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아무 것도 말하기 곤란한" 이유로 원장은 3개월 넘게 공석이다. 고용정책을 위한 기초자료로 10년 넘게 연구원만이 담당해 왔던 한국노동패널도 4월이면 조사를 시작해야 하는데 노동부는 계약 체결을 여전히 "검토 중"이다. 올해 들어 발주된 노동부의 신규 용역 가운데 노동연구원이 따낸 것은 하나도 없다.
연구원 부설기관인 고성과작업장혁신센터(KOWIN)가 하던 업무도 속속 공개 입찰로 돌려져, 사실상 센터가 공중분해될 위기에 놓였다. KOWIN 직원 45명은 올해 들어 한 번도 월급을 받지 못했다.
이런 사태에 대해 원장 공모 주체인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노동부 모두 언급하기를 저어하는 분위기다. 다만 노동부 박종길 대변인은 '노동연구원의 문제가 뭐냐'는 질문에 "연구원의 능력에 대한 불신도 있고 향후 운영이 확실하지 않다"고 답했다. 노동연구원 폐지까지 정부가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KOWIN 노조에게 "영원히 무파업" 약속 받고, 센터 해체 작업에 착수?
노동부는 최근 노동연구원의 부설기관인 KOWIN이 담당해 오던 업무에 대한 공개 입찰에 나섰다. 고령자고용, 여성고용촉진, 노사파트너십 등 정부 지원 사업 6가지와 작업장혁신, 임금피크제 등 컨설팅사업 4가지 등 KOWIN이 맡아해 오던 업무 가운데 현재까지만 4가지 업무를 공개 입찰 공고한 것이다. 여성고용촉진컨설팅과 작업장혁신지원, 고용구조개선지원사업, 고령자고용안정컨설팅이 그것이다. 노동부는 지난 9일과 10일 잇따라 입찰 공고를 냈다.
"KOWIN의 사업을 공개 입찰로 바꾼 것은 사실상 센터 해체와 다름 없다"는 것이 관련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광오 공공연구노조 정책국장은 "노동부가 노사발전재단에 관련 업무를 줄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센터는 직원들에게는 이직을 권유하고 있고 이미 상당 수 직원들이 재단에 지원한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실제 노사발전재단은 KOWIN이 담당하던 업무의 공개 입찰에 모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밌는 것은 이런 노동부의 공개 입찰 조치에 앞서 KOWIN의 노사가 "항구적인 무파업"을 약속했다는 사실이다. 공공연구노조 노동연구원지부와 별도로 조직된 고성과작업장혁신센터노동조합은 지난 2월 2일 사 측과 '노사문화 선진화 합의문'에 도장을 찍었다. 이 합의문에서 양 측은 △항구적 무파업 실천, △정부의 표준단협안에 기초해 단체협약 개정, △전 직원의 고용안정을 위해 협력할 것 등을 약속했다.
연구원 산하 기관으로 KOWIN 사 측이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감안하면, 정부는 노조로부터 영원히 파업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놓은 뒤 센터의 해체 작업에 들어간 셈이 된다.
▲ 지난해 설립 20년 만에 최초의 파업 사태를 겪었던 한국노동연구원에 대한 정부의 '숨통 죄기'가 도를 넘고 있다. ⓒ프레시안(여정민) |
전체 용역의 78%가 노동부 용역인데, 노동부는 '연구원에 용역 절대 안 줘'
KOWIN 뿐이 아니다. 노동연구원 자체도 일감이 뚝 끊겼다. 지난해 노동연구원이 수행했던 50건의 연구용역 가운데 노동부가 발주한 것은 모두 35건이다. 전체 29억9500만 원의 용역 금액의 78%에 해당된다. 이는 지난해만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노동연구원이 정부 정책의 기초 연구를 수행하는 국책연구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당연히 연구원이 해 오던 각종 용역이 모두 끊겼다. 정부 정책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고용영향평가센터는 한국고용정보원으로 넘겨졌다. 지난 1998년부터 연구원이 수행해 왔던 기초자료 조사 작업인 노동패널과 고령화 정책과 관련된 조사인 고령화연구패널은 아직까지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패널 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노동부 노동시장분석과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노동부 차원에서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있는데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며 "우리 과도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패널 조사가 연구원으로 맡겨지지 않은 것은 이례적인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노동부 박종길 대변인도 "연구원이 문제가 있어서 고민이 있는 것을 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공연구노조는 "패널사업은 조사기관이 변경될 경우 사실상 자료의 가치가 상실되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이런 사례는 없다"며 "일자리 정책을 위해 그동안 투여됐던 세금 113억 원이 공중분해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연구원 재정에서 정부 용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노동부의 과제 발주 금지 조치는 강제적인 구조조정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이런 사태에 앞선 지난 1월,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관행적으로 노동연구원에 노동부의 용역을 발주하지는 않겠다"고 말했었다.
원장 공모 왜 안하나? 경인사연 "지금은 공식 입장을 말하기 곤란하다"
3개월 넘게 공석으로 방치돼 있는 원장 자리도 문제다. 지난해 12월 박기성 전 원장이 사퇴한 이후 경인사연은 원장 공모 절차를 시작도 하지 않고 있다. 대개 국책연구기관의 원장은 임기 만료 이전에 공모 절차가 시작되고, 갑작스럽게 원장이 물러난 경우라도 곧바로 공모가 시작되는 것이 당연한 관례였다.
산업연구원의 경우에도 현 원장의 임기 만료 훨씬 전부터 새 원장에 대한 공모 절차가 진행 중이다. 오상봉 현 원장의 임기는 오는 21일 만료되는데, 경인사연은 지난달 12일 이미 원장 공모 공고를 냈다. 8명이 응모해 지난 9일 3명의 후보를 추려낸 경인사연은 19일 면접을 실시했다. 이광오 정책국장은 "다른 국책연구기관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유독 노동연구원만 3개월 동안 원장을 공석으로 내버려두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인사연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현재는 아무 것도 말할 시점이 아니다"고 말했다. 노동연구원 원장 공모 계획이 당분간 없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같은 답을 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언론에 보도되는 선에서 이해하는 게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는 이유 없이 연기되고 있는 원장 공모가 '파업에 따른 노동조합 손보기, 국책연구기관 길들이기' 차원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답이다.
공공연구노조는 이날 성명을 통해 "정부가 노동연구원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외면한다면 그 피해를 국민에게 갈 것"이라며 "정부의 의도가 무엇이든 이런 치졸한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한나라당의 남경필 의원은 지난 10일 "노동연구원의 업무가 3개월 동안 실질적으로 중단돼 있어 정부가 일자리 창출 정책에 역주행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고 있다"며 "경인사연은 하루 빨리 원장 공모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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