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년 11월 15일 15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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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원숭이처럼 생체실험한 '악마의 의사들', 전쟁 뒤 더 잘 나갔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63] 생체실험과 세균전쟁 ⑫
살아 숨쉬는 '마루타'의 몸에 세균을 집어놓고 언제 어떻게 죽는지를 살피는 행위를 '의학연구'라 우길 수는 없다. 731부대의 생체실험은 '의학'의 이름을 훔친, 또는 의학과 '악마적 동맹'을 맺은 잔혹행위이자 야만이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이시이 시로(石井四郎, 1892-1959)를 비롯한 731부대 군의관들을 '악마의 의사' 집단이라 비난해왔다.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맥아더사령부는 731부대 전쟁범죄자를 비호했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62] 생체 실험과 세균 전쟁 ⑪
아시아·태평양전쟁의 승자 미국은 패자인 일본 지도자들을 △평화를 깨트린 죄(crimes against peace)와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 혐의로 처벌했다. 하지만 이시이 시로(石井四郎)를 비롯한 731부대 관련자들은 (일왕 히로히토와 마찬가지로) 도쿄전범재판을 비껴갔다. 도조 히데키처럼 체포해서 감옥에 가둔 뒤 전범재
마루타 100% 사망케한 '악마의사' "말 피 뽑아 인간에 주사했더니…"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61] 생체 실험과 세균 전쟁 ⑩
세균무기를 개발한답시고 생체실험이란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던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石井四郎, 1892-1959, 군의중장) 못지않은 '악마의 의사'가 2명 있다. △이시이에 이어 731부대장에 올랐던 키타노 마사지(北野政次, 1894-1986, 군의중장), △'군마방역'으로 위장한 관동군 100부대장 와카마쓰 유지로(若松有次郎, 1897-1977, 군
마루타 생체실험 '악마 의사', 세균무기 내세워 미와 중에 '채용' 제안해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60] 생체 실험과 세균 전쟁 ⑨
"전쟁범죄를 추궁하지 않는다. 오로지 과학 정보를 얻고 싶다" 미 조사관들은 이시이 시로(石井四郎, 1892-1959)를 비롯한 731부대 간부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 말을 되풀이했다. 조선 독립투사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을 '마루타'(통나무)로 삼아 생체실험이란 끔찍한 짓을 저질렀던 자들을 미국은 정중하게 모셨다. 전쟁범죄자로 다루기는커녕 '세균 전문가' 또
구걸하듯 정보달라던 미 조사관에 "생체실험은 없었다" 농락한 '악마의 의사'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59] 생체 실험과 세균 전쟁 ⑧
"지고 있는 전쟁에선 세균무기를 쓸 필요가 없다. 효과적으로 사용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세균무기 개발에는 인력이나 돈과 재료가 많이 든다. 게다가 세균무기를 큰 규모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작은 규모로는 효과적일 수 있다"(靑木富貴子, <731 石井四郞と細菌戰部隊の闇を暴く>, 新潮社, 2008, 289쪽). 위에 옮긴
미 조사관 "단돈 25만엔으로 피묻은 일본 세균전 자료 챙겼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58] 생체 실험과 세균 전쟁 ⑦
"내가 알기로는 아버지가 미국과 거래를 한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는 미국 쪽에서 아버지를 찾은 것이지, 절대 아버지가 (미 점령군을) 찾아간 것은 아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버지의 부하들은 그 어느 누구도 전쟁범죄자로 재판을 받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것이 과연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石井春海, <英文時報> 1982년 8월29일 12
'악마의 부대'에서 풀려난 쥐떼, 3만 중국인을 죽였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57] 생체 실험과 세균 전쟁 ⑥
731부대가 생체실험으로 가혹행위 끝에 죽인 '마루타'는 3000명쯤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이 3000명이란 숫자는 어떤 경로로 나온 것이고 정확한 것일까. 소련군에 붙잡힌 일본군 전범들을 다룬 하바롭스크 법정(1949)에서 731부대의 세균제조부장 카와시마 키요시(川島清) 군의소장이 했던 진술이 그 출발점이다(카와시마는 25년 강제노동형을 선고받고 복역
'악마 의사'가 힘쓸 틈없이 무너진 관동군, '최후 마루타' 40명 독가스에 죽었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56] 생체 실험과 세균 전쟁 ⑤
1945년 3월, 도쿄 육군군의학교에 있던 이시이 시로(石井四郎, 1892-1959)는 이례적으로 육군 참모본부 회의에 참석하라는 전갈을 받았다. 참모회의에서는 독성이 강해 치사율이 높은 페스트 균을 주무기로 한 세균전이 논의했다. 그 바로 뒤 이시이는 중장 승진과 더불어 다시 731부대장으로 복귀했다. 1942년 8월1일 1군 군의부장으로 떠났다가 도쿄
"하루 5명 해부했다"…독립군 '마루타'로 죽이고, '벼룩 폭탄' 만든 악마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55] 생체 실험과 세균 전쟁 ④
지난 2001년 9·11 테러 뒤 한동안 미국인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던 또 다른 테러가 있었다. 독자 분들이 기억하시듯, 그 테러의 이름은 '탄저균 테러'였다. 2001년 10월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톰 대슐 의원, 대중지 <선>(Sun) 사진부장, NBC 방송사 앵커를 비롯한 몇몇 언론사에 백색 가루가 담긴 우편물이 배달됐다. 백색 가루엔 치
일본대원마저 해부한 광기의 731부대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54] 생체 실험과 세균전쟁 ③
[다무라(증언자)는 해부칼을 호소야에게 넘겨주었고, 호소야는 해부칼을 들고 스도우 옆으로 다가가 (다른 대원인) 우노에게 넘겨주었다. 우노는 해부칼을 받은 뒤 (곧바로 찌르진 못하고) 스도우의 뱃가죽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의 손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그때 스즈키 소좌는 큰 소리로 '빨리 시작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우노는 해부칼을 스도우의 배에 찔러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