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에서 생겨난 변화 역시 이런 사례다. '무상급식'이 연일 신문 지상을 오르내리는 전국적인 정치 쟁점이 됐다. 불과 1년 전만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변화다. '무상급식'이 그저 교육정책 의제에 머물지 않고 정치적 의제가 됐다는 것은, 간단치 않은 의미가 있다. '보편(주의)적 복지'라는 기획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무상의료 사회에서 병원 수준 높은 이유
"가난한 집 아이들도 부잣집 아이들과 똑같은 밥을 먹을 수 있게 하자"라는 말로는 '보편적 복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얼핏 들으면, 박애주의자들의 호소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의 핵심은, 사회정책 수혜자와 납세자를 일치시키는데 있다. '보편적 복지'와 대비되는 개념인 '잔여(주의)적 복지(선별적 복지)'와 결정적으로 구분되는 지점도 이 대목이다. '잔여적 복지'에서는 많은 세금을 내는 부자들이 아무런 혜택을 입지 못 한다. 부자들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시혜'에 돈을 쓰는 셈이다. 당연히 부자들, 그리고 부자들 편에 서 있는 언론과 정치 세력은 세금을 덜 거두도록 정부에 압력을 넣게 된다. 세금은 점점 줄어들고, 복지 수혜자 규모 역시 덩달아 줄게 된다. 복지 수혜자 범위가 어느 수준 이하로 줄게 되면, '낙인 효과'까지 생긴다. " 복지 수혜자 =경제적 무능력자"라는 등식이 통한다는 게다.
'보편적 복지'는 고교 평준화가 잘 작동하던 시절의 한국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이런 사회에서는 부잣집 아이도 가난한 집 아이와 똑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아야 한다. 에어컨이 잘 갖춰진 집에서 곱게 자란 아이가 선풍기도 없는 교실에서 공부하는 게 안타까워도 어쩔 수 없다. "학교에 돈 더 낼 테니, 우리 아이는 좋은 교실에서 공부하게 해 달라"는 주장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부자들이 취할 선택은 학교에 돈을 내는 것이다.
실제로 어느 재벌 3세가 서울 강북 지역에 있는 공립 고교에 입학했을 때, 이 학교 건물 전체가 대대적으로 수리됐다고 한다. 교실마다 에어컨과 칼라 텔레비전이 설치됐고, 화장실도 전부 수세식으로 바뀌었다.
만약 부잣집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따로 있었다면, 재벌이 이런 선택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부자 학교에 보내면 될 일이다.
무상의료가 이뤄지는 북유럽 국가의 병원이 높은 의료 수준을 자랑하는 것도 같은 원리다. 부자들도 아프면 가난한 사람과 같은 병원에 가야 한다. 따라서 병원 서비스에 불만을 가진 부자들은 세금을 더 내서라도 공공의료 개선을 요구하게 된다. 자식을 공립 고교에 보낸 재벌이 학교 전체를 뜯어고치게끔 한 것과 비슷한 원리다.
반면, '잔여적 복지'에선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부자들은 공공의료 시설을 이용할 일이 없으므로, 부자들 입장에선 공공의료 확충을 위해 내는 세금은 그저 '시혜'일 뿐이다. 공공의료는 자연스레 후퇴할 수 밖에 없다.
"이제는 복지다"…여의도에 부는 바람
보편적 복지와 잔여적 복지를 둘러싼, 이런 논쟁은 유럽에선 뿌리가 깊다. 반면, 한국에선 그저 책에서나 접할 수 있는 논쟁일 뿐이었다. 그나마 이런 책도 복지에 관심 있는 소수만이 읽었다. "복지는 시혜일 뿐"이라는 생각이 당연한 것으로 통하던 분위기에서는 진보적 지식인조차 복지 담론에 냉소적이기 일쑤였다. '보편적 복지'라는 개념은 낯설고, '복지 = 잔여적 복지'라는 등식이 통하던 조건에선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상급식이 정치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보편적 복지'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한때 민주투사가, 또 어느 시절에는 남북관계 전문가가, 그리고 어느 때는 경제 전문가 혹은 유능한 CEO가 정치인들이 선망하는 이미지였다면, 곧 복지전문가도 비슷한 반열에 오르게 될까?
15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사 1층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복지국가 제안 대회'에 유력 정치인들이 대거 참가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명숙 전 총리, 정동영∙천정배∙이종걸 민주당 의원,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진보신당 노회찬∙심상정 전 의원 등이 참가하는 자리다. 이들 정치인들은 그저 '얼굴마담'으로 참가하겠다는 게 아니다. 노동복지, 교육복지, 국민연금, 의료복지, 보육복지 등에 대해 각각 자신의 비전을 설명하겠다고 한다. 야당 정치인들이 '보편적 복지'라는 의제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풍경이다. (☞관련 기사: '창조적 선진화' vs '역동적 복지국가', 진검승부의 시작)
책에서만 '보편적 복지'라는 말을 접할 수 있던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장면이 한편 낯설면서도 감개가 무량한 일이다. 이날 행사를 준비한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 역시 이런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이 교수는 '역동적 복지국가 실현'을 목표로 지난 2007년 10월 출범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100여 명의 경제, 사회, 복지 전문가가 정책위원으로 활동하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얼마 전 이 단체가 표방하는 복지국가의 청사진을 부문별로 정리한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15일 열리는 '복지국가 제안 대회'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 출판 기념회를 겸하는 자리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있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실에서 이상이 교수를 만났다. 15일 행사를 준비하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의 목소리에서는 힘이 넘쳤다. 오랫동안 다듬어 왔던 '보편적 복지'를 향한 비전이 현실에서 구체화될 조짐이 보인다는 데서 오는 활기였다. 이날 나눈 대화를 간추려 정리했다.
▲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오래 전부터 '보편적 복지'에 대해 연구해 왔다. ⓒ프레시안 |
"이제 '복지패배주의'를 깰 때"
프레시안 : 무상급식 논쟁을 계기로 '보편적 복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예전에는 복지에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하던 이들도 복지에 대해 한마디씩 하곤 한다. 의료서비스 시장 개방을 놓고 노무현 정부와 날카롭게 대립했고, 오래 전부터 '보편적 복지'에 대해 연구해온 입장에선 감회가 깊을 듯 하다.
이상이 : 한 시절을 이끌었던 신자유주의가 이제 시효를 다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박정희식 개발독재, 이후 들어선 신자유주의, 그리고 요즘 보수 세력이 주장하는 '창조적 선진화' 담론은 조금씩 다른 면이 있지만, 복지를 '약자에 대한 시혜'로 본다는 점에서는 모두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잔여적 복지'에만 머물러 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여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급격히 진행된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이제 집권 세력조차 외면하기 힘든 수준이 됐다. 인구 노령화에 따른 복지 수요 증가 역시 마찬가지다. 보육 인프라 부족으로 인한 출산율 저하는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이며, 이는 집권 세력 역시 인정하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재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4대강 사업 등 낭비적인 토목공사, '부자 감세' 정책 등이 이유다. 복지 수요와 복지 재원 사이의 거리가 계속 멀어지기만 하는 상황. 이게 현 정부의 치명적인 모순이며 약점이라는 점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 정치인들이 복지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 다음 단계가 '보편적 복지'에 대한 관심이다. 복지 수요와 재원 사이의 모순은, 기존의 '잔여적 복지'마저 축소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빈곤층이 확대되고 있는데도, 기초생활수급자 수가 줄어든 게 대표적인 예다. 이런 상황에서 '잔여적 복지'를 조금씩 손질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는 이야기다. '보편적 복지'를 이야기하는 이들이 늘어난 배경이다.
여기에는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시도한 '무상급식'과 이에 대한 국민의 높은 지지 역시 한몫했다. 급식 문제를 놓고보면, 김 교육감의 '보편주의' 입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잔여주의' 입장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형국이다. 이런 구도에서 누가 유리할까. 답은 뻔하다. 논쟁이 진행될수록 '잔여주의' 쪽이 불리해진다. '무상급식' 논쟁이 그 동안 대중에게 낯설었던 '보편적 복지'에 힘을 싣는 계기가 됐다는 설명은 타당하다.
그래서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이제 복지패배주의를 깰 때가 됐다"라는 것이다. 복지 담론은 한국 사회에서 주류가 될 수 없다는 생각, '보편적 복지'에 대한 관심은 사회복지 전공자나 관련 분야 종사자들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왜 복지'국가'인가?"
▲ ⓒ프레시안 |
이상이 : 복지, 복지정책이라는 표현 대신 '복지국가'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그래서다. 또 사회복지, 보건의료 등 몇몇 분야 전문가만이 아니라,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정치인들에게 관심을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 동안 이뤄졌던 '잔여적 복지'에서 골간을 이루는 것은 복지 담당 공무원이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가 이뤄지려면, 국가 전체가 '보편적 복지'의 철학에 걸맞게 탈바꿈해야 한다.
예컨대 지금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가 큰 상황에서 '보편적 복지'가 이뤄질 수 있나. 그렇지 않다. 우선 임금이 높은 대기업 직원들에게 높은 소득세를 거두는 정책이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중소기업 직원도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기업 직원들의 반발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공정한 경제'가 구현돼야 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수탈하는 구조, 무리한 납품단가를 요구하는 관행 등이 바뀌어야 한다는 게다. 그래야만 중소기업 직원도 정당한 임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사회복지 정책 영역인가. 아니다. 경제정책 영역이다. '보편적 복지'를 위해서는 국가 정책 전체가 함께 변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기업가 정신, '보편적 복지'가 살린다"
프레시안 : '보편적 복지'에 대한 비전을 담은 책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에서 인상적인 대목이 '혁신적 경제' 였다. 복지국가에 대한 오랜 통념 가운데 하나가 "복지 선진국은 경제의 활기가 떨어진다"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통념은 "한국은 복지를 잔여주의에 국한해 왔기 때문에 고도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다. 게으르게 살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구조였던 탓에 다들 열심히 일한 것 아니냐"라는 입장을 뒷받침했다.
그런데 '혁신적 경제'를 지지하고, '역동적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입장은 이런 통념을 깨는 것이기도 하다.
▲ ⓒ프레시안 |
차분히 생각해보자. 지금, 기업가 정신을 억누르는 게 무엇인지 말이다. 바로 '최소한의 패자부활전'조차 허용하지 않는 구조가 핵심이다. 한 번 실패하면, 도저히 만회할 수 없는 구조, 실패자에게 최소한의 사회안전망도 제공되지 않는 구조에서 누가 창업에 도전할 수 있겠나. 젊은이들이 무턱대고 공무원이나 의사 등 안정적인 직업으로만 쏠리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죽어가는 '기업가 정신'을 살리고, 도전과 창의를 장려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바로 '보편적 복지'다. '보편적 복지'가 경제 활성화를 낳는 이유는 이 밖에도 많다. '보편적 복지'의 중요한 축이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다. 탄탄한 평생교육 시스템을 통해 구직자에게 충분한 교육, 훈련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경제 순환이 빠른 상황에서, 산업 구조조정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얼마 전까지 큰 시장을 갖고 있던 산업이, 외부 환경 변화로 갑작스레 축소되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잘 이뤄지면, 실업에 대한 공포가 줄어든다. 새로운 산업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무료로 배울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또 이런 교육, 훈련을 받는 동안에는 과거 직장을 다닐 때 누리던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구조조정이 원활해지고, 경제의 활기 역시 유지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지식기반경제로 들어섰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다. 지식기반경제에서 경쟁력의 요체는 사람에게 있다. 과거 산업경제와 다른 대목이다. 사회 구성원 저마다의 적성을 잘 살리고, 잠재능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게 경제정책의 승부수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를 위해 필수적인 게 '기회균등'이다. 소수의 잠재능력만 활용하는 사회라면, 가난한 집 아이들은 능력을 키울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회라면, 서열화된 경쟁구조로 창의성을 억누르는 사회라면, 지식기반경제에서 경쟁력을 잃는 게 당연하다. '보편적 복지'가 잘 이뤄진 핀란드, 스웨덴 등에서 첨단기술 산업이 발달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지식기반경제로의 변화를 돌이킬 수 없다면, 한국 역시 '보편적 복지'를 통해 사회 구성원의 잠재능력을 균형있게 끌어내는 길을 택해야 한다.
노인요양보험의 비극, "왜 '쓰레기 일자리'만 만드나"
프레시안 : 그런데 한국 정부는 '4대강 사업' 등 토목 사업에 치중하고 있다. 이래서는 "지식기반경제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라도 보육, 교육 정책에서 북유럽식 보편주의 원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 자리가 없다.
이상이 : 안타까운 일이다. 현 정부는 '일자리 늘리기'를 내세워 집권했다. 그런데 따져보자. 일자리가 많은 부문이 어디인지를 말이다. 토목인가? 그렇지 않다. 고학력 노동자 비율이 높고, 복지 수요가 많은 한국에선 사회 서비스 부문이 일자리의 텃밭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러니까 한 인간의 전 생애과정에서 다양한 사회 서비스가 필요한데,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과정이 공백으로 남아 있다. 이 부분에서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기획이 필요하다. 아기를 돌보고, 학교 교육을 지원하며, 사회인을 위한 평생교육을 뒷받침하고, 노인과 환자를 돌보는 전 과정에서 대대적으로 일자리가 생겨나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일을 반드시 공공부문이 전담해야 한다는 것 역시 그릇된 주장이다. 사회서비스를 담당하는 사회적 기업 창업을 장려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예컨대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들이 모여서 노인을 위한 문화활동을 기획하는 회사를 창업할 수도 있다. 이런 회사와 지방자치단체가 제휴해서 다양한 사업을 벌일 수도 있지 않겠나.
그러나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질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 '잔여적 복지' 체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추진했던 노인요양보험 제도가 이런 사례다. 좋은 취지로 만들어진 정책이었지만, '잔여적 복지' 체제 속에서 엉망이 됐다. 월급 수십 만 원짜리 '쓰레기 일자리'만 생겨났다. 사회가 노인을 돌보는 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현 방식은 아니다. 노인을 돌보는 직업, 즉 노인요양사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겨났지만, 이들의 전문성을 키우고 인정하기 위한 장치는 없었다. 그 결과, 아무나 학원에 등록하기만 하면 노인요양사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이들에게 노인 요양을 맡기려는 이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노인요양보험 제도에 의지하는 이들은 결국 비싼 노인 요양 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이들에 국한될 수 밖에 없다. 노인 요양 제도는 '보편적 복지'라는 철학에 맞춰 다시 설계돼야 한다.
▲ ⓒ프레시안 |
"다음 의제는 '아이와 엄마가 행복한 사회'"
프레시안 : 무상급식 논쟁을 계기로 '보편적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은 동력이 부족해 보인다. '보편적 복지'에 대한 관심을 계속 키워나가려면, 새로운 계기가 필요하다. 어떤 사안이 '제2의 무상급식'과 같은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이상이 : 과거 <프레시안> 칼럼에서 "아이와 엄마가 행복한 사회"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엄마들의 고민'이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여성이 집안 살림만 하던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그런데 직장 여성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오히려 직장 안팎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런 간극은 더 커졌다. 아이를 키우는 여성은 직장 생활을 하기가 더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다. 이 문제를 의제로 만들어야 한다. '보편적 복지'가 이뤄지는 사회에서 아이와 엄마가 지내는 모습만 국내에 알려져도 폭발력이 있을 게다.
예컨대 핀란드, 스웨덴 등에서는 육아휴직을 신청할 때 회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휴직에 따른 비용 전액을 정부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이런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그렇지 않다. 경제적 토대는 이미 갖춰져 있다. 문제는 발상의 전환, 그리고 새로운 비전을 구현하기 위한 폭넓은 연대다. 무상급식은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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