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근로복지공단이 이들에 대한 산업재해 인정을 거부한 탓이다. 삼성반도체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22명의 노동자가 조혈계암에 걸렸고, 이 가운데 7명이 사망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역학조사까지 벌였지만, 이들 가운데 일부의 산업재해 인정 요구를 끝내 거절했다. "백혈병은 통계학적으로 의미 있는 증가를 찾을 수 없었다"는 산업안전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조사가 그 이유였다.
그러나 연구원은 "이번 조사는 추적 기간이 너무 짧았던 만큼, 충분한 위험 요인 정보를 파악해 앞으로 장기적인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며 백혈병과 반도체공정의 관련성을 완전히 부인하지도 않아, 당시 시민단체들은 "이런 애매한 발표에는 삼성의 힘이 작용했을 것"이라 반발했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소송은 형식적으로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하고 있지만, 사실상 삼성을 상대로 한 법적 다툼으로 볼 수 있다. '클린 산업'으로 알려진 반도체 산업의 종사자가 같은 병으로 잇따라 사망하면서 벌어진 '삼성반도체 백혈병' 논란이 장기전에 들어간 것이다.
"산재 불승인 근거가 된 역학조사, 오류 많다"
이들은 소장에서 "백혈병과 업무의 관련성이 없다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는 대상집단을 잘못 설정하는 등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연구원이 전체 인구의 평균과 반도체 공정 노동자의 백혈병 발병율을 비교해 그 인과성을 판단했던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이들은 "아픈 사람은 애초 입사 자체가 불가능하고 삼성전자와 같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사람의 건강 상태는 일반 국민 평균보다 좋다"며 "때문에 비슷한 조건의 대기업 노동자와 비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 삼성반도체에서 벤젠이 검출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것도 주목할 만 하다. 벤젠은 전리방사선과 함께 백혈병의 확실한 발병원인으로 지목되는 물질이다.
▲ 11일 삼성전자 노동자의 집단 백혈병 사망 사건에 대해 행정소송이 제기됐다.ⓒ연합뉴스 |
소송단 "5개월 동안 각종 논문, 판례 꼼꼼히 검토했다"
이번 소송을 위해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삼성전자 백혈병 소송단'을 구성해 5개월 동안 준비해 왔다.
소송단은 원진녹색병원 산업의학과 전문의였던 박영만 변호사(법률사무소 의연), 서울행정법원 부장 판사 출신의 박상훈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민주노총 법률원의 박순란 변호사와 권동희 노무사, 민주노총 경기법률원의 이종란 노무사, 노법인 참터 충정지사의 김민호 노무사 등 6명으로 구성됐다.
소송단은 "사건의 내용과 경위, 관련자료 뿐 아니라 직업성암과 백혈병에 관련된 수십 개의 논문, 번역서, 외국사례, 조혈계암과 관련된 50여 건의 판례 등을 면밀하게 검토해 소장을 작성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대법원 판례다. 지난 1997년 대법원은 업무상 질병의 산재인정 여부와 관련해 "인과관계를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해야하는 것은 아니고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그 입증이 있다"고 밝혔다.
또 지난 1999년 판례에서도 대법원은 "재해 발생 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라도 간접적 사실관계 등에 의거해" 업무상 재해라고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소송단은 "최근 대법원 판례를 보면 제철소, 타이어회사, 제약회사, 항공기 제조회사, 중금속을 취급하는 방위산업체 등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에게 발생한 백혈병도 업무상 질병으로 판단하는 사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소송에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다니다 숨진 고 황유미 씨(2007년 3월 사망), 고 이숙영 씨(2006년 8월 사망), 고 황민웅 씨(2005년 7월 사망)의 유족과 현재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박지연 씨, 김옥이 씨, 림프종으로 투병 중인 송창호 씨가 원고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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