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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같은 드라마 뒤 '막장 착취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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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같은 드라마 뒤 '막장 착취 시스템'?

[한국의 워킹푸어] 꿈과 생계를 맞바꾼 드라마 보조 작가

화려한 조명, 현란한 카메라의 시선, 모든 이의 선망의 대상인 배우들. 그들이 보여주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와 드라마. 때론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일들이, 때로는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꿈꾸는 운명 같은 사랑이, 또 언젠가는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깊고 진한 절망이 꿈처럼 펼쳐지는 곳.

많은 이들을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하고, 들뜨게도 하는 영화와 드라마에도 사람이 있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었을 것이다. 내가 저런 영화의 감독이 된다면, 내가 배우가 된다면, 내가 저런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꿈을 꿨던 이들 가운데 몇몇은 실제로 그 일에 뛰어든다.

자신이 오랫동안 바라던 영화가, 드라마가 '내 일'이 되는 순간, 꿈이 현실이 되는 그 때 그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생계난이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그렇다. '처음엔 다 바닥부터 배우는 것'이라는 업계의 관행으로, '데뷔만 하면, 감독만 되면 나도 제대로 된 보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그들의 노동과 창작은 헐값에 팔린다.

사람들은 그들의 생계난을 일종의 기회비용으로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기약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견디지 못해, 불안정한 오늘의 고통을 감당하기 벅차 또 많은 이들은 꿈을 다시 포기한다. 화려해 보이는 영화와 드라마, 그 꿈을 위해 오늘을 버티고 있는 드라마 보조 작가와 영화 스태프의 이야기를 2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외식업체 11년 다녀 모은 돈, '보조 작가' 3년 만에 다 써"

드라마 보조 작가 김진국(41, 가명) 씨는 최근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친구가 하는 호프집에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사흘을 일한다. 홀 관리도 하고 계산도 하다 보니, 2004년까지 무려 11년 동안 몸 담았던 외식업체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다. 호프집과 그가 일했던 패밀리 레스토랑이 꼭 같지는 않아도, 작가라는 오랜 꿈을 위해 스스로 떠났던 곳으로 돌고 돌아 다시 온 것은 아닌지 괜한 감상을 털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가 다시 친구의 일을 돕기로 한 것은 생계비 때문이다. "큰 돈은 아니어도 11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모아둔 돈"은 바닥이 난 지 오래다. 혼자 살던 월세 방도 조만간 정리하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갈 생각이다. 비록 미혼이기는 하나, 부모님 신세를 다시 질 생각을 하니 쓸쓸하다.

"2006년에 한국드라마작가협회 교육원을 수료하면서 독립했거든요. 그때는 제가 회사 다니면서 모아둔 돈으로 데뷔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이렇게 끌 줄은 정말 몰랐죠. 이렇게 험난하고 어려운 길인지도 몰랐지만. 4월 쯤에는 다시 들어가려고 해요. 생계가 너무 어려워서 그렇죠. 드라마 작가 하겠다고 할 때 집에서 반대가 워낙 심했는데 좀 민망해요…."

김진국 씨는 현재 한 기획사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보조 작가다. 신동호(37, 가명) 씨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유명 대학 영문과 출신인 신 씨는 요즘 중고등학생 과외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고 있다.

신 씨가 드라마 작가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 것은 그의 나이 33세 때의 일이었다. 주요 포털 사이트를 비롯해 IT 계통에서만 총 5년을 일한 후였다. 마지막 회사였던 인터넷 쇼핑몰에서 그는 성과급을 빼고 연봉 3100만 원을 받았다.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운 뒤, 신동호 씨는 다시 '과외 시장'에 뛰어들었다. 주로 고등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한 달에 평균 100~130만 원을 벌었다.

"많이 벌 때는 200만 원도 벌었죠. 그런 때는 많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과외 아르바이트라는 게 들쑥날쑥하다는 거예요. 직장인들처럼 매달 몇일이 되면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런 저런 이유로 돈 받는 날이 늦춰지는 일도 많죠. 작가 일을 시작하면서는 그런 정도의 불안정성이야 당연히 참아야한다 싶기도 했는데, 그나마 제가 미혼이니 견디기 수월했던 거죠."

지난해 11월 가르치던 학생이 수능시험을 보고 나니, 그 수입은 사라졌다. 여기 저기 새 과외 자리를 알아보고는 있지만 그는 5개월 째 '과외' 수입이 없다.

▲영화와 드라마에도 사람이 있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었을 것이다. 내가 저런 영화의 감독이 된다면, 내가 배우가 된다면, 내가 저런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진은 드라마 <아이리스>의 촬영 현장에 있는 배우 이병헌 씨의 모습. ⓒ연합뉴스

"이렇게까지 못 벌 줄은 몰랐다"

잘 나가는 회사를 멀쩡히 잘 다니다 '엉뚱한' 곳으로 방향을 바꾼 것은 두 사람 모두 30대 때였다. 어린 시절 품었던 꿈을 다시 생각한 계기는 각기 달랐다. 김진국 씨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신춘문예에 창작 소설을 내곤 했었다. 고등학교 3학년을 마치고 재수를 하면서 그는 처음으로 장편소설을 탈고했다. 1990년의 일이었다.

"그때는 컴퓨터도 없고 원고지에 소설을 썼거든요. 1200매를 써서 공모에 냈는데 최종심까지 올라가더라고요. 당선작으로 뽑히진 않았지만 그래도 동기부여가 많이 됐죠. '아, 내가 글 써도 되는구나'하는 생각을 처음 가진 셈이랄까. 물론 대학에서는 문학과 전혀 관계 없는 식품을 공부했지만, 그 경험이 마음 속에 씨앗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4년 김 씨는 몸이 아파 회사를 잠시 그만뒀다. 패밀리 레스토랑 업계가 워낙 이직이 잦다 보니, 다시 돌아가기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 그보다 김 씨는 집에서 요양을 하면서 잊고 있던 그 '씨앗'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소설보다는 영화 시나리오에 더 매력을 느꼈지만, 드라마도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교육원 모집 공고에 눈이 번쩍했다.

반면 신동호 씨가 교육원의 문을 두드린 것은 오랜 꿈 보다는 현실의 절망이 컸다. 웹기획자였던 신 씨는 하는 일에서 보람을 찾지 못했다.

"창작하는 일을 너무 하고 싶었어요. 웹기획은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기보다는 있는 것을 붙였다 뗐다 하는 기능공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물론 창작의 요소가 전혀 없지는 않죠. 그런데 그보다는 고객을 끌어들이는 '장사'가 늘 더 중요했어요. 그런 과정이 싫었죠."

신 씨가 방송 작가라는 직업을 처음 자신의 사전에 올린 것은 대학 때였다. 동아리 활동을 하며 그는 라디오 드라마를 썼다. 창작의 쾌감도 그때 알았다. 그렇다고 그가 방송 작가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뜨기' 전에는 돈을 잘 못 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수현이나 노희경 같은 '스타 작가'는 회당 2000만 원이 넘는 돈을 받지만, 신인작가는 보통 회당 300만 원을 받는다. 물론 '데뷔'를 했을 때 얘기다.

신 씨는 "경제적인 이유로 드라마 작가보다는 PD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그가 비교적 자리를 잡은 셈이었던 IT 일을 그만두고 '돈 못 버는' 드라마 작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냐는 생각이었어요. 이렇게까지 못 벌 줄은 차마 몰랐죠."

6개월 동안 보조 작가로 번 돈은 150만 원…"중간에 '엎어지는' 일은 다반사"

▲ 최근 종영한 드마라 <파스타>의 제작발표회. ⓒ연합뉴스
두 사람은 지난 2월 말까지 한 기획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같이 하고 있었다. 아이디어를 가지고 취재를 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다시 대본을 써서 제작사에 파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드라마 제작사가 그들의 이야기를 산다 하더라도 곧바로 방송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제작사가 그들의 대본을 들고 방송국에서 편성을 따내야 한다.

지난 2월 그 프로젝트는 시놉시스가 마무리 된 상태였다. 지난해 11월부터 한달 반 동안 시놉시스 작업을 하고 150만 원을 받기로 했는데, 그 돈도 절반은 아직 받지 못했다고 했다. "기획사 대표가 '제작사와 대본계약이 되면 남은 돈을 주겠다'고 말했다"고 그들은 설명해줬다. 당시 김 씨는 "대본계약이 돼야 또 일을 할 수도 있고, 100만 원도 안 되지만 돈도 받을 수 있으니 빨리 대본계약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얼마 뒤 그들의 프로젝트는 속칭 '엎어졌다.' 말은 무기한 연기인데, 사실상 끝난 것이다. "자주 있는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들은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이 지난해 몇 달 동안 머리를 싸매면서 일했던 다른 프로젝트도 중간에 엎어졌었다. 만들던 드라마가 엎어졌으니 대본계약도 할 리가 없고, 돈을 줄 곳도 없다.

"작품은 엎어졌지만 시놉시스 계약에서 못 받은 돈은 4월 중으로 주겠다"고 기획사 대표가 약속했다. 그들이 4월에 남은 돈을 받는다는 전제 아래, 지난해 11월부터 6개월 동안 그들이 '보조 작가'로 벌어들인 수입은 150만 원인 셈이다. 한 달 반을 바라보고 시작한 작업이 기획사와 제작사 사이에서 막연히 늘어지는 동안 그들의 생계는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았다.

신 씨는 "사실 우리는 보조 작가 치고는 특이한 경우"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드라마 보조 작가는 메인 작가와 계약을 한다. "한 달에 100만 원 줄 테니 나랑 일하자"는 식이다. 지난 2008년 방영된 드라마 <온에어>에 나오는 보조 작가 안다정(강주형 분)이 대표적인 경우다. 드라마에서 안다정은 메인 작가 서영은(송윤아 분)과 함께 한 오피스텔에서 같이 지내며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해준다. 스케줄 등 방송국과의 소통은 물론이고, 자료 조사에 커피 내리는 일까지 다정의 몫이다. 물론 메인 작가 영은의 심기를 최대한 편안하게 맞춰주는 것도 포함해서.

사실 이런 형태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경우 보조 작가의 월급은 작가 개인이 부담하거나 또는 제작사가 메인 작가와 계약할 때 보조 작가와도 함께 계약을 맺어 제작사가 주기도 한다. 대부분 메인 작가가 작품 계약을 맺고 실제 방송을 준비할 때만 보조 작가를 고용하는 형태여서 역시 안정적이라 보긴 어렵다.

두 사람은 작가와 1 대 1로 계약해 일을 한 경험은 없다고 했다. 김 씨는 "여성 작가들이 많은데 여성들은 우리 같은 남성 보조 작가를 한 집에 데리고 있는 것을 좀 부담스러워한다"고 설명했다. 신 씨도 비슷한 이유로 한 작가와 일 할 기회를 놓친 경험이 있다.

▲지난 2008년 방영된 드라마 <온에어>에 나오는 보조 작가 안다정(강주형 분)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드라마에서 안다정은 메인 작가 서영은(송윤아 분)과 함께 한 오피스텔에서 같이 지내며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해준다. ⓒSBS

"매년 예비 작가는 길러지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보조 작가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한국방송작가협회도 "보조 작가의 규모는 모른다"고 했다. 작가협회 관계자는 "정식 회원은 2200명인데 데뷔를 해야만 회원 자격이 있는 만큼 데뷔 전의 보조 작가 규모를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작가 협회 회원이 되려면, 60분 기준 단막극이나 특집극 2편 이상이나 미니시리즈나 연속극 1편 이상을 해야 한다.

거칠게 추정은 해볼 수 있다.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작가협회가 운영하는 교육원의 문을 두드리기 때문이다. 기초반부터 마지막 창작반까지 교육원은 일종의 선발을 통해 정원을 줄여간다. 매년 수료생이 30명씩 나온다. 1988년 1기 교육생을 받은 뒤 교육원은 매년 2차례 수강생을 모집했다. 교육원에서만 600여 명의 예비 작가들이 나온 셈이다.

교육원에 다니는 데는 물론 돈이 든다. 총 4학기를 거쳐야 수료가 가능한데, 마지막 학기를 빼고는 모두 수강료가 있다. 기초반은 60만 원, 연수반은 70만 원, 전문반은 80만 원이다. 하지만 수료생들이 데뷔할 수 있도록, 일종의 '취업'을 위해 교육원이 지원하는 것은 전혀 없다. 졸업할 때 졸업생들의 작품을 모아 책으로 내는 '졸업반 작품집'이 전부다. 김 씨는 "수료와 동시에 각자가 알아서 헤쳐가야 한다"고 말했다. 예비 작가만 길러 놓고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셈이다.

확실한 길은 없는 '데뷔'…치열한 경쟁을 핑계로 헐값에 팔리는 노동

꼭 교육원을 통해야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각 방송사가 주최하는 공모전에서 입상을 해 데뷔하는 경우도 있다. 작가협회는 "매년 각 방송사의 극본 공모에서 당선작의 80% 이상을 교육원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교육원 출신이라도 공모전 당선이 쉬운 일은 아니다.

김 씨는 "공모전을 통한 데뷔는 평범한 예비 작가들에게는 판타지고 로망"이라고 덧붙였다. "그럼 어떻게 데뷔하냐"는 질문에 이들은 이런 저런 사례를 얘기했지만 그 무엇도 '확실한' 길은 아니라고 했다. 특히 지난 2007년 MBC에 이어 2008년 KBS까지 단막 드라마를 폐지하면서, 이들의 데뷔의 길은 더 힘들어졌다.

"보통 단막으로 데뷔를 하고 그 다음에 인연을 맺은 PD 등과 미니시리즈도 하고 그러거든요. 16부작인 미니시리즈를 아예 신인하게 맡기는 것은 방송국도 부담이 있으니까요. 단막이 사라진 뒤에 방송국들이 공모도 미니시리즈로 하더라고요. 당선이 된다 해도 생 초짜의 대본이 방송까지 될 수 있을까요?"

신 씨는 물었다. 불투명한 미래와 치열한 경쟁은 오늘의 노동까지 헐값에 팔리게 만든다.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고 다시 이야기로 구성하는 일종의 '개발' 단계의 대가를 받는 예비 작가는 거의 없다. 기획안이 운 좋게 제작사 마음에 들어 대본계약을 하게 되면 돈이 나오지만, 그 전까지는 오로지 혼자의 생각일 뿐이다. 심지어 "자신의 아이디어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방송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아이템 자체는 괜찮은데 제작사가 방송국에서 편성을 딸 때 신인 작가는 불리하기 때문이죠. 방송국이 신인 작가를 못 믿는다는 거예요. 그럴 때 기성 작가에게 그 아이템을 주고 대본을 쓰게 하는 거예요. 제작사는 '미안하다'고만 하죠. 개발비요? 당연히 없죠. 연예인들의 노예계약이랑 비슷한 거예요."

왜 그런 일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일까? 신 씨는 "데뷔하려는 작가는 많고, 돈 안 주고도 일을 부려먹을 사람은 줄 서 있으니까"라고 답했다. 김진국 씨도 "데뷔는 해야겠고 틈은 좁으니 어떻게 하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보려고 우리도 우리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방송사의 지나친 시청률 집착, 스타 작가끼리 파이 나눠먹는 구조 만들어"

이런 현실은 방송사의 지나친 시청률 집착에서 시작된다. 신인 작가의 아이템이 기성 작가에게 공짜로 넘겨지는 황당한 상황 역시 그렇다. '스타 배우'의 캐스팅 만큼이나 '스타 작가'는 시청률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제작비를 끌어오는 데도 스타 작가는 배우만큼이나 중요하다. 한 방송국 드라마 PD는 "편성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지는 것은 배우지만, 그 다음이 작가"라고 말했다.

당연히 현재 방송국 드라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주제작사도 신인 작가는 기피한다. SBS는 연속극을 포함해 모든 드라마가 외주제작이고, MBC 역시 90% 수준을 외주제작사가 맡는다. KBS만이 1일 연속극, 대하사극을 자체 제작하고 있다. 이 PD는 "드라마국의 편성회의는 언젠가부터 외주제작사가 내놓은 기획안과 캐스팅된 배우, 작가를 놓고 고르는 식이 돼 버렸다"고 설명했다.

당연히 외주제작사는 설사 최근 지탄받는 자극적인 설정과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막장 드라마'라 할지라도 시청률 잘 나오는 스타 작가를 원하고, 방송국은 신인 작가가 데뷔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단막극마저 잇따라 폐지했다. 역시 시청률과 돈 때문이다. 낮은 시청률은 광고, 즉 방송국의 수입과 직결돼 있는데 돈은 안 되고 제작비만 들어가는 단막극이 왜 필요하냐는 논리다. 미니시리즈로 한 번 성공한 PD들조차 단막을 기피하는 이유다.

단막 폐지의 가장 큰 피해자는 예비 작가들이다. 보통 단막극을 통해 데뷔를 하고 미니시리즈까지 진출하는 시스템에서 첫 단계가 사라진 것이다. 이 PD는 "신인 작가의 업계 진입이 어려워지면서 윗세대가 한정된 파이를 계속 나눠먹으며 늙어가고 아랫세대는 계속 그 윗세대를 보조하면서 함께 늙어가는 꼴이 됐다"고 평했다.
"요즘 세상에 드라마 작가 남편 뒷바라지 누가 하나요?"

김 씨는 "이 세계에서는 남성이 성차별을 받기도 한다"고 호소했다.

"유명한 작가가 여성이 많다 보니 그 작가들의 보조 작가로 일하는데 남성은 불리한 게 사실이고, 드라마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잘 쓴다는 편견도 있어요. 농담처럼 남자 작가들 사이에선 그런 얘기도 합니다. 'PD들이 대부분 남자라서 여자 작가랑 일하고 싶어 하는 것 아니냐. 몸이라도 팔고 싶은데 우리는 살 사람도 없다'고요. 참 서글프죠?"

신 씨는 "불안정한 상태를 버티는 것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잘 한다"고 덧붙였다.

"남자 작가가 많이 못 살아남는 제일 큰 이유는 생계예요. 특히 결혼하면 남자의 수입이 이렇게 오랫동안 불안정해서는 살 수가 없잖아요. 대부분 다 떨어져나가죠. 남편의 수입이 있는 '아줌마'들이 더 오래 버텨요. 남편이 벌고 아이도 없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죠. 어떤 날은 그게 참 부러워요."

이미 마흔 전후의 나이가 되었지만, 두 사람은 결혼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요즘 세상에 누가 남편 뒷바라지 하러 결혼하나요. 사법시험도 아니고 드라마 작가 만들려고?"

"너무 뜨겁지만 놓을 수 없는 '뜨거운 감자'를 들고 있다"

"공모전 떨어지고, 데뷔 기회는 안 오고, 점점 더 두렵고, 어느 날 '나 안 할래'는 아니어도 서서히 멀어지는 사람들"을 그들은 많이 봤다. 정식 작가가 되는 그 날이 언제 올지 모르는 것은 두 사람 모두 마찬가지다. "언제쯤 데뷔할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그들은 '기대'가 아닌 '의지'를 얘기했다.

"내년에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올해 안에 할 거예요."

두 사람은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쯤에서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볼 생각은 없냐고 물었다. 김진국 씨는 대답했다.

"지금은 그럴 생각 없어요. 아르바이트도 4월까지만 하려고 해요. 내 작품 쓰는데 집중하고 싶어서요. 포기하고 싶진 않아요. 아예 시작을 안 했으면 모르지만, 나는 시작했고 맛을 알았고 성취감을 알았죠. 이미 중독돼 버렸어요. 계속 잡고 있기는 너무 뜨겁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놓치기는 아깝고 그런 상태죠, 뜨거운 감자처럼."

다른 이들보다 좀 더 용기 있게, 자신이 하고 싶고 또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그들이 무조건 참아야하는 것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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