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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선거에 '무슨 일' 있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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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민주노총 선거에 '무슨 일' 있었길래?

임성규, 불출마 선언→후보등록→하루 만에 사퇴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이 불과 15일 여 남긴 위원장 직에서 물러났다. 차기 임원 선거에도 나서지 않기로 했다. 자신의 '불출마 선언'을 뒤집고 산별대표자들의 설득에 밀려 후보 등록을 했다가,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자마자 사퇴한 셈이다.

임성규 위원장은 11일 작성한 '민주노총을 사랑하는 동지들께'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 같은 뜻을 피력했다. 사퇴 배경에는 '불출마 선언' 번복에 따른 심리적 부담과 더불어 범 국민파에서 또 다른 후보를 내면서 '통합후보'라는 명분에도 흠집이 난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임 위원장은 약속을 뒤집고 후보로 나선 것에 대해서는 "줏대 없고 모질지 못해서 마지막 10분을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하며 "아무리 진정성을 설파한다 해도 3파전이라는 경선구도는 결국 패권다툼처럼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일로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는 기회마저 상실했다"며 비참한 심경도 자세하게 토로했다.

이로써 핵심 간부의 성폭력 사태 이후 민주노총을 책임져 온 임성규 위원장도 전임 이석행 위원장에 이어 또 한 번 끝까지 임기를 채우지 못하게 됐다. 또 "지금은 정파 선거가 아닌 통합지도부 구성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는 산별대표자 다수의 고민도, 비록 그 시작은 아름다웠으나 끝이 예상치 못하게 씁쓸해졌다.

임 위원장의 사퇴로 민주노총 차기 선거는 국민파 진영의 김영훈 후보와 현장파 진영이 낸 허영구 후보의 2파전으로 치러지게 됐다. 다시, 말 그대로 '정파선거'로 돌아간 셈이다.

"정파는 공조직 발전에 책임 안 느껴…한 번이라도 함께 책임지는 집행부 바랬다"

▲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이 불과 15일 여 남긴 위원장 직에서 물러났다. ⓒ프레시안 최형락 기자
임성규 위원장은 이 글에서 자신이 애초의 약속을 번복하고 후보에 나서게 된 배경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고민의 맥락은 임성규 위원장의 재출마를 설득한 산별대표자들의 이유와 다르지 않다.

정파간 통합이 아닌 산별대표자들의 결정으로 8개월 전 위원장 선거에 나섰던 임 위원장은 "정파들은 공조직의 발전과 방침에 힘쓰고 복무하는데 별로 책임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며 "그래서 나는 더더욱 이번 선거만큼은, 한번만이라도 다 같이 함께 책임지고 협력하는 집행부 선출을 진심으로 소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파와 산별대표자라는 '투 트랙'으로 진행된 통합지도부 구성 논의에서, 정파들은 일찌감치 '포기'를 선언했다. 산별대표자들의 논의는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이 끝내 고사하면서 인물이라는 난관에 부딪혔다. (☞관련 기사 : 민주노총, '정파선거' 탈피하자더니, 또…) 임 위원장은 산별대표자들의 설득에 재출마를 결심한 것이다.

'통합'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불출마'라는 조합원과의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임 위원장의 부담감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통합 단일후보 노력에 실패한 장본인이 등록 마감 직전에 후보 등록을 하다니 대중들에게 어떻게 해명해야 하냐"며 "명쾌하게 해명할 합당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게다가 약속을 뒤집게 만든 그 명분마저 흠집이 제대로 났다. 그는 "이유야 어찌됐든, 지지도야 어찌됐든 3파전이라는 조건 속에 한 조의 후보라는 것은 결코 '진정한 통합'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다"고도 말했다. 애초부터 '후보 단일화'를 거부하고 단독 출마를 선언한 허영구 후보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른바 국민파의 지지를 받고 출마한 김영훈 후보와의 경쟁까지 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그는 "이 구도에서 승리한들 지금 집행부보다 응집력을 보일 수 있을까"라고 회의감을 피력했다.

"'정파를 넘는 통합'의 벽, 다시 한 번 비참하게 확인했다"

차기 임원 선거의 후보 뿐 아니라 현직 위원장직까지 내놓은 임성규 위원장은 "참으로 순수하게 노동운동에 헌신하다 멋진 은퇴를 하는 게 꿈이었는데…"라며 참담함 심정도 토로했다. 그는 "모두가 나의 잘못"이라면서도 "오랜 운동생명을 제 스스로 이렇게 죽일 수밖에 없는 참담함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그는 "어쨌든 정파를 넘어 통합, 단일후보를 조화시키기 어려운 현실의 벽을 다시 한 번 비참하게 확인하는 과정이었다"며 "정확히 21년을 노동운동에 복무했다는 자존심을 팽개치지 않는 범주에서 개인의 삶을 다시 설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 위원장의 러닝메이트로 차기 선거에 나섰던 신승철 사무총장은 12일 기자들과 만나 "후보 뿐 아니라 위원장 직까지 내놓으면서 발생될 여러 문제에 대해 조합원과 국민들께 죄송하다"며 "이번 일이 대단한 사건이라기보다는 민주노총을 정파가 아닌 대중조직으로 운영하려는 노력의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전 산별대표자회의를 열고 28일로 예정된 대의원대회를 무사하게 치르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현 위원장직 사퇴와 관련된 논의는 오는 14일 중집에서 할 예정이다.

"'불출마 선언' 가벼이 여긴 결과" vs. "정파가 산별의 결정을 발목잡다"

임 위원장의 출마를 강력하게 권유했던 산별대표자들도 당혹스럽다는 표정이다. 정파의 차이로 인해 실제 사업에서도 불필요한 갈등이 반복되는 민주노총의 구조를 탈피하고자 출발한 '통합지도부 구성' 노력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 사태의 원인을 놓고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크게 두 가지로 시각이 엇갈린다. "무조건 통합지도부를 세워야 한다는 산별대표자들의 욕심이 화를 키웠다"는 분석과 "산별대표자들의 고민을 일부 정파가 무시하고 독자 후보를 내면서 벌어진 사단"이라는 평가가 그것이다.

한 민주노총 관계자는 "산별대표자들의 고민의 '충정'은 이해하나 불출마 선언이라는 대중과의 약속을 산별대표자들이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임성규 위원장의 후보 출마에 반발해 독자 후보를 낸 소위 국민파의 근거도 "불출마 선언은 조합원과의 공식적인 약속이었다"는 것이었다.

반면 "정파의 폐해가 또 한 번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 다른 민주노총 관계자는 "김영훈 후보가 나오지 않았다면, 임 위원장이 현 위원장까지 사퇴하는 극단적 선택은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는 "독자 후보 출마를 결정한 국민파 내의 일부 의견그룹이 산별대표자들의 결정을 발목 잡았다"는 평가인 것이다.

신승철 사무총장은 이런 의견과 관련해 "분명한 것은 의견 그룹과 그에 소속된 산별대표자들이 유기적으로 소통했다면 오늘의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 총장은 그러면서도 "민주노총 합법화 이후 15년 동안, 과거와 달리 정파의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많았다"고 정파 구조를 비판하기도 했다.

어쨌든, 정파가 좌지우지하는 민주노총의 선거 및 의사결정 구조를 대중조직 대표자들의 손으로 넘기려는 첫 시도는 좌초한 셈이다. 15년 역사상 유례없었던 '정파'를 초월한 산별대표자들의 마음은 가상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산별대표자들이 임 위원장 스스로 자신의 약속을 뒤집게 만듦으로써 초래된 비극인 것.

임 위원장은 성폭력 파문이라는 초유의 악재 이후 민주노총 비대위원장을 맡았고, 지난 4월 산별대표자들이 추대한 통합지도부로 정식 위원장에 당선돼 8개월 동안 민주노총을 맡아 왔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이것이었다.

"저는 이제야 비로소 정파로부터 자유로워질 것 같습니다. 반면 오래도록 괴로울 것입니다. 그리고 기약 없이 외롭지 않겠습니까?"

임성규 사퇴의 변 전문 "민주노총을 사랑하는 동지들께"

올해로 민주노총은 창립 15년차를 맞이합니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 이래, 특히 '87년 6월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 이래 노동운동의 부침은 끊임이 없었고, '97년 IMF이후부터는 부침이 거듭됐다기보다 1990년대 중반부터 나타난 침체와 위기의 징후들이 현실로 구체화됐으며, 2009년에 들어와 위기 상황은 극에 달했습니다.

노동운동이 안고 있는 위기 실태를 구체적으로 나열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우리는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단 한걸음일지라도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는 일념으로 운동에 복무하고 있다는 믿음으로부터 말문을 열고자 합니다.

세상의 모든 영역은 사실상 정치 카테고리에 갇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노동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자본의 지배력이 제아무리 무소불위의 전횡을 휘두를지라도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설사 노동운동이 기존 제도의 틀을 깨고 잘못된 사회를 갈아엎어 새롭게 재편할 만한 힘이 있다 해도 정치적 범주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며, 자본이 모든 반자본 저항세력을 제압하여 폭압적 노예제도가 성립된다 해도 그 세상 역시 정치에 의해 운용될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노동운동은 지금 기존 제도의 틀을 깨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는커녕 근근이 누려오던 권리마저 야금야금 박탈당하는 과정에 위태롭게 놓여 있습니다. 거꾸로 가는 사회의 주요한 저항 진지가 토벌될 위기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각설하고, 여러 가지 점에서 5년 단임제인 대통령의 임기 3년차이면서 지자체와 교육감 선거가 동시에 치러지는 2010년은 정세 변화에 커다란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아니 한나라당의 압승 또는 신승과 민주당의 참패 또는 미미한 약진(현상유지), 그리고 진보정당들의 참담한 퇴보를 확인하는 6월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 사이 노동운동이 개악된 노동법에 맞서 한번 쯤 용쓰는 상황을 기대해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진보정당 세력의 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운동을 소홀히 한다면 결국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우매한 국민들의 높은 지지 속에 '권력 누수 현상은 없다'고 장담하는 이명박의 독주만 계속되고 말 것입니다.

진보진영에게 2012년의 유리한 정치 지형은 결코 절로 오지 않습니다. 진보진영 모두가 아집과 기득권을 버리고 2010년을 아주 잘 보내야만 겨우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진보진영은 '우리에게 2010년 7월 이후는 없다'는 각오로 노동운동을 중심에 놓고 여러 변수까지 다 감안한 하나의 '2010 선거 전략(연대나 선거연합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것임)'에 힘을 집중하는 것이 최우선일 것입니다. 그래야만 민주대연합 같은 반한나라당 정치전선도 전략적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현존하는 진보정당들은, 그 당원들 중 상당수는, 그리고 특히 민주노총 조합원이면서 진보정당 당원인 동지들 중 상당수는 진보정당운동에서 노동운동을 그저 대상 또는 표밭으로나 생각할 뿐인 것 같습니다. 심지어 어떤 인사들은 노동운동, 특히 민주노총을 멀리해야만 득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만큼 민주노총이 진보세력 속에서도 고립되어 있다는 뜻도 됩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언제부턴가(아마도 노동운동의 침체·위기의 징후가 나타나면서부터) 민주노총의 선거는 가급적 사전에 충분한 조율을 거쳐 통합·단일후보를 놓고 찬반을 묻는 선거로 치러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었습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산별운동의 발전을 위해서! 그러나 지난 세월 그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는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정파운동에 좌지우지되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고, 현실의 벽을 넘어서기는커녕 저조차 현실에 물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이상적 경선이 되어 조직력을 정비하고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보다 그 후과가 더 크게 나타나는 현상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그 생각은 더욱 강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아마도 저뿐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비록 보궐선거였지만, 작년 4월 우리는 단독후보조였습니다. 통합후보라는 평가도 있으나, 결코 명실공히 모두가 인정하는 통합단일후보는 아니었습니다. 특히 정파들은 공조직의 발전과 방침에 힘쓰고 복무하는데 별로 책임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과 무관한 집행부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더더욱 이번 선거만큼은, 한번만이라도 이 엄혹한 정세를 모두가 십분 공감하여 다 같이 함께 책임지고 협력하는 집행부 선출을 진심으로 소망했고 그리되도록 알게 모르게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통합·단일후보 노력에 실패한 장본인이 갑자기 등록 마감 직전에 위원장후보로 등록하다니 대중들에게 어떻게 해명해야 합니까? 이유야 어찌됐든, 지지도야 어찌됐든 3파전이라는 조건 속에 한 조의 후보라는 것은 결코 '진정한 통합'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진정성을 설파한다 해도 3파전이라는 경선구도는 저와 함께하는 후보조에 기어이 색칠을 당하는 선거가 될 것이며, 결국 패권다툼처럼 될 것입니다. 이 구도에서 승리한들 지금 집행부보다 응집력을 보일 수 있을까요? 그런 점에서 저는 대중 앞에 명쾌하게 해명할 합당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저 이렇게 궁색한 변명밖에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첫째, 줏대 없고 모질지 못해서 마지막 10분을 버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출마 선언을 두 번 세 번씩 했으면서 대중과의 약속을 순간 저버렸습니다.

둘째, 완전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산별대표자 논의에서라도 통합·단일보로 정리되지 못한 상황에 대한 어줍지 않은 책임감과 의무감,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현재 진행형인 몇 가지 사업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상반기 투쟁 조직, 진보정당세력 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등.

이 변명은 투명한 사실입니다. 한마디로 이 변명 속에 위원장 후보로서 저의 심각한 문제가 응축되어 있다고 판단합니다. 흔쾌하게 정리되지 않은 산별대표자들의 마지막 회의 끝에 몇몇 산별대표자들의 간곡한 권유와 상황논리에 의해 대중과의 약속을 한 순간에 저버렸다는 사실, 모순으로 점철된 어줍잖은 책임감과 의무감……쉽게 눈에 띄지 않을 수는 있으나 언젠가는 저의 그런 성격적 한계와 판단력이 조직에 커다란 누를 끼칠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언론을 통해 강력한 어조로 통합·단일후보를 요청한 바도 있었고, 그 자리에서도 불출마를 재삼 강조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일찌감치 예견되었던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모두에게 현 위원장의 권위와 지도력이 얼마나 우습게 취급됐는지 그 현실도 깨달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용산 장례식이 진행된 9일(토), 저는 그 중요한 장례식에도 불참하고 하루 종일 그리고 이 순간까지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저의 출마는 결코 논리적이거나 순리일 수 없습니다. 또한 비대위원장을 포함해서 지난 10개월 동안 민주노총을 끌어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떤 후보보다도 차기에 대한 준비가 안 된 상태입니다.

따라서 저의 역할은 여기까지이고 후보를 사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아가 저는 이 일을 계기로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는 기회마저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불과 20일도 채 안남은 임기이지만 현직 위원장직도 내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노총을 사랑하는 모든 동지들, 풍파를 일으켜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누구보다도 신승철 총장에게 큰 누를 끼치게 됐습니다. 동반이기 때문에 바로 유탄을 맞는 것이야 아마도 얼마든지 감내해낼 것입니다. 다만, 저에 대한 신총장의 믿음과 기대를 너무나 충격적으로 무너뜨리는 것 같아 그 괴로움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마지막까지 결단을 주저하면서 갈등한 가장 주된 이유는 신승철 총장이었습니다.

신 총장, 정말 죽을 죄를 짓게 됐습니다. 더불어 지난 8~10개월 동안 참으로 잘 보필해 준 정의헌 수석을 비롯한 임원들 정말 미안합니다. 특히 정의헌 수석부위원장님 규정에 따르는 일이겠지만, 우리 집행부의 마무리를 잘 이끌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통합집행부를 세우고자 노력했던 많은 산별대표자들께 면목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무총국 동지들, 출마 소식을 듣고 격려와 용기를 불어넣어 준 수많은 동지들 고맙고 또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동지들, 모두가 저의 잘못입니다. 그럴거면 왜 대책을 마련할 시간을 주지 않았냐는 비난에도 할 말이 없습니다. 시간에 쫓기긴 저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보다 오랜 운동생명을 제 스스로 이렇게 죽일 수밖에 없는 참담함도 이해해 주십시오. 참으로 순수하게 노동운동에 헌신하다 멋진 은퇴를 하는 게 꿈이었는데……

어쨌든 정파를 넘어 통합·단일후보를 조화시키기 어려운 현실의 벽을 다시 한번 비참하게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미약했으나 저 또한 그 동안 정파적 사고와 시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처지에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어떠한 조직적 조건이나 이유도 개인의 삶을 침해할 수는 없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낸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지는 더 고민하고 번뇌할 것입니다. 정확히 21년을 노동운동에 복무했다는 자존심을 팽개치지 않는 범주에서 개인의 삶을 다시 설계할 것입니다.

저는 이제야 비로소 정파로부터 자유로워질 것 같습니다. 반면 오래도록 괴로울 것입니다. 그리고 기약 없이 외롭지 않겠습니까?

2010년 1월 11일 임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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