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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괴물'과 맞서는 '두리반 아줌마'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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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괴물'과 맞서는 '두리반 아줌마'의 눈물

[현장] 47일째 철거 건물에서 농성 중인 안종려 씨

'두리반' 칼국수가 먹고 싶다.

한낮에도 실내는 캄캄했다. 한쪽 벽에 적혀 있는 문구는 어둠에 익숙해 진 뒤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고풍스럽게 장식돼 있던 전등은 이젠 흉물스러운 몰골을 하고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그곳에서 나오는 불빛이 겨우 실내를 밝혔다.

30평이 넘는 넓은 공간 한 쪽 귀퉁이에 종이 상자가 깔려 있었다. 그 위에는 스티로폼, 전기 장판, 침낭이 순서대로 쌓여 있었다. 불과 두 달 전만 하더라도 손님을 맞는 수제 목재 식탁이 놓여 있던 장소였다. 고풍스러운 나무 장식장이 붙어 있던 벽에는 온갖 낙서만이 하얀 면을 채웠다.

'두리반'. 여럿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크고 둥근 상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다. 하지만 안종려(52) 씨에겐 한 가지 의미가 더 있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곳이었다.

안 씨가 이곳에서 농성을 시작한 지도 10일로 47일째가 됐다. 그가 운영하던 '두리반'의 집기들은 크리스마스이브인 지난 12월 24일 철거 용역들에 의해 철거됐다. '지구 단위 계획 지역'으로 선정된 후, 새 건물주가 이곳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지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는 최소한의 보상금을 요구하며 철거 직전까지 장사를 했다.

▲ 동교동 삼거리에서 홍대 4번 출구로 가는 길에 있는 '두리반' 이제는 주변 상가가 철거돼서 홀로 덩그라니 세워져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철거 지켜보며 내가 정말 무기력한 가장이란 걸 느꼈다"

'두리반' 간판만 남은 가게를 찾은 기자는 남편 유채림(50) 씨와 함께 있는 안종려 씨를 만났다. 안 씨는 이날 과천시청에 다녀왔다. 전국철거민연합이 진행하는 집회에 참여하고 방금 돌아온 뒤라, 때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오후 4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해요? 이렇게 연대를 해야죠. 혹시 용역들이 작년 크리스마스이브 때처럼 또 오면 어떻게 해요? 그때를 생각해서 이곳저곳에 연대를 다녀요. 그러다 보니 밥도 제대로 먹을 시간이 없네요."

남편 유채림 씨는 그런 부인이 못내 안쓰러운 표정이었다. 그는 용역들이 들이닥쳤던 상황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하다"며 "무엇보다도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스럽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용역들이 집기를 들어내는 데 가장이라는 사람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용역들이 집기를 다 들어내고 우리가 가게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문에 철판을 용접해놓고 갔어요. 하루아침에 자신의 가게를 잃은 아내는 못내 억울한지 한참을 집에 가지 못하고 그 철판 주위를 밤늦게까지 서성거렸죠. 그 모습을 지켜보자니 내가 정말 무능한 가장이구나 하며 한탄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 아내를 겨우 다독거려 집으로 데리고 왔다. 하지만 아내는 이내 아침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참 만에 아내를 발견한 곳은 철판에 가로막힌 '두리반' 앞. 아내인 안 씨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가게 앞을 한없이 서성이고 있었다.

유채림 씨는 "그런 아내를 보면서도 끝내 싸우겠다는 결심이 들지 않았다"고 했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것. 그는 "달랑 우리 집 하나만 남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고 당시 심정을 설명했다.

그렇게 이틀을 고민하다 자신이 속해 있는 '한국작가회의' 회원들의 도움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26일 절단기로 철판을 뜯고 가게로 다시 들어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안종려 씨는 무엇보다도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땅값은 달라는 대로 다 주고선 세입자에겐 아무런 보상도 해주지 않는다"며 "만약 법이 세입자를 보호해줄 수 있도록 돼 있다면 이렇게까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지지 못한 자는 보호해주지 못하고 가진 자만 보호해주는 법과 사회의 시선이 못내 억울하고 안타까운 안 씨였다.

"밤에 누워 있으면 공사 때문에 복공판으로 되어 있는 대로변을 쌩쌩 달리는 자동차의 굉음이 마치 괴물이 지나가는 듯 한 느낌을 주게 해요. 이곳에 누워 있으면 모든 게 괴물처럼 느껴집니다. 재개발도, 용역도, 돈도 그렇습니다. 용산 참사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막연히 안타깝다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몸으로 알 거 같아요. 여기 이렇게 누워 있어보니 말이죠."

▲ 두리반 주변은 이미 철거 작업이 대부분 마무리 됐다. ⓒ프레시안(최형락)

도정법에도, 상가임대차보호법도 적용 못 받고 흩어진 세입자들

안 씨가 '두리반'에서 가격 5000원에 칼국수를 팔기 시작한 건 2005년 3월. 안 씨는 서울 동교동에 음식점을 차렸다. 주택청약예금을 해약하고 대출까지 받아 겨우 문을 열었다. 당시 보증금 1300만원. 권리금이 1억300만 원이었다. 없는 돈을 구하느라 찜질방에서 청소일까지 했다.

그렇게 어렵게 시작한 '두리반'은 시작한 지 채 5년이 되지 못해 문을 닫았다. 지난 12월 24일, 용역 30여 명이 가게를 들어와 탁자와, 의자, 사기 그릇 등을 닥치는 대로 들어냈다. 용역들 중 일부는 안 씨를 가게 한 쪽 구석에 몰아넣고 반항을 하지 못하도록 위협을 가했다. 안 씨는 그런 용역들이 무서워 쪼그리고 앉아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남편인 유채림 씨가 달려왔으나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용역들이 들어온 지 2시간이 채 되지 않아 모든 집기는 5톤 트럭 2대에 실려 사라졌다. 그제서야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흘렀다.

용역들이 안 씨의 집기를 들어낸 이유는 건물에 무단으로 입주해 불법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 안 씨는 영업을 시작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2007년 12월, 명도 소송장을 받았다. 새 건물주는 건물이 팔렸으니 가게를 비워달라고 했다. 2008년까지 계약을 맺었지만 건물주가 바뀌고 난 뒤 계약 기간은 소용이 없게 됐다.

건물주가 안 씨에게 나가달라고 닦달한 이유는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공항철도 역이 안 씨 가게 인근 동교동 삼거리에 세워지게 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마포구청은 2006년 3월 안 씨 가게를 포함한 인근 동교동 167번지 일대를 '지구 단위 계획 지역'으로 선정했다. 이로 인해 인근 건물주들은 현 시행사인 남전DNC에 건물을 팔았다. 평당 800여만 원 하던 땅이 많게는 8000만 원에 팔렸다.

그렇다 보니 건물에 세 들어 살던 안 씨와 같은 세입자들은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쫓겨나게 됐다. 이곳은 공영 재개발 지역이 아닌 민간이 철거를 주도하는 '지구 단위 계획 지역'인지라 용산 참사 이후 개정된 '도시 및 주거 환경 정비법'의 보호도 받지 못했다. 또한 '상가임대차보호법'도 적용을 받지 못했다. 건물을 재개발, 재건축할 경우 세입자는 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 씨 가게 인근 이발소는 명도 소송장이 날라 왔을 당시 영업을 시작한지 채 1년이 안 됐었다. 인근 옷 가게도 문을 연 지 불과 6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 옷 가게 주인이 투자한 시설 투자비만 해도 6000만 원이 넘었다.

▲ '두리반' 실내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결국 오롯이 홀로 남은 '두리반'

결국 안 씨는 남은 11세대 세입자와 새 건물주를 상대로 명도 소송을 진행했다. 하지만 결과는 패소였다. 2009년 5월의 일이다. 이후 새 건물주는 철거 업체를 고용, 세입자에게 압박을 가했다. 자발적으로 떠나지 않으면 불시에 철거를 하겠다는 협박에 시달린 세입자들은 하나 둘씩 자신의 보금자리를 떠났다. 이발소가 900만 원, 신발가게가 700만 원, 주점이 1000만 원, 세입자 대책회장 식당은 2000만 원을 받고 떠났다. 결국 끝까지 버틴 안 씨만 오롯이 남았다.

안 씨 부부의 바람은 다른 게 없다. 현재 가게의 절반 크기라도 '두리반' 이름을 내걸고 다시 가게를 시작하는 게 꿈이다. 하지만 새 건물주인 남전DNC에서는 이사비 300만 원을 제시할 뿐이다. 다시 '두리반'에서 칼국수를 먹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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