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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제자 보기 부끄러워 피하는 교사였습니다"

[학생도 인간이다] "'블랙홀' 일제고사 선택권도 보장하길"

지난달 경기도교육청은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초안을 발표했다. 공개된 초안에는 두발 및 복장의 자유, 체벌 금지, 야간자율학습 및 보충학습 선택권 보장 등 실제 학생들이 일상에서 피부로 느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이는 지역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로 제정되는 학생인권조례다.

그러나 조례안은 초안 발표 직후부터 거센 찬반양론에 휩싸였다. 특히 보수 언론은 교내 집회 허용, 두발 및 복장 자유 등 세부적인 조항을 문제삼는 것부터 조례가 제정되면 교권이 추락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학생인권조례 자체를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선거용 프로젝트 또는 '좌파 교육'을 정착시키려는 프로젝트로 몰아가고 있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교권 추락, 통제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조례안에 대한 지지율이 낮다. 조례안 심의를 맡을 경기도교육위원회와 경기도의회에서의 통과 여부도 불투명하다.

<프레시안>은 현재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학생인권조례 혹은 학생 인권 보장이 왜 필요한지를 이야기하는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 현직 교사와 교육 전문가들이 나섰다.

2008년 10월 일제고사 당일 학생들의 체험학습을 허용했다는 이유로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았던 전북 장수중 김인봉 교장은 '셀프 인터뷰' 형식으로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을 일선 학교장으로서 어떻게 보십니까?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이제라도 학교가 학생인권에 눈을 뜨는 것은 참 좋은 일이요 잘하는 일입니다. 학생들에게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지식으로만 가르치지 않고 실제로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실행하는 것은 학교교육의 근본이자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학생을 성적과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에서 자유와 권리를 누려야 하는 존엄한 인간으로 새롭게 보자는 것이므로 두 손을 들어 환영하고 지지합니다.

그렇지만 학생인권 찾아주다 학교 교육의 붕괴가 가속화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지 않습니까?

학생인권 찾아주다 교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는 교사와 교장들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교권과 학생인권은 서로 부딪치는 관계가 아니고 서로 도와주고 부축해서 함께 일어서야 할 관계입니다. 교장과 교사들이 인권을 염두에 두고 학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배려, 더 세심한 준비와 주의를 기울이면 학생들의 학교생활 만족도가 올라가고 학부모들의 학교교육에 대한 신뢰도 부쩍 늘어날 겁니다.

교장 선생님도 학창 시절에 인권 침해를 많이 당하셨죠? 그리고 교사로서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한 경험이 있습니까?

학생으로서도 그렇고 교사로서도 아주 많습니다. 저는 군부독재가 극성을 부리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는데 그때는 학생인권이라는 낱말조차 없었어요. 학생인권에 관하여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교단에 섰으니 어린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학생들의 정당한 요구와 주장을 가차없이 누르면 누를수록 교사로서 사명감과 열정, 능력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였으니 그 당시 제자들을 먼발치에서 보면 부끄러워서 제가 피한 경우도 있습니다.

교장으로서 학교를 운영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부끄럽지만 많이 있습니다. 특히 학생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두발 및 복장의 자유', '체벌 금지', '집단 괴롭힘 금지',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등 정규교과 외 학습 선택권', '자치활동 및 참여의 권리', '징계절차에서 학생이 가지는 권리' 등에 각별히 노력하고 있지만 학생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생도 행복을 유보하지 않고 지금 당장 향유할 수 있는 사람"

몇몇 대안학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교는 학생인권의 불모지나 다름없는데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남북 분단과 대결, 군사정권의 안보와 개발독재로 우리 사회 전반이 꽁꽁 얼어붙어 학생인권이 싹틀 수 없었습니다. 특히 봉건질서가 붕괴하고 신분사회가 해체되고 학벌이 새로운 신분제로 대체되면서 학교는 학벌을 제공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학생은 자유와 권리를 향유하는 존엄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학벌사회에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기 하여 준비해야 하는 수험생으로 취급받고 있죠.

이처럼 학생을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자유와 권리, 행복을 유보해야 하는 존재로 보면서 아직 사리 분별을 못하는 미성숙한 존재로 규정하니까 학생인권이 설 자리가 없었지요.

그럼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첫째, 입시교육이 폐지되어야 합니다. 현재 학생인권 침해의 대부분은 학생들을 입시교육에 몰아넣기 위한 방편과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둘째, 학교 규모의 적정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셋째, 학생관이 바꿔야 합니다.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 기까지 자유와 권리, 행복을 유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향유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학생을 수험생이 아닌 사람으로 보고, 생일에 잘 먹으려고 사흘 굶지 말고 평소에 잘 먹는 것이 행복의 요체라고 학교는 가르쳐야 합니다.

학교 규모의 적정화는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학생들이 적정 규모의 학급과 학교에서 공부할 권리를 말합니다. 정부는 농산어촌의 소규모 학교 통폐합만 추진하지 도회지의 대규모 학교 분할은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인지 전혀 고민하지 않습니다. 교육학자와 교사들마다 의견은 분분하 지만 일반적으로 학급당 20명, 학년당 4학급, 학교당 12학급, 총학생수는 240명 정 도를 학교를 운영하고 학생을 교육하는데 최적의 환경으로 봅니다.

그런데 도회지는 학급당 35명, 학년당 10학급, 학교당 30학급, 총학생수는 1000명 이 넘는 학교가 대부분입니다. 이건 학교가 아니라 수용소입니다. 따라서 교사로서 자질과 능력은 물론 인권 의식이 매우 투철한 소수의 교사를 제외한 대부분 교사들 은 그 많은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할 수 없어요. 학생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 하기보다 전체를 대상으로 지시와 명령, 억압과 통제를 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학생인권은 짓밟힐 수밖에 없어요.

▲ 지난달 17일 인권·교육 단체로 구성된 일제고사반대서울시민모임과 국가인권위제자리찾기공동행동은 일제고사 실시로 인권을 침해받은 학생들의 진정서를 모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프레시안

"'잠', '밥', '똥'을 잡아먹는 괴물, 일제고사"

장수중학교는 대표적인 농산어촌 소규모학교입니다. 도회지의 대규모 학교보다 학생 인권을 잘 보호하고 있습니까?

서툰 목수가 연장만 탓한다고 저는 서툰 교장이라서 교육환경을 탓하겠습니다. 우리학교 학생이 210명인데 교사는 저를 포함하여 18명입니다. 교사 1인당 학생 12명이니까 수치상으로는 다른 학교보다 훨씬 유리한 환경입니다. 그런데 공문이 그걸 허용하지 않습니다.

교사가 50∼60명인 학교나 10명 미만인 학교나 교사들이 처리해야 할 공문의 총량은 같습니다. 대규모 학교에서는 교사 1인당 1∼2개 업무만 맡으면 되는데 소규모학교는 교사 1인당 5∼6개 업무를 처리하느라 눈코 뜰새없이 바쁩니다. 결론적으로 학교의 적정 규모화에 이어서 잡무를 대폭 줄여야 교사들이 인권교육을 비롯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안에서 아쉬운 부분은 없습니까?

전체적으로는 매우 좋은 데 아쉬운 점은 시국이 시국인 만큼 시국을 관통하는 핵심이 빠져서는 안 되는데 빠진 겁니다. 이명박 정부가 학교와 시장을 분간 못하고 불도저처럼 마구 밀어붙이는 핵심 가치가 경쟁과 효율이고, 그걸 학교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것이 일제고사인데, 이에 대한 선택권이 빠졌어요. 보충수업, 야간자율학습 등 정규교과 외 학습을 선택할 권리는 언급하면서 일제고사를 선택할 권리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이 아쉽습니다.

일제고사와 학생인권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습니까?

일제고사는 우리나라의 모든 학교, 교사, 학생을 성적이라는 잣대로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것으로 학생 개개인의 특기적성, 바른 품성, 학생자치와 다양한 체험활동 등 성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모든 교육활동과 성과를 모조리 빨아들이는 블랙홀입니다.

그리고 한창 성장기에 있는 중고등학생들이 충분히 누려야 하는 '잠', '밥', '똥'을 먹성도 좋게 잡아먹는 괴물로 머지않아 초등학교까지 내려가서 인권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하게 할 겁니다. 일제고사에서 1점이라도 올려야 하는 학교에서, 그걸 담당해야 하는 교사들이 학생인권을 구조적으로 보호할 수 없게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일제고사의 위험성을 알려 준 교사들을 내쫓고, 일제고사 대신 현장체험 학습을 선택한 학생들에게 결석이라는 불이익을 주지 않은 교장을 징계하는 것은 학생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거지요. 즉, 일제고사는 학생의 학습권과 행복추구권을 뚜렷하게 침해하고 있습니다.

장수중학교에서도 학생인권 규정을 제정할 생각입니까?

올해 실시되는 교육감 선거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공약으로 채택하도록 노력한 연후에 전라북도 모든 학교와 함께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막상 일선학교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쉽게 제정될까요?

학생인권을 담아낼 환경과 교사와 학부모들의 인권 인식이 미비한 상황에서 쉽지 않은 일임은 틀림없습니다. 설사 우여곡절 끝에 제정하드라도 학교 구성원, 특히 학교장의 성향에 따라서 사문화될 개연성도 높습니다. 그러나 학생인권규정을 제정한 자체가 학교교육의 방향과 중심을 바로 잡는 것이요 역사의 수례바퀴를 한 바퀴 굴리는 것이므로 누군가는 시작해야 하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학생인권조례는 경기도교육청에서 제정할 일이 아닙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의 모든 시·도교육청에서 제정하도록 추진해야 합니다. 만약 교육과학기술부가 일제고사에 쏟는 행·재정의 1000분의 1만 학생인권에 쏟아도 우리나라 학생인권은 눈을 비비고 봐야 할 정도로 신장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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