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11세대 상가 세입자들에게 2007년 12월, 명도소송장이 날아왔다. 르꼬르지 옷가게가 문을 연 지는 불과 6개월 만의 일이다. 당시 르꼬르지는 시설 투자비만도 6000만 원 이상 들였다. 억울한 데가 어디 르꼬르지뿐이랴. 두리반은 인수한 지 2년 10개월 만이고, 이발소는 영업을 시작한 지 채 1년이 안 되었다.
11세대 상가 세입자들은 개발시행사인 한국토지신탁의 명도소송에 맞서기로 했다. 세입자들은 임대차보호법에 희망을 걸었다. 2008년 3월부터 변호사를 선임하여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세입자들의 변호사는 영업권을 군소리 말고 5년간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제10조). 영업 보상을 해줘야 하고, 시설 투자비도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가 세입자 보호법이 상가 세입자를 잡아먹다
한국토지신탁의 변호사도 임대차보호법을 들고 나왔다. 그쪽 변호사는 임대차보호법의 예외조항을 들어 반박했다. 재개발, 재건축, 지구단위계획의 경우엔 상가 세입자를 보호할 의무가 없다. 특히 동교동 167번지처럼 지구단위계획의 경우 영업 보상이나 시설 투자에 대한 보상의 의무도 없다. 그러니 임대차보호법이야말로 개발투기꾼에겐 만사형통법이 아닌가(제10조①의제7호). 그러므로 570만 자영업자를 위한 법 개정이 시급한 건데, 뭐 100만 학생을 위한 법 제정이 더 시급했다고?
판사는 '공기업'이라는 가면을 쓴 한국토지신탁의 손을 들어줬다. 라틴댄스 학원은 항소를 포기했다. 학원장은, 이런 개떡 같은 법으로는 이길 수 없다, 변호사 비용만 아깝다, 그냥 버티고 싸울 거다, 그렇게 집념을 불태웠다. 나머지 세입자들이 항소심에 매달리는 동안, 한국토지신탁의 용역들은 항소를 포기한 라틴댄스 학원을 하루가 멀다 하고 볶아대기 시작했다. "법적으로 사망 선고 내려졌다. 언제 나갈 거냐?" 그냥은 못 나가겠다고 버티던 라틴댄스 학원은 불과 몇 달 만에 항복하고 말았다. 시설 투자비, 보증금, 이사 비용조차 못 받고 알몸으로 쫓겨났다.
항소심은 이듬해 2009년 5월경에 열렸다. 그때도 상가 세입자들은 패소했다. 임대차보호법의 예외 조항에 걸려 세입자들은 무참히 참수당했다. 그때부터 시행사 한국토지신탁과 시공사 GS건설의 조무래기 용역들이 이사비용만 300만 원, 100만 원, 70만 원씩 던져주겠다며 상가 세입자들을 내몰기 시작했다.
세입자들의 앞길엔 검푸른 피오르드와 같은 남일당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입자들은 마포구청으로 달려가 외쳤다. 시행사인 한국토지신탁과 시공사인 GS건설을 향해 외쳤다. "이놈들아,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재개발 재건축이냐? 건물 벽에다 '철거' '위험'이라고 갈겨댄 것도 모자라 유리창까지 모두 박살내놓고 알몸으로 라틴댄스 학원장을 쫓아낸 놈들, 우린 그렇게는 못 나간다. 차라리 우릴 죽여다오!"
돌아온 답이 기막혔다. 박장규 용산구청장이 말한 것처럼 떼쓰지 말라, 떼쓰지 말라, 떼쓰지 말라는 것이 다였다. 그것뿐이었다. 떼쓰다니? 삶의 벼랑 끝에서 외치는 외마디조차 떼쓰는 것으로 보다니? 이 자들이 정말 미쳤나?
▲ 동교동 삼거리에서 홍대 4번 출구로 가는 길에 있는 '두리반' 이제는 주변 상가가 철거돼서 홀로 덩그라니 세워져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용산구청장 박장규 씨, 국어사전 좀 보시라
인천공항행 철도역사가 들어선다고 하여 동교동 일대가 들썩인 것은 2007년 봄부터다. 건물주들은 한국토지신탁의 용역들과 끈질기게 만났다. 평당 800만 원 하던 땅이 평당 2000만 원, 3000만 원으로 뛰어대자 건물주들은 널뛰는 땅값에 재미를 붙였다. 그들은 밀고 당기는 긴 여정을 거쳐 열 배의 시세차익을 남기고 건물을 팔았다. 개발 이익에 눈먼 한국토지신탁도 평당 열 배의 땅값을 지불하면서까지 동교동 167번지 일대를 사들였다.
땅값을 열 배로 올려 받기까지 좋게 말해 흥정이요, 나쁘게 말해 떼를 써온 건물주들, 그렇게 치솟는데도 기어이 개발하고자 발버둥 쳐온 시행사 한국토지신탁, 그리고 건물을 올릴 거면서도 끝내 아닌 척하는 시공사 GS건설! 떼는 누가 써왔고 떼는 누가 쓰는가?
밝히건대 불합리한 것을 요구할 때 떼쓴다고 표현한다. 평당 땅값을 열 배나 올려 받기까지 우겨대고, 그 값을 주고라도 끝내 사들이고자 발버둥 쳐온 것을 떼쓴다고 표현한다. 삶이 절박하여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은 떼쓰는 게 아니라 절규한다고 표현한다. 그러니 두리반이나 라틴댄스학원, 르꼬르지 옷가게, 신발가게처럼 삶의 벼랑 끝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해온 세입자들의 통곡은 떼쓰는 게 아니라 '절규'라고 해야 옳다. 아시겠수, 박장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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