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을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하고, 들뜨게도 하는 영화와 드라마에도 사람이 있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었을 것이다. 내가 저런 영화의 감독이 된다면, 내가 배우가 된다면, 내가 저런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꿈을 꿨던 이들 가운데 몇몇은 실제로 그 일에 뛰어든다.
그리고 자신이 오랫동안 바라 왔던 영화가, 드라마가 '내 일'이 되는 순간, 꿈이 현실이 되는 그 때 그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생계난이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그렇다. '처음엔 다 바닥부터 배우는 것'이라는 업계의 관행으로, '데뷔만 하면, 감독만 되면 나도 제대로 된 보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그들의 노동과 창작은 헐값에 팔린다.
사람들은 그들의 생계난을 일종의 기회비용으로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기약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견디지 못해, 불안정한 오늘의 고통을 감당하기 벅차 또 많은 이들은 꿈을 다시 포기한다. 화려해 보이는 영화와 드라마, 그 꿈을 위해 오늘을 버티고 있는 드라마 보조 작가와 영화 스태프의 이야기를 2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한 영화 조감독의 자살…"영화판? 노가다 보다 더 심한 노가다"
2009년 11월 26일, 서울 영등포동 한 호텔에서 젊은 영화 조감독 김아무개(27)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음란서생> 김대우 감독의 두 번째 영화로, 배우 김주혁, 류승범, 조여정이 주연을 맡은 영화 <방자전>의 스태프였다.
그의 자살은 거듭된 생활고와 앞날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죽음은 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오는 5월 <방자전>의 개봉을 앞두고, 세상은 배우 조여정이 '극비리'에 찍었다는 파격 베드신만을 주목하고 있다.
20대 젊은 청춘의 짧았던 생에 무엇이 그리도 버겁고 힘겨웠을까. 더욱이 그는 감독 바로 밑의 '조감독' 아닌가. 1년의 평균 수입이 고작 274만 원으로, 많이 버는 대기업 신입사원의 한 달 월급 수준밖에 안 되는 '막내' 시절도 다 지났는데 말이다.
▲<음란서생> 김대우 감독의 두 번째 영화로, 배우 김주혁, 류승범, 조여정이 주연을 맡은 영화 <방자전> 촬영현장. ⓒ 방자전 |
이런 의문은 영화 스태프로 4년을 일했던 이호진(34, 가명) 씨의 얘기를 들으면서 서서히 풀려갔다. 대학 때 건설현장 '노가다'는 물론이고 택배 배달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섭렵해 본 이호진 씨는 "영화판? 노가다 보다 더 심한 노가다"라고 잘라 말했다.
인천의 유명 공대를 멀쩡히 잘 다니다 "영화가 너무 하고 싶어서"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시 다른 대학의 영화 관련 학과에 진학했던 그는 세 작품을 끝으로 영화판을 떠나기로 했다. 2005년 첫 작품을 찍은 뒤 4년 동안 영화 제작 현장의 노동자였던 그는 최근 새로운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부모님은 "다 말릴 때는 그렇게 영화하겠다고 하더니 몇 년 하지도 않고 그만두려고 하냐"는 핀잔으로 안쓰러움을 표현했다. "내가 너무 좋아해서 하게 된 일인데, 또 그것 때문에 마음이 아프게 됐다"는 그에게 영화판을 떠나는 이유를 묻자, 그는 되물었다.
"영화 현실이 너무 막막해서요. 아직 결혼은 안 했지만, 한 집안의 가장이고…. 영화 스태프로서 나는 현장에서 인간으로 생각된 적이 없었어요. 그냥 하나의 '졸병'이었죠. 만약 영화 현장을 먼저 알았더라면, 그래도 내가 적극적으로 영화를 선택했을까요?"
"택배·건설 일용직·배달 아르바이트보다 영화판이 잔인한다"
이호진 씨의 아르바이트 경험은 화려하다. 대형 할인매장에서 택배 배달하는 일도 해 보고, '십장'인 선배를 따라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도 했다. 봉고차에 수영복을 싣고 울산에서 전라도 광주, 부산 등으로 납품하는 일도 했고, 식당 배달 일도 당연히 해 봤다. 심지어 입시학원에서 수강생들의 모의고사 답안지 OMR카드를 읽는 일도 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그보다 영화 제작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두 번째로 들어간 대학에서 자기 작품을 찍으려면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호진 씨에게 "그 모든 아르바이트보다 영화판이 잔인"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장시간 노동으로 대변되는 끔찍한 노동 강도도, "군대보다 더 심한 위계질서"도 아니었다. 만연한 임금체불, 그것이었다.
"하다못해 배달 일을 해도, 최저임금일지언정 돈은 주거든요. 그런데 영화는 그런 기본이 전혀 없어요. 제때 돈 주는 사람이 없어요."
영화 현장은 '월급'이 없다. 현장 스태프들은 보통 자기 임금을 세 차례에 나눠 받는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한 번, 중간에 한 번, 끝나고 한 번이다. 비율은 3:3:4 혹은 4:3:3이다. 약속했던 날에 돈이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떼이는 경우도 다반사다.
"촬영하는 동안은 제 때에 안 주긴 하지만 주긴 주거든요. 막말로 촬영부가 카메라 접자, 그러면 영화 못 찍잖아요. 그런데 제일 마지막에 받아야 할 돈은 보통 많이 떼여요. 예전에는 두 번에 나눠 줬다는데, 그러면 못 받는 돈의 비중이 너무 크니까 최근엔 세 번으로 나누는 경우도 많이 생겼어요."
▲ ⓒ가을로 |
이 씨도 본인이 참여했던 세 개의 영화 가운데 두 개에서 마지막 돈을 받지 못했다. 두 번째 영화였던 <가을로>는 제작사가 부도 처리됐다. 못 받은 이 씨의 돈도 함께 날아갔다. 마지막 작품에서도 그는 270만 원을 받지 못했다. 정우성, 이병헌, 송강호라는 화려한 라인업으로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 <놈놈놈>이었다. 임금을 다 받지 못한 것은 이 씨 뿐이 아니었다. 촬영부의 6명 스태프 모두가 50회 추가 촬영한 임금의 30%를 받지 못했다. 제작비만 240억이 든 영화였다.
"제작비 30~40억 영화에서 돈 떼이는 건 다반사죠. 그런데 240억이 들어간 메이저 영화를 하면서도 내 돈을 못 받는다는 사실이 정말 절망적이었어요. 앞으로 어떤 영화를 하든 적절한 보상을 받기란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광부마저 인정한 임금체불의 심각성…"계약서 있어도 노예계약" 제 때 돈이 나오지 않는 임금체불은 고질적인 영화 현장의 '병폐'로 꼽힌다. 지난해 12월까지 영화 스태프의 임금 체불 건수는 41건, 2008년 32건에 비해 27%나 늘어났다. 영화산업노조가 지난 1월 내놓은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부당하게 피해를 입은 경우를 꼽아보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5.1%가 '임금 체불'을 선택했다. 작품을 여러 개 한 사람일수록 임금체불 경험도 덩달아 높아졌다. 특히 영화가 수익을 내지 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스태프들에게 돌아간다. 일단, 다른 비용을 다 제외해 놓고 남는 돈에서 스태프 임금을 지급하는 식이기 때문. 이 씨가 <놈놈놈>의 제작사인 바른손을 찾아가 확인한 것도 그것이었다. 이 씨는 "마케팅 비용까지 240억이 들었고 수입은 200억으로 37억 손해를 봤다는 것이 바른손의 주장"이라며 "바른손은 <놈놈놈>이 이익이 생기면 그때 체불임금을 지급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직접 임금 체불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선 것도 영화 스태프의 노동조건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12월 "영화진흥위원회가 제작 지원을 할 때 지원금의 25% 이상을 인건비로 사용하도록 '인건비 쿼터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또 문광부는 "임금체불 상습업체에는 영진위의 지원을 배제하겠다"고 말했다. 표준근로계약서 가이드라인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권고' 수준으로는 이미 자리 잡은 관행을 뒤집기는 쉽지 않다. 홍태화 영화산업노조 조직국장은 "계약서를 쓰더라도 계약 기간이 '촬영 시작 때부터 극장에 상영될 때까지'로 적혀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극장에 안 걸리면 잔금은 못 받는 것이다. 홍 국장은 "노예계약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
"찍히면 이 바닥에서 사망이다"…그들의 침묵의 이유
▲ ⓒ외출 |
이 씨는 한 가지 에피소드를 덧붙였다. 그가 휴학 중이었던 2005년 처음으로 찍었던 영화 <외출> 때의 일이었다. 촬영감독이 학교 선배였고, "나이로 밀어붙여" 그는 '서드(third)'로 첫 영화를 찍었다. 운이 좋았다. 오버 촬영까지 포함해서 총 70회를 찍었는데 당시 이 씨의 임금은 400만 원이었다. 그는 "많이 받은 셈"이라고 말했다. 보통 수습 격인 '막내'들은 50회를 기준으로 200~300만 원을 받는다. 50회 촬영은 보통 3~4개월이 걸린다.
"<외출>은 배용준이 캐스팅 된 시점에서 70억 원의 제작비가 다 뽑아진 상태였어요. 그래서 추가 촬영 5회 임금을 다 제 때 받았죠. 그런데 다른 제작사들이 <외출>의 제작사로 항의를 엄청 했어요. '왜 오버 차지를 제 때 주냐. 너희가 그러면 우리도 그래야하지 않냐'는 게 요지였대요."
주더라도, 약속한 날짜보다 늦게 주는 제작사들의 암묵적 합의를 어겼다는 '항의'였던 셈이다.
이 씨는 그러면서 "바른손이라는 제작사는 여전히 영업을 하고 또 다른 영화를 만들고 있는데 내 노동의 대가는 <놈놈놈>이 수익이 나야 줄 수 있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 되물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실에 대해 당사자인 스태프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찍히면 곧바로 사망"이기 때문이다.
"영화 바닥이 정말 좁아요. 내가 잔금 못 받았다고 난리를 치면, 일이 안 들어오죠. 조수일 때야 촬영감독에 묻어서 가는 인생이니 괜찮다 하더라도, 내가 감독이 되면 적어도 그 제작사는 나랑 일을 안 하려고 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영화판은 '인맥'이 중요하다. "골치 아픈 애"로 낙인 찍혀 좋을 게 전혀 없다. 마음속에서는 모두들 "이건 불합리하다"고 느끼지만, 목구멍 뒤로 모든 말들을 삼켜야 하는 이유다.
홍태화 조직국장은 "스태프들이 체불을 당하면 70% 이상이 피해를 감수하고 무조건 기다린다고 보면 된다"며 "노조에서 영화인신문고를 운영 중이지만 이곳에 제보를 하는 사람도 별로 많지 않다"고 말했다.
"<과속스캔들>과 같은 저예산 영화의 흥행, 반갑지 않았다"
▲2007년 4월 크랭크인 해 2008년 1월까지 이 씨는 <놈놈놈>에 매달렸으니 10개월동안 받지 못한 돈까지 합쳐 한 달 평균 260만 원을 번 셈이다. ⓒ놈놈놈 |
보통 6개월에서 1년 6월까지 걸리곤 하는 제작 전 단계, 즉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 노동은 "뭉뚱그려 쳐 주는 경우도 있지만 영화 들어간 다음에 좀 더 얹어주는 방식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기획 단계에서 하는 창작의 노동을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드라마 보조 작가들과 마찬가지 신세다.
사실 그가 <놈놈놈> 촬영을 하며 받기로 한 임금은 총 2650만 원이다. 2007년 4월 크랭크인 해 2008년 1월까지 그는 <놈놈놈>에 매달렸으니 10개월의 수입이다. 받지 못한 돈까지 합쳐 한 달 평균 260만 원을 번 셈이다. 단순히 액수만 놓고 보면 적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이 돈은 그가 촬영부에서 감독을 빼고 서열 2위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지만, 이 씨는 "영화인의 하루 일당은 센 편이 맞다"고 했다.
문제는 영화 일이라는 것이 '없는 날'이 많다는 것이다. 영화 스태프는 연평균 1.64편의 영화제작에 참여하는데, 한 작품 당 보통 3~5개월 정도 일을 한다. 계산해 보면, 1년에 5~8개월 일하는 셈이다. 영화 노동자의 71.8%가 "실업기간 다른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씨는 "영화를 하는 사람도 영화가 주된 직업이라기보다는 '투 잡, 쓰리 잡'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세 작품 만에 '퍼스트 어시스턴트' 직책을 달았던 이 씨야 "정말 운이 좋은" 경우지만, 배운다는 명분 아래 거의 돈을 받지 못하는 막내는 영화로 생계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영화산업노조 조사 결과, 막내 급의 연간 수입은 274만 원에 불과했다. 팀장급은 1154만 원, 퍼스트가 928만 원이었다. 세컨드 직급의 연 수입 615만 원보다 막내는 3분의 1밖에 벌지 못하는 셈이다. 한 달 평균으로 환산하면 23만 원 수준이다. 같은 직종에서도 임금 양극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 씨는 그래서 더 "<과속스캔들>과 같은 저예산 영화의 흥행이 반갑지 않다"고 했다.
"일명 저예산 영화가 성공하니, 제작사들은 '그것 봐라, 시나리오만 좋으면 된다'고 하는 거예요. 제작비를 줄이겠다는 거죠. 그러면 어디서 돈을 깎을까요? 배우들 출연료는 마음대로 못 줄이잖아요. 물론 촬영 횟수를 줄이는 방법도 쓰겠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어요. 결국 줄어든 제작비는 대부분 스태프의 임금이 되는 거죠."
최근 들어서는 한국영화 제작편수마저 줄어들고 있다. 영화 제작편수는 영화 스태프의 일감과 직접 연결된다. 지난해 10월까지 제작된 영화는 모두 85편, 이 가운데 제작비 10억 원 이상의 영화는 42편에 불과했다. 2008년의 72편보다 41.6%가 줄어든 것이다. 영화산업노조는 대안으로 실업부조제도 도입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회적 울림은 아직까지 미미하다.
"28시간 찍고 쉬고, 다시 24시간 촬영…3D 영화? 우리가 3D다"
1년 중에 일하는 날이 더 적고, 그나마 일을 찾아도 돈은 적은 반면 노동 강도는 가혹한 수준이다. 이 씨는 "촬영이 시작되면 어떤 사생활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쉬는 날도 쉬는 게 아니예요. 개인적인 볼일을 보다가도 촬영부가 오라 그러면 무조건 가야하거든요. 2007년 대통령 선거 때도 부안에서 촬영 중이었는데, 아무도 '투표해야 하니까 오늘은 촬영 쉬자'는 말을 안 했어요. 오늘이 대통령 선거날이라는 언급도 없었지만.
게다가 1회 촬영을 하면 무조건 24시간 일을 하죠. 아침 6시에 모여서 아침 신 찍고, 오후 신 찍고, 밤 신까지 다 찍고 다음날 해 뜨기 전, 6시에 헤어지는 게 '한 회'거든요. 제작비를 아끼려고 몰아서 찍는 거죠. <놈놈놈>만 해도 막판에 28시간 촬영하고 8시간 쉬고, 다시 24시간 촬영하고 8시간 쉬고, 그렇게 4회를 찍었어요."
그는 "요즘 3D영화가 유행이라지만 우리는 진짜로 3D 잡"이라고 말했다. 영화 스태프의 66%는 정기 휴일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고, 촬영 기간 중 평균 근로시간은 하루에 13.5시간이었다. 이 가운데 야간근무는 4.9시간이나 됐다.
일은 고된데, 그에 따른 보상은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보니 중간에 포기하는 스태프들이 많다. 이 씨는 "헐리우드와 달리 우리 영화 현장에 나이든 전문가들이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더욱이 1등인 '감독님'이 되지 못하면 자기 기술도 무의미해지는 한국 사회의 시선도 이들의 이직을 부추긴다.
"우리나라는 누구나 감독이 되고 싶어 하죠. 내가 <놈놈놈>에서 한 일이 렌즈의 초점을 수동으로 맞추는 '포커싱'이거든요. 사실 포커스는 노련해야만 할 수 있어요. 자칫하면 초점이 나가니까요. 외국은 평생 포커싱만 해 온 머리 희끗희끗한 스태프들이 많죠. 그런데 우리는 퍼스트 되어서도 포커싱을 하면 그 기술을 인정해주는 게 아니라 '감독이 못 되서 그렇다'고 다들 수근 거려요. 모두가 자기 전문 기술보다는 감독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만 여기는 거예요."
"지금 내 꿈은 내가 일한 만큼 돈을 받는 것"
그는 결국 영화를 그만두기로 했다. 늦은 나이에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든 그는 오래도록 꿈이었던 영화를 떠나는 이유에 대해 "메이저 영화를 통해서 내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 확실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호진 씨는 "무엇보다 이 침묵의 카르텔 속에 있는 것이 두려웠다"고 했다. "내가 감독이 되었을 때 촬영부 막내가 겨우 300만 원밖에 안 되는 돈마저 떼였다면, 그때 나도 침묵하게 될까 두렵다"고 덧붙였다.
영화판을 떠나기로 결심하면서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그의 꿈은 사라졌다.
"지금 꿈은 내가 일한 만큼 돈을 받는 것 뿐이예요. 아니, 적어도 약속했던 내 노동의 대가를 최소한 떼이지 않는 것. 바로 몇 년 전까지의 꿈은 좋은 영화에 참여하고 언젠가 촬영감독이 되는 것이었는데…. 나와 같은 수많은 젊은이들의 꿈을 빨아 먹고 사는 이들이 있는 거죠."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