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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작은 용산'을 아십니까?"

[여기가 용산이다①] 생존권 외면하는 '윤리 경영'

서울 마포구 동교동 홍익대 근처 안종려(52) 씨의 식당 '두리반'. 이곳은 동교동 '마포 지구 단위 계획' 철거 지역 중 마지막으로 남은 곳이다. 그를 제외한 다른 세입자는 800만~2100만 원의 이주 보상비만 받고 떠났다. 그러나 권리금 1억 원을 내면서 2002년 식당을 연 그는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곳은 민간 사업자가 철거하는 곳이어서 용산 참사 이후 개정된 '도시 및 주거 환경 정비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안 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들은 한국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이 <프레시안>에 연속 기고를 보내왔다. 그들이 보기엔, 홍대 앞 등 전국 곳곳에서 용산 참사가 예고되고 있다. <편집자>


홍익대학교 앞 두리반 식당이 강제 철거에 맞서 농성을 시작한 지 벌써 40일을 훌쩍 넘겼다. 한겨울에 바닥 잠을 자며 추위에 떠는 동안 시행사나 시공사에서는 이사비 300만 원만 제시한 채 아무런 접촉을 해오지 않고 있다. 재개발 시행사는 남전디앤씨로 되어 있지만 뒤에는 한국토지신탁과 GS건설이 도사리고 있다.

남전디앤씨는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사무실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회사가 평당 8000만 원씩이나 주고 주변 땅을 매입할 수 있겠는가? 이웃해 있던 카센터 주인이 집을 비울 때 GS건설 측에서 잔금을 치러주었다는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바 있다.

그런데도 GS건설은 꿀 먹은 벙어리로 아닌 보살 노릇을 하고 있고, 한국토지신탁은 자신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왜 그러냐며 볼멘소리를 하고 다닌다. 억울하면 직접 농성장에 찾아와서 항의를 할 수도 있을 텐데 치사하게 뒤에서 구시렁대니 뒤가 구리긴 구린 모양이다. 건물을 비우라는 내용을 담은 명도소송장의 명의가 한국토지신탁으로 되어 있었고, 집달리(집행관)가 식당 집기를 들어낼 때도 한국토지신탁에서 나왔다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한국토지신탁은 유령이란 말인가?

한국토지신탁은 전문 부동산 투자 회사로, 1996년 한국토지공사가 전액 출자(300억 원)해서 설립하고, 이후 1997년과 1998년에 연이어 한국토지공사가 증자를 하여 키운 회사다. 그런 곳에서 세입자에 대한 대책 같은 건 전혀 개의치 않고 막개발을 밀어붙이고 있는 형국이다.

애초의 건물주는 세입자들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거액의 시세 차익을 남기며 건물을 팔아치운 다음, 모든 걸 새 건물주에게 가서 해결하라고 한다. 동절기 철거는 원칙적으로 금지시킨다는 서울시의 지침이 있지만, 그 역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강제 철거를 방치하다시피 한 마포구청은 철거는 허가 사항이 아니라 신고 사항이기 때문에 자신들도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만 되풀이하고 있다.

▲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두리반'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제2, 3의 용산 참사를 예고하는 일이 진행 중이다. ⓒ프레시안

어디 한 군데 믿고 의지할 수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그나마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시행사가 강제 철거하고자 농성자를 들어내도록 경찰 측에 지원 요청을 했을 때 경찰이 개입하지 않겠다며 뒤로 물러선 일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너무나 당연한 일을 두고 고마워해야 한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올지라도 이게 현실이다.

경찰이 개입을 꺼리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용산 참사의 교훈 때문이리라. 용산 참사를 통해 얻어낸 게 겨우 이 정도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1억 원이나 들어간 권리금 같은 건 법적으로 보장받을 길도 없고, 바라지도 않으니, 지금 하던 식당의 절반 크기라도 계속 장사를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는 부질없는 메아리가 되어 찬바람과 함께 농성장으로 변한 식당 안으로 되돌아 올 뿐이다.

GS건설과 한국토지신탁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윤리 경영을 내세우며 윤리 규범 혹은 윤리 강령을 만들어 실천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대체 그들이 말하는 '윤리'라는 말 속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내용을 보면 고객의 의견과 요구에 귀 기울여 공정하고 투명한 경영을 하겠다고 하는데, 고객이란 자신들의 상품, 즉 부동산을 사주는 사람들을 일컫는 것일 게다. 상품과 교환가치만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그들의 의식 속에서 나온 '윤리'라는 말은 언어의 오용에 따른 타락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표가 아닐 수 없다.

'생존권'이라는 말이 가진 무게와 절박함에 대해 점점 무감각해지는 세상이 되고 있다.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외침을, 가진 것 없는 자들의 불평이나 불만 정도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기는 무서운 세상이 되고 말았다. 너무 많은 곳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외치고 있어 우리 스스로 면역이 된 것일까? 아니면 진실을 아는 게 두려워서 자신도 모르게 회피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발동하고 있는 것일까?

이유야 어찌되었건 지금의 이 무서운 세상을 만든 건 바로 우리들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무서운 세상을 사람이 사는 따뜻한 세상으로 바꾸어 내야 할 책임도 우리에게 있는 셈이다. 그 길로 가는 데 있어 회피와 방관은 가장 커다란 적이다.

지금 홍대 앞 두리반 식당을 비롯해서 수백 군데의 재개발 지역에서 강제 철거로 인한 생존권 박탈의 위협에 떨고 있는 이웃들이 있다. 이들의 외로움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데서부터 새로운 세상을 여는 첫 발걸음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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