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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릴 때는 상용직, 돈 줄 땐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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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부릴 때는 상용직, 돈 줄 땐 프리랜서

[작고도 가까운 노동, 그리고 싸움] ① 대구MBC비정규직 다온분회

노동에 관한 인터뷰를 하다 보니 당연히 근무조건을 묻는 일이 잦다. 묻다 보면 별 이야기를 다 듣게 된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화장실 변기와 커피포트가 함께 있는 경비노동자의 한 평짜리 휴게 공간 같은 것들 말이다.

이야기를 들을 때 나름의 원칙이 하나 있다. 함부로 놀라지 않기. 어이없는 감정을 티 내지 않기. 내가 방금 들은 그 놀라운 노동조건에서 수년 수십 년 일해온 사람이 내 앞에 있다.

그래서 티 내지 않으려 했는데, 이들을 보니 자꾸 입 밖으로 감정 섞인 말이 나온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런 게 어디 있냐면, 방송국에 있다. 내가 만난 이들은 대구 MBC(문화방송)에서 일하는 기술 스텝들이다. 뉴스 영상 편집을 하고, 방송 자막을 만들고(자막CG), 방송을 송출하는 업무(송출MD)를 한다. 감정이 입 밖으로 나오는 건 아무래도 이들이 내가 지나온 시절을 보내고 있는 여성들이라 그런지 모르겠다. 대부분 서른 초반이다.

사람 부릴 때는 상용직, 돈 줄 때는 프리랜서

20대 초중반에 입사해 10여 년을 일했다고 한다. 그 10년 동안 일하며 받은 것이 급여밖에 없다. 임금 외에는 수당, 휴가, 복지, 그 무엇도 없다.

"여름 휴가 같은 거를 회사에서 안 주니까 우리끼리 스케줄 조절해서 가고. 지금은 그만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디스크 때문에 한 달 입원을 한 적 있어요. 그 한 달 동안 저희가 돌아가면서 근무를 대신하고, 그 사람 월급을 우리가 나눠 갖는 식으로. 여름 휴가도 그렇게 3일씩 가요."(이현정, 송출MD)

그러면 연차휴가는?

"연차(휴가) 같은 개념은 아예 없어요. 임의로 저희가 만든 건 있어요. 아무도 안 주니까."

연차휴가도, 4대 보험도, 퇴직금도, 아무것도 안 줄 수 있는 명분이 방송국엔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이들은 자신의 고용형태를 설명한다고 이 단어를 썼다.

"저희는 상용직 프리랜서예요."

일하는 사람을 만나다 보면 별소리를 다 듣게 된다. 노동 분야에는 별 용어가 다 있다. 기업은 어떻게든 노동 값을 낮추려 하고, 그러다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된다. 그걸 사회적으로 용인해주면 그때부터 진짜 문제가 되는데, 여기 대구까지 와서 별소리를 듣는다.

상용직 프리랜서라니. 프리랜서는 회사에 전속되지 않고 자유로이 일하는 사람을 일컫고, 상용직은 임금 받는 노동자 중에서도 한 직장에 안정적으로 고용된 사람을 말한다. 정반대 의미를 지닌 단어를 붙여 쓴다. 그만큼 이들의 고용조건이 모순적이다.

코로나19가 대구에 창궐하던 3월, 대구 MBC는 매일같이 생방송 브리핑을 했다. 기술 스태프 노동자들 역시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31일 중에 29일 출근한 사람도 있어요." 당연히 이들의 근무 시간은 방송국이 잡은 생방송 시간에 따라 달라졌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조율할 수 있는 업무가 없어 보였다. 이들 중에는 3교대 근무하는 직군도 있다. 자막CG 업무의 경우 방송국 내 중계방송에 담기는 모든 자막을 제작한다.

심지어 프리랜서가 회식도 참가하고 사내 체육대회도 갔단다. 알만하다. 사람 부릴 때는 상용직이고, 돈 줄 때는 프리랜서다. 아니 월급이 아니지. 보도국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는 임금을 주 단위(주급)로 받는다고 했다.

"저희는 주급으로 받는데, 그게 최저임금이예요. 여기에 수당이 포함되어 있다면 도대체 기본급은 얼마인 거야."(배주연, 자막CG)

자신들이 말을 하곤 웃는다. 월급의 정체를 알기 위해 급여명세서를 요구했다. 그러나 당신들은 프리랜서라 그런 것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직장인 대출이 필요해서 은행에 갔는데 안 된다는 거예요. 왜요? 한 직장에 8년을 다니고 있는데. 직장인들은 돈이 급여라고 들어온대요. 저는 뉴스데스크(또는 대구문화방송)라 들어오는 거죠. 그때 처음 안 거죠. 내 돈이 급여가 아니라는 걸."(강서윤, 자막CG)

이들의 임금은 급여가 아니라 제작비로 책정되어 있다. 그러니 최저임금이나 물가 인상과 무관하게 금액이 정해진다. 제작비 축소에 따라 고용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자신의 고용을 보장해줄 안전망이 없다. 그러나 몰랐다. 다들 그렇게 일하니까.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회사로 출근하니까.

▲ 대구 MBC 보도국에서 일하고 있는 기술 스텝들. ⓒ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

방송계에서 일하려면 이런 식으로

당연히 직원이라 생각했다. 프리랜서라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4대 보험 혜택도 없고, 연차휴가도 못 쓰고, 상여금도 없는데도 말이다. 이상하지 않았다는 건가. 조심스레 물었다. 왜 몰랐을까요? 뒤에 말이 따라붙었다. "젊은 사람들인데…."

"너무 젊어서"라고 대답이 돌아왔다. 이곳이 첫 직장이라는 사람들이다. 20대 초중반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입사했다. 자소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작업물을 제작하는 시험도 봤다. 합격통보를 받았으나 계약서는 쓰진 않았다. 프리랜서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출근하라는 말이 더 크게 들렸다. "너무 바보였죠." 그 시절 자신을 자꾸 한탄한다.

이곳이 첫 직장이 아닌 이들도 있다. 대부분 방송 일을 떠돌다 온 사람이다. 소위 지방에 방송 관련 일자리가 있을 리가 없다. 방송 제작시설 중 73%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대구의 경우 이 비율이 3%다(<한국 지역방송의 내부식민지 구조에 대한 탐색적 연구>, 장호순). 그러니 방송일을 하고 싶은 청춘들은 서울로 간다. 가서 외주제작사를 전전한다.

"MBC 프로그램 외주 받아서 하는 곳에서 조연출로 일했어요. 거기서도 프리랜서. 계약서도 없이 면접 날 바로 일해라. 그때 월급이 세전 80만 원이었어요. 시청률 땜에 저희 외주 제작사가 잘리고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거기도 임금은 똑같고. 마지막에 일한 데가 조그만 독립언론사. 당시에 2014년이라, 세월호 참사 보도하느라 일은 너무 힘들었는데, 여기가 대우가 제일 나았어요. (얼마를 받았는데요?) 100만 원 받았으니까." (이현정)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방송국이라는 말에 끌려 입사를 한다. 역시나 기다리는 것은 프리랜서(라 자칭하는) 일자리였다.

"방송계에서 일하려면 이런 식으로 해야 하는구나 생각했던 거 같아요."

세상 물정에 눈 뜨다

'이런 식'으로 해야 하는구나. 부당한 대우를 내면화했다. 만연했음으로. 그리고 어떤 제재도 받지 않는 업계의 관행적인 '특수한' 고용과 거주 지역, 성별의 불리함까지 더해 갈수록 일할 자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방은 열악하잖아요. 일자리가 없고. 여자 일자리는 특히나. 어딜 가나 같은 임금(최저임금)을 주니까. 그리고 일 자체가 재미있어요. 매일 해야 하는 일이 다르고, 뉴스 스크롤에 내 이름 나오는 것도 신기하고. 다들 방송 일에 그런 게 있으니까 들어왔던 거고. 지방에서는 방송 일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잖아요."(강서윤)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특히 지방 여성 청년들에겐 그랬다. 그래서 참았다. 그럼에도 왜 남자 스텝은 없는 거냐는 물음에 "이 돈 받고 남자가 왜 일하겠어요?" 피식 웃으며 반문한다. 뉴스 제작을 하는 보도국의 기술 스태프 주급은 현재 40만 원 수준이다.

추측건대 방송국은 이들을 '어린 여자'여서 뽑고, 여자라 고용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여자는 '시집 가면' 일을 그만둔다고 생각하니까. 결혼했으니 나가라는 80년대식 통보도 필요 없다. 출산 휴가는 고사하고 연차 휴가도 없는 자리에 기혼 여성이 버틸 순 없다. 그 자리에 새로운 '어린 여자'를 데려오면 해결되는 문제였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졌고 비혼율은 높아만 간다. 결혼해도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계속 일하며 세상 물정에 눈 뜨고 정보를 모으고 자신들의 고용형태가 프리랜서가 될 수 없음을 알게 됐다.

"점점 나이가 차니까 제 명의로 된 뭔가가 필요하잖아요. 필요할 때 제 고용형태가 매번 걸림돌이 되더라고요. 그걸 불편하다 정도로 여겼는데, 이번 파업 때 생계 타격을 받고는 심각하게 생각을 하게 됐어요. 고용노동청을 찾아가서, 우리가 이렇게 일하고 있다. 저희가 프리랜서가 맞는지 궁금하다. 거기서 99% 확률로 이거는 프리랜서 아니라고."(윤미영 분회장, 자막CG)

여러분은 서비스 제공자입니다

기술 스태프 노동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자각한 것은 2017년경이다. MBC문화방송이 73일간 파업을 한 해였다. 블랙리스트 문제 등 박근혜 정부하에서 벌어진 언론 통제를 청산하려 MBC 방송노동자들은 해고와 징계를 무릅쓰고 파업을 감행했다. 그리고 석 달 가까이 방송국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월급도 끊겼다.

"2012년에도 정규직이 파업(170일)을 했는데, 그때 돈이 안 나온다는 것을 겪어서 알고 있었죠. 이번에도 당연히 안 나오겠지. 두 번째 파업 때는 정말 힘들었거든요. 제작비가 안 나오니 어쩔 수 없다. 일단 기다려달라. 저희도 꼭 승리하셨으면 좋겠다고. 어떤 의미로 파업을 하는지 아니까. 하지만 생계는 다른 문제니까요."

보험을 깨는 등 대책 마련에 부산했다. 정식 직원이 아니기에 파업 참가자도 될 수 없는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곤궁의 시간을 버텼다.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요구로 대구에서는 2017년 파업은 중반 이후부터 3주에 한 번꼴로 주급이 지급됐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자각이 들었다. 파업 후 면담을 요청했다. 그 자리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적나라하게 듣게 된다.

"파업이 끝나고 저희는 회사로부터 '고생했다. 추후에라도 피해는 어느 정도 보존해주겠다'라는 답변을 들을 거라 기대했는데, 그런 것 없고. 바로 이렇게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여러분은 프리랜서입니다. 어떻게 보면 서비스 제공 같은 거예요'."

이들 말을 빌리자면 '현타'가 왔다. 근로조건을 상의하려 했더니, 자신들은 방송국 직원은 물론이고 노동자도 아니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하는 내내 회사를 믿었다고 답변하던 이가 있었다. 딱 10년을 일했다고 했다. "회사가 알아서 해주겠지. 믿었던 거 같아요." 당시를 회상하며 이리 말한다.

"저를 회사의 구성원이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배주연)

회사를 믿은 이유였다. 그런데 회사는 자신을 서비스 제공자라 불렀다. 자막 서비스를, 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 그래서 상용직 프리랜서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스스로 자신들을 노동자로 부르기로 한 것이다. 2019년 1월, 대구MBC 비정규직노동조합 다온분회가 설립한다.

노동자… 저도 노동자예요

세상의 좋은 일들이 나에게 온다. 말뜻처럼 좋은 일만 있으라고 노동조합에 '다온'이란 이름을 붙였다. 다온분회 조합원들은 노랑 형광색 조끼를 맞춰 입었다. 처음 조끼 입고 출근할 땐 심장이 두근두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 노동조합 가입을 망설인 이유가 회사에 죄를 짓는 거 같아서 였어요."

법에 보장된 노조할 권리라 하지만 법 조항에나 있는 소리일 뿐. 누구도 사회에 나와 노동자가 될 이들에게 노동의 권리를 알려준 적 없다. 일하는 사람에게 노동자라는 자각을 일깨워줄 생각이 없는 사회다. 그래야 매일 정해진 대로 출퇴근을 해도 프리랜서라 굳게 믿으니까.

"노조 이야기를 뉴스 자막으로 내면서도 한 번도 내 이야기라고 생각을 못 했던 거 같아요. 저 사람들만의 이야기. 정규직, 비정규직 말 자체도 크게 안 닿아왔던 것 같아요. 그땐 남의 이야기 같았어요."(배주연)

그런데도 망설임 끝에 노조를 했다. 잘릴까 봐 무섭고, 회사 사람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무섭고, 아니 노동조합은 그냥 무섭다. 그런데 했다. 왜?

"이거라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안 한 게 되는 거니까요."

보도국에서 뉴스 영상편집 일을 하는 이가 말한다. 그이도 '현타'를 겪는 중이라 했다.

"현타는 매 순간 와요. 내가 이거(노조) 하기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았나 싶고. 제가 20대 때 일을 시작했으니까. 그래서 좀 억울하고 아까운 것도 있는 거 같아요. 제일 좋은 시절을 여기에 다 썼는데. 그게 아무 일도 아닌 게 되니까."

10여 년 노동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가만있으면 아무것도 안 한 게 된다고 한다. 무엇을 안 했다는 건가.

"제 권리를 찾는 일이요."

권리요? 나의 되물음에 그이가 잠시 사이를 두고 말한다.

"노동자… 저도 노동자예요."

이 말을 비가 추적추적 내린 날, 방송국 건물 앞 1인시위 현장에서 들었다. 노동자임을 인정받기 위해 큰 피켓을 들고 직장 한가운데 선다. 무엇을 하고 싶어서? "저는 더 오래 다니고 싶어요." 회사를 안정적으로 다니고, 일한 대가를 제대로 받고, 노동자성을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것.

"제 다음 사람이 왔을 때 저랑 똑같은 취급 받는 거 싫어요. 그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안 들었으면 좋겠어요. 미안할 것 같아요."

▲ 대구MBC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노동자들. ⓒ대구비정규직MBC다온분회

챙김이 아니라 권리를

"저도 노동자에요"라는 말에 방송국은 다른 소리를 했다. 다온분회는 방송국에 자신들의 실제 근무형태가 프리랜서가 아닌, 상용직임을 알렸다. 그러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는 판단이 다르다. 법으로 따져봐야 할 문제다."

이들은 직원이 아니라 프리랜서이기에 방송국과 직접 대화할 '자격'이 없다고 방송국은 말했다. 이 말을 전하는 관리자들은 수차례 파업을 이끈 MBC 노동조합의 조합원이기도 했다.

다온분회와의 노사협의회는 한 차례 열리고 중단됐다. 정식 직원이 아니기에 대화할 수 없다며 방송국은 개별로 국장과 협의를 하거나, MBC(정규직) 노조를 통해 말을 전하라고 했다. 그것은 예전처럼 지내라는 말과 같았다.

"국장님이 챙겨주셔야지 챙겨 받고, 말을 잘 따라야지 보상이 올 거라는 기대로 일을 했던 게 있잖아요."

정례적인 임금협상 자리도 없었다. '너희만 따로 챙겨주는 거다. 다른 부서 가서 말하지 마라' 임금 몇 푼 오르는 날엔 입단속부터 당했다. 담당 관리자가 바뀔 때마다 애원하듯 처우개선을 이야기해야 했다. 그런 과거를 반복하라는 소리다. 2년 전, 노동조합이 생길 기미가 보이자 방송국은 10%가량 임금을 인상했다(주급 4만 원 인상). 방식은 통보였고, 당시는 최저임금이 7000원대로 오른 해였다. 그 후 임금은 동결됐다. 이들은 다온분회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나름대로 챙겨준다. 그분들(국장급)이 챙겨줘야만 우리 임금이 오르는 것도 사실이니까. 챙겨주는 거에 감사하게 느끼며 예전처럼 지냈으면 그냥 지냈겠죠. 그런데 저희는 이제는 그런 시혜성 챙겨줌을 받지 않고, 내가 일한 만큼 정당하게 임금을 달라고 요구하려고 해요." (윤미영 분회장)

같이 일하고 있는데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 당연하다. 노동자니까. 그러나 대구MBC는 이들의 노동자성을 법으로 따져볼 문제(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무법적인 형태의 고용이 방송계에 만연하다. 지방으로 갈수록 무법의 비율은 높아진다. 방송계의 관례라 부르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고용노동부를 비롯해 정부 기관은 관리감독 하지 않는다. 법원에 노동자성을 물으면 서류를 뒤적이는 사이 시간만 간다.

"소송을 아예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일단은 교섭으로 대화를 풀고 싶어요. 해볼 수 있는 데까지는 내부에서 문제를 풀어보고 싶어서. 저희랑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노동자들도 다 그런 식으로 문제가 풀리면 안 되잖아요."

다른 방식을 찾아보려 사내에서 비슷한 직군끼리 뭉쳤다. 노동조합으로 모였고, 자신들을 협상 주체로 인정해 대화할 것을 요구한다. 윤미영 분회장은 이 말을 했다.

"저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나는 인터뷰 내내 속으로 '방송국놈들'을 외고 있었는데, 저쪽은 방송 윤리를 꺼낸다. 그 자신도 방송국에서 일해온 사람이라 그런가.

"주제 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 스스로를 언론 종사자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우리 조합원들도 코로나 때 더 열심히 개인 수칙 잘 지켜가며 일한 거고. 저희는 개개인의 윤리의식을 조금 더 요구하는 직업이잖아요."

그는 지금 그 윤리의식을 방송국에 요구하고 있다.

"스스로 해결했으면 좋겠어요. 마지못해서 아니라, 자정의 목소리를 내며 개선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개선에는 임금 인상과 처우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 테다. 어쩌면 아주 기본적인 윤리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사람을 고용해놓고 서비스를 제공받는다고 착각하지, 아니 합리화하지 않는 인식. 이 사회가 자꾸만 잊는 그 인식 말이다.

"저희를 같이 일하는 노동자로서 대하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본인들 이름을 내고 있잖아요. 뉴스 자막에 '누구 기자'라고. 제 손을 거쳐서 자막이 나가고. 우리 같이 일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일하는 사람의 업무를 '그 돈(처우) 받아도 되는 일'이라 넘기는 언론이 방송국 밖 수많은 비정규직을 어떤 시선으로 대할지 의문스러운 참이었다.

2020년 방송계 비정규직 실태조사에 따르면, 근로계약서 체결률 25%, 연차휴가(수당) 지급률 7%, 4대 보험 가입률은 8%에 머무른다. 14년차 프리랜서 고 이재학 피디가 목숨을 끊은 지 오늘(5월 26일)로 113일이다. 이재학 PD는 CJB 청주방송을 상대로 노동자성 인정을 두고 싸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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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

기록노동자다. 저서로는 르포집 <노동자 쓰러지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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