 이상의 뚜렷한 물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승리를 장담하기도 힘들다.

이런 가운데 검찰이 새로 수사를 개시한 '9억 원 불법정치자금' 의혹은 한 전 총리와 함께 법원을 겨냥한 검찰의 '노림수'라는 배경 해석이 나온다.

상당수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이 이번에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 같다"고 보고 있다. 한 전 총리와 '끝장'을 보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법원과의 힘겨루기에서도 당장은 수세적인 입장을 면치 못하겠으나 '한명숙 별건 수사'로 상황을 역전시키겠다는 의지가 깔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1심 재판에서 "제대로 한 방 먹은" 검찰로서는 '9억 원 수사'에는 물적 증거 확보에 신경쓰며 치밀한 수사를 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1심 판결 이후의 한명숙 재판 및 수사는 이처럼 정치적 파장과 함께 법조계 내부의 지각변동까지 수반할만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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