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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노조원에게도 노조는 '방패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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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노조원에게도 노조는 '방패막'이다

[오래도록 싸우는 사람들 ③] 지난 8년간 세종호텔의 싸우는 사람들이 해온 일

서울 명동에 자리 잡은 세종호텔에서 8년째 노동조합이 싸우고 있다. 기나긴 싸움의 역사는 뒤에서 언급하기로 하고 최근 상황부터 짚어보자.

작년 초, 5년 만에 고용노동부 중재로 교섭(호텔 사측은 '대화의 자리'라 불렀다)이 열렸다. 노조가 해고자 복직과 성과연봉제로 인해 삭감된 임금을 언급하자, 이사 한 명이 이리 말했다고 한다. 여기만큼 정규직이 많은 데가 어디 있다고 그러냐고.

8년 전만 해도 250명이 넘던 정직원이 130여 명으로 줄었다. 회사의 연봉 삭감과 강제적인 보직전환을 견디다 못해 많은 사람이 호텔을 떠났다. 빈자리는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용역업체로부터 파견을 받고, 1년짜리 계약직을 사용하고, 인력중개소로부터 하루짜리 알바를 받아 쓴다.

그럼에도 사측 관리자가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국내 호텔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비정규직 고용 비율 때문이다. (국내 300인 이상 종사자가 있는 호텔의 비정규직 비율은 52.7%다. 2016년 기준. 고용노동부 고용형태공시제) 다들 비정규직을 쓰는데 우리는 좀 덜 쓴다는 말. "회사 말이 100% 거짓말은 아니야" 조합원들도 말한다. 객실 어텐던트라 부르는 룸메이드가 정규직인 호텔이 별로 없다고.

그러면 세종호텔에 정규직 비율은 어떻게 될까. 룸메이드 중 정규직 비율은 60%. 나머지 직원은 용역업체에서 파견한다. 6:4의 비율은, 누군가에겐 곳간 열어 퍼주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들 눈에는 다르게 비친다.

"다른 (룸메이드) 용역분들이 그러시더라고요. 여긴 정규직이 있으니까 보기 좋다고."

무엇이 보기 좋을까. 10년 넘게 꾸준히 해온 일이라 군더더기가 없다. 정규 직장이라 책임감이 높다. 여러 답이 조합원들 입에서 나온다.

"요즘은 최저임금 이상 받는 것이 죄인처럼 여겨지잖아요. 호텔 일 엄청 힘들어요. 예전엔 다 정규직이었어요. 지금은 계약직이고 최저임금이니까 잔업을 엄청나게 하지 않으면 안 돼요. 나이 드신 분 말고는 일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덧붙여 묻는다. "이걸 손님들이 알까요?"

▲ 세종호텔 위원장. ⓒ세종호텔 노동조합

비용을 대신 내는 사람들

고객들이 보는 호텔의 풍경은 어떨까. 종종 충격적인 제보가 있다. 특급호텔에서도 변기 닦은 수세미로 양치컵을 닦더라. 사용한 식기를 세제도 없이 대충 헹군다더라.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실제 기사화되기도 했다.

특급호텔도 객실관리 업무를 용역회사에 맡긴다. 앞서 말했지만, 용역직원은 바쁘다. 객실 수에 따라 들어오는 돈이 달라지기에 용역회사는 객실을 줄일 생각보다 인원을 줄일 생각을 한다. 그러니 계속 바쁘다. 내가 들고 있는 수세미가 어느 용도인지 잊게 된다.

많은 기사와 연구들이 입을 모아 호텔 고용의 비정규직화에 대해 이리 말했다. '호텔 사업의 특성상 인적 서비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따라서 호텔 경영자들은 인건비 축소를 위해 시간제 파트 타이머, 계약직, 인턴직 등과 같은 비정규직 형태로 필요한 인력을 채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부담을 낮추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인건비를 절감한다고 한다. 불안정 노동의 사용은 그렇게 합리화된다. 그런데 비용은 절감된 것이 아니다.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언제나 같다. 다만 기업의 비용이 다른 이들에게 전가된 것뿐이다.

최저임금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호텔-파견노동자, 일자리를 잃고 사라진 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못 미더운 컵을 입에 대야 하는 고객까지. 기업이 아낀 비용을 대신 나눠내는 중이다.

(용역업체에 지불해야 할 호텔기업의 비용을 걱정하는 이가 있을지 몰라 덧붙이자면, 룸메이드 인력 파견을 담당하고 있는 KHR이라는 업체는 세종호텔의 자회사다. 기업의 비용 손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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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의 싸움

노동조합과 세종호텔의 갈등은 비용 전가로부터 시작됐다. 2000년대 말 세종호텔에는 정규직이 있었고, 계약직은 1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단체협약이 있었고, 그 단체협약을 맺는 노동조합이 있었다.

그러다 2009년 세종대학교 이사장을 역임한 주명건 회장이 세종호텔로 온다. 노동조합은 그때를 노동탄압의 시작으로 보는데(심지어 조합원이 언론사에 기고한 글 제목이 '그가 돌아오기 전'의 세종호텔을 되찾고 싶습니다'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혼자 와서는 세종호텔이 천지개벽하긴 쉽지 않다.

같이 온 것은 정부의 노동정책.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복수노조법이 시행된다. 다수노조에게 대표교섭권을 주는 창구단일화 제도는 민주노조를 뒤흔들었다. 상식적으로 봐도 친기업 성향의 노조가 교섭권을 가질 가능성은 크다. 돈과 밥줄이 그곳에 있으니까.

그해 세종호텔에도 새 노조가 출범한다. 일명 '연합노조'. 호텔은 기다렸다는 듯이 기존 노조(세종호텔 노조)와 진행하던 단체교섭을 중단해버린다. 100명이 넘는 조합원이 기존 노조에서 탈퇴한다. 수순처럼 '연합노조'는 다수가 되고, 호텔과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교섭 결과 임금이 동결되고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조항이 폐기된다. 연합노조의 존재가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 분명해진다.

세종호텔 노조는 37일간 파업을 하며 저항하지만, 이미 조합원은 50여명으로 줄어든 상태. 연합노조가 2013년에는 과장급, 2015년에는 계장급, 2016년에는 정직원을 대상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에 사인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박근혜 정부가 강행했던 성과연봉제가 세종호텔에 무사 안착한 것이다.

세종호텔은 여기에 '평가에 따라 최대 30%까지 임금 삭감'이 가능하다는 조항을 달아두었다. 정부 정책의 충실한 이행자였다. 첫 폭탄을 맞은 이는 노조 부위원장인 한인선 씨다. 20년차 주방장인 그는 연봉 30%를 잃는다. "20년 성실히 일한 것 밖에 없는데. 억울했죠. 왜 내가 최하위 평가를 받아야 하나." 다른 조합원들의 임금도 줄줄이 삭감된다.

성과연봉제는 단지 '말 안 듣는' 노조를 벌주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연봉이 축소된 관리자급들이 버티지 못하고 퇴사했다. 정규직 노동자를 정리하는 데도 용이한 제도다. 또 하나의 효과는 일하는 사람들의 위축이다.

세종호텔 노조의 자부심 중 하나는 타노조 조합원, 그러니까 다른 직원들과의 사이가 원만하다는 것이다. "노조가 하는 일이 옳다는 암묵적지지"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움직이진 못한다. "돈에 다 민감하잖아요. 직장 다니는 이유가 사실 돈이잖아요." 회사가 성과를 평가해 월급에 등급을 매기니 꼼짝을 못한다.

지금까지 정부의 노동정책은 그런 역할을 해왔다. 일하는 사람을 위축되게 하고, 싸우는 사람들을 소수로 만든다. 최저임금을 당연하게 만들고 정규직을 죄인처럼 여기게 한다. 그런데 노조는 이를 반문하는 존재다.

"왜 그래야 하는데? 질문을 던지고 싸워온 과정이었어요. 호텔은 말해요. 다른 데 다 그래. 다른 데 비정규직이고 외주화된다고 세종호텔도 그래야 해? 이렇게 시작한 싸움이 8년을 간 것 같아요."(박춘자 노조위원장)

▲ 박춘자 세종호텔 노조위원장. ⓒ세종호텔 노동조합

이상한 보직전환

노동조합은 이토록 모두가 비정규직인 것이 과연 당연한가? 물었다. 당연함을 의문하는 사람에게 이상한 벌을 가해졌다. 2012년 이후 노조 조합원을 기다리는 건 보직 전환이었다.

그 전환이라는 것이 좀 코미디 같은데, 경력 20년차 주방장을 조리지원팀으로 보내 야채다듬기를 시켰다. 전화교환을 20년째 해온 이에게는 룸메이드 업무가 주어지고, 홍보팀 사무직원은 하루아침에 웨이터로 일하라 했다.(그는 김상진 전 위원장으로 보직전환을 거부하고 해고됐다.)

이들은 버텼다. "어떤 의미로 보냈다는 걸 아니까 그만 둘 수 없죠." '그만 나가라'는 메시지를 무시한 채 일했다. 자신을 원하지 않는 직장에서 낯선 일을 해야 한다. 누군가는 완화된, 그러나 딱 알맞은 단어를 사용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루에 서너 번씩 사라지는 용기와 자존심은 조합원들끼리 서로 챙겼다. 예전처럼 회사가 시키는 대로 당하고 살지는 않는다는, 새로운 자존심이 생겨났다. "이제 팀장도 함부로 못하죠. 듣고만 있진 않으니까. 오히려 이게 불법은 아니냐고 물어보고 해요." 이 말을 하는 조합원의 표정이 밝다. 꽤나 달라진 모습이라고 한다.

노동값을 알게 해준 싸움

"주눅 들어 있었지." 지금은 위원장도 배출하는 객실관리(룸메이드) 부서에서 그런 말을 한다. 어느 호텔이나 그렇듯 객실관리는 호텔에서 소외된 파트였다. "너네는 로비에 나오지 마. 눈에 띄지 마. 파업할 때 처음으로 로비에 나가봤어요."

청소일 하는, 나이든, 여자라는 무시는 같은 노동자들 사이에도 존재했다. 가장 늦게 정규직화 된 부서도 객실관리였다. "우리가 제일 늦게 됐지. 5년만이었어요." 노동조합 또한 시간차를 둘만큼 노동 간 위계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동시에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불어넣은 공간 또한 노동조합이었다.

룸메이드 조합원들은 당차게 말한다. "나 하는 일이 어때서. 프론트에 아무리 젊고 고운사람 세워나 봐요. 객실청소 안 하면 고객들 못 받아요." 숱한 싸움 끝에 얻은 것은, 노동에 대한 존중이었다.

젊고 고운 여성들도 위태롭긴 마찬가지였다. 호텔 프론트에 선 여성은 나이가 들면 퇴사해야 했다. 안 나가고 버티면 다른 일로 쫓겨났다. 지금 조합원들처럼. 보직전환이란 호텔이 입맛에 맞는 노동자를 배치하기 위한, 특히 나이든 여성을 '고객들 눈 닿는 곳에서' 제거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예전부터 기능해왔다.

이젠 다르다. 어디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회사의 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실컷 부리고 나가라 하면 울며 나가지 않는다. 자신들의 정당한 노동값을 알게 됐다. 그래서 엉뚱한 보직을 받고도 버텼다. (많은 이들이 견디지 못하고 떠나기도 했다. 조합원 수는 해고자 포함 15명이 됐다.)

그 사이 몇 년째 매일 호텔 앞 1인 시위, 매주 목요집회, 공동투쟁단과 함께하는 연대집회까지. 때로 농성도 했다. 물론 고소·고발, 시말서, 감봉이 따라왔다. 버텼고 결국 "쟤네들 돌아왔네. 맨날 싸우더니 돌아왔네"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조합원 대다수가 원래의 업무로 돌아갔다.

충실한 정책 이행자

회사가 정규직이 너무(?) 많다며 못마땅해 한 호텔의 풍경은 노동조합이 10년 가까이 치열하게 지켜온 결과였다. 조합원들은 말한다. "비조합원에게도 노조는 '방패막이'라고." 모두 안다. 노조가 없다면 노동조건은 밑도 끝도 없이 하락할 것임을.

그럼에도 노조가 '버팀목'이 되지 못하고 '방패'로 머물러야 하는 건 교섭조차 치룰 수 없는 소수노조의 처지, 성과연봉제로 위축된 직원들의 정서에 있다. 세종호텔은 이명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을 충실히 따랐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었다.

촛불이 켜지고 박근혜가 탄핵되고 대선을 앞둔 2017년 봄, 세종호텔 고진수 전 위원장은 27일간 전광판 위에 올랐다. 6개의 장기투쟁 사업장, 6명의 조합원이 함께했다. "정리해고와 노조할 권리 보장 문제가 사회적 의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고공농성으로 환기시키고자 했다.

노동의 권리는 환기가 되었을까. 세종호텔은 2018년 교섭이 열린 후, 17차례의 만남에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호텔은 강경한 태도를 보였는데, 노조는 원인을 이리 추측한다.

"입장이 변한 건, 노동청 압력에 의해 교섭 자리에 나왔지만 2018년부터 문재인 정부의 소위 말하는 친자본 행보가 가시화되니까. 이재용 석방시키고 노동개악이 시도되고. 호텔도 여기까지만 하면 되겠다 싶었던 것 같아요." (김상진 해고자)

회사를 특별교섭에 나오게 한 압박으로 추측되는 '임금체불' 건도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많은 직원(연합노조 조합원)들이 탄원서와 임금미수령 동의서를 써주었다. "처벌을 피해간 이상 회사는 더 꺼릴 게 없어진 거죠."

자주 있는 일이다. 연재 기사마다 같은 소리를 반복할까봐 우려되어 조합원의 짧은 말로 대신하려 한다. "(기업은) 자기네들 하고 싶은 대로 다. 법적인 부분들도 다 해버린다."

세종호텔은 현재도 정부의 충실한 정책 이행자로서의 면모를 놓치지 않고 있다. 2019년 임금을 협상하는 자리에서 회사는 '탄력근무제' 안을 꺼내들었다. 정부가 법제화를 시도했던 그 탄력근무제 말이다.

▲ 2012년 파업 당시. ⓒ세종호텔 노동조합

방패와 걸림돌의 미래

법도 정책도 자신의 편인 양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버린다"는 기업의 거의 유일한 걸림돌은 노동조합이다. 비록 15명의 조합원일지라도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들이 있어요. 이번에 회사는 연봉 협상에서 우리 임금을 깎지 못하고 동결시켰어요. 못하잖아요. 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저는 약간 쾌감(?)이 있더라고요. 힘들지요. 비번에도 나와서 선전전 하고. 퇴근하고 집에 못 가고. 이게 별 의미가 없는 일이라면 할 수가 없는데 의미가 있으니까. 나도 좋고 다른 사람들도 좋고." (차현숙 조합원)

소수의 조합원, 요원한 교섭권, 사라진 기대 속에서 슬쩍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도 노조는 "싸우던 대로"를 말했다. 한 조합원(허지희)이 쓴 글 하나가 떠올랐다.

"세종노조는 항상 말해야 할 것을 말해왔고, 우리를 지지해 주는 연대가 있기 때문에 더 강하다." (허지희 조합원이 쓴 <민주노조와 함께 단련되는 삶>_질라라비 소식지. 2017.12)

노동조합은 "항상 말해야 할 것을 말해"왔다. 말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비율, 노동의 정당한 대가와 권리. 비조합원들에게도 지지받는다고 조합원들이 자신 있게 말한 것은, 소수 인원으로도 ‘방패’가 될 수 있던 것은, 버팀목을 꿈꿀 수 있던 것은 "말해야 할 것들" 때문이다.

모두가 최저임금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하는 사회에서, 하향평준화 되는 노동의 조건을 움켜잡고, 스스로를 존중하는 일. 지난 8년간 세종호텔의 싸우는 사람들이 해온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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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

기록노동자다. 저서로는 르포집 <노동자 쓰러지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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