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23일 05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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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
기록노동자다. 저서로는 르포집 <노동자 쓰러지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등이 있다.
부릴 때는 상용직, 돈 줄 땐 프리랜서
[작고도 가까운 노동, 그리고 싸움] ① 대구MBC비정규직 다온분회
노동에 관한 인터뷰를 하다 보니 당연히 근무조건을 묻는 일이 잦다. 묻다 보면 별 이야기를 다 듣게 된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화장실 변기와 커피포트가 함께 있는 경비노동자의 한 평짜리 휴게 공간 같은 것들 말이다. 이야기를 들을 때 나름의 원칙이 하나 있다. 함부로 놀라지 않기. 어이없는 감정을 티 내지 않기. 내가 방금 들은 그 놀라운 노동조건에서
희정 기록노동자
레이테크 노동자들의 6년 싸움
[오래도록 싸우는 사람들] 더 낮은 노동으로 밀려가지 않기 위한 전쟁
"우리 오빠도 사업을 하는데, 내가 이걸(노조) 한다고 하니까 이런 소리를 하는 거예요. 노조 만들어지면 자기라도 회사 문 닫는다고. 자기가 하는 것들이 제재 받고 간섭 받고. 머리 아파서 안 한다는 거야." '오빠 사장님'의 말을 전해준 이는 현재 실직 상태다. 다니던 회사가 노조 생기고 3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사장은 조회 때면 직원들을 불러다 놓고
"고려인을 잊지 말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굴복하지 않는 고려인의 용기를 기억합니다] 마지막회
러시아로 여행을 떠난 지인의 사진을 보게 됐다. 사진에는 우스리스크 수이푼강의 풍경이 담겨 있었다. 수이푼 강은 헤이그 특사인 이상설의 유해가 뿌려진 곳이다. 지인은 사진과 함께 그의 유언을 언급했다. "나는 광복을 못 보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남김없이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마
고려인4세 소냐는 스무살이 되는 게 공포다
[굴복하지 않는 고려인의 용기를 기억합니다] <7>
"개인 사정이요." 최근 들어 학교를 가지 못하는 날이 많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소냐(가명)는 이리 대답한다. 기다리니 그 사정이라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타지에 와서 적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정체성 혼란’이라고 우아하게 표현될 과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사정 중 얼핏 스쳐간 이야기가 있었다. "아파서 학교에 못 가고 집에서 쉬었는데, 담임선
나는 한국에서 환대받는 존재입니까
[굴복하지 않는 고려인의 용기를 기억합니다] 고려인 청소년들이 묻는다 <6>
(고려인 독립운동 기념비 건립 비용 모금을 위한 기획 연재입니다. 펀딩 사이트 같이가치에 공동 게재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우즈베키스탄 집에서 공항으로 가는 길, 차에서 창밖 보고 있었어요. 그때 나… 생각했어요. 이제 여기 오랫동안 못 올 거 같아." 인터뷰를 마친 후에도 저 말이 내내 기억에 남았다. 고려인 발레리야는 26살에 방문취업비자(H-2
대통령은 '고려인=독립유공자 후예'라고 했지만…
[굴복하지 않는 고려인의 용기를 기억합니다] 한국은 머물고 싶은 나라입니까? <5>
(고려인 독립운동 기념비 건립 비용 모금을 위한 기획 연재입니다. 펀딩 사이트 같이가치에 공동 게재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고려인 청소년들과 인터뷰를 하며 한국에 오기 전 이야기를 물어본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셨나요?" 기술자, 교사, 의사. 그런 직업들을 말해준다. 다음 질문을 한다. "한국에서는 무슨 일을 하세요?" 대답이 단
경영 어려워 폐업한 회장님, 100평 고급아파트 산다
[기고] 쉬운 해고, 그리고 폐업 당한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
지난 23일, 성진씨에스·신영프레시젼·레이테크코리아 노동자들이 안성과 평택, 그리고 서울 가산동을 경유하며 공동투쟁을 했다. 안성에는 ㈜레이테크코리아 제조공장이, 평택에는 19명의 레이테크코리아 노동자들을 해고한 임태수 사장의 자택이 있다. 가산동은 신영프레시젼과 성진씨에스 회사가 있던 곳이다. 두 회사는 폐업을 했다. 해고와 폐업을 당한 여성노동자들이 고
"20대에 입사, 세번 해고당하고 지금은 중년"
[오래도록 싸우는 사람들] 3차례 해고와 18년의 싸움, 시그네틱스 노조
"복직되신 줄 알았어요." 내 쪽에서 꺼낸 말이다. 2017년 9월에 이들의 복직(부당해고) 승소판정 기사를 본 터였다. 싸움이 종료된 줄 알았다. 조합원이 말한다. “다들 그런 줄 알아요.”봄이라 하지만 아직 쌀쌀한 바람이 불 때 이들을 만났다. 법정 투쟁에서 승소한 지 1년 반 뒤였다. 2016년에 해고됐는데, 그것이 세 번째 해고다. 첫 번째 해고는
해고된 날, 일회용품 인생 또한 종료됐다
[오래도록 싸우는 사람들] 인생을 바꾼 싸움, 아사히글라스 4년 투쟁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한 달 만에 업체직원 전원이 해고된다. 해고는 당일 정오 문자로 통보됐다. 2015년 6월에 벌어진 일이다. 기업 경영이 어려웠던 것도, 어떤 사건이 있던 것도 아니다. 하나 있긴 하다. 노동조합이 생겼다. 노동조합을 만든 죄로 178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그런 일'이 가능한 사회인가?" 우리(라고 부르는 사
비노조원에게도 노조는 '방패막'이다
[오래도록 싸우는 사람들 ③] 지난 8년간 세종호텔의 싸우는 사람들이 해온 일
서울 명동에 자리 잡은 세종호텔에서 8년째 노동조합이 싸우고 있다. 기나긴 싸움의 역사는 뒤에서 언급하기로 하고 최근 상황부터 짚어보자. 작년 초, 5년 만에 고용노동부 중재로 교섭(호텔 사측은 '대화의 자리'라 불렀다)이 열렸다. 노조가 해고자 복직과 성과연봉제로 인해 삭감된 임금을 언급하자, 이사 한 명이 이리 말했다고 한다. 여기만큼 정규직이 많은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