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원안을 지지하는 쪽에서 보자면 참 가소로운 주장이다. 고민의 흔적이 전혀 없다. 이런 것을 절충안이라고 내놓았단 말인가. 세종시 원안이 실효를 거두려면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 등 경제부처가 이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절충안을 내놓더라도 별다른 효과는 없다.
세종시 KTX 오송역과 서울역 사이 소요기간 30분
국가안보 위기 운운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정치인들도 있다 한다.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충남에 계룡대를 세울 때는 아무 군소리 안하더니 세종시에 대해서는 유난히 호들갑을 떤다.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수도분할의 비효율성을 운운하는 정치인들도 상당수 있다 한다. 이것도 과장된 주장이다. 서울역에서 대전역까지 KTX로 이동하면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서울역에서 세종시 인근 오송역(호남고속철도와 경부고속철도 분기점)까지는 30분이 소요될 예정이다. 과천에서 세종로 청사까지의 소요시간이 40분 정도인 것을 감안할 때 30분은 매우 짧은 시간이다.
물론 세종시에서 세종로 청사까지 이동하려면 오송역까지 15km를 도로로 이동하고 또 고속철로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과천에서 이동하는 것보다 다소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그러나 국가안보위기를 운운하고 수조 원의 행정 비효율을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 정도로 그 차이가 크지 않다.
또 정부가 세종시와 오송역 사이의 15km 도로에 버스전용차로와 유사한 공무원전용차로를 설정하면 소요시간을 더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몇십 년에 한두 번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국가비상사태와 그에 준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이 도로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용을 전면차단하거나 소방방재청의 헬기를 활용해 많은 수의 공무원을 짧은 시간에 이동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수정안 근거 되는 보고서들 왜 공개 못하나
모든 국가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정책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냉철하고 균형적인 시각에서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세종시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순기능을 과장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지나치게 역기능을 침소봉대하는 것도 올바른 태도는 아니다.
한두 달 전 일부 국책연구소들이 세종시 원안으로 매년 수조 원의 행정 비효율이 발생한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가 되는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민들의 혈세를 받는 연구자라면 절대 그런 짓을 해서는 안된다.
사회과학방법론 교과서들은 이렇게 쓰고 있다. 누군가의 연구가 '객관성'을 확보하려면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검증받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그런데 일부 국책연구소들은 검증의 대상이 되는 보고서는 공개하지 않고 결론만 툭 던지며 "우리를 믿어 주세요"라며 우긴다. 이런 짓은 정치꾼들이나 하는 짓이지 연구자들이 할 일은 아니다.
세종시 수정안이 미래 먹거리 기폭제? 낯 뜨거운 허풍
지난 달 11일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놓은 과학벨트 관련 보도자료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이 보도자료에서 세종시(원안)를 "섬의 도시"라 규정하고 세종시 수정안이 "미래 먹거리와 일자리창출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강변했다.
▲세종과학벨트(K벨트, C벨트). ⓒ서울신문 1월 11일자 |
교과부는 오창과학단지, 오송생명과학단지, 세종시, 대덕특구를 일컬어 C벨트라 부른다. 그런데 C벨트에 이명박 정부가 기여한 것이 몇 %나 된다고 저렇게 허풍을 떠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C벨트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기여도는 2~3%도 안된다.
C벨트에 대한 필자의 관심사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명박 정부가 C벨트 조성에 어느 정도 기여했느냐 하는 점, 다른 하나는 역대 정부가 추진한 C벨트가 세종시 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이냐 하는 점.
우선 먼저 C벨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대덕특구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국토해양부가 발간한 <2008 전국산업단지통계>에 따르면 대덕특구의 총면적은 7042만㎡로 세종시 수정안 산업용지 면적 347만㎡의 20배에 달한다. 세종시 정부청사로부터의 거리는 10~15km,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 ⓒ프레시안 |
이 거대한 산업단지를 조성하는데 이명박 정부는 어느 정도 기여했을까. 제1지구는 1980년대, 제2, 3지구는 1990년대, 제4, 5지구는 2006년에 실시승인이 내려졌으므로 대덕특구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기여도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세종시 정부청사로부터 각각 15km, 25km 떨어진 오송생명과학단지와 오창과학단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송단지와 오창단지 조성과 성장에 이명박 정부가 기여한 바는 거의 없다.
▲ ⓒ프레시안 |
수정안 산업용지의 20배에 달하는 거대한 대덕특구
필자의 또 다른 관심사는 역대 정부가 추진한 C벨트가 세종시 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건설교통부가 2006년 내놓은 보고서 <행정중심복합도시 자족성 확보방안>에 따르면 당시 연구진들은 세종시 산업구조를 구상할 때 세 가지 범위를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충청권 전체, 세종시권역, 세종시내의 산업구조가 그것이다.
여기에서 세종시권역이란 세종시 외에 인근지역인 대전광역시, 청주시, 공주시, 청원군, 연기군을 포함하는 지역을 말한다.
▲ ⓒ프레시안 |
이 보고서를 보면 세종시 원안을 만든 연구진들이 왜 세종시를 정보산업·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문화산업 중심도시로 만들려 했는지 그 의중을 읽을 수 있다.
이들은 세종시권역의 제조업 비중이 워싱턴DC의 59배, 캐나다 오타와의 2.6배에 달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래서 세종시를 보다 더 쾌적하고 친환경적인 지식서비스업·문화산업 중심도시로 만들고자 했다.
세종시 원안 입안에 관여한 정부관료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을까. 진실을 알면서도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관료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반복하지만 세종시 정부청사로부터 10~15km 거리 내에 세종시 수정안 산업용지의 20배에 달하는 거대한 면적의 대덕특구가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세종시 원안을 "섬의 도시"를 만드는 구상이라 폄훼하는 것은 세종시 원안에 대해 별다른 정보가 없는 사람들의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도시계획 전문가들도 세종시 원안을 만드는 사람들의 확신에 힘을 실어주었던 것 같다. 도시계획 전문가 200명(설문지 101명분 회수)을 상대로 실시한 수요조사 결과 이들 대부분은 세종시를 쾌적한 지식서비스업·문화산업 중심도시로 만들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조사결과 도시계획 전문가 101명 중 43명은 세종시에 문화산업단지(또는 소프트웨어진흥단지, 정보통신산업단지)가 들어서기를 원했고, 27명은 도시첨단산업단지가 들어서기를 원했다. 반면 도시아파트 공장이나 벤처기업전용단지가 들어서기를 원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요약과 결론
세종시 원안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국가안보 운운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충남에 계룡대를 세울 때는 아무 군소리 안하던 사람들이 세종시에 대해서만 유난히 호들갑을 떠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수도분할의 비효율성을 운운하는 정치인들도 있다 한다. 그러나 KTX 등 교통수단의 발달로 서울역에서 세종시 인근 오송역까지는 30분이 소요될 예정이다. 물론 세종시에서 세종로청사까지 이동하려면 오송역까지 15km를 도로로 이동하고 또 고속철로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과천에서 이동하는 것보다 다소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그러나 수조 원의 행정 비효율을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 정도로 그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진 않다.
정부는 또 세종시 인근에 과학벨트를 조성하여 "미래 먹거리와 일자리창출의 기폭제"를 만들 것이라고 국민들을 현혹한다. 그러나 역대 정부가 추진한 과학벨트(C벨트)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기여도는 2~3%도 안된다.
정부는 또 세종시 수정안 산업용지 면적의 20배에 달하는 대덕특구가 세종시 인근 10~15km 내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세종시가 자족기능이 없는 "섬의 도시"라고 폄훼한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하늘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세종시권역의 제조업 비중은 워싱턴DC의 59배에 달하고 캐나다 오타와의 2.6배에 이른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정운찬 총리는 세종시 원안을 그대로 시행하면 우리 경제가 거덜날 것이라 주장했고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은 그것이 "사회주의적"인 것이라 비난했다.
논쟁에서 승리를 확신하는 사람들은 결코 이런 질낮은 '색깔론'이나 '이전투구 유도형 발언'을 동원하지 않는다. 논쟁의 질이 높을수록 그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면 정 총리나 권 실장처럼 논쟁에서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은 '색깔론'이나 '이전투구 유도형 발언'을 동원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가지게 된다.
정 총리에게 권고한다. 일국의 재상답게 행동하시라. 승리의 확신이 없다면 깨끗하게 패배를 시인하고 재야로 돌아가시라. 반대로 승리의 확신이 있다면 정정당당하게 논쟁에 임하시라.
세종시 원안에 대해서는 무수히 많은 보고서들이 나와 있다. 이것들을 조목조목 검토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 총리와 국무총리실은 부실하기 짝이 없는 10여쪽 분량의 보도자료를 내놓고 이것이 수정안이라고 우기며 국민들을 설득하겠노라고 한다.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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