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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지만 같지 않은 어떤 록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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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지만 같지 않은 어떤 록 앨범

[나도원의 '대중음악을 보다'] '아폴로18' [The Red Album (Expanded Edition)]

도시국가에 살고 있나 싶을 때가 있다. 아동과 노인을 포함한 전 주민의 5분의 1 이상이 같은 영화를 보고, 몇몇 걸 그룹을 대부분의 주민이 알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이슈화되는 현상은 사실 드물다. 문화적인 면에선 도시국가나 마찬가지인 한국에서 ○○열풍은 석권을 의미하지만 다양성에 차이가 있는 선진국에선 주목할만한 일부의 움직임이다. 그래서 외국에 한국과 관련된 열풍이 인다고 하면 으레 환상이 만들어지곤 한다. 우리의 상황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여러 갈래의 미풍에 따라 저마다 고개를 돌리는 여유가 필요하다.

엷은 미풍이 한 줄기 인다. 2009년이 되자마자 [The Red Album]의 발표를 시작으로 1년 내내 정신없이 달린 한 록 밴드는 대형 페스티벌 무대에 잇달아 서더니 연말 즈음에는 EBS 스페이스공감과 콘텐츠진흥원이 함께 주관한 신인 발굴 프로젝트 '헬로루키'에서 대상을 타고 스스로도 깜짝 놀라버렸다. 여름에 내놓은 [The Blue Album]부터는 평단의 호평까지 받았고, <한겨레신문>이 평론가들에게 의뢰하여 선정한 '올해의 음반'과 '올해의 신인'에 이름을 올렸으며, 곧 발표될 한국대중음악상의 '록 음반'과 '올해의 신인' 부문 후보로 지명되었다. 그리고 이제 일본을 통하여 해외에 소개되기에 이른 아폴로18(Apollo)이 오리콘 차트의 정상을 차지하긴 힘들겠지만 인디음악의 활로 모색과 장르화의 결과라는 의미를 가진다.

원래의 [The Red Album]은 이래서 심드렁했다
▲아폴로18 [The Red Album]. ⓒ로엔엔터테인먼트

처음에 미니앨범 [The Red Album]이 나왔을 때 판단을 유보한 이유가 둘 있다. 하나는 레코딩이었는데, 사운드가 '좋다, 나쁘다'의 차원이 아니라, 아폴로18이 택한 (헤비한) 포스트 록과 헐겁고 허전한 사운드 자체가 맞지 않았거나, 미숙했다. 물론 연주와 사운드가 정교해질수록 오히려 매력이 감소하는 경우가 있다. 시골 산마루 위에 불쑥 솟아오른 송전탑에 압도당한 산이 의기소침해하는 풍경이 많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림자 없는 원근법이 불완전하듯이 포스트 록이라는 장르에선 얇은 기타 한 줄이 내는 음 하나, 그리고 소리들이 뭉쳐가며 만들어내는 분위기 자체가 중요한 표현수단이자 특징이다.

다른 하나는 관심 있는 음악을 재현해보는 스타일 카피, 즉 '무엇 같은 무엇' 언저리를 맴도는 한계였다. 익스플로전스 인 더 스카이(Explosions In The Sky)와 모과이(Mogwai), 모노(Mono)와 엔비(Envy)처럼 비슷한 기법으로 명상의 순간에 다다른 해외 밴드들은 이미 많았다. 국내에도 일련의 영향 하에서 할로우 잰(Hollow Jan)과 49몰핀즈(49Morphines)가 나름의 가치를 더해 영역을 확장해놓았다. 또한 정규앨범 이후의 아폴로18과 대비해볼 수도 있을 이시스(Isis)와 테(Te')가 보여주듯이 증식을 넘어 변형의 단계에 들어선 지 오래다.

그렇다고 단지 유사성 때문에 쉬이 아류로 치부해버린다면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하나의 장르를 이룬 신(scene)에 대한 몰이해를 자랑하는 꼴이다. 일본 등지에서 아폴로18에게 보이는 관심은 노래는 거의 없이 연주만으로 이루어져 언어장벽을 뛰어넘는 장점 외에도, 포스트 록의 장르화와 수용층의 형성이란 조건에서 나왔다. 문제는 이럴수록 차별성과 강점이 절실해지는데, 처음의 [The Red Album]에는 아폴로18만의 무엇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또한 밴드의 구성원인 김대인이 '해파리소년' 시절에 감성과 감각이 조화된 '선웃음' 등을 담아 [Everyday Trouble](2005)을 낸 바 있는데, 그 때의 감성적인 일렉트릭 팝과 아폴로18의 음악에는 간극이 크다. '도취'라는 종점에서 통하는 사이키델릭과 포스트 록의 만남은 자연스럽지만, 전혀 다른 밴드가 되었다고 해야 할 [The Blue Album]과 능란해진 연주와 드론 사운드의 'Naraka'가 인상적이나 '삼색 시리즈'를 좀 아쉽게 매듭지은 [The Violet Album](2010)에 걸쳐 일어난 변화는 앞서의 예상이 적중했음을 증명이라도 해주는 것 같았다. 원숙한 연주기량과 확고한 장르지향으로 자신의 항법을 익혀가기 전 단계의 수색활동처럼 보인다. 게다가 [The Blue Album]을 [0집]이라 명명하는 등, 이들은 지금까지를 '선사시대'로 규정하려는 모양이다.
▲ ⓒEstella Records

새로운 [The Red Album]은 이래서 흥미로웠다

전에 어떤 뮤지션이 오래 전에 발표한 앨범에 아쉬움이 남아 다시 녹음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어찌되었든 기록된 존재로 남았으니 그보다는 라이브 음반을 내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고 조언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음악인의 밴드는 곧 라이브 앨범을 낼 계획이다. 그런데 아폴로18은 1년 전에 발표한 미니앨범을 다시 녹음하고 네 트랙을 더해 사실상의 풀렝쓰(Full-length)로 만들어 다시 진열대에 올려놓았다. 마스터링으로 소리를 손보고 보너스 트랙을 넣는 정도의 리패키지가 아니다. 그렇게 헤비뮤직 전문 엔지니어인 조상현과 함께 완전히 새로 작업한 [The Red Album]의 확장버전은 맨 앞에 말한 유보를 유보할 수 있게 해준다.

트레몰로 주법과 드럼의 난타가 작렬하는 가운데 기타가 기타를 관통해버리는 풍경을 펼쳐 보이는 'Warm'을 비롯하여 기존 곡들이 제대로 된 옷을 입고 마음껏 몸을 부린다. 새 음반에 싣기 위해 만들었다가 여기에 추가된 곡들의 함량도 높아 양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급이 되었다. 단선형의 'Emit'를 지나 해파리소년 시절의 멜로디와 아폴로18의 과거와 현재를 한 몸에 안은 'Time'은 과거 클리셰에 머문 감이 있었던 'Discharge'에서의 진일보를 보여준다. 보통 스타 음악인을 "A에 비견되는 B"와 같은 수식으로 소개하는데, A가 아닌 B에 머물면 족쇄가 된다. 아폴로18이 B를 벗어나기 위해 정교하고 독특한 스타일을 찾아가고 있으나, 역시 음악은 감흥이다. 그런데 태생적으로 독창성 문제가 남을 수밖에 없는 [The Red Album (Expanded Edition)]이 가장 강렬한 감흥을 품게 되었다.

더구나 이렇게 같지만 다른 앨범이 된 계기가 해외진출을 위해 일본 측의 요청으로 진행한 작업이고, 현재는 성격이 변한 아폴로18이 다시 이런 스타일로 돌아갈 지 의문이며, 그럼에도 이 확장 버전이 지금까지의 앨범들 중 (사사로운 취향으로는) 가장 마음에 들게 되었으니, 묘하게 재미있는 노릇이다. 온전히 음악적으로 의도한 바가 아니고, 밴드의 정체성으로 지속될 지 확신할 수도 없는, 같은 이름의 다른 앨범이 새로운 인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영화 <에일리언4>에서 복제되어 되살아난 리플리는 이전의 리플리와 같은 존재일까, 아니면 다른 존재일까. 이런 물음과 함께 같지만 다른 존재로 태어난 [The Red Album] 속에 입체화로 다시 그려진 'Warm'도 비로소 명상의 순간에 부는 향 짙은 미풍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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