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노동조합특별법이 시행된 지 2달이 지났다. 공무원노조 합법화 시대가 열린 셈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둡다. 법외노조의 합법노조 전환 사례는 미미하고, 공무원노조와 정부 간의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공무원노조법이 연착륙에 실패하고 있는 셈이다.
***미미한 합법노조 전환 실적**
공무원노조법이 시행된 지 2달 남짓 지났지만 합법노조 전환 실적은 매우 미미하다. 공무원 노조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행정자치부와 노동부에 따르면, 9일 현재 공무원노조법에 따라 합법노조로 설립신고 한 공무원단체는 불과 19개(조합원 수 1만여 명)에 불과하다.
공무원노조법에서 정하고 있는 노조가입대상은 모두 28만여 명인데 불과 1만여 명만 법에 따라 '합법노조'의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나머지 노조가입대상 공무원들은 법외노조에서 활동하거나 아예 노조 활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행정자치부와 노동부 등 소관 부처는 다소 느긋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법 시행 2달밖에 안됐기 때문에 아직은 전환 실적이 낮다고 해서 우려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행자부의 한 관계자는 "아직 합법노조 전환 조직이 적은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전공노 등 불법단체 산하 조직에서 합법노조 전환 움직임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무원노조법, 노조 가입대상 폭 너무 좁아**
하지만 앞으로 한동안은 전공노 등이 합법노조로 전환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이는 공무원노조법이 기존 공무원단체가 수용하기에는 지나치게 경직적이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지적 중 하나는 공무원노조법이 노조가입대상을 매우 협소하게 정해놨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공무원노조법은 노조가입대상으로 6급 이하 공무원으로 한정하고 있다. 여기에 6급 이하라고 하더라도 지휘·감독, 인사 등 공무원노조와의 관계에서 행정기관의 입장에 서는 공무원이나, 교정·수사, 노동관계 조정·감독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노조에 가입할 수 없다.
이같은 규정을 전공노에 그대로 준용할 경우 상당수 조합원들은 더 이상 노조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된다. 바꿔 말하면, 전공노 등이 합법노조로 전환할 경우 자신의 조합원 중 일부를 자진탈퇴시키거나, 자격을 박탈시켜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조직화'를 통해 조직확대를 핵심 사업으로 하는 노조의 일반적인 특성상 노조가입대상의 지나친 제약은 이같은 활동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전공노 등이 공무원노조법을 거부하는 여러가지 이유 중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공무원노조법이 단결권마저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ILO도 공무원노조 손 들어줘**
공무원노조법의 이같은 문제는 최근 ILO(국제노동기구)가 공무원의 결사의 자유와 관련해 내놓은 권고문에서도 확인된다. ILO 이사회는 지난달 공무원의 단결권과 파업권을 최대한 보장하라는 내용이 담긴 권고문을 채택했다.
권고문에는 △5급 이상 공무원의 조합결성 권리 보장 △공권력을 행사하는 공무원과 필수 사업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파업권 제약 제한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한마디로 공무원노조법을 둘러싼 노조와 정부간 논쟁에서 ILO가 노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물론 정부는 이번 권고 직후 ILO 측에 강한 유감의 뜻을 전달했다. 하지만, ILO의 이번 권고는 공무원노조법이 국제노동기준에 비춰 한 참 뒤떨어졌다는 점을 새삼 재확인 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동시에 법외노조로 남아 있는 공무원노조는 자신들의 주장에 대해 더욱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됐다.
***초강경 '행자부 지침', 공무원노조 단결 불러와**
갈 길이 바쁜 정부는 법외노조로 남아 있는 공무원노조를 압박하기 위해 지난달 중순 초강수를 뒀다. '불법단체 합법노조 전환(자진탈퇴) 추진지침'이란 제목의 합법노조 전환 독려 방안이 그것이다.
이 지침에는 △노조 지도부 설득을 위한 '설득전담반' 편성 △설득 대상으로 조합원 가족까지 범위 확대 △지침 이행 실적 부진 기관의 경우 행정적·재정적 불이익 조치 등이 담겨 있다. 사실상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초강수가 망라된 셈이다.
하지만 이같은 초강수 대책은 공무원노조를 압박하는 데에 효과적인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공무원노조를 더욱 단결하게 하는 계기로 기능했다는 분석마저 제기된다.
실제로 전공노는 정부가 일선 공무원을 대상으로 이번 지침을 설명하는 교육장에서 적극적으로 저지 투쟁을 전개하면서 지난 1월 지도부 선거 이후 다시 활력을 찾고 있다. 전공노의 한 관계자는 "이번 지침을 전달 받은 조합원들은 분노하고 있다"며 "'해볼 테면 해봐'라는 것이 우리 노조의 일반적 정서"라고 말했다.
이번 지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정부 내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주무 부처가 행자부인 만큼 이견을 제시하기 힘들다"고 전제한 뒤 "위에서 누르는 방식이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털어놨다.
***경남도청지부 합법노조 전환 결의…'전공노 내부 동요?'**
한편 최근 정부가 반색할 만한 일이 발생했다. 전공노 산하 조직인 경남도청 지부가 조합원 찬반 투표를 통해 합법노조 전환을 결의한 일이다. 경남도청 지부는 김영길 전 전공노 위원장을 배출했을 정도로 전공노 내에서 강성으로 분류돼 왔던 조직이다.
ILO 이사회의 권고가 정부를 당혹스럽게 한 일이었다면, 경남도청 지부의 이번 결정은 전공노를 당황하게 한 일이었다. 전공노는 일단 경남도청 지부의 선거결과를 무효로 선언하고, 중앙의 지침을 따르지 않은 조합 간부를 제명하는 방안을 마련해 사태 확산 차단에 나섰다. 하지만 경남도청 지부의 결정은 전공노 내부에서 심상치 않은 변화가 있음을 시사하는 사건이었다.
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경남도청 지부의 결정은 전공노 산하 다른 지부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이미 다른 지부에서도 합법노조 전환과 관련해 의사를 타진해 온 사례가 있다"고 주장했다.
***"5.31 지방 선거 뒤를 봐야"**
하지만 정부와 노조 간의 일진일퇴 공방은 5.31 지방선거 이후에야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일단 지방선거를 앞둔 현 상황에서는 일선 지자체 단체장들이 '행자부 지침'을 적극적으로 따르기 힘든 게 사실이다. 따라서 현장에서 가시적인 압박이 적은 상황에서 법외노조를 고수하고 있는 공무원노조가 스스로 합법노조 전환을 선언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전공노의 한 관계자는 "지방 선거 이후에 대대적인 정부의 탄압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그에 맞춰 4~5월 동안 조직 점검 등을 통해 강력한 투쟁을 조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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