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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가 아닌 '다정한 연대'에 이끌린 탄핵광장의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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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가 아닌 '다정한 연대'에 이끌린 탄핵광장의 청년들

[프레시안books] <그날은 못 갔는데 오늘은 가야겠다>

다채로운 깃발과 응원봉을 든 청년. 광장에 울려 퍼진 소수자의 목소리. 지난 겨울 윤석열 탄핵광장에 이전의 광장과 다른 색채를 입힌 장면들이다.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광장의 경험이 이들에게 남긴 변화는 무엇이며,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날은 못 갔는데 오늘은 가야겠다>는 '엑스 세대'인 임은경 작가가 '엑스 쓰는 세대'인 청년을 만나 이를 묻고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지난해 5월에서 10월까지, 광장의 주역이었던 8명의 청년을 인터뷰했다.

저자가 만난 이들은 모두 하나 이상의 소수자 정체성을 갖고 있다. 농민, 여성, 성소수자, 지역민, 학교 밖 청소년 등이다. 각자의 일상 속에서 만만치 않은 어려움을 겪어온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광장 이후 삶의 방향이 조금은 달라졌고, 여전히 사회운동과 연결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약한 것들을 잇는 다정한 연대의 출발점, 남태령

책의 전반을 관통하는 사건은 '남태령 대첩'이다. 제목도 탄핵을 촉구하며 서울을 향해 트랙터를 끌고 2024년 12월 21일 남태령 고개에 도착한 농민들을 보며 "그날(12월 3일)은 못 갔는데 오늘은 가야겠다"고 한 어떤 시민의 말에서 따왔다.

그만큼 많은 이가 남태령 대첩에 함께했다. 트랙터 시위를 알리려 전국농민총연맹 계좌를 엑스에 올렸다 '벼락 활동가'가 된 김후주 씨는 물론 훗날 '집회 덕후'가 된 송채연 씨, '말벌 시민'이란 말을 퍼뜨린 송예은 씨, '경상도 말벌'을 만든 한승유 씨, 성소수자 취업준비생 당근(활동명) 등 저자가 만난 청년들도 그곳에 있었다.

남태령에 있던 이들의 마음을 울린 것은 정치적 구호가 아닌 "서로에 대한 선의"였다. '논바이너리(성별 이분법에 갇히지 않는 성 정체성)'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년에게 한 농민이 "그렇구나. 알아두겠다"고 한 일은 낯설어도 상대를 존중하며 곁에 두는 태도를 보여준 장면으로 널리 회자됐다.

남태령 고개의 상황을 온라인으로 주시하며 방한물품과 먹을 것을 보낸 시민들, 때로 '경찰 도시락'이라 둘러대기까지 하며 그 물품을 배달해 준 라이더유니온 조합원들도 청년들에게 벼락 같은 연대의 경험을 선물했다. 저자가 "광장 정신"이라 주장한 "'약한 것들'을 잇는 다정한 연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남태령 대첩 이후 한화오션 하청노동자, 세종호텔 해고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A학교 성폭력 사건 공익제보자 지혜복 교사 등의 싸움에 대한 청년들의 연대가 늘었다. 변화한 청년들은 이후 '응원봉 세대'를 넘어 투쟁 현장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말벌 시민'으로도 주목받았다.

성소수자와 지역민들의 이야기

책의 다른 축은 오랜 기간 혐오에 맞서 온 성소수자 청년과 수도권 바깥 지역에서 싸운 청년들의 이야기다. 먼저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 사무국장 권순부 씨는 탄핵 집회 기간 내내 광화문광장 맞은 편에서 무지개존을 운영했다.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고 서로를 지지하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었다.

시민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따뜻했다. 계엄 선포 이틀 뒤 성소수자가 무대에 올라 실명을 공개하며 "이 발언이 학교나 일터에 알려질까 두렵지만, 윤석열 씨가 계속 대통령으로 남는 세상은 그보다 백배 천배 더 두렵다"고 말했을 때 시민들은 박수와 환호로 응답했다.

이지희 씨는 주말마다 수만 명이 모인 부산 탄핵집회에서 청년 사회자로 활동했고, '2030 집회기획단'을 제안해 모집과 운영을 맡았다. 이후 기획단이 시민들의 신청곡 위주로 구성한 '서면 플레이리스트'는 지역 집회의 분위기를 상징하는 장치가 됐다.

이른바 '부산 남태령'으로 불린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 지역 사무실 항의방문 당시 사회를 본 것도 지희 씨였다. 발단은 2024년 12월 28일 주민간담회에서 '내란에 대한 입장'을 묻는 시민의 질문에 박 의원이 '내란죄 여부는 헌재가 판단할 일'이라고 답한 일이었다. 당일 집회에 모인 시민들은 '사과를 받아내자'며 박 의원 사무실까지 행진해 9시간을 그 앞에서 버텼다.

광장 이후, 남겨진 과제

탄핵 광장에서 활약한 청년들은 이후로도 대부분 사회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는 이도, 노동조합 간부로 일하는 이도, 청년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정당 활동을 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책에는 청년들이 겪는 구조적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엄연한 현실도 담겼다. '말벌들이 다른 사람의 싸움에 가서 연대하는 건 잘하는데, 청년 당사자 문제는 미처 대응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승유 씨의 고민이 이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뿐만 아니다. 지희 씨는 부산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고향을 떠나는 현실에 대해 고민 중이다. 키세스 시위에서 '퀴어 축제에 트랙터가 오면 좋겠다'고 발언했다 온라인상에서 공격받은 당근은 성소수자로서 괜찮은 노후를 누릴 수 있을지 벌써 걱정이다.

"2025년 12월 그 밤 이후 광장에 나와 불을 밝힌 이들 중에서 깃발과 응원봉을 든 청년들이 특히 주목 받았다. 실제로 광장에서 청년이 차지하는 비율도 높았다. 그런데 광장의 외침은 언론과 정치에 얼마나 반영됐을까." 저자가 서문에서 던진 질문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그날은 못 갔는데 오늘은 가야겠다>, 임은경 지음. ⓒ이매진
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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