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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여, 제발 더 이상 잔인해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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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여, 제발 더 이상 잔인해지지 말자

[학생도 인간이다] 그들의 고통은 인권조례로도 모자라다

지난달 경기도교육청은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초안을 발표했다. 공개된 초안에는 두발 및 복장의 자유, 체벌 금지, 야간자율학습 및 보충학습 선택권 보장 등 실제 학생들이 일상에서 피부로 느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이는 지역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로 제정되는 학생인권조례다.

그러나 조례안은 초안 발표 직후부터 거센 찬반양론에 휩싸였다. 특히 보수 언론은 교내 집회 허용, 두발 및 복장 자유 등 세부적인 조항을 문제삼는 것부터 조례가 제정되면 교권이 추락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학생인권조례 자체를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선거용 프로젝트 또는 '좌파 교육'을 정착시키려는 프로젝트로 몰아가고 있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교권 추락, 통제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조례안에 대한 지지율이 낮다. 조례안 심의를 맡을 경기도교육위원회와 경기도의회에서의 통과 여부도 불투명하다.

<프레시안>은 현재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학생인권조례 혹은 학생 인권 보장이 왜 필요한지를 이야기하는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 현직 교사와 교육 전문가들이 나섰다. <편집자>

경기도교육청에서 만든 학생인권조례초안을 읽는데 첫 줄부터 눈물이 핑 돌았다. 예전에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이 '시민법전'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무슨 딱딱한 법전에서 감동을 받을까,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한 시민들이 인간임을 선언한 그 법전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에 파고드는 명문장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학생들이 인간임을 선언한 인권조례초안도 내 마음을 울렁이게 했다. 사실 이제야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해줄 법이 나왔다는 게 얼마나 무안한 일인지 학생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우연한 계기로 나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10대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공부 잘 하는 친구들, 못하는 친구들, 일반고에 다니는 친구들, 전문계에 다니는 친구들, 대안학교에 다니는 친구들, 지방에서 학교 다니는 친구들, 강남의 친구들 등 수십 명을 인터뷰했다. 인터뷰를 통해 10대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인터뷰하기 전에 다양한 교육 전문가들을 만났는데 그 중 강남에 있는 한 정신과 의사가 기억에 남는다.

"애들을 보면 학습 강도가 정말 엄청나요. 아이들이 견딜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버렸다니까요. 그러니 상담하러 저한테 오는 거예요. 견딜 수 없으니까."

그 의사가 강남에 있는 A고등학교로 현장조사를 나간 적이 있는데 학생들의 검사지를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학생들의 정신건강이 너무 안 좋아서였다. 이상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학생들 정신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학생들이 끙끙 앓으면서 그 힘든 환경을 혼자 견디고 있었다. 결과를 통보하자 학생들이 스스로 알아서 찾아왔다. 그만큼 힘들었고 뭔가 해결책을 찾고 싶어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심한 경쟁으로 인한 긴장, 압박이 학생들에게 불안, 강박증, 우울증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지난번에 아는 분이 연세대 강사로부터 직접 들은 정보라면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2009년 3월에 그 대학에서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정신건강검진을 실시했는데 결과가 하도 심각하게 나와서 발표하지 못하고 그냥 덮어버렸다는 내용이었다. 신입생으로 그 학교에 들어간 자신의 조카도 고2때부터 갑자기 강박증과 불안증세가 나타나 고통을 받았다고 했다. 심리 상담을 받고 싶은 학생들은 신청하라고 해서 했는데 신청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 밀리고 밀려 9월에야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외국에서는 강박증이 어른들에게서나 나타나는 병이지 학생들에게는 거의 없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든, 못하는 학생이든, 평범한 학생이든, 뛰어난 학생이든 모두가 마음 깊이 병들고 있었다. 과도한 학습 경쟁에서 학생들이 정상이길 바라는 것 자체가 자기기만일 것이다.

▲ 지난해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1년을 맞아 열린 집회에서 청소년들은 자살로 죽어간 친구들을 추모하는 작은 분향소를 설치했다. ⓒ프레시안
학생들이 이렇게 아픈데도 너만 입시경쟁 속에 있는 게 아니다', '다른 애들은 잘 견디고 있는데 너는 왜 그러느냐'면서 아예 아프지 말 것을, 아프다는 말조차 꺼내지 말 것을 강요하는 어른들의 태도는 참으로 잔인하다. 많이 아파서 이제는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상태까지 온 학생들에게 나는 인권조례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더라도 작은 탈출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권조례 제11조에는 학생들의 휴식권을 보장하고 있다.

"학생은 건강하고 개성 있는 자아의 형성·발달을 위하여 적절한 휴식을 취할 권리를 가진다. 학교는 정규교과 이외의 교육활동이 학생의 휴식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내가 인터뷰한 학생 중에 상현이는 "불 다 끄고 닷새동안 실컷 잤으면 좋겠어요", 했다. 어찌 그게 상현이만의 바람이겠는가. 인권조례에 담긴 내용들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절박한 문제이며 절실한 것인지 어른들은 상상이나 해 보았을까. 인권조례라는 작은 탈출구를 통해 학생들의 삶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는 큰 출발이길 바란다.

'우리 자식은 살아남아야 한다'? 당신의 손자도 고통받는다

학생들이 힘들면 힘든 만큼 부모나 교사들도 힘이 든다. 일제고사 두 번을 포함해 1년에 8~10번 살인적인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은 시험기간에는 스트레스가 심해 몸이 예민해지고 짜증이 나면서 부모들에게 이유도 없이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그렇지 않아도 부모들은 시험 때가 되면 자식들 시험공부 시키느라 힘든데 짜증까지 받아내려면 죽을 맛이다.

시험 때는 자식들에게 얽매여 있느라 부모들이 할 일을 제대로 못하기도 한다. 강남의 부모들은 시험 때는 밥도 안하고 시켜먹어 남편들은 밥도 못 얻어먹는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한다. 이렇게까지 마음을 썼는데 자식이 공부도 제대로 안하고 논다고 생각되면 역으로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른다.

언젠가 <내일신문>에서 시험 기간이 되면 각 가정마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르포를 실은 적이 있다. 욕과 손찌검은 기본이고 문짝이 부서진 집도 있었다. 완전히 전쟁터였다. 이번에 경기도 학부모들이 '학생 인권 개선을 위한 조례제정의 필요성'에서 82% 찬성이라는 높은 지지를 해 주었다. 그 만큼 학교에서 자식들이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는다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 학부모들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학생들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반대하지만 보충수업 자율화와 학생들이 자유로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집회의 자유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입시시험에서 불이익을 당할까봐 그러겠지만 학부모들은 학교에서의 폭력과 보충수업 자율화,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 간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란 게 보충수업 강제로 시키려다가, 학생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억압하려다가 사용된다. 서로 분리해서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집안에서 부모가 시험기간에 사용하는 폭력과 학교의 폭력을 분리할 수 있는가. 어떤 학부모는 학교에서 사용되는 폭력은 입에 거품을 물면서 반대를 하지만 학원에서 사용되는 폭력은 오히려 지지를 한다. "그래야 공부를 하죠. 다음에 안 맞으려고." 이렇게 말하는 부모의 말을 듣다가 끔찍했던 기억이 난다. 부모들이 분리해서 사고하는 사이 학생들은 학교, 집, 학원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얻어터지고, 욕먹고, 부정당하며 그렇게 10대를 보내는 것이다.

10대들은 자신들이 꾸는 꿈이 온전히 현실이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자신이 꾸는 꿈이 현실이 되는 청소년은 1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탈락자가 되거나 꿈이 대폭 낮춰질 수밖에 없다. 부모들은 그 10%에 자신의 자식이 끼기를 바라며 이렇게 안위한다.

"남들 다 하는 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 너라도 살아남아야지." 아무리 노력해도 90%가 버려지는데 그 안에 자식이 속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안타까우면서도 참 대책 없고 무책임하고 비겁하다.

뭔가 자식들을 희생시키지 않는 교육의 변화가 필요하다. 어떤 부모들은 "내 자식은 지금 고등학생인데 언제 교육을 변화시켜 혜택을 보겠느냐. 차라리 그 10%에 살아남기를 바래야지"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자식이 장가가서 손자를 낳는다면 또 이런 잘못된 교육 정책으로 고통을 당할 것이다. 멀리보고 10대를 청소년들이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해 줘야한다.

부모들이 자식들 학교 청소 해주러 가거나 선생님들 선물 보내는 일 말고 좀 더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 10대를 행복하게 보낸 청소년들은 그 힘으로 평생 살면서 부딪치는 어려운 일을 잘 헤쳐나간다고 한다. 우리나라 10대들이 대학도 가기 전에 이미 지쳐서 쉬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뭔가 끔찍하지 않는가.

상담에 목마른 학생들…상처는 '방치'로 낫지 않는다

이번 인권조례 중에 내 시선을 끌었던 것은 '학생인권옹호관'이다. 학생들이 인권 침해를 당했을 경우 상담, 구제신청에 대한 조사 및 시정권고, 제도개선 권고 등의 업무를 수행하게 될 사람인데 관할지역별로 5인 이내의 학생인권옹호관을 둘 수 있다. 그를 보좌할 전문조사원도.

학교폭력이 일어났을 때 내가 현장에 가보면 학생들을 보호할 어떤 장치도 마련되지 않은 학교가 많았다. 상담실과 상담을 맡을 교사도 없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폭력으로 피해본 학생과 가해 학생이 같이 학교 다니는 경우가 많았으며 피해학생은 가해학생 얼굴과 마주치면 그 장면이 떠올라 견딜 수 없게 된다.

결국 피해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는 불합리한 일이 발생했다. 피해학생이나 가해학생이나 충분히 보살펴줘야 하는데 방치상태로 두었다. 상처받은 마음 어느 것도 보살펴 주지 못했다. 미국에서 교사로 있었던 분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곳에는 학교마다 상담실이 있어 항시적으로 상담은 필수라고 했다.

9·11 사건이나 학교에 총기난사 사건이나 학생자살 같은 일이 벌어지면 각 학교에 심리학자들을 2~4명을 긴급 투입하여 3~4일정도 집중해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미국의 교육 제도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부분에서는 좀 부러웠다.

학생인권옹호관 이야기 나오면서 상담교사를 각 학교에 배치하는 문제도 거론된 걸로 알고 있다. 조례에는 각 지역에 인권상담실을 설치하도록 되어있는데 그것을 각 학교차원으로 확대시키면 좋을 것 같다. 상담실 역할도 함께 하면서. 학생인권옹호관이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그들은 더 많이 고민한다. 자신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김순천 지음, 동녘 펴냄) 청소년들이 그 책을 읽고 내가 사는 곳으로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거나 미래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책을 읽고 우는 친구들도 있었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시작할 힘을 얻었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프레시안
10대를 인터뷰하고 나서 내가 가장 많이 바뀐 점은 청소년들을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터뷰하기 전에는 그들이 어리다고 생각했다. 어리니까 내가 보살펴줘야 하는 존재로 여겼던 것 같다. 그들은 결코 어리지 않았다.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어른들보다 더 성숙했다. 청소년들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뿐만이 아니라 교육현실에 상처를 많이 받고 아파도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나는 그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현실이 어려우면 생각하기 싫어서 포기할 거라고 지레짐작을 했던 것이다.

그동안 오만하게도 부모인 나나 선생님들이 청소년들 자신보다 더 그들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까지 고민하면서 자신의 길을 찾으러 애쓰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부모의 인생도 아니고, 선생의 인생도 아니고 바로 자신의 인생이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에게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아이들이 나중에 무엇이 될지 말하지 마라. 아이들은 스스로 더 좋은 것을 안다." -리캐롤의 '인디고의 아이들' 중

10대들을 인터뷰한 내용은 책으로 나왔는데 청소년들이 그 책을 읽고 내가 사는 곳으로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거나 미래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서평을 써서 보내거나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했다. 책을 읽고 우는 친구들도 있었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시작할 힘을 얻었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어떤 친구는 자신이 한번도 독후감이란 것을 써 본적이 없었지만 그 책을 읽고 처음으로 쓴다면서 "책이 참 재미있다. 사실 그 '재미'는 내 삶을 위로하고 공감을 주는 데서 오는 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책 내용은 10대들 인터뷰를 그냥 솔직하게 풀어서 실어놓은 것뿐이다.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보면 재미없고 무료할 수 있는 내용인데 10대 당사자들이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위로와 힘이 되었나보다. 그만큼 10대들은 현실을 살아가면서 겪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하는 뭔가를 갈구했던 것이다. 그 이야기들을 통해 부모와 선생님과 사회의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했다. 그 소통 욕구에는 자신들의 삶이 변화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애절한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작은 책 하나로도 이렇게 좋은 반응을 하는데 교육적인 큰 틀에서 지금과는 다른 큰 변화를 만들어 주면 학생들이 얼마나 기뻐할까. 인권조례가 발표된 날, 인터뷰한 학생들이 전화를 해 가지고 "내년부터 우리 머리 자유화 된대요!" 얼마나 들떠서 이야기 하던지…. '헉, 그러려면 몇 가지 더 장치가 필요해. 의회도 통과되어야 하고….' 나는 이 말을 하려다 꿀꺽 삼켰다. 지금 이 순간만은 기쁨을 실컷 누리게 하자. 이 기쁨을 통해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마음껏 상상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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