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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떠도는 금양호 9인…'살신성인'에도 '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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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떠도는 금양호 9인…'살신성인'에도 '급'이 있다?

[현장] 쓸쓸한 분향소…유가족 "정부와 대화 창구도 없다"

인천시 옹진군 대청도 대청보건지소 공중보건의 김현수(27) 씨. 대청보건지소는 300가구가 모여 사는 대청도의 유일한 의료 기관이다. 그는 천안함 실종자 수색 작업에 나선 금양98호가 침몰하기 전날인 1일, 손가락을 다친 사람을 치료했다.

어선 항해사인 환자는 웬 일로 토라진 요리사를 달래려고 대신 칼을 들었다가 손가락이 찢어졌다. 그는 12~13바늘을 꿰맸다. 김 씨가 그를 기억하는 건 꿰매는 동안 연신 꾸벅꾸벅 졸았기 때문이다. 속으로 '얼마나 피곤하면 이렇게 졸 수 있을까' 의아해했었다.

손을 꿰매는 상황에서도 연신 졸았던 선원은 다름 아닌 금양98호 실종자 이용상 씨였다. 그는 실종자 구조 작업을 나가기 직전, 개인 정비 시간에 보건소를 들렀다.

"비록 돈도 안 되지만, 더불어 사는 사회 아닌가"

당시 이용상 씨는 김현수 씨에게 "군에서 수색 요청이 들어와 2일부터 함께 수색 작업에 들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비록 돈도 되지 않고 그물도 아예 못 쓰게 될지도 모른다"면서도 "더불어 사는 사회 아니냐. 그래도 가는 게 맞다"고 목청을 높였었다.

손가락을 꿰매는 동안에도 졸 정도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이 씨가 남을 돕기 위해 나선다는 게 못내 안쓰러웠던 김현수 씨였다. 그래서일까. 다음날 금양98호 침몰 뉴스를 접한 그는 내 가족의 일처럼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 금양98호 사망자 김종평 씨와 람방 누르카요 씨 분향소는 인천 학익동 송도가족사랑병원에 마련됐다. ⓒ프레시안(허환주)

6일, 휴가를 받은 김현수 씨는 대청도에서 곧바로 금양98호 사망자 김종평 씨와 람방 누르카요 씨 분향소가 마련된 인천 학익동 송도가족사랑병원을 찾았다. 마음에 빚을 진 것 같은 무거운 마음이었다.

김현수 씨는 "고인 김종평 씨도 지난 3월 15일 치료를 했었다"며 "안타까운 마음에 이렇게 빈소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쌍끌이 어선'에는 장비가 험한 게 많아 선원들이 자주 부상을 입는다. 당시 김종평 씨도 장비에 머리를 부딪쳐 여섯 바늘을 꿰맸다.

김현수 씨는 "1년 중 대부분을 바다에 있으니 제대로 된 병원도 가지 못하는 게 선원들"이라며 "그나마 보건소를 찾는 날은 날씨가 험해 조업할 수 없는 날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열악한 환경의 선원들이 남을 돕고자 나섰다가 이런 일을 당했다"며 안타까워했다.

1년에 적게는 한 달, 많게는 5개월까지 바다에 있어야 하는 게 선원들이다. 조업을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 그렇기에 평범한 삶을 살기란 어렵다. 금양98호 선원 7명(외국인 노동자 제외) 중 단 한 명도 처자식이 없는 이유다.

떠돌이 인생이기에 어느 한 곳에 안착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설령 안착을 한다 해도 배우자가, 아니면 자기 자신이 견디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실종자 유가족은 전부 형제 아니면 숙부, 사촌동생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이들마저도 실종자와 왕래가 드물었다.

유가족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는 방법은 언론 매체뿐"

천암함 실종자 수색 작업에 나섰다가 침몰한 금양98호 수색 작업은 사고가 발생한 지 5일이 지났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다. 인천해양경찰서는 5일 수색 범위를 사고 상 반경 37킬로미터로 확대하는 등 수색 활동을 강화하고 있지만 실종자 7명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시신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금양98호는 수심 70미터 아래 침몰돼 있는 상황이다. 정부와 선주 측에서는 이것을 인양하는 게 사실상 어렵다고 보고 있다.

아직까지 사고 원인도 무엇인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금양호98호와 충돌한 것으로 추정되는 캄보디아 화물선 '타이요1'에 대한 조사도 진전이 없다. 인천해안경찰서에 따르면 '타이요1' 1등 항해사 탄트진 툰 씨는 충돌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 6일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인천 연안동 주민자치센터에 마련된 유가족 대책위원회를 찾았다. ⓒ프레시안(허환주)

답답한 건 유가족이다. 정부, 해경 등은 실종자 수색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사고 원인을 앞으로 어떻게 규명할 것인지를 놓고 어떠한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다.

실종자 이용상 씨 동생 이원상 금양98호 유가족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언론 매체를 통해서일 뿐"이라며 "정부 등에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통보도 해주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원상 위원장은 "최소한 앞으로 수색 작업 등이 어떻게 진행되고 변화될 것인지에 대해 말은 해줘야 한다"며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천안함 실종자 유가족을 대하는 태도와는 온도차가 있다는 주장이다.

같은 구조 작업이었으나 전혀 다른 정부의 태도

정부의 '모르쇠'는 이뿐만이 아니다. 사고 다음날인 3일, 시신을 수습한 김종평 씨와 이주 노동자 람방 누르카요 씨의 분향소는는 썰렁하기 그지없다.

정운찬 국무총리, 안상수 인천시장 등 수많은 화환이 분향소에 있었지만 정작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화환도 빈소가 차려진 지 이틀이 지난 뒤에 배달됐다. 지난 4일 권태신 총리비서실장이 분향소를 방문한 게 전부다. 이명박 대통령이 구조 작업을 벌이다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의 빈소를 지난 2일 방문한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언론에서 금양호 사망자 분향소가 홀대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부랴부랴 분향소를 찾는 모양새다. 6일 '좌파 스님' 발언 논란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원희목 의원 등과 함께 빈소를 찾았다. 안상수 인천시장,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노희찬 진보신당 대표 등도 이날 빈소를 찾았다.

하지만 냉랭한 분위기는 어쩔 수 없었다. 고 김종평 씨와 함께 살았던 이삼임 씨는 영정 사진을 가리키며 "이 표정을 봐라. 정말 억울한 표정이다"라며 "너무 한스럽다"고 연신 고개를 저었다. 이삼임 씨는 "그때 해경이 그렇게 늦게 출동만 하지 않았더라면 죽지는 않았을 텐데 너무 한스럽다"며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이삼임 씨는 "정부나 해군에서는 일절 대화가 없다"며 "유가족에게 적절한 대우(보상)을 해줘야 하는데 아무런 이야기도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분향소에는 중구청 봉사단과 선주인 금양수산 직원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람이 없었다. ⓒ프레시안(허환주)

"정부와 소통하는 통로가 없다는 건 심각한 문제"

실종자는 수협공제회 보험에 들어있어 보험 정에 따라 유족에게 1300일치 평균임금이 지급된다. 장례비까지 포함해 사망자에겐 1억600만 원. 실종자에겐 1억1500만 원이 지급된다. 외국인 노동자 2명은 사망 시 3700만 원, 실종 시 4100만 원의 보상금을 받는다. 금양98호 선주인 금양수산 측에서는 인도네시아 대사관에 이들의 실종 및 사망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군의 요청에 따라 천안함 실종자 수색 작업에 나섰다가 이런 일을 당했기에 정부 차원의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의사상자 선정을 검토 중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보상금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더 시급한 건 보상금 문제가 아닌 정부의 태도 변화라는 지적이다. 이날 유가족을 만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정부와 소통하는 통로가 없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며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생 대접받지 못했던 삶이 죽어서도 반복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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